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학문.정치 - 범우문고 119
막스 베버 지음, 김진욱 옮김 / 범우사

어제 읽은 책이다. 막스 베버는 20세기 사상가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부분만 소개된 면이 없지 않다(90년대에 유행한 말,'천민자본주의'도 그의 자본주의 분석에 기대어 있다). 이외로 이 강연록이 번역되어 있어 반갑게 찾아 읽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에세이처럼 가볍게 쓰였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이 담겨 있다. 그가 생전에 어떤 각오로 학문을 했으며, 시대인식을 어떻게 했는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최후의 행복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최초의 불행한 사람'이 되고자 했고, 그렇다고 해서 (58세의 일기로 삶을 마치기 전까지) 실천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 처한 상황과 교수와 학자의 자기모순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과 독일 대학의 서로 다른 행정체계 그러나 새시대에는 결국 같아지고 말 사회적 역할 분담도 함께 살핀다. 또, 학문은 궁극적으로 진보를 추구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보다는 '절대 개념'을 얻는데 매진해 왔으나 이제는 그것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베버는 자유주의 좌파 청년들(청강생)에게 당파적이지 않은 학자가 되어달라고 강조한다. 이미 다양한 신이 활동하는 시대에, 유일신을 가르치는 것은 자기 기만이자 자포자기이며 학자로서도 교수로서도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만약 합리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종교에 귀의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교회의 그늘에 들어가더라도 그를 비난하지는 않는 이유는, 이미 종교는 '유일신'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으며, 신앙에 뛰어들 때 자기 스스로 '지적 능력을 청산(지성의 희생)'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절대 개념이란 게 없고, 유일신이 존재할 수 없는 이 때 학문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엄청난 일일까? 그리고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의미를 숙지하면서 그 공허함을 견딜 수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우리 대학의 학자들을 생각했다. 일단, 그들은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당파적이다(학문에만 매진하다고 해도 그 역시 결과적으로 당파적이다).

얼마전 인터뷰한 고미숙 씨는, 그런 점에서 남달랐다. 수유연구실+너머에 대해서 혹자는 들뢰즈, 가타리에 올인한 정체불명의 연구단체라고 비아냥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혁명이나 정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상이다. 지금 여기가 달라지지 않는데, 바깥이 바뀐들 그게 뭐 대순가.

베버는 1800년대에 활약한 학자다. 그는 이미 그 때 서양의 근대 지식 체계가 가진 함정을 꿰뚫고 있었는데, 2004년인 지금도 한국의 대다수 학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의심 한 번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우리의 학문은 자생보다는 수입 중심이고, 그렇다 보니 당연히 근대의 패러독스에 우리도 함께 빠져있을 수밖에 없다. 뜻있는 몇몇은 근대와 탈근대 사이에서 길찾기를 모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유럽 최근 지식을 재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은 참 안타깝다.

베버가 이런 말을 했다. "주의하라. 악마는 나이가 많다. 그러므로 악마를 이해하려면 너도 나이가 많아야 한다.". 우리는 근대지식체계와 싸우기 위해서 다시 그걸 공부해야만 한다. 목적은 이것인데, 공부하다가 우리는 이게 악마인지 천사인지 잊어버리고 다음 세대에게, '지식'과 '지식생산 시스템'(학교 역시 관료제다!)을 어거지로 가르친다.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내던져지고,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학생은 알아서 학교를 나간다. 슬픈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수유연구실+너머의 앞날이 늘 기대된다. 학교를 박차고 나가서 직업 교수가 되지 않고도 학문하는 방법을 찾은 사람들. 내 눈에 그들은 참 용감할 뿐만 아니라 참 대책없다. 그들은 원하는 공부를, 원하는 방식대로 하기 위해 학교 울터리를 벗어난 이들이기 때문에 공부 방법도 색다르다. 나는 수유연구실+너머를 몇 번 방문해 봤을 따름이지만 누구보다 먼저 미지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딘 그들이 앞으로도 잘 해나가길 빈다.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올리고, 학문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 모든 노력이 그들에게 '밥'으로 돌아오길 또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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