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희언니. 이렇게 이름을 붙여 부르니 더 다정한 느낌입니다.

오늘 언니랑 이야기하면서 제 여행이 얼마나 고되고 벅찬 것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무리하면서 죽기 살기로 강행하는 여행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언니 형부와 오늘 같이 시간을 보낸 것처럼 여유있게 한 일주일 더 머물까 합니다. 경희가 그 전에 파리에 오게 된다면 다함께 모여 한 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경희가 오지 않아도 이번 주말쯤에 와인 사들고 찾아가겠습니다. 출국하기 전날 저녁은 언니 집에서 자고 싶어요. 출국은 4월 3일(토) 또는 4일(일)에 하려고 합니다. 이 메일 보낸 후에 바로 여행사에 연락해서 비행기 예약 수정하려구요. 이때 언니집에 방문해도 좋은지는 메일로 답신주세요.

힘들게 하는 여행보다는 천천히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살지,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어요. 파리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구경도 하고, 여기서 유학하는 한국사람들도 만나고. 예전에 서로 감정 상한 채 헤어져서 몇 년간 연락 끊었던 언니(마침 파리에서 유학중이랍니다)도 만나 점심도 할까 합니다.

마음에 돌을 달고 걷는 듯한 고된 여행이었는데, 오늘 언니 만나고 그 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언니랑 맥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동안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어요.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보하듯이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일인데, 그동안 마음 힘든 일이 많았었는지 이번 여행이 사치처럼 여겨지더라구요. 그럴수록 몸을 혹사시켰고, 그러면서 마음은 더 단단해져서 여행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언니, 형부, 산이랑 만나는 동안 얼마나 내가 불쌍한지 알게 되었어요. 많은 돈 들여서 온 여행이니까 그저 즐겁게 놀래요. 

이미 나는 서울을 떠나왔고, 언젠가 또 이런 날이 올테니까... 이번 여행은 마지막도, 끝도 아니니까... 나는 나를 위해서 앞으로도 잘 살아갈 거니까... 

아까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서 당황했지만, 제 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언니가 옆에 있어 주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언니, 그냥 고맙습니다. 그럼, 주말에 뵈어요. 형부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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