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란 바퀴벌레 같은 존재이고 없애려해도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 때려도 죽지 않고 이사를 가도 따라오고 불을 끄면 침대 속에 비비고 들어오고 아침이 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크라운을 가진 바퀴벌레라고 해서 나에게 뭐가 달라지나. 바퀴벌레는 그냥 바퀴벌레일 뿐이고 그들 나름의 욕구에 의해서 살아간다. 나와는 다르다. 심플하게 받아들이자. 이제 길은 나에게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존재도 뭐도 아니다. 길게 끌려다니다가는 걷어차이는 것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 아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걷어차이는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찾아올 패배감과 자기 환멸이다. -149쪽
나는 앞으로의 인생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커다란 행운이나 성공도 없지만 치명적인 파국이나 불이익을 겪지 않고 진행될 것으로 믿는다. 그 대신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는 거다. 그래, 그것은 지루할 것이다. 흥미진진한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백원만큼 일하고, 사회는 나에게 백 원을 지급한다. 남보다 앞서거나 불로소득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면 얘기는 다르지만 나는 다시 한 번 더 결심을 굳힌다. 혼자 가는 거다. -1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