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오랜만에 페이퍼를 쓰려니 쑥쓰러운 생각도 없지 않다.

얼마전 나는 내 일상을 한 부분을 회사로부터 빼내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 일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이번주 금요일이면 알라딘과 결별한다.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고, 나름대로 파란만장했고, 대학에서 경험했던 것 만큼이나 다채로운 삶이었다. 공간에 의해서 삶이 규정된다는 것, 알라딘에서 만큼 뼈저리 느낀 적은 (지금 같아서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려니, 한이 많다. 그 많은 한을 어떻게 다 글로 풀까 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하자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에게 알라딘이 너무 무겁다.

막상 떠나려니, 아쉬운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정신의 피폐함을 견디며 여기 남느니 배고파 죽더라도 나가 죽기로. 그리고 배고파 죽기 전에 새 직장과 새 사람들을 만나기로. 어떤 분노, 어떤 서러움, 어떤 불안... 이것들과 함께.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2-1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이달 말이면 2년간 다녔던 회사를 접습니다. 찬찬히 돌아보니 요다님 만큼 저도 한이 참 많네요. 회사야 저 내보내고 허접한 월급에 사람을 구하니 당분간은 돈 굳었다 땡잡았고나 싶겠지만 글쎄요... 실제로 그렇게 되면 좋을것이고 아니여도 할 수 없을 것이고... 더 빨리 나가고 싶지만 28일까지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이미 마음이 떠난 곳에서 버틴다는 것은 힘만 쭉쭉 빠지게 하니까요.
배고파 죽기 전에 님이나 나나 새 직장과 새 사람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요다 2004-02-1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플라시보 님. 매번 꼬박꼬박 달아주시는 리플에 공감이 많이 됩니다.
어떻게 같은 때 비슷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웃음도 나요.
막연하게나마, 그러나 스스로를 믿는 심정으로 몇 자 적어보았는데...
님도 잘 풀려서 더욱 잘 되시길 바랄게요.

비발~* 2004-02-17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자리에 서건 다시는 정신의 피폐함까지 느끼게 되지 않으시길 빕니다....

kimji 2004-02-18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통분모... 저는 지난 주 금요일이 공식적인 마지막 출근이었습니다. 24개월 13일을 다녔더군요. 저 역시 잔무가 조금 남아서 오늘까지 정오 무렵에 가서 두어시간 일을 마치면 그만 두게 됩니다. 정말 그만두는 거죠. 사실, 아직도 안 믿어집니다.
너무 쉽게 길들여진 시간같았다고 할까요, 그 시간 동안에 저는 그렇게 있었더군요. 재충전,이나 다른 조건의 일터로 가지 않고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될 거 같은, 제 스스로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고 싶은가 봅니다.
요다님, 안녕하시죠. 참 오랜만의 인사에요.
마음 잘 여미시길. 그리고 한껏 봄냄새 맡는 일상이 되길 기원할게요.
또 뵈요.
 
 전출처 : 아라비스 > 1만원에 즐기는 외국음식

외국 음식점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 음식점은 외국인이나 그 나라에서 요리를 배운 사람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보다 정통에 가까운 맛을 볼 수 있다. 이제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국가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 먹어보고는 싶지만 부담스런 가격 때문에 망설여지는 외국 레스토랑. 하지만 1만원 내외로 훌륭한 이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다.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고인 곳만 엄선한 Best Restaurant.




터키 요리사가 직접 만드는 케밥 전문점. 살람은 꼬치구이인 쉬쉬케밥을 주메뉴로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익혀서 기름을 쫙 뺐기 때문에 담백한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터키 음식에는 특별한 향신료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살람은 터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Turkey Food is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터키 음식은 케밥이다. 케밥이란 얇게 썬 고기를 꼬치에 끼워 불에 장시간 구운 뒤 칼로 다시 얇게 썰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구

운 고기를 토마토 소스나 요구르트와 함께 먹는다. 유라시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유럽이나 호주 등 여러 국가에 퍼져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원래 정통 케밥은 양고기를 이용하는 것이 원칙. 그러나 돼지고기나 닭고기로 만들기도 한다.
메뉴 아다라키 케밥 7천원 위치 이태원 이슬람 사원 옆 문의 02·793-4323



퓨전이 아닌 정통 인도네시아 음식점. 인도네시아인이 직접 자국의 맛을 그대로 살려낸다. 인도네시아 음식 자체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편이기 때문에 굳이 요리를 변형시키지 않아도 된다고. 정통의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향신료를 본국에서 직접 공수해온다. 재작년에 오픈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므로 평일에도 미리 전화를 해보고 가는 것이 좋다.
Indonesian Food is 인도네시아에는 향신료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향신료가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태국

음식보다 조금 더 순하고, 덜 기름지다. 또한 전체적으로 맵고 단 것이 특징. 인도네시아 또한 한국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특별한 반찬이 발달되어 있지는 않다. 오이, 당근 등을 식초에 절인 아차르라는 밑반찬이 전부. 해산물 요리가 발달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메뉴 나시고랭 8천원, 기도가도 6천원 위치 해밀턴호텔 옆 KFC 골목으로 직진 후 왼쪽 끝 문의 02·749-5271



태국 쌀국수 전문점 타야. 맛은 베트남 쌀국수와 거의 비슷하지만 이곳에는 볶음 국수와 특유의 태국 소스가 있다. 태국 음식은 본래 매콤하면서 향이 강하지만 타야의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강한 향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이곳과 베트남 쌀국수 집을 가르는 기준은 태국 특유의 소스 남뿔라. 남뿔라는 일종의 멸치 액젓이다. 모던한 식당 안에는 부부가 태국에서 직접 찍어온 사진이 진열되어 이국적인 멋을 더한다.
Thai Food is 태국인의 주식은 면류. 면발이 얇은 한국식

국수 외에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지는 국수, 폭이 3cm 이상인 넓적한 국수 등 면의 종류가 다양하다. 태국 음식에는 정향이라는 향신료가 빠지지 않는데 우리의 고춧가루에 해당하지만 향이 매우 강해 처음 접한 사람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메뉴 볶음 국수 5천원, 태국 물국수 5천~6천원 위치 압구정동 맥도날드 뒤 두 번째 골목 문의 02·540-1186



만화가 김준희 씨가 경영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이곳은 이탈리아 요리 학교인 IPCA에서 교육을 받고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이탈리아다운 음식을 만든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자는 프루슈토 코포 피자. 익히지 않은 이탈리아 정통 햄을 갓 구운 피자 위에 얹어서 먹는다.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이지만 딱딱한 레스토랑이 아닌 편안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이다.
Italian Food is 이탈리아 국기인 삼색기에서 녹색은 전 국토에서 수확되는 올리브, 흰색은 생크림, 붉은색은 토마토

를 나타낸다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음식에는 이 재료들이 들어간다. 여러 개의 독립국가로 분리되었던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나폴리, 베네치아, 시칠리아 등 지역별로 고유의 음식이 다르다.
메뉴 피자 1만2천~1만5천원 위치 홍대에서 신촌 방향으로 50m 문의 02·337-5461



국내 최초의 그리스 음식점 기로스. 기로스는 그리스의 대표 음식으로 그리스식 케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 터키 케밥에 비해 싸 먹는 빵인 피타 브레드의 두께가 두껍다. 또한 로즈메리, 타임, 버진 등의 허브 향신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과 향이 자극적이지 않다. 캐나다에서 그리스 식당을 운영했던 요리사가 만들기 때문에 정통 그리스 음식이라기보다는 서구화된 그리스 음식을 선보이는 곳.
Greek Food is 햄버거만큼이나 그리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기로스이다. 그리스 길거리에는 기로스 식

당이 포장마차처럼 쭉 늘어서 있으며 간단하게 한끼를 때우기 위한 사람들로 매번 붐빈다. 기로스 외에도 산양유로 만든 페다 치즈, 고기를 꼬치에 끼워 구운 수불라키 등의 음식이 있다.
메뉴 기로스와 감자 샐러드 3천9백원 위치 이대 정문에서 럭키아파트 쪽
문의
02·312-2246



몬소는 주방장부터 서빙하는 사람까지 모두 몽고인이다. 이곳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몽고 만두. 한국의 만두는 고기와 야채를 섞어서 만들지만 몽고 만두는 쇠고기와 양고기로만 만든다. 흥미로운 메뉴 중 하나는 수태차. 차의 일종이지만 녹차나 홍차와 달리 우유로 끓이는 차이다. 처음 먹어본 사람은 익숙지 않아 거부감이 들지만 몇 번 마셔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Mongol Food is 몽고 음식은 유목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선 대부분의 음식을 고기로 만든다. 또한 농사를 짓

지 않기 때문에 향신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도 특징. 조리법도 한정되어 있으며 양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가지 양념이나 조리법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재료에 따라 메뉴가 달라진다.
메뉴 호쇼리(반달 모양의 튀김만두) 6천원, 호르혹(양고기 야채 찜 요리) 4인분 기준 2만원 위치 어린이대공원 파리바게뜨 옆 문의 02·2205-2015
 



한국에서는 먹어보기 힘든 티베트 음식이 있는 곳. 짬뽕같이 생긴 툭파와 티베트 전통차인 수위지차를 먹을 수 있다. 수위지차는 티베트 사람들이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마시는 일종의 버터 티. 이곳은 전통 티베트 요리 전문점이라기보다는 티베트 분위기의 주점이라는 설명이 더 알맞다. 두 가지 티베트 메뉴를 제외하고는 일반 한국 음식을 팔기 때문. 하지만 티베트에서 직접 가져온 부적이나 모자 등 티베트 전통 소품으로 꾸며놓은 식당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Tibet Food is 티베트의 주식은 미숫가루 같은 곡물 가루

를 물에 타 먹는 것이다. 특별한 요리 없이 곡물 가루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티베트 음식은 전체적으로 한국 음식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한국의 수제비와 똑같이 생긴 텐툭. 감자와 호박, 수제비 반죽을 말간 국물에 끓여낸 것까지 똑같다.
메뉴 툭파 6천원, 수위지차 4천원 위치 인사동 갯마을 밀밭집 골목
문의
02·3788-9429
 



토티아나 파이타 등의 멕시코 음식은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동안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든 쉽게 볼 수 있던 메뉴이기 때문. 하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의 멕시칸 요리는 정통이라기보다는 미국식에 가깝다. 이곳 까사마야에서는 코스타리카와 멕시코 등 남미에서 오래 공부한 주인이 주방을 직접 지휘하기 때문에 정통 멕시코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타코, 케사디야 등 30여 가지의 메뉴가 있다. 멕시코에서 직접 사온 여러 가지 소품들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Mexico Food is 멕시코 음식의 3대 재료는 옥수수와 콩

그리고 고추이다. 멕시코인의 주식도 옥수수로 만든 토티아. 일종의 옥수수 전병으로 여기에 고기나 야채 등의 요리를 싸 먹으면 타코가 된다. 멕시코는 태국, 한국과 함께 3대 매운 음식 국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고추를 많이 사용한다. 심지어 멕시코 고추의 종류는 50여 가지에 이른다.
메뉴 타코 6천원, 케사디야 6천원, 정식 1만~1만5천원 위치 씨네씨티 골목에서 약 80m 직진 문의 02·545-0591
 



이란 카레 전문점 페르시안 궁전. 10년 동안 한국에서 산 이란인 카풀 씨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그는 구하기 힘든 이란의 향신료를 이슬람 사원에서 직접 가져와 카레를 만든다. 이란 카레는 인도식 카레보다는 덜 자극적이며, 칠면조나 닭고기 등을 넣어 만든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이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테리어. 만드는 데 2~3년 정도 걸리는 수공예 양탄자와 여러 가지 이국적인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Persian Food is 이란은 땅이 넓기 때문에 육류부터 해산

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음식이 고루 발달했다. 우선 이란의 주식은 밀가루를 얇게 구워 만든 빵인 난. 모든 중동 지역의 주식이기도 한 이 빵에 가볍게 버터나 잼을 발라 먹기도 하고 커리 등의 각종 음식을 싸서 먹기도 한다. 가장 대중적인 음식은 코라쉬트라는 커리류. 약간의 고기와 콩, 곡물을 함께 넣고 끓인다.
메뉴 페르시안 정식 2인 1만8천원 위치 성균관대 정문 맞은편 문의 02·2205-20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02-07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다 2004-02-13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의 글은 아라비스 님 서재에서 퍼온 거예요.
'혹시, 역시..' 뭘까? 궁금해 하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답글 답니다.
 

이럴 때, 어제까지는 정각 9시에 출근해 6시 30분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하루 아침에 그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될 때.... 나는 삶이 두렵다. 어제처럼 오늘도 이어지리라 믿었던 일이 아무 설명도 없이 내 뒷통수를 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살아있던 사람이 오늘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건강하고 튼튼하기만 해 삶의 활력이 느껴지던 사람이 오늘은 앓아 누웠다는 소식을 접할 때, 나는 불현듯 느낀다. "그래, 오늘 나는 새 삶을 살고 있구나."

익숙해서, 그리고 일상이라서, 어제와 같은 오늘이기에 변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은 변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삶의 물결이지만, 아무리 반복해서 접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런 물결...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여일하게 나는 내 삶을 살아가리란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짐해본다. 날을 받은 새색시처럼 기쁘고 설레게 하루를 살아야지,라고. 어제랑 똑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그건 다른 삶임을 결코 잊지 말자고. 이제 또다른 출발선에 서는 누군가와 함께 다짐한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자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2-0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공감이 갑니다. 늘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있다는 것 조차 까먹을 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일들이 있죠. 내가 살아있는 것, 건강한 것, 회사를 다니는 것.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닌게 되어버릴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저도 새 삶을 사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한 페미니즘 / 벨 훅스, 백년글사랑 펴냄

<행복한 페미니즘>(백년글사랑 펴냄)의 지은이이자 미국의 급진적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는 페미니스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기간 내내 나는 페미니스트였던 선배들과 동료들에게서 ‘여성해방’이 곧 ‘인간해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노동해방’이 ‘인간해방’의 일부라는 말처럼 내게는 자연스런 진실로 느껴졌다. 벨 훅스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 역시 이런 관점과 동일선상에 있다. “간단히 말해,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요컨대 성차별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성차별주의적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나 일단 ‘계몽’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본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남성지배사회에 남성으로 태어난 ‘나’는 일단 기득권자라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둘째, 거기에 ‘부정’의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일단 내게 주어진 유형무형의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동의와 부정’의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성차별주의적 착취와 억압을 지양하기 위한 최소한의 ‘실천’이 성립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이것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은 체화된 남성으로서의 나의 ‘무의식’은 끈질기고 견고한 반면, ‘의식’으로서의 ‘신념’은 풀잎사귀처럼 자주 흔들렸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극소수의 여성 동료들로부터 간간이 제기된 비판도 나를 흔들리게 했다. “아무리 노력해 봐라. 너의 본질은 남성이니까.” 이런 비판은 마초인 남성 동료들에게서도, 페미니스트인 여성 동료들에게서도 동시에 들려왔다. 남성 동료들의 비판을 들으면서, 나는 비록 순간적이기는 하지만 ‘남성 지배사회’라는 기득권에 투항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꼈다. 여성 동료들의 비판을 들으면서 나는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순간적 절망에 빠졌다. 이 ‘유혹과 절망’은 나의 내면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벨 훅스의 지적은 그런 내 혼란을 멈추게 했다. 앞에서 내가 언급한 양극단의 사람들은, 그들의 발언이 비록 차별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성이라고 하는 것을 본질주의로 수렴시킨다는 점에서는, 다 같은 성차별주의자라는 지적 때문이다.

“남성을 투쟁의 동지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페미니스트 활동가들, 남자들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에서 무어라도 얻는 게 생긴다면 여자들은 무어라도 잃고 말 거라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을 의심하고 폄하하는 대중의 입지를 자기도 모르게 강화시켜 왔다. 그리고 남성을 혐오하는 그런 여성들은 때때로 페미니즘이 더 이상 발전을 못하거나 말거나 남자들과 함께는 운동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취한다.”

이 밖에도 지은이는 <행복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운동 내부의 격렬한 논란거리를 거리낌없이 조명하고 있다. 대중적인 운동과 멀어진 강단 페미니즘의 폐해, 페미니즘 운동 지형 안에서의 계급정치의 문제, 인종주의와 동성애 혐오를 포함한 분리주의 경향, 가부장적 매스미디어의 가공할 문제점 등등. 이 책을 읽고 나는 또다시 자문해 보았다. 나는 과연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이명원/ 문학평론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요다 2004-01-3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가끔 남편과 남성을 배척하는 여성주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내 스스로도 빠지게 되는 함정이기 때문에 남편의 말은 신선한 자극이 된다.

결론적으로 남편의 이야기는 '여성만 위하는 운동은 페미니즘이 아니다'란 건데, 그 근거는 이렇다. '성차'에 기반한 차별을 철폐하겠다며 '남성=적'으로 보는 감성적 운동방식은 거꾸로 남성을 차별하는 운동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적'으로 몰고 갈 때,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남자들은 갈 곳을 잃고 방황하게 되며, 구태어 '적'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남성 무리로부터 빠져나올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만을 위한 페니미즘'이 함께하려는 남성들을 따돌리고 적대시함으로서 스스로 고립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에 대해 전적으로, 그리고 심증적으로 동의하는 나는(그런 한편, 성차별이 일상화된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이런 적대적 태도를 가지기 쉽다. 나 또한 때때로 그러하므로. 그러나 차별의 당사자는 언제나 자신이 희생양이란 사실에 분노하므로, 분노의 화살을 '남성성'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분노는 이성을 잃게 만든다.) 이명원의 글을 읽었을 때,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고로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은 여자든, 남자든, 전업주부든, 커리어우먼이든,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사람이든 누가 읽어도 좋은 멋진 책이다. 알라딘 편집자 추천도서기도 하다. 함께 볼만한 책으로는 <따로와 끼리-남성 지배문화 벗기기>(정유성 지음, 책세상 펴냄)가 있다. 이 책에 붙은 마이리뷰 "함께 빠져 나오지 않을래요?"(나의추억 님의 리뷰)는 정말 잘 쓰셨다.

유희가객 2004-02-0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눌~
어떤 형태든 목적이든간에 "인종주의적" 차별은 그 자체로 죄악이야~!!
그건 여자니까.. 하는 것처럼... 남자니까.. 하는 거랑 다르지 않은거잖아.

그리고, NIMBY 가 절대로 환경운동이나 생태주의적으로 수렴할 수 없듯이,
적대적 페미니즘은 결코 다 같이 평등하게 잘 살자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거덩.

세상이 거시기한 관계로, 지금은 '서방'이 좀 더 기득권을 갖고 있는건 분명하지만
내 그걸 하루에 한가지씩만 포기하도록 하지.
한번에 포기하기엔, 아무래도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긴 듯도 싶고
아직은 좀 미숙한 마초 근성도 있는듯 싶으이~

이상. 예쁜 마눌의 잘난 서방이었음다~!!(ㅎㅎㅎ)
 

이건 어떻게 보면 자화자찬일 수 있지만,  알라딘에서 일하며 알라딘 리뷰의  글쓴이들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글'을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안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아 리뷰읽기가 유난히 즐겁다. 더구나, 메인 페이지에서 '추천도서' 페이지로 그 위치를 이동해 아는 사람만 찾아보는 공간이 된 이후로는 나는 마치 '비밀일기'라도 훔쳐보는 듯 기분이 새롭다.

간만에 알라딘 리뷰 코너에 들려, 근 1~2달치 리뷰를 읽는다. 하나씩 클릭해서 서평을 읽고, 얼마나 팔렸는지 세일즈 포인트를 점검해보면서 '애개!+__+ 이건 왜 이것밖에 안 팔렸어? 아, 아쉽다. 아까워...' 하거나, '흠흠...  ^^ 역시 이 사람 센스있고 멋져.' 라든지 '이 따땃한 기분, **는 여전히 좋은데..' 혹은 '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쓰다니. **는 진짜 숨은 보석이야' 혼잣말한다.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알지만,  참 좋은 서평이기에 나 하나만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쓴 글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게 와닿고, 최소한 '팔아먹으려고 꼼수'를 쓰는 글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나는 가장 좋은 글의 요건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문학 작품이 줄 수 있는 감동과 사회과학/인문학 책이 줄 수 있는 감동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제각각 책을 읽고 나름대로 감동한다. 그리고 감동먹은 가슴으로 어떻게든 다른 이들에게 이 책을 선전하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컴퓨터를 두드리고, 술안주로 꺼내 감상을 늘어놓곤 한다.

자연스럽게 좋은 마음. 이게 '감동'일 거라고, 그렇다면 글이란 '완성도'가 아니라 '울림'에 그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미숙한 글은 괜찮아도, 매만진 글은 창피스럽다. 이렇게 저렇게 뜯어고친 글은, 왠지 보이기에만 신경쓰고 진심은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그렇다.

편집자에 따라서 글맵시도 표현력도 다 다른 것이지만, 하지만 알라딘 리뷰에는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애쓴 흔적이 있다. 나는 내 동료에 대한 그만큼의 믿음으로 알라딘 리뷰를 읽기 때문에 읽는 그 순간순간이 좋은가 보다. 오늘 동료들이 더 가깝게 와 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