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전장에서는 명장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치판에서는 초보나 다름없었다. 전쟁이나 권력투쟁은 싸움이라는 면에서 같았지만 싸우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전쟁터에서의 명장이 반드시 정치판에서도 명장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이성계가 참전하는 전쟁터에서 적은 명확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이유와 방법도 분명했다. 적은 활과 칼로 죽였다. 화살로 쏘아 죽이거나 칼로 베어 죽인 적은 분명히 죽은 것이었다. 이기고 지는 것도 명확했다. 죽은 적은 다시 일어나 덤비지 못했고, 패배한 적은 도망갔다.
그러나 정치판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선 적과 친구를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죽여야 하는지는 더 애매했다. 적을 죽이는 무기도 활이나 칼이 아니라 말과 글이었다. 그 말과 글에 죽어나갔던 적은 죽은 듯하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그래서 정치판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패자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다. 패자도 멀쩡히 살아서 남아 있었다. 강씨는 이렇게 복잡 미묘한 정치판의 생리에 어두운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불안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