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의 멜로드라마적 삶을 다룬 <하루>라는 한국 영화를 봤을 때도 경험의 부족을 느꼈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은 아이를 갖기 위해 안달하고 뱃속에 든 아이가 무뇌아인 걸 알면서도 억지로 낳으려 들 만큼 무모하며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가 곧 죽게 됐을 때 예상했던 격렬한 슬픔에 휩싸인다. 한두 번은 나도 울 뻔했지만 내 누선이 자극받은 것은 신경의 반응이지 마음이 움직인 게 아니었다. 이런 유형의 영화는 파블로푸의 조건반사처럼 내 신경의 어디를 누르면 반응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불쾌해지기도 한다. 뭐야 이건,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이런 영화를 보며 울어야 돼, 라는 생각에 표정이 굳어진 채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선배 한 사람이 말했다. "저건 경험 없으면 모른다. 내 첫 애가 나오다가 죽었잖니. 그 생각이 나서 혼났다."
난 역시 이 분야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삶의 부분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실제 삶의 괴리도 곧잘 거기서 나온다. -26~7쪽
영화와 일상을 겹쳐 보게 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점점 힘이 든다. 촌스럽게도 영화 속에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묘사돼도 참아내기가 어렵다. 누군가의 고통을 다루는 것은 더 그렇다. 갓난아기를 던져 죽이는 어떤 영화를 보고 그 감독이 굉장히 미워졌다. DVD로 영화를 볼 때면 서둘러 결말을 알아보고 차분하게 다시 처음부터 영화를 보기도 한다. 시간예술인 영화의 속성을 거부하고 점점 노예처럼 화면 이미지에 굴종해 영화를 따라가는 것이 싫어진다. 왜 이렇게 참을성 없는 관객이 되어버렸을까 자문해본다. 영화에서 다루는 기쁨과 행복과 위로가 때로는 너무 시시한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가 점점 어른의 매체가 아니라 아이들의 오락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고통과 불행과 배려를 다루는 영화일 경우 때로 텔레비전의 SOS 프로그램처럼 관객의 감정을 착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긴다. 결국 영화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관심은 사라진다. 거짓말하지 않는 영화에만 흥미가 생긴다. 그게 중년의 가장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내 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3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