검은 선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프랑스 문학은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고, 스릴러하면 역시 영미권이라고 생각해왔기에 프랑스 스릴러에 손이 잘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심 샤탕의 <악의 영혼>을 읽으며 내가 프랑스 스릴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던 차에 출간된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검은 선>에 쏟아지는 호평을 보며 여름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제법 날이 쌀쌀해진 11월이 되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한 때 무호흡 잠수 챔피언이었던 르베르디가 말레이시아에서 살인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프랑스에 전해진다. 이 소식을 들은 뒤페리는 르베르디를 통해 악의 근원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르베르디에게 접근한다. 엘리자베트라는 여자로 속여 르베르디에게 편지를 보내고, 르베르디와 소통을 시작한 뒤페리. 50%는 엘리자베트로, 50%는 르베르디로 살아가며 점점 르베르디의 악의 근원에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기자가 범인의 족적을 쫓아가는 과정은 이미 다른 작품에서도 접한 적 있는 익숙한 방식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범인이 남겨주는 뜬구름 잡는 듯한 힌트를 따라간다는 방식으로 약간의 변형을 가한다. 힌트를 잡아든 뒤페리와 독자. 모두를 대체 무슨 의미일까라는 호기심과 혹 제대로 못 찾으면 어쩐다라는 불안감에 떨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이란! 여기에 어린 시절 친구의 죽음을 발견하고, 커서는 여자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뒤 코마에 빠진 적이 있는 뒤페리가 자신을 평생 괴롭히는 그 검은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르베르디에게 접근해 자신의 괴롭히는 악과 대면하고자 한다는 설정도 르베르디와 뒤페리의 비중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게 만들었다.

  뒤페리가 르베르디가 던지는 메시지에 따라 르베르디가 왜 살인을 한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한 것인지 등을 하나씩 알게 되는 과정도 흥미로웠지만, 압권은 2권의 중반 이후 그러니까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 겪는 사건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잘 시간이 되서 다 읽고 잘까 말까하다가 왠지 다 읽게 되면 꿈자리가 뒤숭숭해질 것 같아서 결국 포기해버릴 정도로 긴장과 공포를 안겨줬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다 읽고 자는데 이건 좀 겁나더라.)

  겉으로 보기엔 푸른 빛이지만 수심이 깊어질 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처럼 겉모습과 달리 깊은 어둠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하는 <검은 선>. 악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결국에 악은 특별한 사람의 내면에만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내면에 그 모습과 정도가 다른 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공기가 점점 희박해져 산소를 갈구하는 것처럼, 점점 악과 어둠으로 가득차가는 소설을 읽으며 빛과 선을 갈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진 <크림슨 리버>, <늑대의 제국> 등 줄곧 스릴러를 써내려간 작가의 작품들을 보며, 과연 이 작가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조만간 그랑제의 소설을 다시 읽어야겠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악의 기원 3부작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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