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마리를 건너, 베르틸롱 아스크림을 사먹는 것으로 이날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나무딸기맛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새콤한 맛이 시원했다(뭐, 아이스크림은 원래 시원하지만 -.-) 관광객이 한번은 꼭 찾는 정통한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했는데, 아침시간이어선지 파리지앵들이 포장주문해 가는 모습을 더 눈에 띄었다.
김민수 교수가 그토록 칭찬해 마지 않았던 '마음이 담긴 건축의 표본' 강제 수용소 희생자 기념관은 매우 소담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꽤 너르고 큰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세느 강변을 내려다보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이 인상적이라는데, 그 여인상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하고... 하릴없이 기념관 안만 기웃기웃. 작은 시골 돌길을 걷는 듯한 좁은 입구와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타이포그래피가 기억에 남는다.
요한 23세 광장과 노트르담은 전날 가보았기 때문에 숑숑 건너띄고 프랑스 대법원으로 직행. 대법원 바로 옆에는 생뜨 샤뺄(Saint Chapelle) 성당이 있어 그곳을 보기 위해 들렸다. 대법원 마당 안쪽 구석에 높이 솟은 이 성당은, 스테인글라스가 무척 아름다웠다. 이중 720여 장면은 파리에서도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라는데, 그랬거나 어쨌거나 노트르담보다 여성스러운 것이 훨씬 인상적이다. (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만 보자면 밀라노의 '두오모'가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을 관람하고,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비둘기들과 함께 점심을 먹다. 바람이 너무 불어 추웠던 기억과 초콜렛 무스가 너무 달아서 두 입을 베어먹고 그만 둔 기억, 개선문+루브르+유리 피라미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장소라 기념삼아 사진을 몇 장 찍은 기억뿐이다.
루브르는 드농관만 보았으나, 다시 또 들어갈 염두가 나지 않는 너무나 방대한 미술관. 수틴의 빨간 그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나리자'는 신비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대오를 지도하고 있었으며,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은 성대하게 치뤄지고 있었다는 것...이것이 눈으로 확인한 모든 것. 아무 감동없이 발만 재빨리 놀리다 나온 곳이다. 이렇게 볼 거라면 차라리 안 보지 게 낫겠다는 생각이 물씬물씬. (휴.. 아주 피곤한 곳, 꿈에 나올까 무섭다)
까루젤 개선문을 통과해 (라 마르세이유가 가장 유명한 조각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면에 있는 것인지 사진과 아무리 비교해봐도 찾지 못하겠더라.. 장님 문고리 만지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벙벙한 여행에 아주 지쳐버림) 뛸릴리 정원 호수가에서 한가롭게 쉬다가, 꽁꼬르드 광장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집트에서 선물로 주었다는 '오벨리스크'만이 갑자기 퍼붓는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오독하니 서 있었다.
일정 짤 때부터 일요일 일정이 맘에 들지 않고, 별로 가보고 싶지도 않더니 역시나 나를 두 번 죽이는 괴로운 여행길이었다. 내 마음 탓이었을까, 날씨 탓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무식하게 전시해놓고 게다가, 복제품을 보여주면서 돈을 챙겨먹는 프랑스가 미웠기 때문일까? 지들은 훔쳐와 놓고 나한테는 돈내고 보라니, 그건 무슨 개같은 경운가. 차라리 장식미술관에나 갈걸 후회된다.
밤기차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넘어갔다. 1등석 침대칸을, 이탈리아 할머니&17살 먹은 늙은 개와 함께 이용했다. 잠만 자느라고, 검표원이 다녀간지도 몰랐다. 그러나 늙을 대로 늙은 개가 밤새 앓는 소리만큼은 꿈결에도 들렸던 듯. 아침에 개의 주검을 보는 건 아닌가 다소 공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