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 훗날 우리]와 노래 [後來]


영화는 2007년 섣달 그믐, 그러니까 음력 12월 31일에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기 위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바삐 떠나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기차역이었다. 이어서 보여주는 열차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목이 쉬도록 울고 있는 아기, 크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어 대는 사람들. 짐을 선반에 올리거나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계속 비좁은 통로를 막아서기 때문에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답답하다. 남녀노소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열차 안에서 두 주인공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이 만난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고향 사람이고, 베이징에서 불안한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같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류뤄잉 감독의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 이웃 잉크냄새 님 덕분이었다. 최근에 또 잉크냄새님이 중국 노래들을 추천해주셔서 그 노래들을 알아본 내용을 글을 하나 썼는데, 작년 3월에 내가 펑티모와 완쯔요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글에도 잉크냄새님이 다섯 곡의 중국 노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류뤄잉의 호우라이 [後來] 였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고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영화가 바로 이 가수가 만든 영화 호우라이 더 워먼 [後來的我們] 이었다. 류뤄잉의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이 노래가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꼭 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거의 일 년이 지난 후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


노래의 제목은 (잉크냄새님께서 처음 이 노래를 알려주실 때 적어주신 것처럼) "나중에야" 라고 옮길수 있을텐데, 이 영화의 "먼 훗날 우리" 라는 우리말 제목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든다. 두 주인공이 2007년에 처음 만나 2008년에 연인이 되는데, 그 10년 후인 2018년이 과연 먼 훗날 후라고 말할 정도로 먼 훗날인가? 겨우 10년이? 아니 누군가에게는 10년 씩이나 지났으면 먼 훗날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시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테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 10년 후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닌 느낌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개봉한 우리나라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 라는 제목이 훨씬 잘 지은 제목으로 느껴진다. 두 주인공이 현재 시점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 직접 대사로 말하는 그 만약에 라는 전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극장에서 저 우리나라 영화도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하지만 이 영화 하나로도 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굳이 저 영화까지 보고 엮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Us and them] 이다. 이 제목도 [먼 훗날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그들은 같은 사람이지만, 시점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의 그 사랑은 지금 다시 이어질 수 없다. 아무리 만약에 라는 조건을 붙여보고 상상을 해봐도 소용없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자막으로 류뤄잉의 단편소설 [춘절 귀가] 라는 작품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알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만 보고 나는 이 노래 [나중에야] 가 이 영화 [먼 훗날 우리] 의 모티브가 되는 원작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는 비슷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사를 번역본으로 찾아보니 이야기 자체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단편 소설을 구해 읽을 방법이 없어서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점, 2007년 춘절과 2018년 춘절이 모두 음력 설인 1월 1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친구로 연인으로 지내는 몇 년 동안 계속 춘절을 맞아 같이 고향에 다녀오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고 싶은 것은 있다. 영화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로 작중 시점을 표기한 이 자막에서 연도가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2007년의 섣달 그믐에 시작한다. 그 다음 날인 춘절에 샤오샤오는 고향에서 젠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식당을 자주 찾는 단골들(아마도 이웃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럼 이 2007년이란 숫자가 음력인지 양력인지 하는 점이 헷갈렸다. 만약 음력이라면, 두 사람이 열차에서 처음 만난 날은 음력으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고, 고향에서 밥을 함께 먹은 날은 음력 2008년의 첫 날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참 알고 지낸 지 약 1년이 지나서 영화의 이야기가 조금 진행 된 후에 자막으로 2008년의 양력 설이라고 알려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 부분 때문에 헷갈려서 영화를 멈춰놓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춘절과 섣달 그믐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짜들이지만, 해당 연도는 모두 양력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은 양력 2007년 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고, 다음날인 춘절도 여전히 양력 2007년이었다. 약 1년이 지나 다시 자막이 나온 시점은 이제 양력 2007년이 지나고 양력 2008년의 첫 날이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왜 헷갈렸는가 하면, 내 기준에서 새해는 음력 설이 기준이고, 나에게는 아직 음력 2025년이라서 새해가 오지 않은 것이다. 음력 설이 되어야 비로소 2026년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즉 섣달 그믐이나 설이나 그 외에도 입춘 등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들을 말하려면 음력으로 해당 연도를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걸로 시간 낭비를 제법 했다.


류뤄잉이 쓴 [춘절 귀가]라는 단편소설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대도시로 상경하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청춘 남녀가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알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나도 예전에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만난 여성과의 짧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올라온 초기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렵게 고속버스 표를 구해 탔는데, 하필 그날 밤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내가 탄 버스가 약 17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다. 하필 그 날 내 옆자리엔 내 또래(즉 20대 중후분) 로 보이는 여성이 탔었다. 그 여성은 창가 자리였고, 나는 복도 쪽 자리였다. 좁디 좁은 버스 좌석에서 두터운 겨울 잠바를 벗어서 품에 안은 채로 구겨져 긴 시간을 가야 했던 그 시간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하필 옆 사람이 여성이라 더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수 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약간 민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스마트 폰도 아니어서 전화기로 뭔가 시간을 때울 것도 없었다. 아마 책을 가져오기는 했었지만, 조금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가방에 넣어버렸었고, 손바닥만한 휴대용 씨디플레이어를 가져왔었지만, 아마 건전지가 다 닳아 버려서 중반 이후로는 음악도 듣지 못했었다. 깨어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자세도 불편하고, 배도 고프고 또 화장실 문제도 자꾸 생각이 나고 해서 무조건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런데 그 옆자리의 여성은 주기적으로 남자친구로 여겨지는 남성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했고, 그 전화 소리 때문에 나는 번번히 잠에서 깨어 괴로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여성의 전화 통화 때문에 잠에서 깬 후로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금방 다시 잠이 들어버린 눈치였다. 바로 옆 자리이고, 좁았기 때문에 팔이나 어깨가 자꾸 닿기는 했지만, 버스가 출발한 후로 꽤 긴 시간동안 이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었다. 여성이 깊이 잠들었다는 확신이 든 그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여성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묶어 올린 머리칼은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젊은 사람 답게 유행을 따라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이라 여겼다. 그 순간 지금까지 긴 시간 하필이면 여성이 옆에 앉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해왔던 불쾌감이 사라졌다. 단순히 그 사람이 예쁘장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고향을 떠나 힘든 서울살이를 하는 나와 같은 청춘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산 어느 동네 출신이고, 어느 여고를 나와서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부산에 남아 있는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나 혼자 제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무진장 많았고,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상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 명절이 지나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여 빈 공책에 삐뚤빼뚤 악필로 써내려 갔었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부산을 가야 할 때에는 절대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어떻게든 열차를 예매하려고 애썼고, 만약 열차 표를 구하지 못한 명절에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못 간다고 말씀드렸었다. 그 해 귀성길 버스 17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록이긴 했지만, 서울 살이 초기 몇 년 동안 추석과 설에 고향가는 버스를 탔던 시간들은 대체로 평균 10시간이 넘었다. 13시간, 11시간, 12시간 등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서 이 17시간 이야기를 해줬을 때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놀랐었다. 아이들은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겨우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옛날에 아빠가 젊었을 때는 열차도 8시간 이상 걸렸었다고 이야기하면 열차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었다.


원작 단편소설의 내용을 유추해 보려다가 옆길로 잠시 샜다. 샌 김에 노래 이야기를 조금 이어서 하고 영화로 돌아가자. 작년 3월에 썼던 노래 이야기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이 곡은 일본 여성 듀오가 부른 미라이에 [未来へ] 라는 노래를 중국어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곡인 일본 노래는 졸업식에 잘 어울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담긴 조금 쓸쓸한 내용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 아마도 여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열일곱 살의 여름, 어느 밤에 사랑하는 혹은 동경하는 사람과의 키스를 했다. 그 후 그와는 인연이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긴 시간 그날 밤의 별빛이, 그 날의 치자꽃 흰 꽃잎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 때 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우동위 周冬雨 가 연기한 샤오샤오와 징보란 井柏然 이 연기한 젠칭은 젊은 시절 객지에서 열악한 환경과 가난과 실업의 늪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그 치열한 삶의 동지로 친해진 두 사람은 어쩌다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 지점이 좀 비현실적으로 아니 너무 극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당시의 중국 젊은이들의 삶의 문화와 양식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순수한 친구인 이성이 한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방에 함께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고 본다. 물론 샤오샤오가 하루 아침에 남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아주 절박한 설정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암튼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 친구로 살았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눈이 맞아 버렸다. 사실 젠칭은 초반부터 확실히 샤오샤오에게 친구 이상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젠칭에게 이성으로 끌리고 있다는 언행이 보인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들이 그 두 사람이 서로 용기를 내거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젠칭의 아버지는 샤오샤오가 자기 아들의 짝으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한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2007년에 시작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컬러 화면으로 아주 예쁘게 그려진다. 2018년에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흑백 화면으로 아주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우리 사랑 이야기는 비록 좀 찌질하고, 비참하고, 힘들고, 부끄러울지 몰라도 그래도 아름다웠어. 마치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저 차분하게 혹은 다소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2018년 4월 말, 노동절 휴무를 앞두고 개봉했다. 영화 속의 현재는 2018년 춘절 연휴다.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아마도 여러 마케팅 기획들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유튜브로 [나중에야] 노래를 찾아 듣다가 2018년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을 몇 개 발견했다. 바로 이 노래를 일반인들 그리고 콘서트의 관중들이 떼창과 이어부르기로 부르는 영상들이었다. 작년 3월에 썼던 글에서 이 가수 류뤄잉이 콘서트에서 이 곡을 시작할 때 "산, 얼, 이" 라고 숫자를 세면 관중들이 "호우라이~" 라고 노래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썼었다. 이 가수는 콘서트 장에서 자주 이렇게 이 노래를 시작했던 모양이고, 이것이 하나의 룰이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영상도 류뤄잉이 숫자를 세는 목소리로 시작해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콘서트 영상에서는 금방 가수가 이어서 불렀지만, 이 이벤트 영상에서는 끝까지 가수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정, 박자, 음색이 제각각인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이어서 부르는데, 제법 괜찮게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체로 이걸 들어주고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음치이거나 박치인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콘서트 장의 관중들이 떼창을 부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을 담는다. 이 노래가 지나간 과거 어느 시점의 소중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이기에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좀 신기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작은 화면에 제작진 그리고 일반인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흰 종이에 과거 어느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말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이 바이럴 마케팅이 제법 잘 먹혀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장 나도 과거 어느 인연을 꼭 떠올리며 뭐라고 한 마디를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노래나 영화나 옛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걸 듣고 보면 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베이징에 올라온 가난한 젊은 남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또 영화에서 어느 밤 둘이 버스 막차를 기다리다가 젠칭이 택시를 타자고 하는데, 샤오샤오가 택시비가 밥 두 끼 가격이라고 좀 더 기다리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결혼식을 앞두고 내 대학 선배 한 명에게 애들 엄마를 소개한다고 서울 남동쪽의 어느 동네에서 만나 밥과 술을 먹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보니 버스도 전철도 끊긴 상황이었다. 당시의 우리도 가난한 젊은 연인이었고,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우리집까지 절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겨우 종로 쪽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와서, 종로에서 집으로 택시를 탔는데, 사실 그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게 나왔었다. 그때 애들 엄마가 내 대학선배를 원망하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본인이 우릴 재워줄 것도 아니고, 택시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 이렇게 늦게 붙잡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고. 막차 시간 이전에 보내줬어야 했다고.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를 챙길 줄 모른다고. 만약 자신이 선배로서 결혼을 앞둔 후배를 만났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사실 내가 보아온 애들 엄마는 실제로 자신의 친구들과 후배들을 그렇게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애들 엄마의 수많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만났지만, 내 지인들은 서울에 거의 없었기에 애들 엄마를 소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선배도 대학시절엔 제법 친했지만, 그가 졸업한 후에는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만났던 것이다. 그가 내 결혼식에 왔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이후로 따로 만난 적은 아예 없고, 수도권에 사는 선후배 모임에서 몇 차례 더 봤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그러다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던 어느 시점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던 때가 작년 3월이라고 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올해 1월 말에 봤다. 아마 조금 더 미뤘다가 다음 주 정도에 보았다면, 시기적으로 딱 적절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눈이 내리는 겨울에 그것도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설 즈음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이 글에서 나는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류뤄잉이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만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감독은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단 청년 세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 시골에서는 더더욱 번번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와 봐도 현실은 어처구니 없이 좁고 더러운 방 하나를 겨우 얻을수 있을 뿐인데, 그 어처구니 없이 허접한 방 하나를 위해 내가 바쳐야 하는 월세는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치인가! 그 다음으로 도시와 시골의 환경 변화로 인한 갈등들이 있고, 도시의 실업 문제, 비정규 단기직 노동자들의 문제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은 느낄 수 있는 배경을 더 다양하게 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궁금했던 것은 대만 사람인 류뤄잉이 왜 베이징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배경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게 잘 만들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대만을 넘어 중국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었을까?


원작인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참 잘 만든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데, 최근 개봉해서 나름 멜로 영화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는 [만약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괜찮은 영화일지 궁금하다. 과연 극장에서 볼 여유가 생길지, 아니면 언젠가 OTT에 풀린 이후에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원작과 비교해 또 끄적일 이야기들이 생길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끄적여 놓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살려 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더라. 두 사람이 만약에 우리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며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 나도 너무 공감해 버려서 너무 감정적으로 글을 두들겨 놓았더라. 덕분에 이 글을 두드리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 피곤하네.

    

음력 2025년의 끝 자락에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앞으로 류뤄잉의 [나중에야] 를 들을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매년은 아니겠지만, 가끔 이때 즈음이 되면 또 이 영화가 생각나겠지. 언젠가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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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04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먼 훗날 우리>...이거 감은빛 님 리뷰를 보니 찾아 보고 싶네요. 중국 영화나 소설은 별로 안 좋아 하는데 리뷰를 보니 보고 싶은 생각이 막 드네요. 엄청 인상깊게 보셨던 듯합니다.
근데 잉크냄새님은 어떻게 그리 중국 노래들을 많이 아시는지...전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나저나 구교환과 문가영 나오는 영화가 엔날 영화인줄 알았는데...쇼츠로 좀 봤어요. 근데 최근영화였군요! 개인적으로 문가영을 넘 싫어해서 영화를 보기 어려울 듯해요. 어쨌거나 <먼 훗날 우리>..이거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알려주셔요~~

감은빛 2026-02-06 05:1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넷플릭스에 있어요. 저번에 영화 결산 글 보니 야무님은 넷플릭스 구독하고 계시던데,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제 감상과 달리 야무님께는 썩 그리 좋은 영화가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역시 앞에서 말한 영화 결산 글에 제가 남긴 댓글과 야무님의 감상이 큰 틀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느꼈기에 그렇지 않으리라 생각해봅니다.

잉크냄새 님께서는 바로 아래 댓글에 남겨주셨듯이 중국에 살다 오셔서 중국 노래를 많이 들으셨나봐요.

잉크냄새 2026-02-04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뤄잉은 만능이네요. 가수, 작가, 감독...대단하네요.

<먼 훗날 우리>라는 영화의 배경인 2007년과 2018년의 기간, 제가 중국에서 생활한 기간과 겹쳐 영화를 보면 그 시절 중국인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를 것 같네요. 춘절의 풍경과 농민공, 노동자, 실업, 길거리 문화....그리고 그들의 사랑까지도. 저도 찾아봐야겠어요.

감은빛 2026-02-06 05:19   좋아요 0 | URL
이 영화 이후로 드라마 하나를 연출했더라구요. 조만간 시간이 나면 그 드라마도 찾아볼 예정입니다. 류뤄잉이 연기도 많이 했던데, 류뤄잉이 출연한 작품들도 나중에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다룬 시기와 잉크냄새님이 중국에 계시던 시기가 겹치는군요.

이 영화 넷플릭스에 있어요. 영화 평을 찾아보다가 중국에 살다온 어느 중국어 강사가 시대 고증을 엄청 잘 했다고 말하는 걸 봤어요. 정말 잉크냄새님이 보시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희선 2026-02-05 0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영화는 리메이크 한 거였군요 언젠가 한국 영화도 보시겠네요 류뤄잉, 잘 모르지만 노래뿐 아니라 감독에 소설까지 쓰다니 대단합니다 자신이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들다니... 그런 것을 더 봤네요


희선

감은빛 2026-02-06 05:24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추가 정보를 찾아보다가 작년 마지막 날에 개봉해서 의외로 흥행하고 있다는 한국 영화가 이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걸 알았어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극장에서 이 영화까지 보고 이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도 작년에 잉크냄새 님께서 추천해주기 전에는 이 사람에 대해 몰랐어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멋진 가수이자, 다작 배우이자, 훌륭한 영화감독을 알게 되었네요.
 

외모 변화


어제 어느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다. 나를 초대한 주최측은 작년에도 토론회에 나를 발제자로 초대했었다. 큰 주제 아래 세부 주제 별로 토론회를 이어가는데, 매번 나를 발제 혹은 토론으로 초대하고 있다. 작년 토론회에서는 발제자가 여러 명이었는데, 당연하겠지만, 사람 별로 편차가 컸다. 특히 주최측이 요청한 내용과 달리 발제자가 본인의 특정한 사항을 과시하는 듯한 내용을 길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같은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좀 두서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실망스럽다고 여겼는데, 나중에는 나름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잘 전달한 것 같아서 조금은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암튼 내 발제는 늘 그렇듯 주최측의 요구를 잘 반영하면서도 내 나름의 특성을 담아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소개했다. 나와 함께 오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자주 했던 말. 발표나 발제나 강의 등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소개하는 일을 내가 맡은 경우에 절대 걱정이 안 된다는 말. 어제 토론도 그랬다. 사실 미리 받아본 발제 내용이 좀 모호하고 쟁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답답했다. 안그래도 주최측에서 이 점이 걱정이 되어 미리 나와 소통을 하기도 했다. 토론문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 밤에 긴 시간 고민을 했다. 발제문에 대한 토론을 쓰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쟁점을 다 버리고, 일반적인 내용으로, 다만, 참여자들이 잘 알기 어려운 전문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는, 또 하나의 발제문처럼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주최측과 소통을 했다. 이러저러해서 쟁점을 명확하게 드러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니, 어설프게 토론문을 쓰는 것보다 이런 방식을 선택했으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어제 토론회 장소에 아주 오랜만에 아마 한 오륙년 이상 못 만났던 선배 한 분이 계셨다. 약간은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 고개만 숙여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분명 보았을 것 같은데 그냥 고개를 돌리셨다. 나중에 인사해야지 생각하고 일단은 자리 잡고 준비를 했다. 나중에 그 분이 내 자리로 오시더니 아주 반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그러나 한 편으로는 놀랍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 이 분은 교통사고 이후로 나를 만난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이 흰 장발과 흰 수염을 처음 보는 거였구나. 그 분은 몰라봤다고. 어떻게 이렇게 외모가 달라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게. 나로서도 내가 이 정도로 달라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우니, 그냥 어쩌다 이렇게 되었네요 라고 말씀드리고 말았다.


어제 토론회에는 발제자 1명과 나를 포함한 토론자 2명으로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쟁점 사항들이 있어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나중에 토론회를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고 난 후에, 주최측에서 중간 중간에 찍은 스냅샷과 단체 사진을 포함한 몇몇 사진들을 보내줬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나를 제외한 모든 남성들은 단정하게 짧은 머리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얼굴인데, 나 혼자 긴 장발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뭐 별 수 있나. 외모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편지


내 생일이라고 아이들이 선물을 준비했다. 작은 아이는 뭘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만나러 나올 때 갑자기 준비한 선물을 찾지 못했다고 한참 늦게 나오더니,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렸다. 큰 아이는 시집 하나에 작은 편지 봉투 하나를 붙여서 건넸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생일 선물로 혹은 그냥 선물로 시집을 준 경우는 많았지만, 내가 선물로 시집을 받았던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어쩌면 한 두번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일선물로 시집을 받은 것은 처음이 확실하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시집을 살펴보니 중간 중간에 작은 메모지들이 끼어 있었다. 보니까 아이가 읽은 느낌이나 나하고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메모지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편지 봉투를 열어보니 예쁜 책갈피 하나, 그리고 아이와의 데이트 쿠폰 하나. 그리고 편지지가 두 장 있었다. 편지지 첫 장은 생일을 맞아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담았고, 두 번째 장은 아이가 이 시집을 선택한 이유와 함께 읽고 싶은 시들의 제목과 쪽수를 적어놓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간단히 적어놓았다.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생일 때마다 이렇게 손편지를 받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로는 편지도 선물도 없어졌다. 뭐 나도 아이들에게 생일 때마다 편지를 썼던 것은 아니라 당연히 뭘 기대할 입장도 아니고 굳이 그걸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안 준다고 서운하지는 않지만,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한 것이 선물이다.


특히 이번에 큰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아빠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런 표현이 있었다. 아빠도 나도 글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니까, 시를 공유하는 것이 좋았다는 표현, 그리고 아이가 아빠의 꿈을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표현도 있었다. 할머니(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가 함께 책을 내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번째 편지지 뒷 장에는 자신이 간단히 디자인한 책 표지에 우리 엄마 이름과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적어놓고, 출판사는 자신이 만들거라고 맡겨달라는 글씨가 적혀있기도 했다.


그래. 언젠가 글을 쓰는 가족끼리 공동저자로 책을 낼 수도 있겠지. 기획을 잘 해본다면 아이템은 분명히 나올 것이다. 엄마와 아이는 시를 쓰니까 공동 시집으로 작업할 수 있을테고, 나는 그 시와 관련한 산문을 쓰거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의 기획이 가능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낼 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 앞으로는 좀 더 시간을 쪼개어서 글을 좀 더 많이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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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04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엄마와 아이가 시를 쓴다구요?!! 감은빛 님은 대단한 패밀리의 멤버였군요!! 와~~ 놀랍습니다. 가족 모두가 예술을 향유하시다니!!

감은빛 2026-02-10 06:24   좋아요 0 | URL
아니, 야무님은 엄청난 그림을 그리시는 참 예술가이시잖아요. 우리 엄마는 지역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지만, 지역 문예지가 그리 객관적으로 훌륭한 등단의 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딸은 아직 공부하는 입장이구요. 저는 그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일 뿐일 걸요.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2-04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상섭이 아닌 감은빛님의 <삼대>가 나오겠네요. ㅎㅎ

감은빛 2026-02-10 06:2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저는 염상섭 작가님을 아주 훌륭한 대 선배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젊은 시절에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염상섭 각가의 글을 필사했고, 외국 작가 중에는 제인 오스틴의 글을 필사했었요.
 

작년 3월에 서재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내 글에 댓글로 중국노래 5곡을 추천해줬었다. 그 추천이 정말 고마워서 그 노래들을 열심히 찾아들었고, 각 노래에 대한 느낌이나, 가수 이야기나 그 곡을 다른 가수가 커버한 사례 등을 찾아서 글을 하나 썼었다. 이 글을 쓰면서 노래 가사를 찾아보고, 노래에 얽힌 사연 등을 찾아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로부터 약 10개월 가량 지난 최근에 잉크냄새님께서 두 번째로 추천곡을 댓글로 남겨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 두곡은 바로 찾아들었었다. 그런데 작년에 쓴 글처럼 가사를 찾아보고, 가수나 노래 정보를 찾아볼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제법 흘러 버렸다. 그래도 1월이 가기 전에는 이 두번째 추천곡들에 대한 글을 남겨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마침 간밤에 급한 일들을 마쳐서 오늘은 조금 여유가 있다. 자, 하나씩 노래를 살펴보자.


참고로 작년 3월 19일에 잉크냄새님의 추천곡에 대해 쓴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다.

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6312872



她来听我的演唱会 그녀가 내 콘서트를 들으러 왔어요


첫번째 노래는 4대천왕으로 불린다는 张学友 Zhāngxuéyǒu 의 곡이다. 우리 발음으로 장학우다. 장학우의 노래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와! 노래를 정말 잘한다. 잉크냄새님께서 따라 부르기 어렵다고 덧붙이셨는데, 확실히 어지간한 가창력이 아니면 못 부르겠다고 느꼈다. 음색도 좋고, 고음을 가볍게 올리는 기교도 대단하다. 가사를 찾아보니 콘서트에 온 여러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17살에서 시작해서 점점 연령대가 올라가는 여성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장학우의 매력적인 저음으로 담백하게 부르는 곡조도 좋고, 가사도 좋았다. 1999년에 발표한 곡이라고 나오는데, 90년대 특유의 감성도 묻어나고, 한편으로 최근의 발라드 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조금 세련된 느낌도 들었다. 약간 독특한 박자 감각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유튜브에 이 곡을 검색하면 당연히 원곡 가수인 장학우의 노래가 먼저 나올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希林娜依·高 라는 가수가 '싱 차이나' 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른 노래가 가장 상단에 나왔다. 이 가수는 나중에 음반으로 녹음도 한 듯, 음반 버전 영상도 있었다. 생각보다 커버곡이 많지는 않았는데, 남자 가수들은 다들 장학우 버전을 넘어서지 못했다. 여자 가수가 부른 건 대부분 위 여성의 영상이었는데, 单依纯 이란 가수가 부른 영상도 있었다. 재작년 쯤에 이 산이춘 이란 가수 노래를 제법 찾아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一千个伤心的理由 슬퍼해야 할 천 개의 이유


두번째 곡도 장학우의 곡이다. 잉크냄새님 말씀으론 이게 더 유명한 노래라고 하셨다. 들어보니 앞의 곡보다는 좀 더 듣기 쉬운, 대중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앞의 노래가 비교적 담담한 느낌이었다면, 이 곡은 확실히 슬픈 느낌이다. 제목 자체가 천 개나 되는 슬픈 이유를 말하고 있으니. 장학우의 음색은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앞의 곡은 처음에는 박자가 살짝 독특해서 그 점이 신경 쓰여 막 좋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으며, 들을수록 좋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노래는 그냥 첫 느낌부터 정말 좋았다. 그리고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았다. 1995년에 나온 곡이었다. 역시 90년대 감성이 확 느껴지는 노래로 딱 내 취향이다.


이 노래도 커버곡들을 찾아보니 곧바로 내가 좋아하는 冯提莫 펑티모가 나왔다. 역시 펑티모는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펑티모가 이 곡을 부른 다른 영상들이 여러 개가 더 나왔다. 어쩌면 펑티모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그게 아니라 펑티모가 활동한 기간이 워낙 길어서 많이 불렀으리라 싶었다. 그리고 매우 특이한 커버 영상을 찾았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卢旺达青年团 였다. 르완다 청년단이란 이름으로, 아프리카 르완다의 남녀 청년들이 아주 유창한 중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게다가 원곡의 느낌을 아주 잘 살려서 노래도 아주 잘 불렀다. 처음 영상을 켰을 때는 이 기묘한 느낌 때문에 꽤나 신선하고 흥미롭다 여겼다. 갭차이라고 해야하나. 너무나도 유창한 그들의 중국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传奇 로맨스


세번째 추천곡은 王菲 왕페이 의 노래였다. 왕페이 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The Cranberries 의 Dreams 의 번악곡 夢中人 이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에서 짧은 머리에 노란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크랜베리스의 돌로레스 오리어던이었다. 그리고 크랜베리스 노래 중에 Linger 와 Ode to my family 다음으로 좋아했던 노래가 Dreams 였다. 물론 아직 2집 밖에 안 나왔을 때니까 그랬고, 나중에는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마다 Zombie 와 Promises 등으로 좋아하는 노래가 계속 바뀌었다. 암튼 지금도 나는 같은 노래의 다른 언어 커버 곡들을 좋아하는데, 이 크랜베리스의 노래와 왕페이의 노래는 이어 듣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그리고 또 종종 들었던 왕페이의 노래가 있었는데, 일본 비디오 게임인 파이널 판타지의 주제곡이었던 Eyes on me 였다. 왕페이란 이름은 이렇게 반가웠는데, 잉크냄새 님이 추천해 준 노래 세 곡은 모두 몰랐던, 처음 듣는 노래였다.


일단 이 곡은 왕페이가 2010년 음력 설인 춘절에 방송에서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원래는 李健 Li Jian 이란 남자 가수가 불렀던 곡이었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이 곡은 리젠이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고 쓴 곡이라고 한다. 왕페이의 목소리도 엄청난 미성이라 신비한 느낌이 드는데, 원곡인 리젠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 사람도 어마어마한 미성이었다. 와! 왕페이 버전에 못지 않은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노래에 영향을 미친 소설이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글을 읽고 보니 그래도 왕페이의 곡이 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 소설을 읽었었다. 한참 전이라 구체적인 내용들이 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느 남성이 자신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인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여성이 오래 전부터 평생 자신을 사랑했다는 내용이었다. 여성은 그렇게 긴 시간동안 남성을 깊이 사랑했는데, 남성은 그 여성을 알지도 못했다니! 그런데 노래 가사와 분위기가 이 소설과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은 오스트리아인데, 노래는 너무 중국풍이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이 [낯선 여인의 편지]가 긴 시간동안 여러 나라에서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글을 읽었다. 여기에는 한국 영화와 중국 영화도 있었다. 음, 내가 원래 늘 그러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옆길로 새면 곤란하니 이쯤에서 돌아오자.


아, 그런데 또 내가 좋아했던 그룹 이름이 등장했다. 덴마크 출신 락그룹 Michael learns to rock 이다. 이 그룹이 바로 이 리젠의 노래를 영어로 리메이크 했는데, 제목이 Fairy tale 이었다. 위키 백과를 살펴보니 아마 중국에서 낸 앨범에 이 곡을 끼워 넣었던 것 같다. 곡을 들어보니 가사만 영어일 뿐 노래는 거의 같았다. 마이클 런스 투 락도 오래전에 좋아했던 그룹이었다. 지금도 가끔 노래방에서 25 Minutes 를 부르는데, 그 당시에 정말 좋아했던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로 단편 소설도 하나 쓰다가 완성을 못했던 기억도 났다.


红豆 홍두

微风细雨 산들바람 이슬비


잉크냄새님께서 이어서 추천한 노래 두 곡도 왕페이의 노래들이다. 이 두 곡은 자세한 정보를 찾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냥 넘어가자. 아, 산들바람 이슬비는 원래 등려군의 노래였더라. 잉크냄새님이 왕페이를 소개하며 대만이 등리쥔, 대륙은 왕페이 라는 표현을 썼었다. 다음에 등려군과 왕페이의 목소리를 비교해가며 들어봐야겠다.


刚好遇见你 마침 그대를 만나


다음 추천곡은 李玉刚 의 노래다. 아, 드디어 아는 노래가 나왔다. 잉크냄새님께서 리위강의 원곡도 좋고 펑티모의 여성스러운 노래도 좋습니다. 라고 쓰셨는데, 나는 딱 이 두 버전의 노래를 엄청 많이 들었었다. 나 역시 원곡도 좋고 펑티모도 좋았다. 처음 잉크냄새님의 추천곡 5곡 중에서 林憶蓮 의 至少還有你 를 펑티모 버전으로 엄청 많이 들었었지만, 원곡은 전혀 몰랐었는데, 이 곡은 원곡과 펑티모 곡 둘 다 많이 들었었다. 아, 그리고 이 곡도 커버곡을 찾다가 아까 언급했던 르완다 청년단을 또 만났다. 이번에도 너무나도 완벽한 중국어에 완벽한 노래 솜씨를 보여줬다.


可惜不是你 당신이 아니라 아쉬워요


다음 곡은 梁静茹 의 노래다. 이 가수는 말레이시아 출신이라고 한다. 노래를 들어보니, 어, 이 곡도 분명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 요 앞의 刚好遇见你 는 확실히 아는 노래라고 말할수 있었던 것이 예전에 가사를 찾아 본 적도 있었고, 노래 제목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자주 듣기는 했지만, 제목을 몰랐다. 가사를 찾아보니 멜로디에 어울리는 사랑 노래였다. 커버곡을 찾아보니 꽤나 많았다. 저 위에서 언급한 산이춘의 커버가 있었고, 이번에도 펑티모가 있었다. 그리고 周興哲 이라는 남성 가수 영상이 있었다. 오, 여성들의 목소리로만 듣다가 남성 목소리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특이한 건 이 곡은 유독 펑티모가 좀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어지간해서는 펑티모 정도의 가창력으로 안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원곡 가수의 목소리가 워낙 익숙해서 펑티모의 목소리는 안 어울리는 듯 느끼나 보다.


勇气 용기


다음 노래도 량징루의 노래다. 앞의 可惜不是你 를 듣고 나면 유튜브가 자동으로 이 노래를 들려준다. 같은 가수의 곡이고, 유명한 곡이라 이어서 들려주나 보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 노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마 예전에도 여러 차례 저 앞의 곡에 이어서 나왔던 모양이다.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隐形的翅膀 숨겨진 날개


자, 이제 마지막 노래다. 张詔涵 의 노래. 영어 이름이 안젤라 장이다. 유명한 배우 안젤라 베이비가 생각나는 이름이네. 그런데 이 이름 낯익다 싶었는데, 얼굴과 목소리를 살피니 확실히 예전에 몇 개의 영상을 봤던 가수였다. 당시 들었던 곡들도 기억나지 않고, 잉크냄새님이 추천해 준 이 노래도 아는 노래는 아닌데, 이 가수의 노래를 들었던 것은 확실하다. 


지난 번 추천곡들과 이번 추천곡들을 모두 하나의 재생목록으로 만들어 두었다. 시간 날때마다 들어야겠다. 이번 글엔 노래 별로 글의분량 차이가 심하다. 앞부분은 많이 찾아보고 글을 썼는데, 뒤로 갈수록 가사 정도만 찾아 읽고 다른 정보들까지 뒤져볼 시간 여유가 없었다. 또 다음에 다시 찾아볼 기회가 생기겠지. 잉크냄새님 덕분에 아는 중국노래가 또 확 늘었다. 노래 부자가 된 기분이다. 


주말엔 쉬고 싶어


이번 주말부터 3월 말까지 거의 대부분의 주말에 일정이 잡혔다. 참여하고 있는 여러 협동조합들과 단체들의 총회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참가만 해도 되는 총회도 있지만, 몇몇 조합과 단체에서는 이사, 감사,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어서 해야 할 역할들이 제법 있다.  그냥 눈 한 번 감았다가 뜨면 3월이 다 지나가고 4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긴 요즘 기분으로는 그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벌써 1월이 거의 다 지나버렸다.  에휴, 아직 음력 설이 안 되어서 나이 한 살 안 먹었다고 우기고 있었는데, 곧 설이 다가오겠구나. 나이를 먹는 일에도 익숙해지려나.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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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30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노래만 들었었는데 노래와 연관된 스토리를 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중국 노래도 다양할 터인데 저도 90년대풍의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 대부분 유사한 느낌의 곡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덕분에 유튜브에 중국 노래를 모아 두고 가끔 듣곤 합니다.

감은빛 2026-02-04 10:23   좋아요 0 | URL
작년의 첫 추천도 그렇고, 이번 추천도 그렇고 정말 딱 제 취향인 노래들만 추천해주셨더라구요. 신기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카스피 2026-01-31 0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홍콩의 4대 천왕은 영화배우이면서 동시에 가수일 정도로 만능 엔터테이너들이지요.실제 홍콩에서는 배우가 가수가 가수가 배우일 정도로 겸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국은 이와 반대로 철저히 가수면 가수,배우면 배우로 딱 분리되는 편이죠.실제 아이돌 가수 출신이지만 배우로 전향하면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에서 잘 알수 있습니다.
문제는 홍콩의 4대 천왕이 아직까지도 중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 들은 자신의 인기를 위해 결코 후배 가수를 키우지 않고 있기에(이건 대체로 중국적인 특색인듯 싶음.거의 2~30년째 대만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는 주걸륜만 봐도 알 수 있지요),중국에서는 이들을 뛰어 넘는 후배 가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이처럼 중국 가요계가 발전이 없다보니 중국의 MZ세대가 케이 팝에 열광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요.

감은빛 2026-02-04 10:2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 가수와 연기를 겸업했던 사람들은 엄정화, 장나라, 이정현, 임창정 등이 있을 것 같네요.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영록도 있구요. 더 많이 있을텐데, 제가 모르는 것이겠죠. 저는 거의 아는 바가 없지만, 아이돌들 중에서도 제법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기를 하면서 가끔 노래를 부르는 경우요.

홍콩 4대 천왕에 대한 그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몰랐네요. 카스피님께서는 정말 다 방면에 정보를 많이 알고 계시네요.

 

머피의 법칙

저번에 북플에 지난 오늘 글이 없는 날엔 가능하면 글을 써야지 라는 글을 쓴 후로 매일 아침 북플을 열어 지난 오늘 코너를 열어본다. 다행히 그 후 어제까지는 매일 글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열어보니 글이 없다. 뭐라도 하나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오늘 좀 많이 바쁜 날이다. 하필이면 오늘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주에 있을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하기로 했는데, 오늘이 그 토론문을 보내달라고 요청받은 마감일이었다. 대략의 내용은 머리 속에 있지만, 쟁점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직 토론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참 마음만 정하면 금방 끝날 일인데, 그 마음을 정하는 일이 참 쉽지 않아서 언제가 될지 예상할 수가 없다. 저녁부터 밤 늦게까지는 장시간 회의를 들어가야해서 지금 끝내지 않으면, 오늘 보내줄 수가 없다. 고민 끝에 담당자에게 죄송하지만, 오늘 밤에 마무리해서 내일 오전 일찍 보내드리겠다고 양해를 부탁했다. 밤 11시쯤 회의를 마치고 마무리를 해야겠다. 거기에 지난 주에 보내달라고 요청받은 보고서가 또 있다. 이건 벌써 한참전에 해주기로 한 건데, 한동안 잊고 있다가 오늘은 꼭 보내주셔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아차! 싶었다. 이것도 오늘 밤에 완성해야 한다.

그러니까 평소 좀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미리 이런저런 작업들을 좀 해두었다면, 이렇게 갑자기 몇가지 일이 몰린, 그것도 오늘 꼭 이라는 단서가 달린 일들이 몰리는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을텐데, 항상 뭐든 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니! 하필 이런 날에 북플에도 글을 하나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니! 이런것도 일종의 징크스라고 할 수 있으려나. 흔히 머피의 법칙이라 부르는, 뭔가 일이 꼬이는 날에는 계속 연달아 그런 일이 생기는 징크스가 확실히 있다고 본다.

며칠 전에 북플을 열었을 때 지난 오늘 코너에 글이 7개나 있었다. 내 기억으론 지금까지 그렇게 많았던 날이 없었다. 그날 그런 생각을 했다. 지난 오늘을 살았던 각 연도의 나는 유독 시간 여유가 있었던가봐. 하필 올해도 그날은 조금 여유가 있어서 글을 하나 써볼까 했는데, 밖에서 좀 오래 머물렀더니 갑자기 몸이 확 안 좋아져서 일찍 집에 돌아와서 잠에 빠져들어버렸다. 그날 짧게라도 뭔가를 두드려 놓았다면 내년에는 8개가 되는 거였지만, 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 반면 어제는 지난 오늘 글이 겨우 하나였다. 오늘도 지금 이 글을 두드리고 있으니, 내년 오늘 확인하면 글이 하나가 되겠다.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가 함께 촬영한 로맨스 드라마

지난 주말에는 넷플릭스로 [이 사랑 통역 되나요?] 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어쩌다 세계적인 배우로 유명해진 사람과 서너개 이상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통역하는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 방송사가 예능으로 준비하는 아이템이 일본의 유명한 배우와 한국 배우가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서로 호감을 키우며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비록 이 드라마는 남녀 주인공이 모두 한국 배우이지만, 거의 마지막까지 일본 배우가 꽤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 유난히 일본 배우와 한국 배우가 서로 사랑하는 역할을 맡는 드라마가 많아진 것 같다. 일단 이세영이란 배우를 처음 알게 된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있다. 이세영이 일본 유학생으로 나오고 상대 배우는 사카구치 켄타로가 맡았다. 이 드라마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가 공동으로 집필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한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외모가 돋보이는 배우이고 연기도 상당히 좋았다. 그 다음에는 [Eye love you] 라는 드라마도 있었다. 한국 배우 채종협과 일본 배우 니카이도 후미가 주연을 맡았다. 채종협이 상당히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나오고, 니카이도 후미 역시 엄청나게 귀여운 사람을 맡았다. 드라마 내용은 좀 어이없고 황당한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부담없이 즐길수 있다는 부분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한효주와 오구리 슌이 주연을 맡은 [로맨틱 어나니머스]도 있다. 이 드라마는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과 인지도가 남다른 기획이라 느꼈다. 그에 비해 이야기 자체는 좀 품이 작은 이야기라서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Eye love you] 와 비슷한 느낌이다. 쵸콜릿을 다루는 것이 공통점이고, 뭔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능력이나 장애(혹은 결핍)을 다룬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리고 아직 보지는 않았는데, 매주 하나씩 공개되고 있는 [첫입에 반하다] 라는 드라마도 일본에 간 한국 유학생과 일본 사람의 로맨스를 다룬다. 한국 배우는 강혜원이라고 하고 일본 배우는 아마 아카소 에이지 인듯. 둘 다 잘 모르는 배우들이다.

일본어를 익히고 있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려고 한다. 어떤 것은 여러번 반복해서 보기도 한다. 방금 소개한 드라마들은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 발음과 일본어 어휘 구사력 등을 살펴보는 것이 좀 도움이 되었다. 일단 공통적으로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 실력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당연히 일본인이 보기에는 아닐수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이세영과 한효주의 일본어가 거의 완벽한 것처럼 느껴졌다. 채종협은 뭐랄까 살짝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이 세 드라마 모두 일본 배우들의 한국어는 정말 많이 어색했다. 그렇다면 어쩌면 일본 사람들도 한국 배우들의 일본어가 어색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일본 배우가 나오기는 하지만, 한일 남녀 커플이 아닌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에는 재일교포 3세인 일본 배우가 작중 유명한 일본 배우의 매니저 역을 맡아 상대적으로 꽤 괜찮은 한국어 발음을 보여준다. 현리 라는 이름의 배우인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 라는 영화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 이렇게 두 영화에서 보았었다. 아, [Eye love you] 에도 비중이 적은 조연으로 출연했었고, 저번에 글을 쓴 적 있는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세번째 시즌에도 출연했었다. 확실히 재일교포라 한국어 발음이 상당히 좋기는 하지만, 교포라서 또 어색하기도 하다. 이 배우가 원래는 유창하게 우리말을 할 수 있는데, 일부러 조금은 어눌한 발음을 연기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을 알기는 하지만, 평소에 거의 쓰지 않아서 원래 발음이 그렇게 조금 어눌하게 들리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일본과 한국 배우가 각각 주연을 맡은 로맨스 드라마들 이야기는 원래 따로 묶어서 좀 더 제대로 다룰 생각이었는데, 오늘 어쩌다 간단히 얘기해버렸네.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좀 더 많은 내용을 비교해볼 생각이다. 이제 회의 들어갈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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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6-01-31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현리 배우 올 하반기에 방영될 <킬러들의 쇼핑몰2>에서 악역으로 나와요.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서 보고 반가웠어요. ㅎㅎㅎ

요새 한일 합작인지 두 나라 배우들이 같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많아졌어요. 제작비 때문인지 일본에 눈을 돌린 것도 같고… 영화 <굿뉴스>도 일본 배우 많이 나오더라구요. 신기합니다. ㅎㅎ

감은빛 2026-02-04 10:22   좋아요 1 | URL
[킬러들의 쇼핑몰]을 조금 보다가 말았던 것 같아요.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네요. 시즌2가 또 나오는 군요. 정보 고맙습니다! 글에서 언급한 영화 두 편에서 짧은 분량을 보다가 드라마에서 꾸준히 나오는 모습을 보니 이 배우 꽤나 매력적이더라구요.

네, 꼬마요정님 말씀처럼 최근에 한일 두 배우들이 함께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가 눈에 띄게 늘었지요. 좋은 현상인 것 같아요.
 

글쓰기


알라딘 서재에 처음 글을 쓴 것이 2004년 2월이었다. 첫 글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짧은 감상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고, 가장 많이 반복해서 읽었던 책이고, 가장 많은 부분을 필사 했던 책이다. 젊은 시절 한때 골방에 쳐박혀 라면과 담배만 섭취하며 지냈던 시절에 계속 읽고 필사 하기를 반복했던 책이었다. 알라딘이란 온라인 서점에 만든 새로운 공간에 첫 글을 써야 한다면 당연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첫 글은 썩 잘 쓴 글은 아니었다. 그냥 별로 개성이 없는 짧은 글. 


온라인 공간에 블로그라는 것을 만들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마 2002년 혹은 2003년 정도였던 것 같다. 몇 개의 블로그 서비스를 옮겨 다니며 꾸준히 글을 썼었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10년대 초반에 주로 쓰던 블로그 서비스 하나가 문을 닫으며 약 10년 정도 썼던 글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 후로는 다른 블로그를 다시 만들지 않고 그냥 알라딘에만 글을 쓰고 있다. 알라딘 서재 초기에는 별로 글을 쓰지 않았다. 2004년에 한 서너달에 걸쳐 글 8개를 쓴 후로 다시 글을 쓴 것이 2008년이었다. 몇 년 동안 시민단체 활동가와 학원 강사 등으로 바쁘게 살다가 일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잠시 쉴 때였다. 그리고 노동운동과 노동자 문학을 하던 선배들이 만든 잡지사이자 출판사에 들어갔다. 그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책과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서평이나 리뷰 등 어려운 말로 접근하기 보다는 그냥 책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떠드는 방식으로 쓰자 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 혼자 생각으로 책에 대한 수다 라고 여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알라딘 서재는 가능하면 책 이야기만 남기는 곳이었다. 아직은 외부에 일상 생활 수다를 남기는 블로그가 있었으니까. 아까 언급한 것처럼 당시 주로 쓰던 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더 이상 일상 생활에 대한 수다를 남길 공간이 없어지면서 이 알라딘에 일상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7년 가량 이어왔던 출판계 생활을 접고 다시 사회운동 판으로 돌아오면서 책에 대한 글을 점점 안 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알라딘 서재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간혹 들어와도 책에 대한 글을 안 쓰고 일상 이야기만 쓰게 되었다. 이 시기에 알라딘에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시점부터 다시 알라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그냥 주구장창 일상 이야기만 썼다. 책 이야기는 거의 쓰지 않았다. 


2004년 2월부터 약 12년 동안 여기 서재에 약 670개의 글을 썼다. 가장 글을 많이 썼던 해는 2011년이었다. 그때는 몸 담고 있던 잡지사에서 매달 잡지에 서평을 쓰던 때여서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책에 대한 글을 가장 많이 썼던 시기였다. 잡지에 실어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매달 독자들에게 공개해야 하는 글이어야 하기에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돌아보면 그 해에 유독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이 많았다. 2014년에 출판계를 떠나면서 가끔 비정기적으로 취재해서 쓰던 기사도 안 쓰게 되고, 서평 연재도 중단되고 하면서 글을 적게 쓰게 되었다. 이후로 간혹 지역에서 시민신문에 연재 글을 쓰기고 했고, 책 소개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 나중에 이 시민신문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며 이 조직과 인연을 끊은 후로는 공개적으로 글을 쓸 기회가 사라졌다. 지금까지 단행본 두 권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한번은 독서 커뮤니티 활동에서 이어져 기회를 얻었고, 또 한번은 녹색당 창당 과정에서 기획에 참여하며 지면을 얻었다. 그래봐야 그 두 권 모두 공동 저자 수가 엄청 많아서 내 글의 분량은 아주 적었다. 이후로 출판계의 몇몇 선배들에게 책을 내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기획 단계에 머물다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바빠서 글을 쓸 여유가 없다가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실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명확하게 찾지 못해서 기획에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한 서너번 가량 기획서를 쓰다 말았고, 몇 번인가 영업부장에서 퇴직 후 출판사를 차린 선배들과 책 출간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다. 대학시절까지는 매일은 아니어도 주기적으로 일기를 썼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몸이 두세개여도 모자라는 삶을 살다 보니 일기라는 것을 떠올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재미로 살았다. 너무 바빠 며칠간 글을 단 한 줄도 못 쓰고 지내도, 머리 속으로는 늘 어떤 문장들을 쓰고 있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메모장에 이런저런 짧은 글들을 남길 수 있었고, 바쁘게 이동하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단어 만이라도 써놓곤 했다. 물론 그래놓고 나중에 열어보면 내가 이때 왜 이 단어를 남겨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작년 12월 초에 그 전날 많은 눈이 내린 것을 보고 글을 쓰다가 멈추고 그 다음 날에 북플에서 과거 오늘 쓴 글을 보니, 무려 13년 전에 쓴 글이 어제 쓴 글과 거의 완전히 똑같은 글이라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글은 너무 같은 소재, 같은 패턴에 머물러 있구나. 어쩌면 지금 이 글과 거의 비슷한 글을 언젠가 여기 알라딘에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글에 제목으로 넣은 이승환의 노래 제목도 언젠가 제목으로 써먹었을 확률이 높다. 아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제목으로 적은 것은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저 노래를 참 많이 좋아했고, 자주 불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해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살면서 딱히 올해는 꼭 뭔가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진 적도 거의 없다. 계획이란 거창한 말은 좀 그렇고, 하필 시기가 양력으로 1월이라 좀 그렇기는 한데, 이제부터 이런 거 한 번 해보자고 생각한 것이 아침에 북플을 열어서 지난 오늘 게시판에 글이 없는 날엔 글을 하나 써보자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게 오늘이다. 2011년 전후로 한 삼사년을 제외하면 여기 알라딘 서재에 글을 열심히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오늘 쓴 글이 없는 날이 제법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마다 매번 글을 채워 넣기는 쉽지 않겠지. 그러니 꼭 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저 가능하다면 짧더라도 글 하나를 보태 놓으려고 노력하자. 뭐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끄적이다 말고 방치 중인 책 이야기가 몇 개 있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나중에 이걸로 글을 쓰려고 남겨둔 쪽글도 여러 개가 있다. 그리고 꽤 오래 안 보다가 최근 다시 찾아서 보고 있는 여자 프로농구 경기들에 대한 글도 써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침에 북플을 열어보고 아, 지난 오늘 쓴 글이 없구나 하고 깨달은 후에 무슨 글을 하나 남겨볼까 고민했다. 책 이야기? 영화 이야기? 아님 늘 하듯 일상 이야기? 아니면 농구 관람기? 농구 이야기를 쓰려고 유튜브로 어제 봤던 경기들을 다시 돌려 보려다가 아, 이러면 글 쓰는데 한 서너시간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기록도 따로 찾아봐야 하고, 그 경기 뿐 아니라 최근 경기들의 흐름도 찾아봐야 하고, 다른 팀들의 경기도 살펴보며 비교해야 한다. 다른 할 일도 있기 때문에 글 하나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역시 예전에 써놓았던 글들을 찾아서 완성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겠지 생각하고 끄적여 놓은 글들을 찾아보았다. 확실히 제법 많은 분량을 써놓은 글들도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글들도 다시 살리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비교적 빠르게 쓰는 편인데, 한번 멈추고 나면 그 글을 다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글을 쓸 때 당시의 감정과 느낌이 사라져 버려서 다시 그 맛을 살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엔 그냥 최근에 있었던 일들 중심으로 일상 수다를 하나 더 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글감도 두세개 정도 떠올랐다. 그 전에 내가 왜 아침부터 이렇게 글을 두드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써야지 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한 30분 가까이 지나버렸다. 결국 글을 다 쓰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있겠구나.


스몸비


서울역에서 파주 운정까지 GTX 일부 구간이 개통하면서 파주로 가는 시간이 엄청 짧아졌다. 그전에는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반 이상, 거의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금은 연신내 역으로 가서 GTX를 타면 종점인 파주운정역까지 15분 밖에 안 걸린다. 물론 연신내 역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고, 역에 들어서서도 지하 8층인 승강장까지 내려가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개통 초기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에스컬레이터를 수차례 갈아타며 오르거나 내려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가 생기며 시간이 조금 단축되기는 했다. 확실히 이동 시간이 줄어든 것은 좋기는 하지만, 이렇게 깊숙히 지하 공간을 개발하며 생기는 부작용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천상 환경활동가로 살아갈 수 밖에 없구나.


어느 날 파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열차 안 커다란 화면에서 방영되고 있는 교통 안전 캠페인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평소 이동 중에 열차 안 곳곳에 배치된 안내판과 영상들을 보며 띄어쓰기 오류나 맞춤법 오류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를 보면 또 한 편으로 천상 출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영상에서 낯선 단어를 하나 발견했다. 스몸비? 저게 우리말인가? 저런 단어가 있나? 뭔가의 줄임말인가? 스...... 스...... 스 로 시작하는 단어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무심코 스위스를 떠올렸다가 우영우가 생각날 뿐이었다. 귀찮아서 검색해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다시 그 단어를 마주쳤다. 역시 파주에서 돌아올 때였다. 이번에도 무언가 줄임말이 분명할텐데, 스...... 스...... 스님 말고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스를 넘기고 몸은 뭐가 있을까? 몸...... 몸...... 몸은 더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말에 몸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나? 그날도 검색을 하기는 싫었다. 그냥 머리로만 더 고민해보다가 열차에서 내릴 때가 된 후로는 잊어버렸다. 다시 며칠이 지나서 그 단어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폰을 꺼내서 검색했다. 어! 스몸비(Smombie) 스마트폰과 좀비를 섞은 합성어였다. 줄임말이 아니었다. 어느 언론 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벌써 10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이번에 처음 봤다. 영미권에서 주로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안 쓰는 단어가 아닐까? 아니면 나만 몰랐던 걸까? 내가 보았던 영상은 한국교통안전공단에서 만든 교통안전 캠페인이었는데, 저 스몸비란 단어를 쓸 거라면 친절하게 그 뜻도 적어주면 좋았겠다 싶다. 나처럼 이 단어를 처음 보는 사람이 의외로 제법 있을 것 같은데.


두쫀쿠


언젠가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특이하게도 어려서부터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탕이나 초콜릿 따위 달달한 것들을 거의 먹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두바이 초콜릿이 아무리 유명해도 먹어볼 일도 없었고, 심지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왜 두바이 초콜릿이라고 부르는지 관심도 없었다. 비슷한 유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국의 탕후루가 유행할 때는 작은 아이 덕분에 맛을 보았었다. 아, 그 혀가 아릴 정도의 단 맛 때문에 너무너무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가 먹어보라고 주었기 때문에 아이 앞에서는 잠시 참았다가 음료수를 사서 계속 입을 헹구듯 마셨다. 이런 것을 사람들이 유행처럼 먹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최근에는 두쫀쿠라는 것이 유행한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인지 아느냐고 묻길래, 두바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큰 아이가 맞다며, 두바이 쫀득 쿠키의 줄임말이라고 알려줬다. 쫀득 쿠키라니 이건 또 어느 나라 말인가 싶었다. 근데 두바이가 붙는 걸 보니 두바이 초콜릿과 관계가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이가 두바이 초콜릿이 유행하다보니 그 파생상품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두바이 초콜릿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은 아이는 이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이 실제로 중동이 있는 두바이라는 지역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말았다. 암튼 이번에도 작은 아이가 두쫀쿠를 사왔다. 애들 엄마와 큰 아이 그리고 작은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안 먹을 생각이었다. 탕후루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내가 꼭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작게 자른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달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바삭한 느낌은 생라면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겉을 싸고 있는 초콜릿은 약간 떡과 비슷한 식감이었다. 뒷맛은 찰떡 아이스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주 옛날에 어린 시절에 한 번 먹어본 것이라 정확한 맛의 기억은 아니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냥 이런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정도의 감상이었다. 그저 내게는 탕후루 만큼의 충격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무슨 맛인지 알았으니 됐다.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거울 효과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기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다. 돈을 주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것이 4년 정도 되었다. 아주 가끔 가위로 혼자 끝 부분을 일정한 길이로 자르곤 한다. 어차피 묶고 다니는 일이 많아서 꼭 길이를 맞추지 않아도 상관 없고, 풀고 다닐 때에도 파마를 한 것처럼 반곱슬이라서 길이가 맞지 않아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머리칼이 짧았던 시절에는 짧으면 한 달에 한 번, 길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미용실에 가야 했다. 이상하게 사람들은 옆머리와 뒷머리가 지저분하게 자란 모습을 싫어하고 못 견뎌했다. 그런데 아예 머리를 기르고 나니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돈을 아끼는 측면도 있지만, 나는 머리카락을 손질하는 한 10여분 남짓의 그 시간이 좀 싫었다. 누군가, 그러니까 나와 전혀 친밀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내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긴 시간 만지고 다듬는 것이 불쾌 까지는 아니지만, 그냥 썩 좋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처럼 머리카락을 기르고 사는 남성들이 여러 명 있다. 언젠가 어느 회의에 갔는데, 나를 포함해서 참여한 남성 네 명은 모두 머리가 길었고, 여성 세 명은 모두 머리가 짧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는 반대였다. 지금 내 머리카락의 길이는 애들 엄마와 두 딸들과 비교해도 더 길다. 머리를 기르고 살기 때문에 불편한 공간이 있다.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목욕탕 같은 공간이다. 목욕탕은 평소에는 거의 가지 않지만, 아주 가끔 갔을 때에는 나 때문에 놀랐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장실은 자주 사람들이 놀란다. 뒷모습만 보고 여자 화장실을 잘못 들어왔다고 놀라서 나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나는 수염도 기르고 다니기에 앞이나 옆 모습을 본다면 절대 오해할 일이 없는데, 뒷모습은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전철역이나 공원 화장실 같은 곳에서 자주 이런 일이 생기다보니 좀 스트레스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익숙해졌다. 놀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해 줄 수는 없으니.


작년 연말에 동네에 있는 헬스클럽에 다니고 있다. 이 헬스클럽이란 단어는 아마 콩글리쉬일텐데, 그렇다고 핏니스클럽이나 휘트니스클럽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서 그냥 익숙한 헬스클럽이라고 하자. 우리 동네에 이 헬스클럽이 문을 연 것이 딱 작년 이맘때였다. 큰 길가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동네에도 생기는구나 하고 약간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시간 날 때 한 번 구경이라도 해야지 생각했지만, 일 년이 다 되도록 갈 일은 없었다. 아마 보일러 문제만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계속 갈 일이 없었을 텐데, 불행하게도 작년 연말에 보일러에 문제가 생겼다.


그날 따라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데, 보일러에 뭐가 문제가 생겼는지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한 서너번 정도 온수 배관이 얼어 붙어버리는 일이 생긴다. 열선을 감아 놓아도 꼭 서너번은 그렇게 되더라. 대개는 드라이기로 녹이지만, 가끔은 저절로 녹을 때까지 친구 집으로 피난을 가기도 한다. 이번에는 보일러를 살펴볼 여유가 없어서 급하게 동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씻고 가겠다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이미 출근해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씻고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 보니 다시 온수가 나왔다. 뭐가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저절로 해결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또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그 친구에게 부탁해도 괜찮았지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한 십여년 전에 친하게 지냈던 동네 친구는 동네 뒷산, 산 자락에 살았다. 그 높은 곳까지 따닥따닥 집들이 지어져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친구 집 바로 뒤로 등산로 옆에는 텃밭들이 있었다. 그 비탈진 골목길 어딘가부터 도시가스 연결이 안 되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마다 기름 보일러를 돌려야 하는데, 낡은 집이라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소용이 없다고 했다. 기름 값만 아깝다고 하며, 그 친구는 매년 겨울이 되면 전철역 근처 헬스클럽을 등록한다고 했다. 아침에 거기서 씻고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거기서 씻고 집으로 온다고 했다. 그 당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게 기름 보일러를 돌리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좋은 방법이네. 씻기 전에 운동도 할 수 있으니 건강에도 좋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 말이 이번에 생각이 났다. 이번 겨울에 또 얼마나 자주 보일러가 문제를 일으킬 지 알 수 없는데, 매번 친구네 집을 이용하는 것보다 집 가까이 있는 헬스클럽을 이용하자 싶었다. 


한때는 꾸준히 헬스클럽을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잘 안 하게 되는데, 그래도 돈을 주고 등록을 해 놓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가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집에 운동기구도 거의 없어서 가벼운 맨몸 운동이 아닌 제대로 된 운동을 하려면 헬스클럽에 가야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바벨을 사고, 실내 철봉을 사고, 케틀벨을 사고, 불가리안 백을 사고, 샌드백을 샀다. 덤벨로 여러 종류를 많이 샀다. 케틀벨도 무게 별로 숫자가 늘었다. 집에 운동기구를 갖춘 이후로는 굳이 헬스클럽을 갈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도 충분히 좋아하는 여러 동작들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심각한 근손실을 겪었고, 이후로 다시 열심히 운동을 해봤지만, 내가 좋아했던 여러 종류의 동작들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운동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달리기에 빠졌다. 교통사고 이전에도 달리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주로 2킬미터 이내로 짧은 거리를 뛰고 쉬는 방식으로 했었다.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먼지만 쌓여가는 저 많은 운동기구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찔끔 찔끔 운동을 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부터는 죄책감도 내려놓게 되었다. 나는 달리기를 열심히 하니까 운동은 좀 쉬어도 괜찮아 라고 생각한 것이다.  


헬스클럽에 등록한 것은 거의 15년 만이다. 생긴지 1년 밖에 안 된 곳이라 깨끗했다. 공간이 넓지 않은 것에 비해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나는 어차피 기구 운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기구들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스트레칭 공간이 별도로 있다는 것과 좁기는 하지만 프리웨이트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몸을 풀고 덤벨, 바벨, 케틀벨 운동만 했는데, 나중에는 워밍업으로 트래드밀을 달린 후에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집에서 헬스클럽까지 달려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야 할텐데, 거리가 워낙 가까워서 워밍업이 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몸에 열을 좀 내기 위해 트래드밀을 달리기로 했다. 트래드밀을 달리는 것은 참 지겹고 싫은 일이다. 이왕 달릴 거라면 무조건 밖에서 달려야 한다는 생각인데, 겨울이기도 하고, 어차피 돈을 냈으니 다른 기구들은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것 만이라도 이용하자고 스스로 타협을 한 것이다. 밖에서 달리면 10킬로미터를 달려도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은데, 트래들밀에서는 1킬로미터도 못 가서 지겹고 힘들더라. 그리고 좁은 폭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정하게 달리는 것이 너무 싫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하다 보니 이제는 좀 익숙해지기는 했다.


문제는 탈의실이었다. 나는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가 길어서 내가 탈의실에 있을 때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어저씨들이 있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기는 한데, 그래도 나 보다는 한 열 살 이상 많아 보이는 아저씨들. 게다가 나는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자국이 몸에 있다. 이게 의외로 칼에 찔린 자국처럼 보인다고, 예전에 같이 목욕탕에 갔던 친구가 말했었다. 이래저래 탈의실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수술자국은 최대한 옷을 빨리 갈아 입는 것으로 괜찮지만, 머리는 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운동을 마치고 운동복을 다 벗고 샤워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에 탈의실로 어떤 남성이 들어왔다. 깡마른 체격에 키가 작았는데 머리카락은 길었다. 눈이 딱 마주쳤는데, 곱상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여성이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옷을 모두 벗은 알몸이었다.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는데,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열쇠로 사물함을 열었다. 그제서야 아, 남자구나 생각이 들었다. 샤워장으로 들어가면서 이런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고 생각을 시작했는데 기억나지 않았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거울 치료 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비록 수염을 기르기는 했지만, 머리카락이 긴 내가 탈의실에 들어서면 다른 사람들도 순간 순간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걸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어떤 느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내가 그렇게 놀라고 당황해보니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놀랐겠구나 싶었다. 엄밀히 말하면 치료 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니 거울 효과라고 해야 하려나. 암튼 내가 긴 머리의 남성을 보고 순간적으로 여성으로 착각해 놀라다니.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나 때문에 놀랐을 많은 남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부터는 탈의실에 들어설 때 헛기침이라도 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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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1-20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에 이전 글이 올라오지 않는 날이 많아 감은빛님 글 더 자주 접했으면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스몸비, 두존쿠 두 개 다 의미를 몰랐네요. 어린이 프로 케릭터 이름인가 했네요.

감은빛 2026-01-26 10:4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쓰고 나서 문득 어쩌려고 저렇게 써 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내가 글을 하나도 안 쓴 날이 의외로 꽤 많을텐데.
뭐, 꼭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겠죠.
암튼, 올해는 좀 더 글을 써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잉크냄새님의 멋진 여행 이야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카스피 2026-01-21 1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은빛님 글을 자주 접했으면 합니다.그런데 두쫀쿠 가격이 남 사악한것 같아요

감은빛 2026-01-26 10:44   좋아요 0 | URL
두쫀쿠 가격이 정말 비싸더라구요.
작은 아이가 산 가격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큰 야이는 요즘 두쫀쿠를 만들어 파는 카페에서 짧은 시간 일을 하는데,
큰 아이 말로는 그 정도로 비쌀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본인은 두쫀쿠를 팔면서도 그 비싼 두쫀쿠를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네요.

페크pek0501 2026-01-27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글은 너무 같은 소재, 같은 패턴에 머물러 있구나.˝ - 이런 생각을 저도 하는데 어느 시인의 산문집이었던가 본 글이 있어요. 작가는 자기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내용만 달리 해서 반복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공감이 갔어요. 저도 글을 쓰다 보면 중복되는 메시지인 경우가 있어요.

말로만 듣는 것보다 실제 경험이 효과적이죠. 자기가 직접 경험해야만 아는 것들이 있어요. 감은빛 님이 긴 머리의 남성을 보고 여성인 줄 놀랐던 경험처럼요. 갑질을 하는 이들이 을, 의 입장에서 살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ㅋㅋ

감은빛 2026-02-04 10:31   좋아요 0 | URL
페크님께서는 언제나 댓글로 저를 응원해주시고, 힘을 주시네요. 늘 고맙습니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은데 다른 방법 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것이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문제는 늘 시간과 의지인 것 같아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