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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5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여름즈음에 이 책이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하는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얘길 들었기에 이왕이면 드라마가 나오기 전에 한 번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책의 두께때문에 왠지 부담스러워 미루고 있다가 드라마가 방영된 이제서야 읽기 시작했다. 읽기 전에는 <점과 선>이라는 하나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점과 선>, 그리고 <제로의 초점>.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먼저 표제작인 <점과 선>은 요정의 한 여급과 한 공무원이 동반 자살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사(情死)로 보이는 사건이라 마무리하려했지만, 한 베테랑 형사(도리가이 주따로)가 죽은 남자에게서 나온 식당열차의 1인분 영수증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마침 죽은 남자는 한참 비리 관련으로 조사를 하고 있는 기관의 인물이라 경시청이 관심을 갖게 되고, 주따로는 경시청의 미하라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한다. 이에 뭔가 범죄의 냄새를 맡은 미하라는 조사를 시작한다. 이에 너무나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한 남자가 수사망에 오르고, 그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미하라는 발로 뛰기 시작하는데...
너무나 단단해보이는 알리바이. 하지만 그 알리바이는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오히려 미하라의 의심을 산다. 증거, 증인 모든 것이 갖춰진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알리바이를 깨려는 미하라의 노력. 그리고 마침내 알리바이가 깨졌을 때의 통쾌함. 사실 이미 많은 추리소설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이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트릭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힌다. 이래서야 모든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추적할 때는 1분 단위로 재야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딱딱 맞아떨어졌던 이야기. 책을 읽고나니 드라마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갔을지 궁금해졌다. 2편짜리 스페셜 드라마치고도 긴 러닝타임(거의 3시간 가량)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언제 시간내서 한 번 볼만한 가치는 있을 듯.
두 번째 작품인 <제로의 초점>의 경우에는 이제 갓 중매결혼을 한 여자가 등장한다. 몇 번 만나지도 않고 결혼을 해버린 탓에 남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이 없는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은 그쪽에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떠난다. 하루 이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지만 남편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러던 중 도착한 한 장의 엽서. 언제 돌아오겠다는 짤막한 내용만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말한 날이 되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이에 남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남편이 일했던 지방으로 떠난다. 그리고 남편과 관계된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보지만 남편을 찾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사건의 중심부에 다가가면서 한 명씩 목숨을 잃기 시작한다. 감춰진 범인의 존재가 서서히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는데...
<점과 선>에 비해 길이는 긴 편이었지만, 사건의 중심부로 향해가면서 점점 포위망이 좁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전후 별다른 죄책감없이 먹고 살기 위해 양공주가 되는 것을 택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경우와 다르지 않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비난 또한 비슷한 것이테니. 일본과 같이 경제적, 도덕적 혼란을 겪었던 우리 정서에도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의 과거를 남편의 실종을 통해 하나씩 알아가는 아내의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애정이 부재하기때문인지 의외로 분노나 실망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에서는 실종된 사람이 남편이기 때문에 찾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둘러싼 의문을 해소하고 싶어서(그러니까 자기 만족을 위해) 조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두 작품 모두 사회파 추리소설의 요소는 갖추고 있지만 그 요소들이 대두하기보다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맛만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범인의 행동에 대한 불만도 물론 있었지만. 이전에 <모래그릇>을 읽으면서도 마츠모토 세이쵸에게 빠졌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한층 더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에는 많은 작품이 소개된 편이 아니라 이제 남은 거라곤 <너를 노린다>정도라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운대로 마츠모토세이쵸 스페셜 드라마라도 보며 달래야할 듯.
덧) 번역된 지가 오래된 건지 읽는 내내 일본어 외국어 표기법이 계속 껄끄럽게 남았다. 특히 '도꾜'는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