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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여름에 기리오 나쓰오의 작품이 몇 개나 쏟아지고 있었지만 시큰둥했던 것은 <아임 소리 마마>때문이었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읽고 났을 때의 그 묘한 찝찝함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리오 나쓰오를 멀리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셈치고 접한 게 바로 이 책 <그로테스크>이다. 여름이라 여기저기서 많은 분들의 추리소설 추천을 보곤 하는데 그 때마다 기리오 나쓰오의 작품(<아웃> 혹은 <그로테스크>)의 추천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섣불리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닐까하고 다시 만난 기리오 나쓰오. 여전히 찜찜한 기분도 주긴 했지만, 그보다 서글픔을 더 강하게 느꼈다.
이 책은 1997년에 있었던 '동경전력 여사원 매춘부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대기업의 여사원이 어떻게 골목의 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녀는 왜 살해당했는지에 대해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의 중심에 놓이는 것은 여사원이 아니다. 도무지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아름다움을 가진 유리코가 중심에 놓여 그녀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삶이 틀어져버린 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리코의 아름다움과는 반대로 오히려 추녀였던 언니 '나', 나와 명문인 Q학원의 동창생이었던 미쓰루와 가즈에. 그네들의 비뚤어질대로 비뚤어진 삶이 이 두꺼운 책에는 펼쳐지고 있었다.
Q 학원에서 나와 주변인물이 행하거나 겪은 행동들은 씁쓸하면서도 차마 비난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악의를 뿜어 자신을 방어하는 모습, 상대방이 단지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접근해 단물을 빨아먹는 모습,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등은 그들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낼 방패로 선택한 것이었다. Q학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유리코와의 만남은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고 이미 보통의 범주를 벗어난 그들의 삶은 뒤틀릴대로 뒤틀려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모습만을 남긴다.
이 책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가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왜 그들이 매춘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그들의 삶은 변해갔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현대 사회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아니, 어떻게 버텨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저자는 비뚤어진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난 이렇게까지 괴물같지 않아'라고 말할 독자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마음에 괴물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느냐의 차이일 뿐.
이야기 속에서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기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런 일그러진 모습을 통해 독자 스스로 자신 안에 숨어있는 괴물성과 대면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현대 사회 속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임 소리 마마>를 읽었을 때처럼 읽고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기리오 나쓰오를 나의 기분때문에 더이상 피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찝찝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무거워져 연달아 읽지는 못할 것 같지만 시간을 두고 기리오 나쓰오의 작품들을 조금씩 접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