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 훗날 우리]와 노래 [後來]


영화는 2007년 섣달 그믐, 그러니까 음력 12월 31일에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기 위해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바삐 떠나는 수많은 인파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기차역이었다. 이어서 보여주는 열차 안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디선가 목이 쉬도록 울고 있는 아기, 크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 떠들어 대는 사람들. 짐을 선반에 올리거나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계속 비좁은 통로를 막아서기 때문에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답답하다. 남녀노소 저마다 각자의 사정을 짊어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 열차 안에서 두 주인공 팡샤오샤오와 린젠칭이 만난다. 둘은 공교롭게도 같은 고향 사람이고, 베이징에서 불안한 청춘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같다. 우연한 만남 덕분에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고, 나중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류뤄잉 감독의 이 영화를 알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 이웃 잉크냄새 님 덕분이었다. 최근에 또 잉크냄새님이 중국 노래들을 추천해주셔서 그 노래들을 알아본 내용을 글을 하나 썼는데, 작년 3월에 내가 펑티모와 완쯔요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글에도 잉크냄새님이 다섯 곡의 중국 노래를 추천하는 댓글을 달아주셨었다. 그 중 한 곡이 바로 류뤄잉의 호우라이 [後來] 였다.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고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영화가 바로 이 가수가 만든 영화 호우라이 더 워먼 [後來的我們] 이었다. 류뤄잉의 목소리가 워낙 좋았고, 이 노래가 참 좋았기 때문에 이 영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 언젠가 꼭 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 언젠가가 거의 일 년이 지난 후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생각하지 못 했었다.


노래의 제목은 (잉크냄새님께서 처음 이 노래를 알려주실 때 적어주신 것처럼) "나중에야" 라고 옮길수 있을텐데, 이 영화의 "먼 훗날 우리" 라는 우리말 제목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든다. 두 주인공이 2007년에 처음 만나 2008년에 연인이 되는데, 그 10년 후인 2018년이 과연 먼 훗날 후라고 말할 정도로 먼 훗날인가? 겨우 10년이? 아니 누군가에게는 10년 씩이나 지났으면 먼 훗날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시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테니. 적어도 내 기준에서 10년 후는 그리 먼 미래가 아닌 느낌이다. 그래서 이 제목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개봉한 우리나라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 라는 제목이 훨씬 잘 지은 제목으로 느껴진다. 두 주인공이 현재 시점의 마지막 장면 즈음에서 직접 대사로 말하는 그 만약에 라는 전제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극장에서 저 우리나라 영화도 보고 나서 글을 써야할까 하는 생각을 한동안 했다. 하지만 이 영화 하나로도 쓸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굳이 저 영화까지 보고 엮어서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Us and them] 이다. 이 제목도 [먼 훗날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좋은 제목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그들은 같은 사람이지만, 시점이 다르므로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의 그 사랑은 지금 다시 이어질 수 없다. 아무리 만약에 라는 조건을 붙여보고 상상을 해봐도 소용없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면 자막으로 류뤄잉의 단편소설 [춘절 귀가] 라는 작품이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알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만 보고 나는 이 노래 [나중에야] 가 이 영화 [먼 훗날 우리] 의 모티브가 되는 원작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는 비슷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사를 번역본으로 찾아보니 이야기 자체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단편 소설을 구해 읽을 방법이 없어서 원작과 영화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할 방법이 없다. 다만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시점, 2007년 춘절과 2018년 춘절이 모두 음력 설인 1월 1일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서로 친구로 연인으로 지내는 몇 년 동안 계속 춘절을 맞아 같이 고향에 다녀오는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고 싶은 것은 있다. 영화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한자로 작중 시점을 표기한 이 자막에서 연도가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는 2007년의 섣달 그믐에 시작한다. 그 다음 날인 춘절에 샤오샤오는 고향에서 젠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식당을 자주 찾는 단골들(아마도 이웃들)과 함께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럼 이 2007년이란 숫자가 음력인지 양력인지 하는 점이 헷갈렸다. 만약 음력이라면, 두 사람이 열차에서 처음 만난 날은 음력으로 2007년의 마지막 날이고, 고향에서 밥을 함께 먹은 날은 음력 2008년의 첫 날이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한참 알고 지낸 지 약 1년이 지나서 영화의 이야기가 조금 진행 된 후에 자막으로 2008년의 양력 설이라고 알려준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이 부분 때문에 헷갈려서 영화를 멈춰놓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춘절과 섣달 그믐은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짜들이지만, 해당 연도는 모두 양력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은 양력 2007년 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고, 다음날인 춘절도 여전히 양력 2007년이었다. 약 1년이 지나 다시 자막이 나온 시점은 이제 양력 2007년이 지나고 양력 2008년의 첫 날이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왜 헷갈렸는가 하면, 내 기준에서 새해는 음력 설이 기준이고, 나에게는 아직 음력 2025년이라서 새해가 오지 않은 것이다. 음력 설이 되어야 비로소 2026년을 맞이한다고 생각한다. 즉 섣달 그믐이나 설이나 그 외에도 입춘 등 음력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날들을 말하려면 음력으로 해당 연도를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쓸데없는 걸로 시간 낭비를 제법 했다.


류뤄잉이 쓴 [춘절 귀가]라는 단편소설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기회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지만, 대도시로 상경하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는 청춘 남녀가 춘절을 맞아 고향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알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나도 예전에 설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만난 여성과의 짧은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올라온 초기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어렵게 고속버스 표를 구해 탔는데, 하필 그날 밤에 폭설이 내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렸고, 내가 탄 버스가 약 17시간만에 부산에 도착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다. 하필 그 날 내 옆자리엔 내 또래(즉 20대 중후분) 로 보이는 여성이 탔었다. 그 여성은 창가 자리였고, 나는 복도 쪽 자리였다. 좁디 좁은 버스 좌석에서 두터운 겨울 잠바를 벗어서 품에 안은 채로 구겨져 긴 시간을 가야 했던 그 시간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는데, 하필 옆 사람이 여성이라 더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일 수 밖에 없었고,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 약간 민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는 스마트 폰도 아니어서 전화기로 뭔가 시간을 때울 것도 없었다. 아마 책을 가져오기는 했었지만, 조금 읽다가 집중이 되지 않아 그냥 가방에 넣어버렸었고, 손바닥만한 휴대용 씨디플레이어를 가져왔었지만, 아마 건전지가 다 닳아 버려서 중반 이후로는 음악도 듣지 못했었다. 깨어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자세도 불편하고, 배도 고프고 또 화장실 문제도 자꾸 생각이 나고 해서 무조건 계속 잠들어 있었으면 했었다. 그런데 그 옆자리의 여성은 주기적으로 남자친구로 여겨지는 남성의 전화를 받고 통화를 했고, 그 전화 소리 때문에 나는 번번히 잠에서 깨어 괴로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여성의 전화 통화 때문에 잠에서 깬 후로 다시 잠들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금방 다시 잠이 들어버린 눈치였다. 바로 옆 자리이고, 좁았기 때문에 팔이나 어깨가 자꾸 닿기는 했지만, 버스가 출발한 후로 꽤 긴 시간동안 이 여성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었다. 여성이 깊이 잠들었다는 확신이 든 그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여성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묶어 올린 머리칼은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고, 젊은 사람 답게 유행을 따라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이라 여겼다. 그 순간 지금까지 긴 시간 하필이면 여성이 옆에 앉아서 불편하다고 생각해왔던 불쾌감이 사라졌다. 단순히 그 사람이 예쁘장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고향을 떠나 힘든 서울살이를 하는 나와 같은 청춘일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머리 속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산 어느 동네 출신이고, 어느 여고를 나와서 서울의 어느 대학에 입학하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부산에 남아 있는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나 혼자 제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어차피 시간은 무진장 많았고, 나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상을 조금씩 바꿔가며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 명절이 지나 시간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여 빈 공책에 삐뚤빼뚤 악필로 써내려 갔었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부산을 가야 할 때에는 절대 고속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조건 어떻게든 열차를 예매하려고 애썼고, 만약 열차 표를 구하지 못한 명절에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못 간다고 말씀드렸었다. 그 해 귀성길 버스 17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기록이긴 했지만, 서울 살이 초기 몇 년 동안 추석과 설에 고향가는 버스를 탔던 시간들은 대체로 평균 10시간이 넘었다. 13시간, 11시간, 12시간 등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자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서 이 17시간 이야기를 해줬을 때 아이들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라고 놀랐었다. 아이들은 고속철도로 이동하는 겨우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조차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옛날에 아빠가 젊었을 때는 열차도 8시간 이상 걸렸었다고 이야기하면 열차를 어떻게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느냐는 반응이 돌아왔었다.


원작 단편소설의 내용을 유추해 보려다가 옆길로 잠시 샜다. 샌 김에 노래 이야기를 조금 이어서 하고 영화로 돌아가자. 작년 3월에 썼던 노래 이야기에도 있었던 내용인데, 이 곡은 일본 여성 듀오가 부른 미라이에 [未来へ] 라는 노래를 중국어로 리메이크 한 것이다. 원곡인 일본 노래는 졸업식에 잘 어울리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담은 내용이지만, 이 노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이 담긴 조금 쓸쓸한 내용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 아마도 여성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열일곱 살의 여름, 어느 밤에 사랑하는 혹은 동경하는 사람과의 키스를 했다. 그 후 그와는 인연이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긴 시간 그날 밤의 별빛이, 그 날의 치자꽃 흰 꽃잎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그 때 내가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인가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저우동위 周冬雨 가 연기한 샤오샤오와 징보란 井柏然 이 연기한 젠칭은 젊은 시절 객지에서 열악한 환경과 가난과 실업의 늪에서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간다. 그 치열한 삶의 동지로 친해진 두 사람은 어쩌다 좁은 방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 지점이 좀 비현실적으로 아니 너무 극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당시의 중국 젊은이들의 삶의 문화와 양식이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순수한 친구인 이성이 한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방에 함께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다고 본다. 물론 샤오샤오가 하루 아침에 남자친구 집에서 쫓겨나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아주 절박한 설정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 암튼 두 사람은 긴 시간을 함께 친구로 살았는데, 어느 날 술을 마시다가 눈이 맞아 버렸다. 사실 젠칭은 초반부터 확실히 샤오샤오에게 친구 이상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젠칭에게 이성으로 끌리고 있다는 언행이 보인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들이 그 두 사람이 서로 용기를 내거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간다. 그리고 젠칭의 아버지는 샤오샤오가 자기 아들의 짝으로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한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두 시점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2007년에 시작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컬러 화면으로 아주 예쁘게 그려진다. 2018년에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흑백 화면으로 아주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우리 사랑 이야기는 비록 좀 찌질하고, 비참하고, 힘들고, 부끄러울지 몰라도 그래도 아름다웠어. 마치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지금은 그저 차분하게 혹은 다소 냉정하고 현실적인 태도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2018년 4월 말, 노동절 휴무를 앞두고 개봉했다. 영화 속의 현재는 2018년 춘절 연휴다.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아마도 여러 마케팅 기획들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유튜브로 [나중에야] 노래를 찾아 듣다가 2018년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들을 몇 개 발견했다. 바로 이 노래를 일반인들 그리고 콘서트의 관중들이 떼창과 이어부르기로 부르는 영상들이었다. 작년 3월에 썼던 글에서 이 가수 류뤄잉이 콘서트에서 이 곡을 시작할 때 "산, 얼, 이" 라고 숫자를 세면 관중들이 "호우라이~" 라고 노래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썼었다. 이 가수는 콘서트 장에서 자주 이렇게 이 노래를 시작했던 모양이고, 이것이 하나의 룰이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본 영상도 류뤄잉이 숫자를 세는 목소리로 시작해 관중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콘서트 영상에서는 금방 가수가 이어서 불렀지만, 이 이벤트 영상에서는 끝까지 가수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음정, 박자, 음색이 제각각인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노래를 이어서 부르는데, 제법 괜찮게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체로 이걸 들어주고 있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음치이거나 박치인 것 같은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다. 그러다 다시 콘서트 장의 관중들이 떼창을 부르는 장면으로 넘어가며, 여러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들을 담는다. 이 노래가 지나간 과거 어느 시점의 소중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이기에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좀 신기하기는 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작은 화면에 제작진 그리고 일반인들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이 흰 종이에 과거 어느 인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써서 말하는 장면들이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이 바이럴 마케팅이 제법 잘 먹혀들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당장 나도 과거 어느 인연을 꼭 떠올리며 뭐라고 한 마디를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노래나 영화나 옛 사랑 이야기를 다룬 걸 듣고 보면 나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영화는 특히 베이징에 올라온 가난한 젊은 남녀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처음 올라와 고시원에 살았던 시절의 내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또 영화에서 어느 밤 둘이 버스 막차를 기다리다가 젠칭이 택시를 타자고 하는데, 샤오샤오가 택시비가 밥 두 끼 가격이라고 좀 더 기다리자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결혼식을 앞두고 내 대학 선배 한 명에게 애들 엄마를 소개한다고 서울 남동쪽의 어느 동네에서 만나 밥과 술을 먹었던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려고 보니 버스도 전철도 끊긴 상황이었다. 당시의 우리도 가난한 젊은 연인이었고, 심야 할증이 붙은 택시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우리집까지 절대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다. 어떻게 겨우 종로 쪽으로 가는 심야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와서, 종로에서 집으로 택시를 탔는데, 사실 그 택시비도 만만치 않았게 나왔었다. 그때 애들 엄마가 내 대학선배를 원망하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본인이 우릴 재워줄 것도 아니고, 택시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 이렇게 늦게 붙잡고 있지 말았어야 했다고. 막차 시간 이전에 보내줬어야 했다고. 선배라는 사람이 후배를 챙길 줄 모른다고. 만약 자신이 선배로서 결혼을 앞둔 후배를 만났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사실 내가 보아온 애들 엄마는 실제로 자신의 친구들과 후배들을 그렇게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애들 엄마의 수많은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만났지만, 내 지인들은 서울에 거의 없었기에 애들 엄마를 소개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만났던 선배도 대학시절엔 제법 친했지만, 그가 졸업한 후에는 그리 자주 만나지 못했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 결혼 소식을 전하며 만났던 것이다. 그가 내 결혼식에 왔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이후로 따로 만난 적은 아예 없고, 수도권에 사는 선후배 모임에서 몇 차례 더 봤을 거라는 생각만 든다. 그러다 내가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던 어느 시점 이후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영화의 존재를 알았던 때가 작년 3월이라고 썼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올해 1월 말에 봤다. 아마 조금 더 미뤘다가 다음 주 정도에 보았다면, 시기적으로 딱 적절한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눈이 내리는 겨울에 그것도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설 즈음에 보기에 딱 좋은 영화였다. 이 글에서 나는 유명한 가수이자 영화배우인 류뤄잉이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만 촛점을 맞췄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감독은 훨씬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단 청년 세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먹고 살기 어려운 사회. 시골에서는 더더욱 번번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그렇다고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와 봐도 현실은 어처구니 없이 좁고 더러운 방 하나를 겨우 얻을수 있을 뿐인데, 그 어처구니 없이 허접한 방 하나를 위해 내가 바쳐야 하는 월세는 또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치인가! 그 다음으로 도시와 시골의 환경 변화로 인한 갈등들이 있고, 도시의 실업 문제, 비정규 단기직 노동자들의 문제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은 느낄 수 있는 배경을 더 다양하게 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궁금했던 것은 대만 사람인 류뤄잉이 왜 베이징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점이다. 대만의 타이베이를 배경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익숙하게 잘 만들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대만을 넘어 중국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었을까?


원작인 이 영화는 여러 의미로 참 잘 만든 작품임에 틀림이 없는데, 최근 개봉해서 나름 멜로 영화의 유행을 이끌고 있다는 [만약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괜찮은 영화일지 궁금하다. 과연 극장에서 볼 여유가 생길지, 아니면 언젠가 OTT에 풀린 이후에야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원작과 비교해 또 끄적일 이야기들이 생길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감상으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휴대전화 메모장에 끄적여 놓았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살려 쓰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더라. 두 사람이 만약에 우리가 이랬다면 저랬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며 감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서 나도 너무 공감해 버려서 너무 감정적으로 글을 두들겨 놓았더라. 덕분에 이 글을 두드리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 피곤하네.

    

음력 2025년의 끝 자락에 정말 괜찮은 영화를 만났다. 앞으로 류뤄잉의 [나중에야] 를 들을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매년은 아니겠지만, 가끔 이때 즈음이 되면 또 이 영화가 생각나겠지. 언젠가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본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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