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오늘의 일본문학 5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3월
절판


2인조 은행 강조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둘 중 어느 한 명이 꼭 화를 내게 되어 있다. 운도 안 따라준다. 예를 들면, 부치와 선댄스(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두 주인공-역주)는 무장한 보안관들에게 포위됐고, 톰과 제리는 만날 싸운다.
그에 비하면 3인조는 나쁘지 않다. 사람 셋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난다는 말도 있다. 나쁘지 않지만 베스트도 아니다. 삼각형은 안정적이나 거꾸로 뒤집으면 균형을 잃는다.
그리고 셋이 탄 차는 별로 보지 못했다. 도주용 차에 셋이 타든 넷이 타든 상관없다면, 넷인 편이 좋다. 다섯이면 너무 갑갑하다. 이러한 이유로 은행 강도는 네 명이 필요하다. -7쪽

인간에게는 교육욕이란 게 있다. 한 번뿐인 인생살이에 자신이 없으니, 남 앞에서 선생이라도 된 양 떠벌이고는 안심하는 것이다. -27쪽

시간[時間] ①시간 흐름의 두 지점 사이 ②공간과 함께 인식의 기초를 이루는 것. 인간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졌다고 믿고 있는 것 중 하나. 인간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 중 하나. 인생의 충실도와 비례하여 그 진행 속도가 빨라짐. 따분함에 비래해 그 진행 속도가 느려지는데, 수업 중에는 완전히 멈춘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도 있음. -33쪽

회의[會議] ①의견을 맞춤. ②미리 상의함. ③회사원의 노동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 참가자 수에 비례해 시간이 길어짐.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권을 잡음. 효과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고 막판에 보면 시작 전 상태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많음. -40쪽

인간이란 존재는 각자가 자기만의 주인을 갖고 있다. 여기서 '주인'이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의 상관일 수도 있고 자기만의 미학일 수도 있다. 일반 상식일 수도, 이해득실일 수도 있다. 아무튼 사람들은 행동할 때 그 주인, 즉 룰에 따른다. -49쪽

기억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컴퓨터를 들 수 있죠. 하드디스크와 DVD, 앞으로는 모든 정보가 매체로 보존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갖고 있는 거대 도감청시스템 '에쉴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위성을 경유해서 전달되는 전화나 FAX, 메일 등 모든 정보를 제3자가 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이것이 데이터베이스에 보존되지요. 무서운 시대 아닙니까? 모든 것을 기억해서 남기려고 합니다. 기록은 선(善)일까요? 보존이나 보관은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요? 벚꽃은 곧 지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겁니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편이 훨씬 더 좋은 것도 많지 않을까요? 헤어진 애인과의 추억, 홍수 뒤 강의 탁류, 천재가 단 하룻밤 불어재낀 알토색소폰의 애드리브, 친구끼리 나눈 바로 그 순간의 대화..... 모두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소중한 겁니다. 은행 강도를 본 것도 곧 잊어야죠. 휴대전화에 찍히는 발신이나 수신 기록 같은 건 정말 엿 같은 일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90쪽

책에 적혀 있는 것은 대개가 헛소리야. 목차와 정가 이외에는 전부 다. -131쪽

살인[殺人] 사람을 죽이는 일. 독자의 관심을 붙들어놓기 위해 갑자기 발생하는 사건.
살인사건[殺人事件]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알기 쉽게 광고하기 위해 제목에 덧붙이는 접미어. ¶-152쪽

자기가 속으로 느낀 것을 전부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는 거야. 사람들이 모두 자기 생각들을 맘속에만 담아두고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로울 것이다, 이 말이야. -170쪽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출이에요. 지구는 대출로 돌아가고 있죠. -203쪽

네가 하는 말은 애매해서 알아듣기가 힘들어. 꼭 등산로 같아. 전모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이야. 정상에 선 사람한테만 보이는 길은 의미가 없어.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도 둘러볼 수 있는 길을 만들어달란 말이야. -258~9쪽

들어봐, 이 세상이란 곳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어. 다시 말해서 난해한 영화 같다, 이거야. 전위적이라 몇 번을 봐도 내용을 알 수가 없어. 우린 그런 영문 모를 영화를 계속 앉아서 봐야만 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나루세는 어디서, 뭐 이상한 잡지일 수도 있지만, 감독의 인터뷰를 읽은거지. 혹은 머리 좋은 평론가가 쓴 해설서이거나. 그러니까 영화를 봐도 이해를 하는 거야. 당황하는 일 없이.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모든 일을 다 꿰뚫고 있는 얼굴로 늘 침착하게 있을 수 있겠어?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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