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자의 어리석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승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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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에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직소 퍼즐을 맞추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조각들이 탐정에 의해 하나씩 하나씩 맞춰져가고, 마침내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그렇기에 퍼즐을 맞출 때면 전체적으로 어떤 모양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고, 퍼즐이 완성될 때면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 속에서 포와로가 직소 퍼즐을 맞추며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고 오랜만에 포와로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은 느낌이 들어서 더 반가웠던 책. 

  어느 날 갑자기 추리소설 작가인 올리버 부인의 전화를 받게 된 포와로. 그녀는 앞뒤 설명 없이 포와로에게 빨리 기차를 타고 영국 시골의 한 저택으로 오라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몰랐지만 올리버 부인의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포와로는 호기심을 갖고 그 곳으로 떠나게 된다. 마침내 만난 올리버 부인은 자신이 그 저택에서 가상 살인사건을 만들어 범인을 찾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하며 왠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털어놓는다. 올리버 부인의 예감이 틀리길 바랬지만, 다음 날 축제에서 피해자 역을 맡았던 아이가 진짜 시체로 발견되고, 뒤이어 그 집 주인의 아내도 흔적을 감춘다. 잇달아 일어나는 사건. 그 속에서 포와로는 감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데...  

  어리석음과 한 편으로는 호화 별장을 의미하는 Folly.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이 단어처럼 이 책은 하나의 단서를 어떻게 봐야하는 지에 따라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저 흩어진 직소퍼즐 조각을 볼 때면 도무지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지만 마침내 그 조각이 제자리를 찾았을 때 밝혀지는 진실.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다. 벼락부자가 된 집주인 조지 경, 예쁘긴 하지만 멍청한 그의 아내 하티, 한 때는 집주인이었지만 이제는 관리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폴리엇 부인, 그 외에 조지 경에게 헌신적이자 실질적인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비서 브레이스 등. 이 책 속에서는 어떤 비밀을 갖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비밀은 아무도 모르게 감춰져있었고, 마침내 그 진상을 알게 된 독자와 포와로는 놀라게 된다. (어쩌면 그 진상은 맨 처음부터 제시되어 있었으니까.)

  평소에는 회색 뇌세포를 자랑하던 포와로도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사건의 전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체 그림을 너무 늦게 파악해버린다. 근 한 달이 지나서야 마침내 사건을 해결하는 포와로. 하지만 마침내 사건을 해결했다는 홀가분한 느낌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짐이 가슴에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포와로의 추리를 듣고 마지막에 한 인물이 내뱉는 "이제 혼자서 조용히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으니까요..."라는 말은 여운을 남겨준다. 

  말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말해버리고 마는 어리석음,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어리석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추려했던 어리석음. 그것이 잘 담겨진 책이 아닐까 싶다. 추리소설답지 않게 강한 여운을 남겼기에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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