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구판절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지면 학 그림과 500이라는 숫자 중 하나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을 한꺼번에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들 단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진눈깨비가 비인지 눈인지 판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복채를 내놓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만 한다. -15쪽

진우의 대답은 이런 뜻이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 지금 사랑하는 여자와 앞으로 사랑할 여자. 그렇다면 한때 사랑했던 여자는? 회한과 추억과 그리움의 대상일 수는 있겠지만, 여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진우에게 어떤 존재가 여자로 보이기 위해서는 거기에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갈망이 더해져야만 한다. 갈망한다면 마지막 재고를 품은 그럴듯한 옷으로 보이지만, 갈망이 사라진다면 그건 공연히 가위로 자르고 실로 묶어놓아 못쓰게 만든 천으로 보일 뿐이다. 사랑했던 여자도 마찬가지다. 마음도, 몸도 더 이상 부풀어오르지 않으면 그건 그냥 Y염색체가 결여된 인간에 불과하다. -43~4쪽

낭만적 사랑의 첫 번째 테제. 우리는 서로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자신의 사랑에 KS마크를 받아야만 한다. 두 연인이 일부일처제 가정을 꾸려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때, 낭만적 사랑은 최고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사람들은 믿잖아. 그런데 이게 다 환상이란 말이야. 음모란 말이야. 사실은 18세기 자본가들이 발명한 사랑이란 말이야. 낭만적 사랑의 공식, 낭만적 사랑의 표준 규격이 그때 다 발명됐단 말이야. 왜 그렜겠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안 그러면 인간들이 노동을 안 하니까. 니가 내 농노라면 채찍만 들어도 수만 평 고랑을 다 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수가 없잖아? 그렇다면 무슨 수로 너를 주당 44시간씩 컨베이어벨트 옆에 세워놓을 수 있겠냐? -46~7쪽

옛날에 사랑했던 여자? 그건 포커판에 펼쳐진 카드에 불과해. 앞으로 내게 어떤 카드가 들어올 지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바닥에 펼쳐진 카드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지. -50쪽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 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를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 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 넣는 일은 계속된다.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다가 마침내 마음의 숲 속 빈터가 열리게 되면 뜨거운 육체의 아름답고 털 없는 동물들이 뛰놀게 된다고 서양의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55~6쪽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57쪽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는 성인들의 학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낙제할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 테니, 결국 우리가 그 학교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81쪽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르팽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103쪽

사랑이 입을 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즉 너무 알려고 하지 말아야만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 도시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 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잇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107쪽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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