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구판절판


서로 간섭하지 않는 사귐을 연애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연애는, 내가 했던 연애는 그런 게 아니었다. 애인 사이인 남녀가 상대방을 독점하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부정한 행위이다. (중략) "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첫 눈에 반해 국경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 사랑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죠." "그런 낭만적 사랑이 존재하며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 건 겨우 2백 년도 되지 않았어요. 그동안 지구상에서 일생을 보낸 수십억 명의 사람들 중에 정말 그렇게 산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죠. -30~1쪽

사랑에 관한 한 '최후의 로맨티스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사랑에서 낭만을 빼면 남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33쪽

아무리 물 반, 고기 반인 낚시터라 하더라도 서툰 낚시꾼들은 빈 그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능란한 낚시꾼이 되려면 타고난 자질에 더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나 바람둥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과를 즐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마저도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 나비가 꽃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어떤 나비에게 옷을 벗어 줄지 결정하는 것은 그녀들이다. 그녀들은 남자의 유혹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들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같이 잘 남자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유혹에 약하고 열 여자도 마다하지 않으니 말이다. -47쪽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내가 잘못한 거라면 고쳐야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고 그걸 참을 수 없어서 덕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잖아. 근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덕훈 씨는 원래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 거야. -63~4쪽

결혼이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연애가 이벤트라면 결혼은 일상이다. 연애할 때는 주로 그녀의 젖가슴과 사타구니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결혼하고 나면 연애할 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된다.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우려 들면 아내는 귀이개를 가져온다. 아내의 손에 귀를 맡기고 아내의 무릎을 어루만지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성욕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스킨십이 얼마나 따뜻한 느낌인지. -122~3쪽

왜 하필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낭만적 사랑에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니까. 낭만적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은 자신의 결여를 메워 주는 존재이다.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179쪽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217쪽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건 간에 사랑이란 그 자체로 아이러니이다. 왜?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너이고 네가 나였던 아주 짧은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사랑은 숨겨 놓았던 독을 사방에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정작 사랑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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