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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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 만에 출간된 황석영의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황석영의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물론, <삼포가는 길> 정도는 대입을 준비하며 본 적이 있으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처음이 아닐수도 있겠지만) 공지영은 이 책을 보고 "절망 이길 힘을 보았다"라고 했다지만 나는 되려 이 책을 보면서 왠지 허망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의 바리데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이야기에는 바리데기 공주처럼 온갖 고생을 겪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낳았다하면 딸인 상황에서 일곱번째 딸로 태어난 주인공. 그녀에게 가족다운 사랑을 나눠주는 것은 할머니와 강아지 칠성이 뿐이다. 바리데기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서, 바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할머니.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먹고 살 정도는 됐지만 체제의 몰락과 기근, 그리고 외삼촌의 일들이 복합되어 결국 북에서는 발붙이고 살 수 없게 된다. 각각 흩어져 살아가게 된 가족. 바리는 할머니와 언니와 함께 미꾸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건너간다. 바리는 그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고난도 겪으며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밀입국을 하게 된 바리. 영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이야기 속에는 실제 우리가 보아온 일들이 많이 등장한다. 김일성의 죽음, 북한의 대기근, 9.11 테러, 이라크 전쟁, 영국의 지하철 테러 등의 사건들이 바리를 둘러싸고 일어난다. 그리고 바리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 죽음의 의미를 말해보라',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지', '어째서 악한 것들이 승리하는지' 알려달라고 그들은 바리에게 외치고 있다.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바리는 결국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우리는 고통을 받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자는 아무도 없다'고 대답한다. 결국 인간 스스로 고통을 만들었고, 인간이 만든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생명수는 인간뿐이지만 과연 인간이 스스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압둘 할아버지의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라는 말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어쩌면 모래알 같은 가망성이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러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바리데기가 그랬던 것처럼 바리의 행적도 북한에서 중국으로, 그 곳에서 다시 영국으로 이어져 가는 기나긴 고난의 여정인데 반해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속도감있게 읽어갈 수 있었다. 가독성도 좋아서 금새 읽어갈 수 있었지만 서술 관점도 가끔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연재물이어서 그런 걸까?) 짧다면 짧은 이야기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좀 아쉬운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휘의 선택이나 묘사 부분은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또, 전통의 변형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고전이란 그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임으로 그 힘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을 혼란한 현실 속에 '생명수'를 찾는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직접 건내주지는 못해도, 그것을 찾을 수 있는 힘은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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