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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살인 ㅣ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복잡한 인간관계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는 리뷰를 읽고는 겁을 좀 먹었다. 하지만 그 인간관계라는 것이 다소 비정상적이긴 했지만 복잡해서 머리가 터지겠다는 정도는 아니라 나름대로 재미를 붙여가며 읽어갔다. <마술살인>이라는 제목 때문에 다소는 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와 같이 마술이 소재가 되는(혹은 마술사가 범인인) 사건이 등장하나 싶었는데 실상은 마술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연극과 같은 구성이었던 책이었다.
마플양과 기숙학교를 같이 다녔던 루스 반 라이독. 오랜만에 마플양과 만난 그녀는 자신의 동생인 캐리 루이즈(역시 마플양과는 학교를 같이 다녔다)를 방문했을 때 왠지 모르게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며 마플양에게 그 곳에 가서 무슨 일이 잘못된 건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마플양은 먹고살기가 힘들어져 캐리가 살고 있는 저택에 신세를 지는 것으로 가장하고 그 집을 찾아간다. 다소 괴짜같은 남자들과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3번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캐리. 뭔가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듯한 캐리는 세 번의 결혼 생활에서 생긴 의붓자식들과 손녀들을 모두 포용하고 살아간다. 이것도 부족해 남편과 함께 소년범 교화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캐리. 다들 어딘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듯한 가족들. 그리고 모두가 모여있는 상황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불거져나오는 캐리의 독살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가족들이라 이를 바라보는 마플양도, 사건을 조사해가는 경감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사건을 부탁한 루스의 말처럼 마플양은 "그냥 보기엔 마음씨 착하고 순진한 사람같지만 그 밑에는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강철 같은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보기엔 이해할 수 없었던 이들의 행동도 언제나처럼 세인트 메어리 미드 마을의 사람들의 행동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결국 그 점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준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길 주저했던 마플양의 모습에서 친구를 배려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넓은 집이라고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은 더 미스터리하다. 모두의 앞에서 다투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살해당한 사람. 모두가 함께 있는 가운데 범행을 저지를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도, 기회를 가진 사람도 없어보인다. 그렇기에 마치 마술같이 느껴졌던 사건. 하지만 마술에서 볼 수 있는 눈속임이 아니라 오히려 연극에서 볼 수 있는 무대 뒷모습 같은 느낌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경감도 "환상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것이지 무대 장치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죠. 그러니까 내 말은 무대 장치란 관객 눈앞에도 실재하지만, 무대 뒤에서도 역시 실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이 이야기를 즐기면 좋을 듯하다. 다른 책보다 마플양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은 아니지만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천천히 인물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 아닐까 싶다.
덧) 역자 후기에도 나와있듯이 한 번도 세인트 메어리 미드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미스 마플이 소녀였을 적에는 플로렌스의 기숙학교를 다녔다고 나와서 작가의 실수에 왠지 웃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