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씨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신다면, 미켈란젤로의 들판에 가보시길. 그리고 본 광경을 말해주시길.

피렌체 일정은 원래 하루+반나절(30시간) 정도 였는데 파리에서 1등 침대칸에 타기위해 트레인 컨트롤러와 입씨름을 벌이느라 2시간을 낭비하고, 원래 예약된 2등칸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완행 기차를 타고 오느라 관광에 쓸 반나절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여행은 원래 이런 것, 계획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서로 위로했다. 1등 침대칸을 타겠다는 굳센 의지가 우리를 이렇게 피곤케 할 줄이야. 우리는 피렌체 도시 여행보다도 유로스타 1등 침대칸이 더 좋았던 것이다!!!!  ㅠ.ㅠ

그리하여 피렌체에 떨어진 시간은, 예정보다 5시간 늦은 오후 12시. 피렌체 자매민박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고나니 똑딱똑딱 시간은 흘러 1시 40분이 되었고, 다시 2등석 예약좌석을 1등석으로 옮기는데 수십여 분을 쓰고 3시경이 되어서야 두오모에 도착했다. 핑크, 화이트, 그린. 이 세가지 색이 어울려 품어내는 은은한 아름다움은 저 멀리서도 가슴을 고동치게 했다. 아름다운 두오모. 필시 두오모는 아리따운 여인이다.

 돔위에서 바라본 광경은 또 어떠했는지. 오밀조밀 지붕을 맞대고 붙어있는 시가지와 저 멀리 보이는 올리브 그린색의 키큰 나무들(나무야 다 키가 큰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늘씬하게 위로 쭉 뻗은 이탈리아의 나무를 본다면 누구든 불타오를 듯 하늘로 솟구치는 고흐의 나무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남자라면 늘씬한 여인의 각선미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고), 나무 뒤로 보이는 이름 모를 성, 시내 오른쪽으로 흐르는 강과, 강과 시내를 이어주는 베키오 다리. 모두 인상깊고, 아름다워 두 눈에 꼭꼭 담았다. 눈을 뜨면 그 풍경이 그대로 쏟아져 내릴까 불안해서 감은 눈을 차마 뜨지 못하겠더라. 멋진 두오모... 이 곳에서만 하루 종일 있을 걸 지금에서야 후회된다.

베키오 다리는, 목조 다리에 돌벽을 쌓은 형상. 다리 양옆에 보석상이 즐비해 관광객의 눈과 발을 붙잡는다. 오디세이가 싸이렌의 노랫소리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우리는 보석상 쇼윈도에 꼭 쳐박혀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갈망하는 어린 아이처럼 이 물건 저 물건을 손가락질 했다.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어차피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인데도. 물욕이 엄청난 세 여자였던지, 아니면 보석이란 본래 그렇듯 없던 욕심도 생기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만큼은 보석털이 전문도둑이라도 되고 싶었다. 덕분에 베키오 주변 풍광은 별로 기억나지 않고 크고 찬란했던 보석만이 떠오른다.

다음날, 피티 궁전과 보볼리 정원을 찾았다. 궁전과 성당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그다지 인상깊지 못했다. 궁전은 어딜가도 똑같아 보이고, 비오는 날 차분하게 가라앉은 정원만이 새침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일정은 짧은데 미처 돌아보지 못한 '미켈란젤로 언덕' 생각에 속상하고 착잡했던 마음뿐. 그곳에 꼭 한번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짧은 일정에 그것까지 넣기는 무리였다. 여행이 점점 극기훈련을 닮아간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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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4-03-2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터넷을 들어가 클릭 몇번 만으로 님의 수고스러운 여행을 간편하게 수혈받아도 되는 것인지... 그래도 이렇게 잊지않고 올려주시는 여행기에 늘 감사합니다. 건강도 챙기시고 부디 많이 보고 느끼시길...

zooey 2004-03-29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미켈란젤로의 들판(or 언덕? 광장?), 꼭 가보고 말씀드릴께요. 저는 피렌체에 3일 반 정도 있을 거라 넉넉히 둘러보게 될듯 싶어요.(중간에 하루는 빼어 시에나에 갈 예정) 성혜씨, 나 여행갔다오면 봅시다. 나머지 일정 잘 보내구요. (음, 보고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