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무라 타쿠야의 드라마 몇 편을 접하면서 급호감을 느끼는 터라(그래도 역시 아베 히로시가 최고!) 그의 드라마를 하나 또 접해볼까라는 생각에 뒤적이다가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내 취향과 잘 맞아 떨어질 것 같은 작품이 눈에 띄어서 보게 된 작품이다. 초반(1~2편)에서는 기무라 타쿠야가 무슨 변태 스토커처럼 등장해서 오싹하면서 기분이 팍 나빠져서 그만볼까했지만 그래도 꾸욱 참고 계속 보게 됐다. 끝까지 보고서 2편까지 보고 그만뒀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 중반까지는 다소 느슨한 분위기지만 뒤로갈수록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는 느낌. 진범의 정체는 조금 눈치가 빠르다면 금새 눈치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등학교 시절 사고로 가족을 잃은 미나코. 숙부의 손에서 큰 그녀는 현재 난 식물원에서 일하며 곧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키이치로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과거에 대해 기억이 별로 없는 그녀는 짐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어린 시절의 물건을 모아놓은 상자를 열어보게 되고 그 속에서 어린 시절 받은 익명의 러브레터를 발견한다. 15년 뒤 잠자는 숲에서 만나자는 내용에 미나코는 행여나 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호기심 반, 진심 반으로 그 숲을 찾아가게 되고 그 곳에서 나오키를 만나게 된다. 새로 태어난 것이라는 둥, 앞으로 잔혹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둥 도무지 이상한 소리만 하는 나오키. 그 날 이후 나오키는 미나코의 주변을 맴돌고, 미나코는 잃었던 기억을 조금씩 찾기 시작한다.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이 사실 15년 전에 살해당했고, 그 현장에 있었던 미나코. 미나코가 지우고 있었던 기억은 무엇이고, 진범의 정체는 누구인가.
방영당시에 일본 TV 드라마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최우수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을 휩쓴 작품으로(그 외에 여러 곳에서 수상했다) 내용이나 구성 면에서 뛰어나다.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공주는 왕자가 자신을 위해 마녀와 싸운 것을 모를텐데도 선뜻 왕자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이 이상하다는 대화로 시작되는 오프닝. 엔딩을 보면서 어쩌면 그 오프닝이 이야기 전체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미스터리물의 경우에는 끝으로 갈수록 긴장이 빠지거나 너무 개연성없는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져 맥이 빠질 때도 있는데, 이 드라마의 경우에는 진범의 정체나 결말도 깔끔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범인의 자백(?)을 들을 때면 이미 범인의 정체를 짐작했던 나조차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엔딩에 다소 불만을 가진 분들이 계신 것도 같던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이런 결말이 작가의 의도(동화를 뒤집어보기?)와 잘 어울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작품을 지은 노자와 히사시라는 작가에게 반해 앞으로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안타깝게 자살했다고.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한 드라마인 <연애소설>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남긴 다른 작품들이라도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기무라 타쿠야와 나카야마 미호(<러브레터>의 주인공이었던), 나카무라 토오루, 유스케 산타마리아, 진나이 타카노리 등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였던 드라마였다. 덧붙여 음악과 영상이 잘 어우러져서 재미가 2배가 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