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절판


대체로 사람들이 굳게 믿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옛날에 아무리 나쁜 것이었다 해도 그것이 오늘날의 그 어떤 것보다 낫다는 믿음이다. 이틀 전의 것이 어제의 것보다 더 좋다. 과거로 되돌아가면 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이 된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보이는 것은 분명 그 전날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잠들기 전의 세상의 모습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지금>의 현재가 단순히 헛것에 불과하다는 미몽에 빠질 수 있다. 마음에 안고 사는 옛날의 기억만큼이나 현실성 없는 헛것, 그래서 현재의 아픔을 잊을 수가 있는 것이다. -21~2쪽

비(雨)는 차별을 모른다. 어느 때고 비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떨어지기 때문에 비가 내릴 때 모든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 누가 더 좋고, 누가 더 나쁠 수는 없다. 모든 이들이 다 평등하고 똑같을 뿐이다. -46쪽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당신이 어느 곳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입구가 출구가 되지 않으며, 방금 당신이 들어섰던 문이라도 돌아서 보면 그 문이 사라지고 없을수도 있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럴 때마다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129~30쪽

아무리 우호적인 조건 하에서도 사람들은, 실로 모든 사람들은 망각의 늪에 쉽게 빠진다. 더욱이 이런 곳에서는, 실제로 너무나 많은 것들이 현상의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곳에서는 늘 많은 것들이 쉽게 잊혀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사람들이 망각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의 망각의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에게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완전히 상실된 그 무엇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상호 이해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놓이는 것이다. 그러니 비행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비행기를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점진적인,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삭제의 과정이다. 단어는 사물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그러나 결국엔 그 단어들이 환기시키는 사물의 상(像)과 더불어 단어들도 사라지고 만다. 사물들의 전체 범주, 즉 하나의 중심 사물을 둘러싼 파생 사물- 예를 들어 화분, 혹은 담배 필터, 고무밴드 등- 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기억할 순 없어도 한동안은 그것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서서히 그 단어들도 그냥 소리로만 남게 된다. 단순한 성문(聲門) 폐쇄음과 마찰음의 모음에서 마구 뒤섞인 음소(音素)들의 소용돌이로 변하다가 마침내는 그 모든 것들이 영문 모를 소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13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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