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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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9쪽

어떠한 단어들과 그것들이 지닌 의미가 일반적인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게 이해되어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 이젠 이해가 됐다. 처음부터 나는 이 책이 처음부터 나를 위해 쓰였음을 감지했다. 모든 단어, 모든 비유가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문장이 비범하거나 단어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이 나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느낌에 휩싸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살인, 사고, 죽음, 놓쳐버린 신호들 사이에서 나의 길을 찾으려 애쓰는 동안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13쪽

태초에 신이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자, 아담의 눈도 영혼과 함께 새롭게 세상을 인식하게 되었소. 그때 우리는 뿌연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렇고, 아이들이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소. 보았던 것들에 이름을 짓는, 그 이름과 보았던 것들을 일치시키는 우리 아이들은 그때 얼마나 즐거워했었는지! 그때 시간은 시간이었고, 사고는 사고였으며, 인생은 인생이었소. 이것은 행복이었고, 이것이 악마를 불행하게 만들었소. 그것은 악마였소. 그는 '거대 음모'를 실행에 옮겼소. '거대 음모'의 앞잡이인 구텐베르크(그와 그의 모방자들을 인쇄업자라고 부른다.)는 부지런한 손, 참을성있는 손가락, 그리고 섬세한 필기 도구가 쫓아갈 수 없을만큼 단어들을 증가시켰소. 그리고 단어들, 단어들, 그 단어들은 구슬처럼 사방으로 흩어졌소. 거리로 나 있는 문 아래, 비누틀, 계란 판 위를 단어와 글 들이 굶주리고 미친 바퀴 벌레처럼 휘감아 버리고 말았소. 한때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던 말과 물건들이 서로 등을 지고 말았소. 결국 달빛 아래서, 시간은 무엇이냐고 우리에게 물었을 때, 혹은 인생은 무엇인가, 슬픔은 무엇인가, 운명은 무엇인가, 고통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한때 명백했던 답들이, 시험 전날 밤을 세운 학생이 답을 헷갈리는 것처럼 서로 섞여 버리고 말았소. 어떤 바보는 시간이 소음이라고 말했소. 어떤 불운한 사람은 사고가 운명이라고 했소. 또 다른 사람은 인생이 책이라고 했소. 우리는 혼란에 빠졌고, 맞는 답을 우리 귀에 속삭여 줄 천사를 기다리곤 했소. -149~50쪽

나린 박사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을 보며, 거기서 자신의 한계, 부족함, 두려움을 보곤 하지. 그러고는 자신의 나약함을 두려워하며 이건 자연의 무한함, 자연의 위대함 때문이라고 둘러대곤 한다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자연이 내게 건네는, 반드시 유지해야 할 나의 의지를 상기시키는 강한 성명서, 내용이 꽉 찬 글을 보곤 한다네. 나는 그것을 단호하게, 무자비하게, 두려움 없이 읽지. 위대한 사람들이란, 위대한 시대, 위대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곧 터질 것 같이 충전된 힘을 자기 안에 축적한 사람들을 말한다네. 때가 오면, 기회가 되면, 새로운 역사가 쓰일 시기가 되면, 이 거대한 힘은 행동을 개시할 위대한 사람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폭발하지. 그 역사적인 날에 여론, 신문, 당시의 사상, 아이가스, 럭스 비누, 코카 콜라와 말보로 담배, 서양에서 불어온 바람에 현혹된 가련한 우리 형제들의 사소한 물건들과 보잘것없는 도덕들은 무시되고 말 걸세. (중략) 긴 침묵이 흘렀다. 나린 박사의 먼지 앉고 얼룩진 안경알 위에서 똑같이 생긴 두 개의 무지개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187~8쪽

사람은 때때로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추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왜 지금 그것이 기억났는가를 궁금해하면서 완전히 혼란에 빠질 때가 있다. -273쪽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했다. 그래서 내가 세상의 존재하지 않는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279~80쪽

그는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어쩌면 모든 책이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하고."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책은 실제로 책 속에 존재하지는 않으면서도, 책에 쓰여 있는 말을 통해 내가 그 존재감과 지속성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의 일부분이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세상의 정적 또는 소음으로부터 벗어난 그 무엇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정적과 소음도 그것 자체는 아니야" 이렇게 말한 다음, 그는 내가 자신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다시 한 번 다른 말로 설명하고자 했다. "좋은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 일종의 무(無), 일종의 죽음을 설명하는 글이지....그렇지만 단어들 너머에 존재하는 나라를 글과 책 밖에서 찾는 것은 헛일이야" 그는 이것을 책을 반복해 쓰면서 알았고, 충분히 배웠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생과 나라를 글 밖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죗값을 치러야만 했다. -296쪽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항복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의 원인이다.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은 일종의 음악이다. 사랑과 고귀한 가슴은 동일한 것이다. 사랑은 슬픔의 시다. 사랑은 예민한 영혼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사랑은 언젠가 소멸되는 것이다. 사랑은 절대 후회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결정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사랑은 껌 한 개를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절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랑은 공허한 말이다. 사랑은 신과 결합하는 것이다. 사랑은 고통이다. 사랑은 천사와 눈이 마주치는 것이다. 사랑은 눈물이다. 사랑은 전화벨이 울리길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은 세상 전부다. 사랑은 영화관에서 손을 잡는 것이다. 사랑은 취하는 것이다. 사랑은 괴물이다. 사랑은 눈멈이다. 사랑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사랑은 성스러운 침묵이다. 사랑은 노래다. 사랑은 피부에 좋다.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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