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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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일을 날마다 기록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일이 없지 않아 내 한 몸에 모여든 일이 언제고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날이 다르고 달이 다르다. 무릇 사람의 일이란 가까우면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멀어지면 헷갈리며, 아주 멀어지면 잊어버린다. 하지만 일기를 쓴다면 가까운 일은 더욱 자세하게 기억하고, 조금 먼 일은 헷갈리지 않으며, 아주 먼 일도 잊지 않는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일은 일기로 인해 행하기 좋고, 법도에 어긋나는 일은 일기로 인해 조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기란 것은 이 한 몸의 역사다.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으랴. 나는 글을 배운 이후 지난해에 이르기까지 3,700날 남짓을 살아왔다. 3,700날 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면 꿈을 꾸고 깨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여 돌아보면 빛이 사라진 것과 같다. 날마다 기록하지 않아서 생긴 잘못이다. - 유만주-27쪽

그대는 살림살이가 나보다 백 배나 넉넉한데 어째서 그칠 줄 모르고 쓸데없는 물건을 모으는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 있기야 하지.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신 한 켤레, 잠을 청할 베개 하나, 바람 통하는 창문 하나, 햇볕 쪼일 툇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한 개,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한 개, 봄 경치 즐길 나귀 한 마리가 그것이라네. 이 열 가지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네. 늙은 날을 보내는데 이외에 필요한 게 뭐가 있겠나. -김정국-45~6쪽

적당히 먹으면 편안하고
지나치게 먹으면 편치 않다.
의젓한 너 천군이여
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 -이양연-55쪽

나는 혼자다. 오늘날의 선비 가운데 나처럼 혼자 다니는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을 헤쳐 가니, 벗을 사귈 때 어느 한편에 치우칠 리가 있겠는가?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면 나머지 넷 다섯이 모두 나의 벗이 되나니, 나의 교유 범위가 넓지 않은가? 그들의 냉혹함이 얼음장 같다 해도 나는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이 대지를 불태운다 해도 나는 타지 않는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 가는 대로 쫓아갈 것이다. 내 마음이 찾아가는 곳은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그러니 거취가 느긋하여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유몽인-65쪽

매사에 전기라는 것이 있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거나 위기에 빠졌을 때 그 상황을 반전할 계기를 마련하려 사람들은 좋은 날을 가려 전기로 삼는다. 지난날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 전기로 삼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옛사람들의 글에서도 심기일전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자주 발견된다. 동짓날과 제야에 쓴 시문이 특히 그러하다. 이 세시명절은 모두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179쪽

아 똑같은 봄이건마는 연꽃과 국화를 만난 봄은 반드시 머뭇머뭇하며 꽃을 피우기 어려우니 일찍이 피는 오얏꽃에 비교할 수 없다. 이것이 어찌 봄의 잘못이랴. 연꽃과 국화가 봄을 저버린 결과다. 가만히 생각하니 낯이 뜨겁고 창자에 열이 나서 차마 더 말을 늘어놓을 수 없다. 바라건대, 그대 문신은 나를 비루한 놈이라 여기지 말고 바보 같은 성품의 나를 한 번 더 도와서 예전 습성을 씻어버리게 해달라.내 비록 불민하나 새해부터는 조심하여 그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오늘은 세모라, 내 감회가 많이 생겨 붓꽃을 안주 삼아 들고 벼루 샘물을 술 삼아 길어올리니 마음의 향기 한 글자가 실낱같이 가늘고 희게 타오르는구나. 글을 잡고 신에게 고하노니 신령은 와서 흠향하시라. -이옥-182~3쪽

문학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기 좋은 그릇이다. 그리움을 마음에 담아두어도 몇 십 년을 간직하기는 어렵다. 그림이나 사진에 담아둔다 해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 비석에 새겨 오래 보존하기를 바라지만 먼 옛날의 하고많은 빗돌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움을 담기에 편리하고도 오래 갈 것이라곤 문학이 있을 뿐이다. 작품성이 뛰어나면 시대를 초월해 후대에까지 그 마음이 남겨지는 행운도 얻는다. -187쪽

공교롭고도 오묘하지요. 이다지도 인연이 딱 들어맞다니 누가 그런 기회를 만들었을까요? 그대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고, 내가 그대보다 늦게 태어나지 않아 한세상을 살게 되었지요. 또 그대가 얼굴에 칼자국 내는 흉노족이 아니요, 내가 이마에 문신하는 남만사람이 아니라 한나라에 같이 태어났지요. 그대가 남쪽에 살지 않고, 내가 북쪽에 살지 않아 한마을에 같이 살고, 그대가 무인이 아니고 내가 농사꾼이 아니라 함께 선비가 되었지요. 이야말로 크나큰 인연이요 크나큰 만남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대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구차하게 해야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해야 한다면, 차라리 천 년 전 옛사람을 친구로 삼든가 일백 세대 뒤에 태어날 사람과 마음이 통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박지원-232쪽

여유 있는 시간을 기다려 책을 읽고자 하면 한 해를 마칠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없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남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남을 구제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옛사람은 "한가로울 때도 바쁜 한 순간이 있듯이 바쁠 때도 한가로운 한 순간이 있다"라고 하였다. 어찌 독서만이 그러랴? 무릇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말을 자신을 반성하는 도구로 삼아야 하리라. 이 이야기를 적어두어 옛일을 본받고자 한다. -박규수-23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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