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인식하고 인지하는 능력

요즘 한자를 공부하면서 새삼 우리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깨닫는다. 어느 외국어가 어렵지 않겠냐만, 우리 말은 특히 더 어렵다고 본다. 한자를 배우며 그간 한자어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한자로 만들어진 단어였구나 생각하며, 우리말을 반백년 배운 사람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구나 했다.

예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것에 대해 이 서재에 몇 번 글을 썼었다. 인지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것으로 우리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경험들을 묶어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저장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고, 큰 변화가 없는 사람은 그 일상 전체를 통으로 엮어서 인식하고 기억한다고. 그래서 뭐라도 조그마한 차이점이 있어야 그 날을 다르게 인식하고 따로 기억하고, 매번 거의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그 날들은 나중에 떠올리고 싶어도 기억하지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완전히 같은 날은 있을 수 없겠지만, 거의 차이가 없는 날은 제법 있을 것 같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씻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서 같은 버스를 타고, 비슷한 시간에 일터에 출근한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업무를 하고, 매일 같지는 않겠지만, 몇가지 음식들 중 반복 선택해 점심을 먹는다. 오후도 역시 비슷한 영역의 업무를 하고 야근을 하던 퇴근을 하던 그렇게 하루가 간다면, 그 하루들의 연속되는 일상은 별개의 하루 하루로 인식하고 저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일과 겪어본 일이 많아서 점점 더 개별적으로 따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거라고.

이쯤에서 잠시 인식(認識)과 인지(認知)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나는 앞서서 계속 인식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느낌상 인지보다는 인식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인지를 그대로 넣어도 뉘앙스는 좀 다르지만, 틀린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밀히 말해 다른 단어이고, 고유의 뜻이 있을텐데 사전만 찾아보아서는 잘 모르겠다. 이 둘을 좀 더 엄격하게 구분해 쓰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암튼 내 기준으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30대 중후반이었다. 그때 이미 시민단체 실무자로서는 해볼 수있는 어지간한 업무를 두루 익혔고, 많은 경험을 쌓았었다. 더불어 출판사에서도 영업관리와 마케팅 기획 그리고 편집까지 여러 일들을 익혔었다. 더이상 새로운 경험이 없이 알고 있는 일들, 해봤던 일들만 경험하게 되면서 시간에 대한 내 인식과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업무 외에도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젊은 시절엔 전국단위 사업에 대응하면서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지만, 30대 중반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좁아지고 매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혼 후의 내 삶은 그 이전에 비해 아주 단순해졌다. 아니 개인적인 삶. 즉, 사적 영역을 대폭 축소하고 공적 영역 확 늘려서 그냥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였다.

암튼 큰 변화 없이 10년 정도를 비슷한 흐름으로 살아와서 시간이 물 흐르듯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시 하루 하루가 길어진 것을 깨닫는다. 이렇게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뇌가 시간을 정상적으로 인식하는구나 싶다.

물론 당연히 이 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면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어떻게든 일상에서 자주 변화를 주고, 그 변화에 의미를 부여하여 뇌가 그냥 다른 일상들과 엮어 뭉뜨그려 버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점점 늙어가는 처지에 그 노화가 더 빨리 다가오는 것처럼 느끼고, 시간이 이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느끼는 일이 너무 싫고 슬프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2월과 3월은 마치 퇴근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고 있다. 딱 다음주까지만 참으면 된다. 내일 중요한 총회가 하나 있고, 담주 토요일에 더 중요한 총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올해 신경쓰고 챙겨야 할 총회들이 모두 끝난다. 4월이 되면 조금은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벌써부터 모든 주말에 일정이 생겼고, 평일 저녁에도 회의 등 일정들이 생기고 있다.

좀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쉬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내 뇌가 아, 이날은 좀 특별한 날이구나 하고 인식해 기억할텐데, 매번 저녁마다 일정이 생겨 무언가 집중해 일하다보면 또 같은 일상이구나 생각할 것이다.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겠다. 변화를 주자. 의미를 두자. 내 소중한 일상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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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2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무리하시면 번 아웃이 옵니다.감은빛님 바쁘신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건강을 챙기시면서 일 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