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의 도가니, 혹은 인종의 샐러드 볼로 지칭되는 미국. 애초에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이니만큼 미국에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이라는 우산을 함께 쓰고 있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척적인 모습을 보이며 인종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영화 속에는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국인,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고 저마다 다른 인종과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영화는 자칫 산만할 수 있는 구성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LA 교외에서 발견된 한 구의 젊은이의 시체. 그리고 영화는 36시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그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어보이는 15명(8커플)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흑인여성은 백인경찰로부터 성적인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자물쇠를 수리하기 위해 온 멕시코인을 보고 백인여성은 그를 못믿겠다며 다음날 다시 자물쇠를 교체하자고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또, 백인여성은 길 가다가 맞은 편에서 오는 흑인 남성들을 보고 그들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겁을 먹고는 그들을 피하기도 한다. 또 백인지방검사는 사실 타인종에게 별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표를 위해서 그들을 위하는 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인종차별적, 민족차별적인 내용들은 이 영화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는 약 2시간동안 인종차별적인 이야기를 다소 차분한 시선으로 그리고 한걸음 물러선 시각에서 그려낸다. 하지만 그렇게 잘 이끌어온 내용을 마지막에 인종 차별적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여성이 유색인종의 가정부를 끌어안으며 "당신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예요"따위의 말을 하는 것으로 해소시키는 것은 다소 작위적이고 개연성이 없어보였다. 인종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도 아니거니와 그 갈등의 골은 이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을지도 모른다. 작위적으로 그런 갈등을 해소하려는 모습은 가식적이고 우습게 보였지만 그런 화해의 모습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는 미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할나위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