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르디 지방 : 아미앵 대성당 - 콩떼 성(상티이)

Chateau Conde. 파리 북역에서 기차로 40분 거리. 역에서 콩떼 미술관까지는 택시로 이동한다. 이 성의 정원은 앙트레 르 노트르라는 17세기 정원조경사가 설계한 것으로 미려하게 마감된 영국식 정원, 그리고 성을 둘러싼 아담한 인공 호수가 매력적이다. 콩테 성의 마지막 소유자 오말 공작, 도를레앙은 루이 필리프의 다섯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혁명으로 인해 왕자로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긴 망명생활을 보냈다. 그는 1889년에 귀국하여 1897년에 죽었다.

그는 생존 당시 상당한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인 <베리 공작의 풍요로운 생활> 채색 필사본 기도서이다. 이 작품은 중세서양미술사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여인의 초상>은, 줄리아노 메디치의 연인이었으며 미모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오는 여인 시모네타를 그린 그림으로, 혹자는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이라고도 한다. 라파엘로의 <미의 세여신>, <로레트의 마돈나>, <오를레앙의 동정녀> 및 와토의 <무장해제를 당한 아모르>, 오귀스트 앵그르의 <아프로디테 아나디오메네(바다에서 솟은 비너스)>, 장 푸케의 삽화 <에티엔 슈발리에의 날들>이 소장되어 있다.

Amiens. 1206년 십자가 전쟁으로 획득한 세례요한의 머리를 보관하기 위해 1220년부터 50년 동안 지어졌다. 웅장한 이 성당은 고딕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교회 내진 앞의 생 피르맹 정문과 성 요한의 일생을 묘사한 회랑(조각 칸막이), 110개의 참나무로 만든 성가대석, 서쪽 파샤드의 프랑스 역대 왕 22위 상등이 볼 만하다. 특별히 사랑받는 조각은, 이 성당 안쪽에 배치된 '우는 천사상'. 성당 참사 회원인 루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유가족이 영묘 제작을 의뢰하자, 니콜라 블라세가 관행에 비해 높은 요금을 청구해 (유가족에 의해) 법원에 고소당하자 황급히 일을 마무리하느라 서비스로 만든 조각상이 바로 이 천사상이다. 한쪽 손은 해골위에, 다른 한 손은 모래시계 위에 얹고 울고 있는 이 천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샹파뉴지방 : 랭스 대성당

Reims. 5세기 작은 교회로 시작해 1211년 지금의 교회 기초가 다져졌으며, 1275년 완공되었다. 1816년 루이 왕의 대관식을 가진 이래 샤를 10세의 대관식을 거행한 장소이다.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아름다운 서쪽 장미창과 마르크 샤갈의 밑그림을 토대로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 '샤갈의 창문' 등이 볼 만하다. 특히, 서쪽 파샤드 중앙문과 왼쪽 문에 위치한 우아한 천사 조각상은 특별 감상 포인트. 천사들의 우아한 미소 덕택에 랭스 성당은 '천사들의 성당'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이고, 따뜻하고 신비로운 미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앙문 위의 천사는 수태고지의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는 이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며, 왼쪽 문 위의 천사는 샹파뉴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순교자와 성자들에게 전하는 웃음을 보여준다.

-->랭스 미술관 : 랭스 대성당에서 리베르지에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나온다. 16-17세기 북유럽 미술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장 밥티스트 코로의 풍경화가 26점 소장되어 있고, 푸생, 부셰, 쿠르베, 르누아르, 모네 등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다빈치의 '스푸마토'(sfumato) ; 그리는 대상의 요철 변화를 마치 안개가 낀 듯 부드러운 색조와 톤의 변화로 묘사하는 기법이다. 윤곽선은 없고 모두 부드러운 면과 색조, 농담의 변화를 통해 덩어리가 파악되고 경계가 확인된다.  '모나 리자'의 미소는 이 기법이 낳은 환장할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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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토) 팡테옹, 소르본느, 라땡, 바스티유 지역(론리 플래닛 p.50 중심)

시간이 없어 헤퓌블리크 구역은 포기. Mije에 투숙하는 동안 짬나면 시도.

1. M-cluny la Sorbonne 10번 하차

2. 생 미셸 분수에서 간단히 아침식사

지하철역 근처: 2 크레프 샌드위치 Crepes Sandwiches), 메뉴-파니니 오 모짜렐라 토마토) 10:30~23:00

3. 생 세브랭 교회(St-Sevenrin)  M-st Michel. open  11:00~19:30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의 하나. 6게기 어느 수도사 이름을 따서 교회 이름을 지었다. 전형적인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으로, 16세기 초에 완성되었으며 예배당 주의를 두 개의 부속 건물이 둘러싸고 있다. 정원에는 중세풍의 박공 지붕 납골당이 있다.

4. 7 스튜디오 갈랑드(Studio Galande) : <록키 호러 픽쳐 쇼> 미리 매표. 매주 2회 특별 상영(관객과 함께 영화장면 그대로 따라하기)을 한다. 특별상영시간표 사전에 점검. 1회 14:00~5회 22:30 tel.08-92-68-06-24

5. 8 라 푸흐미 아이에 (La Fourmi Ailee)에서 점심식사 (12:00-13:00)

    쏘몽 퓌메(Saumon Fume 훈제연어) M-Maubert mutualite 10번

6. 11 쟌느 에 제레미(Jeanne et Jeremy) 인형상점-12 르 토흐튀 엘렉트리(Le Tortue Electrique) 앤틱 장난감

7. 끌뤼니미술관(국립중세미술관) open 수~월 09:15~17:45 E 5.50

   필수 감상작품 : '귀부인과 일각수 La Dame a la Licorne'(13번 원형전시실), 유대의 왕 두상, 생뜨 쌰뺄에서 옮겨온 스테인드글라스. 133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바젤의 황금장미

   끌뤼니미술관은 갈리아-로마 시대의 목욕탕(빠리가 로마 제국의 전진기지였을 당시 이곳에 지어짐) 유적이 남아있고, 한때 끌뤼니 수도원장이 살았던 곳이며, 빠리의 중세도시 건축술의 본보기다. 중세 시대 조각상과 장식된 사본, 무기, 가구와 금, 애나멜로 만든 소품을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니콘의 숲(Foret de la Licorne)이 생 제르맹 대로를 따라서 조성되어 있다. 정원만 입장 무료이고, 15m 높이의 둥근 천정으로 된 로마 목욕탕 유적 등 모자이크와 조각 작품이 있다.

8. 7 스튜디오 갈랑드(Studio Galande) : <록키 호러 픽쳐 쇼> 영화감상 15:30~17:00

9. 팡테옹(시간없으면 생략) open 10:00~18:15 : Pantheon. 1744년 절망적이었던 병세에서 회복된 루이 14세가 성녀 즈느비에브(파리의 수호 성녀. 451년 훈족의 침입을 받자 간절한 기도 끝에 파리를 구했다. 그녀의 동상이 룩셈부르 공원에 세워져 있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즈느비에브 수도원 자리에 지은 웅장한 교회. 조각가 자크 제르맹 수플로가 설계를 맡고(네오 클래식 양식=로마네스크+고딕), 그가 죽은 지 10년후 기욤 롱들레의 지휘하에 1790년에 완성되었다. 당시는 혁명 시기였으므로 이 건물은 팡테옹(국가를 위해 공헌한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 만신전)으로 사용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이 다시 교회로 복귀시켰으나 그후 세속화되었다가 다시 1885년에 공공건물이 되기 전까지 신성시되었다. 이 건물의 파샤드는 위대한 사람에게 월계관을 수여하는 조국을 페디먼트 박공머리 부조로 표현해 놓았다. 이곳 지하묘실에 알렉상드리 뒤마:), 볼테르, 위고, 루소, 졸라, 장 물렝(레지스탕스),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가 잠들어 있다. 

10. 소르본 대학 St-Jacques 탐방 + 학생식당에서 저녁식사 18:00~19:00

   Sorbonne. 빠리 4대학으로 불리우며, 팡테옹과 중세 박물관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창시자인 로베르 드 소르봉(Robert de Sorbon)은 루이 9세의 고해성사 신부로 16명의 가난한 학생들이 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1253년에 설립했다. 이 대학은 스콜라 철학의 중심지가 되었고, 혁명 당시 보수적 입장 때문에 탄압받기도 했다(100년 전쟁 동안 부르고뉴와 영국편을 들었으며, 마녀재판을 통해 프랑스 왕실을 구한 쟌 다르크를 화형대로 보내는데 앞장섰다. 18세기에는 자유로운 철학사상을 반대하고, 프로테스탄트 신도를 비판하는 등 왕보수의 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신학만 강의했으나, 철학, 수사학 등으로 학문의 영역이 넓어져 1969년에 13개의 단과대학으로 나뉘어졌다.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함께 유럽 3대 대학의 하나로 손꼽힌다. 소르본느가 배출한 신학자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중세 최대 연애스캔들의 주인공 아벨라르가 있다.

빠리의 학생식당은 학생복지위원회인 CROUS에서 관리한다. 대학 캠퍼스가 있는 곳에는 항상 학생식당이 있는데, 특히 5구에 몰려 있다. 대체로 샐러드와 대여섯 종류의 주요리, 요구르트, 과일, 치즈 등 후식이 딸려 나오며, 물은 그냥 가져다 마시면 된다. 각 학생식당 입구에 매표소가 있다. 국제학생증 소지자는 식권을 할인받을 수 있으며, 식권은 모든 학생식당에서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다. ex) 뷔이예 학생식당(Bullier) 

cf. 33 라 메종 데 투아 테(살롱 La Maison des Trois The's), Open 11:00~18:30      대만식 찻집. M-Place Monge 7번

11. 05 바리오 라티노(Barrio Latino) ; 댄스 크럽에서 살사 춤을 구경하며 맥주를 즐긴다. 09:00~새벽 02:00 M-bastille(1,5,8번)

 

21일(일) 오페라 거리, 샹제리제, 시떼.루이 섬
론리 플래닛 p.48 코스대로 걸어보고 관람한다. 과연 하루만에 다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방대한 일정. 때에 따라 조정.

1. Mije -> comfort bastille로 숙소 옮김 (10:00 체크인) + 아침식사(호텔 식당)

  가까운 상점에서 점심/저녁 거리를 구입한다.

2. Pont Marie 뽕 마리
3. Berthillon 베르틸롱 아이스크림 사 먹는다.

시떼 섬에서 생 루이 섬으로 건너가면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까페 겸 레스토랑. 이 집은 식사하는 사람보다는 유명한 아이스트림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다. 빠리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스크림 전문점답게 내부는 아주 낡았고 그래서 더 품위 있는 곳이다. 늙수그레한 웨이터들이 정중하게 서비스를 해준다. 각종 과일과 모카향이 나는 진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꽤 비싸다. 월, 화요일은 휴무

----> 생 루이 성당 : Ilt St-Louis. 규모는 작으나 조용한 거리와 부두가 있는 안식처다. 대리석과 금박 바로크 형식으로 내부 장식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1726년 궁정 건축가 루이 르 보의 설계로 완성되었다. 교회 정문에 있는 철제 시계가 인상적이며, 뽀죡한 첨탑과 현판은 1926년 미국 미주리 주의 생 루이가 기증한 것이다.

4. 강제 수용소 희생자 기념관 ; 김민수 교수가 마음이 담긴 건축으로 손꼽았던 곳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지하에 위치) 이 기념탑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게 추방당하고 희생된 빠리의 유태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세느 강물을 내려다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이 인상적이다. 이 부근은 시떼 섬과 생 루이 섬의 풍광을 두루 바라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

5. 요한 23세 광장 ; 노트르담 성당 플라잉 버트레스(아치형 부벽)가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고딕 건축이 낳은 혁신적인 기술로서 성당의 가파른 벽들과 성산 안치소 지붕을 받치는 데 사용되었다.

6. 노트르담 성당 ; 노틀담은 성모마리아를 지칭. 곱추 카지모도와 에스멜라다의 사랑을 그린 빅또르 위고의 명작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의 무대. 노트르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중에서도 서쪽과 남북쪽에 있는 '장미의 창'이 유명하다. 성당의 가장 화려한 곳은 동쪽 뒷면의 플라잉 버트레스다. 이 곳은 생 루이 섬 쪽에서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북쪽 종탑으로 387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서쪽 정면 꼭대기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 노트르담 성당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이무기 상들이 놓여있다. 앙리 4세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을 치뤘으며,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미사를 거행했다. 주요 유물은 십자가와, 성의, 채색장서와 필사본 등이다.

7. Quai aux Fleurs꽃 제방을 따라가 꽃 시장을 구경 ; 일요일마다 개나 새를 싸게 판다.

8. Tour de L'horloge(시계탑)과 꽁씨에르쥬리(conciergerie) 탑까지 간다 ; conciergerie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된 바 있고, 프랑스 혁명 당시 4천여 명이 투옥되었다. 14세기 궁정으로 고문실과 약 3천명 가량의 기요틴 희생자들을 수감하는 감옥이 있었다.

9. La Conciergerie 프랑스 대법원(10:00-17:00 씨떼 궁전)과 생뜨 샤뺄을 관람한다 ; Saint Chapelle. 대법원 안쪽 구석에 있다. 서양 건축사의 대표작. 15개의 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섬광과 높이 솟은 가느다란 기둥들이 별 모양으로 장식된 지붕에까지 이어진다. 창세기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서의 내용이 모두 표현되었다. 창에 그려진 1134장면 중 약 720개는 오리지널 스테인드 글라스로 빠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썼던 면류관과 요한의 두개골을 보관하기 위해 1248년에 루이 9세가 세웠다. 음향 효과가 뛰어나 음악 콘서트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10:00~17:00. 박물관 패스 적용. 저녁의 중세음악회.

Palais de Justice. 1793년 4월 프랑스 혁명군 재판 위원회는 이곳에서 시민 제1법정의 일을 시작했다. 14세기 샤를 5세가 궁전을 마레로 옮기기 전까지 프랑스 왕권의 중심 역할을 한 건물이다.


10. 도핀느 광장에 도착
11. Pont Neuf 뽕 네프 다리를 건넌다 ; ponk neuf. '새(new) 다리'라는 뜻.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배경.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이 다리의 첫 돌은 1578년 앙리 3세가 직접 얹었다. 1697년 다리가 완성되었으며 이 때 왕은 앙리 4세였다.

   
12. 앙리 4세의 조각상이 있는 Square du vert Galant 베르 갈랑 광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13. 루브르 박물관의 꾸르 까레를 지나


14. 뽕 데 자르(Pont des Arts)를 지나는 배에 손을 흔들고(여기서 퐁 뇌프 다리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 항상 예술가들이 모여든다고 하여 pont des arts란 이름이 붙었다.

15. 유리 피라미드(La pyramide)로 향한다+루브르 박물관 관람; La pyramide. 그랑 루브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국계 미국인 페이 I.M. pei가 설계했다. 현대식 건물을 세우는 것에 대한 반발도 많았으나 현재는 루브르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출입구 역할을 하며, 총 105개의 유리로 이루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특별 제작된 로봇이 피라미드를 청소한다. ^^

    Louvres. 궁전으로 쓰이다가 1739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짓고 거처를 옮긴 뒤다). 리슐리외관, 쉴리관, 드농관의 세 전시관으로 이뤄졌다. 입구에서 반드시 지도 한 장을 챙겨 관람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입장 전에 x레이 검사를 한다. 리슐리외관은 북쪽, 쉴리관은 동쪽, 드농관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회화 위주로 감상할 경우 1층 드농관부터 시작해서, 2층으로 올라가 쉴리관과 리슐리외관을 둘러보면 된다. 지하층에 매표소와 역피라미드, 각 전시실로 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마련되어 있다. 피라미드 입구에서 줄을 서지 않으려면 미리 표를 사두거나 지하 쇼핑몰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좋다.

가장 유명한 전시실은 리슐리외 18번 전시실(메디치 갤러리)로 렘브란트가 메디치가의 의뢰를 받아 완성한 24점의 대형 그림이 있다. 쉴리관 12번 전시실에는 '밀로의 비너스'가 있고, C 전시실에 모네, 르느와르, 시슬레 등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있다. 드농관 B 전시실의 '보르게제 검투사 조각상'도 유명하다. 1층 전시관 입구에 있는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도 볼 만하며, 6번 전시실에 '모나리자'가, 1층 이탈리아 회화전시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걸작이 소장되어 있다. 77번-들라크르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75번-다비드,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이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16. 까루젤(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의 개선문을 통과해 ; 나폴레옹이 아우스털리츠 전투를 비롯 다른 여러 전투를 기리기 위해 1805년 세운 것이다. 1828년 꼭대기에 세운 동상은  베니스에 빼앗겼다가 1815년 워털루 전쟁의 패배로 다시 받은 생 마르크의 말을 조각한 것이다.

18. 장식미술박물관 관람; Musee des arts Decoratifs. 루브르 궁전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중세부터 지금까지 장식 미술과 디자인에 관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의상 디자이너 잔 랑뱅이 태어난 집이 그대로 재현되었고, 아르 누보와 아르 데코 양식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17. 뛸르리(Jardin des Tuileries)  정원에 들어선다 ; Tuileries. 거대한 인공정원. 궁전은 1871년 빠리 꼬뮌 때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복식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만 남아있다. 17세기 왕실정원사인 앙드레 르 노트르가 설계한 이 정원은, 가장자리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팔각형의 인공호수가 중앙을 장식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타일을 만드는 공방이 있던 곳으로, 이 이름도 거기서 유래했다.

18. 정원을 한참 거닐다
19. 오랑주리 미술관 관람 ; Musee de L'orangerie. 모네의 작품이 타원형 전시장에 가득하다. 르노와르의 작품 27점도 볼 수 있다('피아노 앞의 소녀', '붉은 바위'). 피카소 초기 작품 '목욕하는 여인들' 및 루소의 작품 '결혼식', '쥐니에 노인의 짐수레'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19. 뽕 드 라 꽁꼬르드(Pont de la Concorde) 광장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 본래는 왕의 동상을 세우기 위해 건설한 루이 15세 광장이었으나, 그후 프랑스 혁명 광장으로 더 알려졌다. 1890년 '7월 혁명'이후 화합을 의미하는 '콩코드 광장'으로 다시 개칭 왕의 동상 대신 단두대를 세워,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샬로트 코르데와 혁명 지도자 당통, 로베스피에르를 처형했다. 처형된 사람은 총 1119명이다.

20.  알렉상드르 3세(Pont Alexandre3) 다리와
21. 다이애나 기념관 그리고
22. 트로까데로 정원을 지나

23. 에펠 탑의 전경을 보며 관람을 끝낸다. ; Eiffel. 에펠 탑으로 향하는 샹 드 마르스를 걸어 내려가다 보면 흥분으로 전율한다. 1889년 만국 박람회에서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설된 탑으로, 프랑스 권위의 상징이다. 탑의 설계자인 귀스타브 에펠에게서 그 이름을 딴 에펠 탑은 제일 꼭대기의 TV 안테나를 포함해 그 높이가 320m에 이른다. 250만개의 대못으로 결합된 7천톤의 철탑이기 때문에 따뜻한 날에는 팽창하고 추워지면 수축하며, 15cm 정도 높이가 달라진다. 맑은 날은 60km까지 시계가 확보된다.

24. 바또무슈 유람선 illumination tour : 23시까지 운행, 에펠 탑 근처에 유람 승선장이 있다. 예약 필수(01 42 25 9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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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08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다 2004-03-0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 이런, 저 아직 안 떠났어요.
3월 16일 출국이고요, 지금은 여행 스케줄 짜고 있답니다.

비발~* 2004-03-0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범생이 여행객 같아요~(삐질라나?) 발길 닿는대로, 기분내키는대로, 그냥 그렇게 다니다 거기 그런 거 있었니? 하고 놀래는 식으로 돌아다니는 게 버릇이 되어서, 이렇게 짜고 또 짜는 준비성을 보면, 그저 감탄만 입니다요~

요다 2004-03-0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벼른 여행이라서,, 자꾸, 충실하게 되네요.
일정은 이렇지만, 아마도 걷다가 다리 아프면 혹은 관람하다 지치면 공원에서 쉬다 갈 듯. 배낭여행이긴 해도, 학생 때처럼 악마같은 기력은 없으니;;; 하여간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17일(수) 숙소 예약, 특색있는 미술관 탐방

1. 친구 언니집에 가방 풀기

2. 여행 스케줄 확인 및 숙박할 곳 예약

   MIJE 호스텔 (5.E7) <론니 플레닛 p.106>

   전화 : 01-42-47-23-45

   홈페이지 있으나, 예약 안됨. 일단, 숙박예정일과 숙박인 명단을 메일로 보내놓음.

3. Muse'e d'orsay(뮈제 도르세이) - 오르세이 미술관인데, '도르세이' 이렇게 연음 된다.

과거에는 기차역이었지만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아름다운 박물관. 고흐, 고갱, 르노와르처럼 인상파 작가의 작품이 많다. 그라운드 층->2층->1층 순으로 관람하는 게 좋다. 그라운드층  양 옆 6번 전시실에 '이삭줍기'와 '만종'의 화가 밀레의 작품이 소장되었고, 7번 전시실에 꾸리베가 그린 '세상의 근원'이, 14번 전시실에 모네와 르느와르의 1870년대 이전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2층 입구 왼쪽 전시실은 더 유명한 작품이 많으므로 시간에 쫒길 경우는 이곳을 먼저 관람한다. 2층 31번 전시실에 드가, 마네, 르느와르의 작품이, 35번 전시실에 반고흐 작품 '닥터 가셰의 초상', '오벡스의 성당', '자화상'이 전시되어 있다. 44번 전시실에 고갱의 작품이 45번 전시실에 쇠라가, 47번 전시실에 뚤루즈 로트렉의 작품이 있다. 61번부터 66번 전시실은 아르 누보 계열의 장식미술품이 전시된 곳으로 특이한 형태의 가구와 도자기 등을 볼 수 있다.

62.rue de Lille 75343 Paris   tel. 01 40 49 48 14  open 10:00-18:00 휴관일 : 월요일 살롱드 테 01:30-17:40   M - Musee d'orsay(c번)

르 까페 데 레트 흐(Le cafe des Lettes) : 오르세이 미술관 뒷편, 조용한 곳에 위치한 스웨덴식 찻집. 이 곳은 무엇보다 멋진 정원이 눈길을 끈다. 날씨가 좋을 땐 이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편지를 써도 좋을 분위기.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고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가족들에게 엽서 한장 써보는 건 어떨까?   tel.01 44 22 52 17 M-Sentier(2번)

4. 위치 확인함, 지하철로 이동! Musee Rodin(뮈제 로댕) - 살롱 드 테에서 점심(사전에 점심시간을 알아볼 것) - 여기서 선희언니 만남 오후 2~3시 경

로댕박물관. 꽃피는 봄이 가장 좋다. 정원 한켠에 살롱 드테가 있어, 차.음료.점심('오늘의 추천메뉴')을 즐길 수 있다.

77 rue de Varenne 75007   tel. 01 44 18 61 10   open 09:30-17:45   M-Varenne(3번)

일요일은 3유로, 평일은 5유로, 정원만 볼 때 1유로

5. 위치 확인함! 파리 시립미술관 옆. Musee Palais de Tokyo(뮈제 팔레 드 도쿄)

1937년 파리에서 열렸던 국제박람회장의 일본관으로 지어진 건물. 준코 사카무라의 일본 건축가가 설계했고, 그해 박람회에서 건축부분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쉬크한 차림새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자주 들르며,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 등 현대미술을 감상하는데 그만이다.

13 avenue du President Wilson 75016  tel. 01 47 23 38 86   open 12:00-24:00 일요일 휴무  M-lena(9번)

18일(목) MIJE 숙박, 마레 지역 탐방

1. 숙소 MIJE 포꼬니에(Fauconnier)로 옮김; 유럽사진미술관 근처에 있는 곳으로, 담쟁이 덩굴이 덮인 건물이 인상적이다. 나무가 심긴 자그만한 정원도 딸려 있어 더욱 분위기가 좋다.

  유럽사진미술관 : open 11:00~20:00 매주 수요일 17:00~20:00 무료. 빠리에서 가장 매혹적인 미술관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독특한 개성과 따뜻한 느낌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세느 강변길에서 마레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왼쪽에 있는 이 작은 미술관은 심플하고 세련된 현대적 건물이 주변의 고풍스럽고 조용한 18세기 주택과 너무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회화, 조각과 더불어 현대미술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진예술 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는 공간인 이 미술관에는 12,000여 점의 상설전시중인 작품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외국 작가들의 특별전시와 프랑스 작가들의 전시가 일년 내내 계속된다. 벽면을 하얗게 처리한 전시실에는 작품 외에는 거의 아무런 장식이 띄지 않을 만큼 단순하지만 이 점이 극도의 세련미를 연출한다. 지하의 까페는 아늑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2. 지하철 Rambuteau 하차 (도보 또는 지하철)

3. 11 살롱 Le Loir dans la Theiere 르 루와 덩 라 테이에르 (아침식사 11:30~)

    브런치 메뉴(각각 주문) -  Plat(쁠라)와 베이컨, Jus de Fruit Frais 과일주스, Paint au Chocolat 쇼콜라 빵, Cafe 또는 The 또는 Chocolat Chaud 중 하나, 후식- Tarte de Pomme사과파이, Tarte de Citron레몬파이

(또는 22 Au Petit Fer a Cheval 오 프티 페흐 아 슈발 레스토랑에서 Filet mignon de vear필레 미뇽 드보,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를. 식사 12:00-01:15)

3. 디키 14 Centre Pompidou Beaubourg 퐁피두 센터 - 로베르네 집(리볼리 59번지, 퐁피두 센터에서 10분 거리) (12:30~4:00)

4. 지하철 Saint paul로 이동 (도보 또는 지하철)

5. Marais 코스 밟기(서점을 중심으로)

   10 L'Eclaireur(레클뤠어) 아방가르드 부티끄-13 Librairie Culture 서점-16 Robin des Bois(호방 데 부와) 환경서점-18 Litchi(리치) 종교서점-21 Free 'P' Star  중고 옷가게-Rue des Ecouiffes 거리 산책

6. 저녁식사  M- Saint Paul(1번)

   17 Caffe' Boboli 이탈리아 레스토랑(점심 12:00-15:00, 저녁 19:30-23:00)    

   La Pate du Caffe Boboli  라 파트 뒤 카페 보볼리 (면은 스파게티 or 펜느)

7. 19 L'as du Fallafel(라 뒤 팔라펠) 유대인 전통 샌드위치(19일 아침거리 구입)-44 팬시점-Rue des frans Bourgeois 거리산책

8. 유럽사진미술관 관람

 

19일(금) MIJE 숙박, 누보 마레 지역 탐방

1. 아침(까페에서 간단히 또는 패스)

2. 피카소 박물관

3. 22 Cafe' des Muse'es 카페 데 뮈제_박물관 까페에서 점심 (12:30)

  남프랑스식 송아지 간요리

  Foie de Veau a la provencale Pommes Sautees 푸와 드 보 알 라 프로방살 폼므 쏘떼

  지중해식 생선 스튜 부이야베스

  Bouillabaisse provencale 부이야베스

4. 카르나발레 박물관 1:30~3:30 ; 1544년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광대한 박물관. 선사 시대 이래 파리 역사에 관한 기록과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은 카르나발레관과 팔레티에관, 오렌지 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한문 작가로 유명한 세비네부인이 카르나발레관에서 1677-1969년까지 살았다. 1층에 르네상스시대,2층에 17세기에서 혁명기까지의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2층만 관람). 팔레티에관에는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시대까지의 전시품과 20세기 초반 실내장식이 소개되어 있다. 오렌지원에는 파리 선사시대와 로마화된 갈리아 귀족 전시관이 있다.

5. 보쥬 광장(디키 19, p.87) 3:50~4:50

앙리 4세시대에 조성된 이 아름다운 광장은 17세기 도시계획의 최고모델이라고 할 만큼 완벽한 구성미를 자랑한다. (<Hellow Paris> p.134) 이 광장 주변에는 한 면에 9채씩, 총 36채의 저택이 늘어서 있다.

--->빅토르 위고의 집 : 위고는 보주 광장 6번지에 살았다. 그의 집은 이제 삶과 작품들을 보여주는 기념관으로 방문객을 맞고 있다. 위고는 1832년부터 1848년까지 이곳에 살면서 그의 대표작인 <레미제라블>을 집필했으면, 그 외의 <노트르담의 꼽추>도 여기서 완성했다. 현재 이 저택에는 그가 거주했던 방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을 뿐 아니라 페노가 잉크로 그린 데생과 유년시절에서 망명 생활시가(1852~1870)까지 그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6. 뉴보 마레지역 탐방

   18 CSAO(사오) 아프리카 상점-17 Celis(쎌리) 손뜨게 상점-16 Jamin Puech(쟈망 퓌스) 수제 가방 상점-15 Librairie des Archives 미술서적 전문서점-14 살롱에서 차 한 잔 En Attendant pable(어 나떵덩 파블보, 파브로를 기다리며), 대표 메뉴-Pablo(파블로)-13 Book by Artists 아트북 전문서점-11 Diminique Picquier 디자이너 가방상점-08 ALTEA 아트상점-04 Azimut Productions(아지뮈 프로딕시옹) 장난감 상점(Close 19:00)-03 Katapult(카파퓔트) Lp 음반 전문점

7. 02 Anahi(아나이) 아르헨티나 레스토랑 (식사시간 22:00~02:00) 또는

    지하철 Chemin Vert으로 이동 - 29 Chez Janou(쉐 자누) 레스토랑 (식사시간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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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4-03-08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역시 철두철미한 성혜씨. 근데 넘 빡빡한 거 아니야? ^^

요다 2004-03-09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얼개는 이렇게 짜두고 시간 봐서 건너뛸 것은 건너 뛰어야지. 나도 첨에 욕심없이 슬렁슬렁 먹고 놀다 오려 했는데, 여행서를 보니까 자꾸 욕심이 생기네. ^^ 특색있는 미술관은 전부 가보고 싶어.
 
유대인처럼 성공하라 - The Jewish Power
육동인 지음 / 아카넷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유대인이 역사상 유일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는 아니다는 주장을 편 <홀로코스트 산업>이 출간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뛰어난 두뇌와 천부적인 경제감각을 지닌 기세있는 민족이지만, 나라를 잃고 박해 받아온 약소국민으로 이해되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학살)는 반유대주의가 얼마나 득세하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고 미국내 유대인단체는 스위스 은행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예금을 전용했다는 누명을 씌워 거액의 보상금을 타내기도 했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밝히면서 유대인만이 대량학살에 희생된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나치 최초의 희생자는 공산주의자나 장애인, 집시였다고 설명한다. 또한, 유대인 이익단체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점적 특권을 주장하며 스위스 은행이 지급한 홀로코스트 보상금을 가로채고, 오점을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요기록을 파기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대인 이미지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이면서 돈만 밝히는 '악덕 상인'(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이 대표적이다)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희생자라는 약소국 이미지는, 앞서 말한 책이 출판되면서 '시오니즘'이 만들어낸 가짜 이미지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악덕 상인' 이미지 역시 이 책의 저자에 의해 벗겨진다. (저자에 따르면 유대인은 돈을 버는데도 천부적이지만, 돈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데도 천부적인 소명의식을 갖는다. 유대인의 성서인 토라는 '선행'과 '자선행위'에 대해서 끊임없이 가르치며, 유대인들은 예배 때마다 이를 함께 읽고 그 뜻을 새겨 실천에 옮긴다.)

<유대인처럼 성공하라>는 유대인의 문화를 포함해서 그 생존본능과 (토라에 입각한) 경제관념을 논한 책이다. 뉴욕의 경제현장을 누비며 경제전문기자의 시각으로 유대인의 성공요인을 생생하게 파헤친 역작이라, 더욱 흥미롭다. 유대인 성공신화의 비밀을 다양한 사례와 분석을 통해 보여주어 이해가 빠르고, 유대인의 민족성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살필 수 있다.

육동인 기자는 유대인의 세계적 영향력에 대해서 '0.25%=25%'(일당백 1=100)로 정리한다. 이스라엘 안팎의 유대인 인구가 전체 인류 인구의 0.25%밖에 차지하지 않는데,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25%에 달하니 이런 등식도 과장은 아니다. 어째서 이런 두뇌 효율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그 원인으로 저자는 첫째, '주이시 맘(Jewish Mom)'을 든다. '유대교'는 교육을 중시하는 독특한 가치체계를 세워왔고, 세 살 때부터 성서 교육을 시작한다. 꿀로 만든 칠판에 히브리어 알파벳을 적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혀로 핥으며 글자를 깨우친다. 어릴 때부터 "지성=달콤함"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다.

교육열이 얼마나 뜨거운가는 '92 스트리트 Y'라는 유대인 유치원 입학 경쟁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유치원 등록금은 명문 사립대학보다 비싼데도 입학 희망자 대기줄은 끝이 없다. 그 까닭에 하버드 대학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다는 소릴 듣는다. 투자은행인 살로만 스미스바니의 애널리스트 잭 그럽맨은 이 유치원에 자기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가 큰 코 다친바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돈을 벌고, 불리고 쓸 줄 아는 힘, 즉 돈에 대한 장악력을 꼽는다. 유대인은 돈을 삶의 최고 가치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특유의 자산증식 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가장 부유한 집단으로 성장해왔다. 가령, 유대인은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르는데 이 때 친지를 비롯한 하객이 낸 부조금은 아이 소유의 금융자본으로 예치된다. 20살이 될 때까지 아이는 이 예치금을 증식시킨다. 대개 200만~400만 달러가 부조금으로 들어오며, 20살쯤이 되면 이 돈은 1억원 이상으로 불어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단지, 돈을 버는 것만 가르치지 않고 "부의 사회환원" 역시 강조한다. 따라서 유대인이 자선사업과 사회단체에 많은 돈을 기부하는 것은 종교적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며, 동시에 장기적인 투자로서 사회 곳곳에 유대인의 영향력을 펼쳐나갈 수 있는 유용한 기반이 된다.

셋째, 저자는 "모든 유대인은 서로를 책임진다(All Jews are responsible for one another)"는 연대의식을 든다. 유대인끼리는 국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 의식은 "유학중에도 전쟁이 나면 조국으로 귀환한다"는 말로도 증명된다. 긴 세월 타민족의 박해와 배척을 당하는 동안 유대인의 결속력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가 그리고 정치, 과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는 근간이 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유대인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 미국 IT산업의 1세대 유대인 격인 앤드루 그로브 인텔 회장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창조적인 힘의 원동력은 "두려움(fear)"에서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편안하게 안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어렵고 힘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이 말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가능하다.

역경을 기회로 만들어내는 강인한 정신력, 온몸을 던져 언제나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는 승부사적 기질은 오늘날 유대인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요소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강점이다. 세계적으로 학구열이 높기로 이름난 유대인과 한국인.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과 '선한 부자'에 대한 소망이 그들에겐 있고 우리에겐 없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를 바로 알고, 지식의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도 유대인처럼 선한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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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DK 2012-04-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각종급등게시판에 나타나
지혜의손이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글을써서 답글을 달면
전화번호달라고 해서
안심을 하게 한다음
다음 선한부자의 길로라는 까페에 가입시켜서
리딩을 전제로 돈을 요구하고
기존포트를 정리시키고
신용으로 급등주를 오전에 매매시키고
손절케 해서
수많은 피해를 보신분들이 있습니다
이글도 신고가 될것이 분명합니다
10년넘게 팍스넷에 활동하면서
한번도 들키지 않았지만
최근 너무 많은 피해자가 생겼기에
피해보신분들끼리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합니다
이글이 채 읽기도 전에 지워질지 모르겟습니다
모네타 게시판에 신고를 해서 글을바로 삭제시키는데..
정말....너무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많기에
여러분에 알립니다
각종 급등주에 손실난 사람에게
선한척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접근해서
하나님을 팔면서 긴장 늦추게 하면 접근하는대
100%^ 걸려들면 거덜납니다
직장명도 묻고 그래서
직장인들은 특히 근무중에 주식한다고
회사에 전화를 하거나,,겁박을 해서 헤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한번 걸리면 너무 집요하게 접근해서
쉽사리 빠져나올수없습니다
물론.리딩을 전제로 돈도받고
위탁매매도 하는데.
위임해준분들이 직장인들이라
직장상사에게 전화걸어 협박하니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다음에서....은혜의샘,생명의샘...
팍스넷은 지혜의손으로 필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7명접수되었습니다
녹음도 되고
위탁매매한,,,근거도 있고...고객센터에 직접전화해서 매매한 사실도 잇고
입출금 송금명세도 있으나
피해자들이 대부분 직장인이라 후한때문에 신고를 못하고 잇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히 잡아 넣을까합니다
피해보신분들 쪽지부탁합니다
이글 분명히 삭제시키려고
모네타 게시판에 신고할것입니다
오늘도 게시판에 신고해서
글다지워지고 금지됐습니다..저는
모네타 게시판에 보면 지혜의손으로 신고한 내용보실수 있을것입니다
절데 답글달지마시고....쪽지연락하지마십쇼
글에 추천도 달지 마십시요
그것으로 시작되니
그리고 장이 빠지거나
테마주에 물린들에게 접근합니다
요즘..아즈텍,가비아.대한제강.이지등
급등주에 자주 출몰합니다.....
정말 이런사기꾼은 반드시 콩밥을 먹여야합니다
녹취되신분은 반드시 저에게 메일로 쪽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반드시 처벌받게 만듭시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정치 - 범우문고 119
막스 베버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어제 읽은 책이다. 막스 베버는 20세기 사상가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부분만 소개된 면이 없지 않다(90년대에 유행한 말,'천민자본주의'도 그의 자본주의 분석에 기대어 있다). 이외로 이 강연록이 번역되어 있어 반갑게 찾아 읽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에세이처럼 가볍게 쓰였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가 생전에 어떤 각오로 학문을 했으며, 시대인식을 어떻게 했는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최후의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최초의 불행한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렇다고 해서 (58세의 일기로 삶을 마치기 전까지) 실천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처한 상황과 교수와 학자의 자기모순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과 독일 대학의 서로 다른 행정체계 그러나 새시대에는 결국 같아지고 말 사회적 역할 분담도 함께 살핀다. 또, 학문은 궁극적으로 진보를 추구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절대 개념'을 얻는데 매진해 왔으나 이제는 그것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베버는 자유주의 좌파 청년들(청강생)에게 당파적이지 않은 학자가 되어달라고 강조한다. 이미 다양한 신이 활동하는 시대에, 유일신을 가르치는 것은 자기 기만이자 자포자기이며 학자로서도 교수로서도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합리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종교에 귀의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교회의 그늘에 들어가더라도 그를 비난하지는 않는 이유는, 이미 종교는 '유일신'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으며, 신앙에 뛰어들 때 자기 스스로 '지적 능력을 청산(지성의 희생)'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절대 개념이란 게 없고, 유일신이 존재할 수 없는 이 때 학문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일일까?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의미를 숙지하면서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우리 대학의 학자들을 생각했다. 일단, 그들은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당파적이다(학문에만 매진하다고 해도 그 역시 결과적으로 당파적이다).

얼마전 인터뷰한 고미숙 씨는, 그런 점에서 남달랐다. 수유연구실+너머에 대해서 혹자는 들뢰즈, 가타리에 올인한 정체불명의 연구단체라고 비아냥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혁명이나 정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상이다. 지금 여기가 달라지지 않는데, 바깥이 바뀐들 그게 뭐 대순가.

베버는 1800년대에 활약한 학자다. 그는 이미 그 때 서양의 근대 지식 체계가 가진 함정을 꿰뚫고 있었는데, 2004년인 지금도 한국의 대다수 학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의심 한 번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학문은 자생보다는 수입 중심이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근대의 패러독스에 우리도 함께 빠져있을 수밖에 없다. 뜻있는 몇몇은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길찾기를 모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유럽 최근 지식을 재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은 참 안타깝다.

베버가 이런 말을 했다. "주의하라. 악마는 나이가 많다. 그러므로 악마를 이해하려면 너도 나이가 많아야 한다.". 우리는 근대지식체계와 싸우기 위해서 다시 그걸 공부해야만 한다. 목적은 이것인데, 공부하다가 우리는 이게 악마인지 천사인지 잊어버리고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지식생산 시스템'(학교 역시 관료제다!)을 어거지로 가르친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내던져지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학생은 알아서 학교를 나간다. 슬픈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수유연구실+너머의 앞날이 늘 기대된다. 학교를 박차고 나가서 직업 교수가 되지 않고도 학문하는 방법을 찾은 사람들. 내 눈에 그들은 참 용감할 뿐만 아니라 참 대책없다. 그들은 원하는 공부를, 원하는 방식대로 하기 위해 학교 울터리를 벗어난 이들이기 때문에 공부 방법도 색다르다. 나는 수유연구실+너머를 몇 번 방문해 봤을 따름이지만 누구보다 먼저 미지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이 앞으로도 잘 해나가길 빈다.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올리고, 학문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 모든 노력이 그들에게 '밥'으로 돌아오길 또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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