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1

주인공 하루는 불유쾌한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났다.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한, 강간범의 아들인 것이다. 이 책은 매력적인 남자 하루를 중심으로 하여 하루를 낳을 것을 허락하고 어여쁘게 키운 대범한 아버지와 하루의 부적 같은 존재 형 이즈미(유전자 관련 회사에서 일함), 이 세 남자의 이야기를 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래피티 낙서가 있는 곳 주변에서 일어나는 방화 사건을 뒤쫓으며 풀려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추리소설 같기도 하고 훈훈한 가족소설 같기도 하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이 물 흐르듯 전개되며, 방화 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나갈 때마다 딱딱 들어맞아 떨어지는 구조가 매력적이다.

“하루가 이층에서 떨어져 내렸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하루가 이층에서 떨어져 내렸다.”로 끝나는 이 소설은 매우 흥미롭게 읽었지만 조금 아쉽다. 어쩌면 중력보다 무겁게 작용할 자신의 유전자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나 결과가 고작 복수밖에 없었을까, 라는 생각.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감싸 안는 아버지나 형의 사랑이, 고작 유전자 따위로 가족을, 가족의 유대감과 사랑을, 결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해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하루에 대한 형의 사랑이 유별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토록 잘 생기고 매력적인 동생이 있다면, 은연중에 질투라도 했을 법한데 소설 속에서는 언제나 끔찍이 동생을 아끼는 형의 모습뿐이었다. 그것조차도 친형제였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동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 연민의 감정 같은 것들이 아마도 형이 동생을 더 사랑하고 아끼게 만든 요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어쩌면 이 가족은 ‘강간범의 자식’으로 인해 서로를 더 아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

왜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테라 씨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을까?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쿤테라 씨의 책을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진짜는 가벼운 거구나, 라고. 하지만 가벼운 것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버겁고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들을 보내야 진정으로 가벼워진다고. 마치 깨달은 사람이 세상의 진실이 이렇게 단순한 거였다니, 하며 무릎을 치듯 모든 진짜와 모든 진실은 깃털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물론 인간의 존재마저도. 내세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생뿐이니 가볍다면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겠지. 딱 한 번이니까. 그러니 울상을 지은 채 심각한 얼굴로 살 필요는 없다고.

마지막으로

이층에서 가볍게 폴짝, 뛰어내린 하루가 샤갈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가볍게 날 수 있기를.

불유쾌한 유전자를 가진 모든 이들이 가볍게, 탭댄스를 추듯 살 수 있기를.

Good lu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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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메일을 정리하다가 생각났다는 그분은. 내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알바를 했던 초등학교 서무과에 계시던 분이셨다. 통통한 체격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 집에 놀러 가서 비디오를 세 편이나 때렸던 기억도 있다. 오늘 보낸 메일 계정이 내가 만들어준 것이라 하셨다. 생각해보니 틈만 나면 "S씨, 나 인터넷 좀 가르쳐줘요."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인터넷? 인터넷 그냥 하면 되는데 뭘 가르쳐달라시는 거지?'했던 기억. 그래서 내가 메일계정을 만들어 드렸나? :)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벌써 6,7년 전의 일인데 그래도 지나는 김에 안부를 전해주시는 걸 보니 내가 그리 밉상은 아니었나보다 하는 생각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메일에는 '워낙 야무졌던 걸로 보아 지금도 잘 살고 있겠군요.'라는 말이 있었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좋은 말로 하면 야무지고 당차게 보이는, 속 좁고 예민한 아가씨였다. 조금이라도 내게 손해나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또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해야 속이 편한,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어린애였을 뿐이다. 나는 사실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예민한 데다 콤플렉스투성이였다. 그랬던 나인데도, 그런 시절의 나인데도 좋게 봐주었구나, 싶으니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지나는 자리를 깨끗하게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흐믓한 미소가 배어나오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예전에 씨네21 인터뷰에서 배우 나문희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다,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아." 그래, 사람은 다 지나간다. 오늘 친밀함을 나누던 이와 평생 우정을 나눌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런 시절에 유독 잘 어울리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가고, 또 어느 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지나가도, 그 자리엔 그 사람과 있었던 기억들이 남으니까. 그러니까 섭섭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나간 자리가 기억으로 채워지는 순간, 그런 순간조차 매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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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유안진이 오래도록 향기로운 난의 향으로 남기를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향기로운 난이라... 유안진 님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그냥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징-하고 마음으로 들어오는, 그래서 속에 있던 눈물과 슬픔과 아픔까지 함께 쏟게 만드는, 그런 영혼의 노래. 그런 영혼의 노래가 듣고 싶다. 눈 내리는 날 나도 모르게 멈춰서서 귀를 기울이게 되는 소울뮤직.

소울푸드 먹고 싶다. 뭐가 됐든 맛있게, 즐겁게, 신나게 먹고 나서 영혼까지 치유되는 느낌이 드는, 아주아주아주 맛난 소울푸드. 그리고 나서 달콤한 케익과 진한 커피 한 잔. 때마침 창밖에는 뭉게구름이, 창틈으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면 좋겠다. 아, 그리고 햇살은 무조건 따듯해야 한다.

소울메이트가 짠-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외계인인가 지구인인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고 위안이 되는. 그리고는 빨간 소파가 돼 줬으면 좋겠다. 아주아주 보드랍고 아주아주 푹신푹신하고, 온몸이 푹 꺼져 다시는 헤어나오고 싶지 않은 안락함. 그런 소울메이트.

올 겨울 하고 싶은 것들. 겨울을 싫어 하는 내가, 겨울을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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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캔맥주가 생각났다. 

뭔가 스윽, 머릿속을 스치면 왠만하면 하고 보는 나는,  

이 책의 엔딩은 맥주와 함께 해야지,란 결심을 하고 말았다. -_-

 

추리닝에 목도리까지 하고 밤골목을 나섰는데, 머랄까 밤나들이하는 기분?

루루라라거리면서 가게 앞까지 갔는데 어디선가 "냐아아옹~"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어디서 나는 소리지? 하고 두리번거리니까  

저쪽 구석에서 눈을 빛내며 약간은 수줍은 듯 울어대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밤에 듣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서울 만도 한데, 이 고양이는 뭐랄까

'나랑 놀아줘~'하는 분위기로 울고 있어서

왠지 '쟤는 사랑이 고픈가보다, 아니면 배가 고픈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목적 달성은 해야겠기에 맥주캔을 들고 나왔는데,

그 고양이가 이번엔 차 밑에서 '날 좀 봐죠요~'하면서 또 울고 있는 게 아닌가.

고양이든 개든 만나면 꼭 가까이 가서 유혹해보곤 하는 나는

이번에도 여김없이 고양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아아아핫, 그런데 이 녀석 대뜸 나를 향해 오더니

처음 본 나한테, 그것도 강아지도 아니고 고양이 녀석이!

손에 얼굴을 비비더니 온몸을 움직여가며 요리 부비고 저리 부비고 하면서

 예의 그 상냥한 울음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몸도 통통하고 눈도 고양이답지 않게 선하게 생긴 요녀석 하는 짓도 이쁘고,

왠지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기다려."하고는

천하장사 소시지를 사왔다. 아, 껍질을 다 까지도 않았는데 맹렬히 달려들어

먹어대는 걸 보니 역시 배고픈 녀석이었다.

아아아, 그래도 배고프다고 요렇게 애교를 피울 고양이는 아닌 것 같고.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원래 천성이 애교쟁인가보다.

 

사람들은 고양이의 천성은 도도하고 오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를 보면 단지 사람에게 상냥하게 구는 것이,

사람과 노는 것이 친숙하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외로움을 타는 것도 똑같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것고 똑같은데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서투르고 먼저 다가가는 법을 몰라서,

혹은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그 서투름을 감추다보니

도도해보이고 마는, 그런 류의 사람처럼.

고양이도 사실은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닐까?

단지 그 고양이처럼 선뜻 다가가 꼬리를 흔들 수 있는 배짱이 있는 고양이가

몇 없을 것일 뿐이라고.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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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2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양이의 표독스런 느낌이 싫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인간 유형을 읽어내시는 모습이 공감이 갑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0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어렸을 때 엄마가 고양이는 아기는 절대 할퀴는 법이 없다고 말해주셨던 게 생각나요. 어린 맘에도 아, 고양이는 약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 거 보면 의리가 있는 동물이구나 싶었는데. 그래서 아직도 고양이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거 같아요. :)

야클 2006-11-2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부럽네요. 인상이 좋으신가봅니다. 전 어제 우리집에 맨날 오는 길냥이들한테 게맛살 주다가 노란넘이 할퀴는 바람에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는... ㅜ.ㅠ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0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 님, 안녕하세요 :) 게맛살처럼, 그리 맛있는 걸 주시니 길냥이도 눈이 뒤집힌 겝니다. ㅎㅎㅎ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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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조적인 느낌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란

제목에 팍, 꽂히는 바람에 충동 구매한 책.

나도 언제나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인간 중의 하나이니까,

뭔가 통하겠지,란 본능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중간 정도까지 읽었을 때의 느낌은

이 작가, 되게 웃긴다,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였다.

이런 작가를 이제야 만나다니 좀 아쉽군,하는 마음도.

그러다가 버뜩 알아버렸다!

아,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외롭구나.

외로워서 책을 읽어 줄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외로워서 흙을 파먹고

외로워서 중얼중얼거리고

또 외로워서 국기게양대와 사랑에 빠지는구나.

.

.

.

.

.

그러다가 마지막에 알았다.

작가도 외로워서 쓰기 시작했다는 걸.

언제나 불운의 늪에서 허덕거리던 소년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무작정 쓰기밖에 없었던 게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이가 어디 있으며,

갈팡질팡 버둥버둥대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재밌고, 유쾌하고, 신선한데

그만큼 슬프고 따듯해서 나도 모르게 위로 받았다.

나만 흔들리고, 나만 외롭고, 나에게만 불운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 같은 사람에겐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이제부턴 국기게양대가 예사로 보이지 않을 듯하다.

작가도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국기게양대도 있는 겁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껴안아주려고요."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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