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 저택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교향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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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의 대표적 탐정인 포와로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포와로는 이 사건에서는 철저히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며 마지막 순간에 사건을 정리하는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때문에 포와로가 등장하지만 포와로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고 있다. 나같은 포와로 안티(?)에게는 다행이지만 포와로를 아끼는 분들께는 그만큼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제목처럼 이야기는 할로 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할로 저택에 살고 있는 레이디 앙카엘과 헨리 경, 그들의 저택에 주말을 맞아 친척들이 찾아온다. 성공한 의사이며 재치가 있어 생명력이 넘치는 존 크리스토,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로 바보 같고 어리숙하며 남편을 절대적으로 받들며 살고 있는 그의 아내 저다, 크리스토의 애인이자 유명한 조각가인 헨리에타, 그리고 젠틀하지만 내성적인 에드워드, 옥스퍼드에 다니고 있는 사춘기라 그런지 까칠한 데이비드. 이들의 주말은 여느 때처럼 평화롭기만 했다. 하지만 이웃에 사는 여배우인 베로니카 크레이가 성냥을 빌리기 위해 찾아오며 일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15년 전 존과 베로니카는 한 때 약혼했던 사이. 하지만 베로니카의 이기적인 생각에 존은 결국 그녀와 헤어졌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베로니카를 담고 살았던 존. 하지만 존은 베로니카를 만남으로 오히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짐을 덜었고, 삶에 대한 의욕도 되찾는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존에게 거절당한 베로니카는 "당신을 죽이고 싶을만큼 당신이 증오스러워요"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녀의 말 때문이었을까? 존은 그 날 총에 맞아 죽게 된다. 총에 맞은 채 누워있는 존, 그리고 그 옆에서 총을 들고 서있는 저다. 너무나 명확해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조사를 해보니 저다가 들고 있던 총과 존을 쏜 총은 달랐다. 파고 들어갈 수록 복잡해지는 사건. 겉으로 보기엔 사람 좋아보였던 존. 그런 존을 죽인 것은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책에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포진해 있다. 우선, 이야기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레이디 앙카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다른 사람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만의 통찰력을 가진 여자. 하지만 정작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잔혹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녀가 존의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친척인 미지는 '살인 잔치'라고 표현할 정도. 가장 입체적이고 카리스마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었다. 다음으로 전형적인 예술가인 헨리에타. 그녀 역시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의리(?)를 지키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 외에 늘 존의 그늘에 가려져있는 에드워드, 존에게 복종하여 살아가고 있는 저다 또한 꽤 독특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워낙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번역 상태가 형편없어서 그런지 읽으면서도 재미보다는 짜증이 더 많이 났던 책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게 1994년에 나온 중쇄인데, 그 때쯤이면 맞춤법 통일안도 발표되었을터인데, '-읍니다, -쟎아요'와 같은 종결어미는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맞춤법 오류를 발견해낼 수 있었다. 한 두개 정도면 그러려니할텐데 이건 뭐 한 페이지에서도 두어개씩 나오는 판이니. 게다가 무슨 번역자 검토판도 아니고 (정말일까요?)와 같은 부분도 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이랑게'라는 종결어미까지. 왠만하면 번역상태에 트집잡지 않는 편인데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기에 이런 부분을 다 반영해서 새로운 판을 찍었으리라 믿지만 새로운 판형이 아닌 구판을 읽는 내 입장은 날도 더운데 사서 열받았다. 

  늘 회색 뇌세포 자랑을 하던 포와로가 처음으로 호적수라 일컫는 상대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한 남자의 죽음이 그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하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싶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과 분위기는 좀 달라서 살짝 어색함도 들었던 책. 그 당시에는 연극으로 상영되었다고 하는데 포와로가 처음 현장을 봤을 때 느낀 것도 무대 장치라는 느낌이었으니(자기를 환영하기 위해 일부러 살인 현장을 꾸며놓은 줄 알았던 포와로) 연극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 서점에서 확인해본 결과, '-읍니다, -쟎아'의 경우 '-습니다, -잖아'로 고쳐져 있었다. '-이랑게'는 여전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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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7-07-29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책읽는 재미는 추리소설이죠! ㅎㅎ
정아무개님도 한 번 맛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드실껄요? ㅎㅎ
제 친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번역은 '체스'를 '서양장기'라고 해놓은 거라나 뭐라나.
서양장기도 틀린 건 아닌데 그걸 보자마자 책 읽기 싫어졌데요 ㅎㅎ

asdgghhhcff 2007-07-29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매지님 포와로 안티세요? ^^
전 포와로가 좋던데.. ㅋㅋ
우수꽝스러운 모습에 잘난체 하는 모습이 나름 귀엽고, 인간미가 넘친다고 할까요 ^^ㅋ

이매지 2007-07-2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긴 것도 달걀같이 생긴 게 맨날 회색 뇌세포 운운이나 하고 ! 으으으.
대략 이런 식의 반감이랄까 ㅎㅎㅎ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미워하지는 않아요~
만약 그랬다면 포와로가 나오는 책은 손도 안댔을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