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메일을 정리하다가 생각났다는 그분은. 내가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알바를 했던 초등학교 서무과에 계시던 분이셨다. 통통한 체격에 유쾌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 집에 놀러 가서 비디오를 세 편이나 때렸던 기억도 있다. 오늘 보낸 메일 계정이 내가 만들어준 것이라 하셨다. 생각해보니 틈만 나면 "S씨, 나 인터넷 좀 가르쳐줘요."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인터넷? 인터넷 그냥 하면 되는데 뭘 가르쳐달라시는 거지?'했던 기억. 그래서 내가 메일계정을 만들어 드렸나? :)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벌써 6,7년 전의 일인데 그래도 지나는 김에 안부를 전해주시는 걸 보니 내가 그리 밉상은 아니었나보다 하는 생각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메일에는 '워낙 야무졌던 걸로 보아 지금도 잘 살고 있겠군요.'라는 말이 있었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좋은 말로 하면 야무지고 당차게 보이는, 속 좁고 예민한 아가씨였다. 조금이라도 내게 손해나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또 욕심은 많아서 이것저것 해야 속이 편한,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어린애였을 뿐이다. 나는 사실 지금의 나를 좋아한다. 그 시절의 나는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하지 못한 사람이었고, 예민한 데다 콤플렉스투성이였다. 그랬던 나인데도, 그런 시절의 나인데도 좋게 봐주었구나, 싶으니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지나는 자리를 깨끗하게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흐믓한 미소가 배어나오는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예전에 씨네21 인터뷰에서 배우 나문희 씨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다, 그냥, 지나가는 것 같아." 그래, 사람은 다 지나간다. 오늘 친밀함을 나누던 이와 평생 우정을 나눌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런 시절에 유독 잘 어울리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가고, 또 어느 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지나가도, 그 자리엔 그 사람과 있었던 기억들이 남으니까. 그러니까 섭섭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나간 자리가 기억으로 채워지는 순간, 그런 순간조차 매력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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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1-2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유안진이 오래도록 향기로운 난의 향으로 남기를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1-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향기로운 난이라... 유안진 님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