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살다 - 삶에서 소설을 소설에서 삶을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6월
품절


매생이는 국을 끓여서 먹는데, 아무리 뜨겁게 끓여도 김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뜨거워도 뜨거운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으뭉스럽다. 뜨겁지 않은 줄 알고 후루룩 그릇째 들고 마시다 보면 혀를 대기 십상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나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내 고향 사람들은 그 뜨거워도 김을 내지 않는 매생이국 같다. 아무리 뜨거워도 뜨거운 체를 하지 않는다. 뜨거울 때나 차가울 때나 별 차이가 없다. 시류에 약삭빠르게 합류하거나 호들갑스럽게 요동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으뭉스럽고 진득하다. 그만큼 주변 변화에 민감하지 못해서 늘 고여 있는 물 같다. 언제 가봐도 그 길, 그 집, 그 사람들이다. -18~9쪽

아무도 제 스스로 자라지는 않는다.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와 환경의 자식이다. 그런 뜻에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고향의 자식일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고향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았지만, 아, 나는 인정해야겠다. 고향의 물과 바람과 흙이 나를 키웠다. -21~2쪽

아, 나는 이제 분명하게 알 것 같다. 고향은 한낱 산천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것이다. 그것들이 이리저리 엉켜 어우러진 인연인 것이다. 그래서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29쪽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작가, 또는 어떤 작품과 결정적인 만남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만남이 한 꿈 많은 젊은이로 하여금 문학에 운명을 걸게 만든다. 그 빛나는 작품을 쓴 작가의 그림자 속으로 기꺼이 들어가려는 욕망,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한 사람의 작가를 탄생시킨다. -34쪽

소설가가 된 후 한동안 나는 <에리직톤의 초상>의 작가로 불리었다. 데뷔작이 대표작인 작가가 느끼기 마련인 초조함을 그 시절에 겪었다. 데뷔작에 갇히는 작가는, 그 데뷔작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평가나 판단과는 상관없이, 늘 안타깝고 곤혹스런 상태에 있기 마련이다.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문학 이력은 어쩌면 데뷔작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몸짓이었는지 모른다.
<에리직톤의 초상>의 작가는 <에리직톤의 초상>만의 작가로 불리우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42~3쪽

사람은 본질적으로 세상에 '대한' 존재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세상과 맞서서 사유하고 감각하고 행동한다. 그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견고하고 빈틈없는 체계다. 그 체계는 개인을 향해 적응하라고 말한다. 적응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기회가 없다... 나는 내가 아니고 싶었다. 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안으로 들어갔다. 되도록 깊이 들어갔다. 그 안에 혹시 나를 만족시켜줄 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그러나 캄캄한 어둠과 음습한 공기와 뒤죽박죽의 혼란, 그것 말고 그 안에 더 무엇이 있었겠는가?-45쪽

소설은 결국 내 안에 있는 그 무수히 많은 나, 내가 아닌, 그러나 결국 내가 아닐 수 없는, 그 다른 많은 나들 가운데 어떤 나를 이끌어내어 세계와 만나게 하는 일일 것이다. 낯선 나는 낯선 세계를 상대로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인다. 상처와 각성이라는 말은 그 과정에서 세계와 대결해 있는 내가 부딪치게 되는 모든 크고 작은, 무겁고 가벼운 경험에 대해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설이 인물에 지배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고, 또 모든 소설이 본질적으로 자전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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