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 강의


오늘 오전 오랜만에 학교 강의를 했다. 그 학교에 계신, 동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해당 학교 법인의 비리 사학재단과 아주 오래 싸워오신 전교조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뵈어 또 정말 반가웠다. 그 선생님은 조금은 험악할 수 있는 인상이지만, 아주 함빡 웃음을 얼굴 가득 지어 나를 반겨주셨다. 악수에 이어 툭 하고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드리는 동작이 참 좋았다. 친근감의 표현이니 말이다. 내가 맡은 반이 몇 반이냐 물으시더니, 애들이 다들 잘 것 같다고 걱정하셨다. 난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이곤 자면 또 자는 대로 내버려둬야죠. 억지로 깨울 수는 없다고 했다. 나 역시 학창시절엔 선생님이 들어오던 말던 늘 잠만 잤으니 말이다.


강의도 꽤 좋았다. 사실 1월에 왠 학교 강의냐며 의아했는데, 큰 아이를 보니 아예 봄방학 없이 3월 개학까지 쭉 이어지도록 방학을 늦게 시작하는 거라고 했다. 교실에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목요일에 방학 시작이라고 했다. 방학을 코 앞에 두고 이 추운 날에 학교에 와서 공부가 될 리가 없을 터.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아예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깨서 듣는 아이들만 데리고 강의를 했다.


근데 약 3분의 1가량, 그러니까 10명 정도 아이들이 열심히 듣고, 대답도 곧잘 하며 잘 따라왔다. 정말 기특하고 고마웠다. 나는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아침부터 목 상태도 영 별로였다. 게다가 서둘러 나오느라 늘 갖고 다니던 물병도 못 챙겨나와 강의 중에 물을 마실 수 없었다.


평소처럼 열을 올리며 강의했다간 금방 목이 가버릴 것 같아서 페이스 조절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애들이 자거나 딴 짓은 해도 떠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고 고마웠다. 강의를 잘 듣고 따라온 10명 가량은 기후변화와 핵발전에 대해 상식 수준의 지식은 있었다.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사회 선생님이 알려주셔서 그렇다고 했다. 이래서 학교 선생님이 중요하다.


오늘은 물도 없고, 목도 상태가 나빠 평소처럼 진도를 빼거나, 정보 전달에 애쓰지 않고, 이야기 중심으로 풀었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 당시 기록들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들려줬는데, 애들이 엄청 집중해서 잘 들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선생님이 수업하다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데, 나도 그점을 자주 활용하곤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라고 슬쩍 운을 떼면서 호기심을 자극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흥미로운 요소들을 잘 배열해 서사를 끌고나가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대신 엉터리 이야기를 할 순 없으니 옛 기록들을 뒤져 이야기 꺼리를 많이 찾아야 한다.


암튼 2시간 강의를 시작할 때는 좀 일찍 마쳐서 애들 쉬는 시간을 배려해주려 했는데, 이야기 들려주는 재미에 푹 빠져 오히려 시간이 모자라더라. 열심히 들어주는 애들이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목이 아픈 것 따위 다 잊을만큼 좋은 기분으로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2시간 떠들면 에너지 소모가 커서 많이 지치지만, 또 그만큼 아이들에게 힘을 받아 오곤 한다. 그래서 난 학교 강의가 좋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어른들 대상 강의와 달리 특유의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책들


체르노빌에 대한 아래 책 3권은 모두 읽었다. 아,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다 읽지는 못했으니 2권은 다 읽고, 1권은 아직 읽는 중이라고 표현해야 하려나. 사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쉽게 읽히지만, 실제 사건과는 사실관계가 많이 다르다.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후쿠시마에 대한 책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한 권 밖에 못 읽어봤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야지.










































언젠가 여유가 있을 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법정책] 저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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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1-14 18:01   좋아요 0 | URL
저도 말씀하신 그 지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아무리 일본 정부가 숨기고 속이려해도 방사능 피해는 해가 갈수록 심해질텐데,
그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을텐데,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작년부터 라돈 방사능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하더라구요.
92년 미국 환경보호청 자료에 의하면 매년 라돈 방사능으로 인한 사망자를 1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더라구요.(워낙 오래된 데이터이긴하죠.)

요즘 건물은 대체로 괜찮은데, 낡은 주택은 집안으로 방사능이 새어들어온다죠?
근데 도시에 낡은 주택이 워낙 많아요! (우리집도) ㅠㅠ
 


기네스북 기록 갱신 중인 고공농성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때문에 옥상을 살펴봐야 할 일이 생긴다. 그나마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면 괜찮지만, 가끔 사다리로 올라야 하는 경우는 좀 무섭다. 작년 여름엔 긴 사다리로도 옥상까지 닿지 않아, 사다리 맨 끝에서 약 1미터 이상을 팔 힘으로 버텨 올라야했다. 사다리 자체도 부실해서 휘청거려 오르는 동안 불안했지만, 맨 끝에서 양 팔에 힘을 주고 몸을 끌어올일때는 이러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얼마나 다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서도 작업하는 내내 많이 불안했지만, 가장 무서울 때는 내려올 때였다. 몸을 뒤로 상체를 양 팔로 받친채 하체를 내려 사다리를 밟아야 했는데, 사다리가 멀리 있어서 발이 잘 닿지 않았다. 간신히 사다리에 발이 닿아 내려올 수 있었는데, 대략 3~4분 남짓 걸렸을 그 시간 동안 나는 몇 십번이나 미끄러져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해가 바뀌어 이젠 작년이 되어버린 12월 초엔 또 눈이 쌓인 곳의 철제 사다리를 밟고 옥상을 올라야 했는데, 사다리가 많이 미끄러웠다. 그때도 역시 미끄러져 곤두박질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무려 75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서 420일이 넘게 농성중인 두 노동자가 있다. 오늘(1월 7일) 기준으로 422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일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 중이란다. 이전 기록 역시 같은 건으로 인한 고공농성이었다. 바로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 이야기다. 2014년 차광호 씨가 408일간 벌인 고공농성이 바로 이전 기록이었다. 지금은 박준호 씨와 홍기탁 씨 두 분이 동료의 기록을 갱신했다. 이전에 고공농성을 했던 차광호 씨는 현재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고, 29일째다. 파인텍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자 무기한 연대단식에 돌입한 4명(박래군․나승구․박승렬․송경동)은 21일째다. 그리고 김우 씨는 15일차, 이해성 씨는 14일차 단식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굴뚝 위 두 노동자가 420일 이상 굴뚝 위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이 매우 나빠져 몸무게가 채 50킬로그램이 되지 않는데, 어제부터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통보하고 음식과 물을 전달하던 줄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굴뚝 위 농성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섭취하며 지냈을텐데, 여기에 더해 아예 곡기를 끊는다니. 아니 물조차 올려보낼 수 없다니. 이건 아예 그냥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75미터 굴뚝 위 좁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온갖 불편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여름의 그 폭염과 이 겨울의 혹한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저 높이에선 폭염과 혹한이 수십배는 더 심하게 느껴질텐데 말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언론은 그닥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하다. 연예인들의 온갖 잡다한 소식들이 각종 포털 사이트를 장식해도, 목숨을 걸고 악덕 기업메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다. 


작년에 마무리 했어야 할 일을 붙들고 사무실에 앉아,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주말 아이들이 왔을 때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었다고 페이스북에 자랑했던 일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마음을 보태는 일 뿐. 부디 무사히 내려오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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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8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1-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기사를 보았는데 회사가 얼른 근로자와 문제 해결을 했음을 하는 바램입니다.감은빛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감은빛 2019-01-08 19:11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말씀츠럼 회사가 얼른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하는 꼴을 보니
그렇게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ㅠㅠ
 

2018 이란 숫자에 1을 더할 순간이 지척이다. 이제 손 뻗으면 닿을 곳까지 다가왔다. 올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단위를 놓고 상대적으로 기억할만한 것들이 떠올라 끄적여본다.


담배가 줄다.


작년부터 담배가 별로 땡기지 않았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편집을 하거나 원고를 쓰느라 글을 붙들고 씨름하는 시간과 술에 취한 시간 외에는 담배를 그리 많이 피우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담배를 피웠던 건 늘 하는 변명,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 순간엔 담배를 입에 물고 깊이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쓴 소주를 탁 털어 넣는 것 외엔 다른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올해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여러번 있었는데, 그랬던 순간을 제외하고 평소엔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심지어 술 마실 때에도 담배가 땡기지 않아 다들 담배 피우러 나간 사이, 혼자 남아 소주를 홀짝이는 신기한 경험도 여러번 했다.


아,, 그렇다고 담배를 끊을 생각은 없다. 이러다가 또 언젠가 담배가 무척 땡기는 날이 올 지 모르고, 그때가 되면 주저없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담배가 타들어가는 소리를 즐길 것이다.


술이 늘다.


생각해보면 주량은 늘 고무줄처럼 줄었다가 다시 늘기를 반복했다. 술이 늘었다는 표현은 주량이 늘었다기보다는 술 마시는 횟수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제작년과 작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랬다는 말이다. 그건 이 재미없고 지긋지긋한 삶을 버티기 위해 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나와 같이 일을 해본 친구가 그랬다. 왜 니가 그렇게 술을 마시는 지 이제 알겠다고, 그전에는 술 좀 줄이라고 권하고 싶었으나, 이젠 그 말을 차마 못하겠다고. 술을 마셔야만 살 수 있다는 내 말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다만 그래도 몸 생각도 좀 하라는 충고는 잊지 않았다.


인정받거나 동정받거나


활동 경력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활동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나의 활동을, 어쩌면 나라는 존재의 일부분을 인정해주는 시선들을 느낀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를 할 수 있는 동물이고, 누군가에게는 동정을 받기도 했다. 아마 그건 작년을 비롯해 그 어느 해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올해 유난히 상반된 이 두 시선을 많이 느꼈다. 그건 내가 과거보다 더 예민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인정받는다는 건 기대가 커진다는 뜻이고, 기대가 커지면 나중에 실망도 커질 수 밖에 없는 법. 그러니 단순히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간사한 동물이라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은 또 기쁘다.


우리는 한 시도 쉬지 않고 굴러떨어지고야 말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포스일뿐. 그저 다음에는 좀 더 인정받기를 원하고 좀 덜 동정받기를 원할 뿐.


늙음


한때 동안이란 얘길 많이 들었다. 지금은 주위에서 왜 이렇게 늙었냐는 얘길 주로 듣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이렇게 술과 일에 파묻혀 살면서 늙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 예전의 나와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일을 즐겼다는 것. 지금은 그저 다른 방법이 없으니 버틸 뿐.


한 가지 아쉬움은 몸매는 다시 운동하면 만들수 있지만, 한번 늙어버린 얼굴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올해 유난히 팍 늙어버린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렵고 또 아쉬워 이젠 거울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확 줄었다.


운동하고 싶어


반대로 씻고 나서 벗은 내 몸을 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언젠가 페이스북에 "매일 아침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몸에 반한다. 내 몸 왜 이렇게 예쁜거냐!" 라고 썼더니, 누군가 어떻게 그런 표현을 공개적으로 올릴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여성 분은 본인이 무척 부끄럽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예쁜데 어떡하냐?" 되물었다.


그건 아마 작년 여름 일이었다. 공복에 운동을 하면 복근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시간들. 하지만 그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로 거의 운동을 못했다.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어깨 부상의 영향으로 상체 근력운동은 아예 하지 못했고, 가끔 하체 맨몸 운동 위주로 했다. 그나마 늦봄에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서 다시 운동을 시작해 짧은 기간 여름 대비 몸매를 만들었다가, 여름 휴가를 가기 직전에 무릎을 다쳐서 다시 운동을 중단해야 했다. 이번엔 무릎 뿐 아니라 어깨, 손목, 발목, 골반까지 몸 전체의 관절이 다 아팠다. 그 상태로 겨울까지 쭉 운동을 할 수 없었다. 가끔 철봉에 매달리면 손목과 어깨 통증을 느껴 신음이 흘러나왔고, 하체 운동을 해보려면 무릎과 발목 통증을 느꼈다.


작년 여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벗을 몸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건, 그 전에 만들어놓은 근육량과 확 줄인 식사량 덕분일 것이다. 사실 나날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근육을 보며 마음이 초조하다. 애들 엄마가 작은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내 배를 보고 "니가 임신했냐?" 고 던진 말에 충격받아 다시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몇 년의 결실이 금방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금 아주 조금 여유를 갖자


최근 몇 개의 아주 어두운 글을 쓴 것처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이 꼬여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일터 일과 가족 관계와 사회 문제 그리고 내 마음까지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 중 가장 큰 슬픔 중 하나는 사춘기 아이와의 소통 문제였다. 우리 딸은 착하고 순해서 그럴 일이 없을거라 여겼건만, 아이는 격렬하게 사춘기를 지나는 중이었고, 그만큼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나와 충돌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가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자기 키가 내 얼굴까지 닿는다며 즐거워하던 최근까지의 시간들이 머릿 속을 스쳐가며 안타까웠다. 안아달라고 보채던 마냥 귀여웠던 아이는 이제 온 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밀어내고 있었다. 안그래도 몸도 마음도 피폐한 나는 아이의 태도에 배신감을 느껴 화를 내고 말았고, 그 화는 아이를 더 밀어내고 말았다.


한 발짝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구보다 격렬하게 사춘기를 보내지 않았던가. 그저 전부 모순되고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 반항과 폭력의 기억들. 그리고 착하기만 했던 아들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난폭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면서도 끝까지 믿어준 부모님이 떠올랐다. 나 역시 아이에게 그런 아빠여야했다. 끝없이 아이를 믿어주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아빠가 되어야 했다. 세상이 전부 아이에게 등을 돌려도 나만은 아이를 안아줘야 했다.


다만 그냥 다가가서 안으려고 하면 아이는 한 발 물러선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그시절엔 나도 그랬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이에게 언제나 아빠가 여기 있다는 걸. 필요하면 늘 손을 뻗어준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다. 작은 여유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려도 한 숨 돌릴 여유는 있는 법. 지금 이 바쁜 와중에도 이 글을 두드리듯이 늘 찾으면 여유는 생기는 법. 아이와의 관계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모두 여유가 생겨야 볼 수 있는 법이다.



운동이 꼭 필요해

















지금처럼 술과 일에만 빠져 살아서는 그 여유를 가질 수 없다. 지금 내게 운동이 꼭 필요한 이유다. 여러 해 전, 골반 부상으로 몇 달을 절뚝거리며 살았던 시절 저 두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운동법으로 도움을 받았다기 보다는 저자의 삶의 태도, 운동에 임하는 자세 등 정신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다시 저 책들을 들쳐봐야겠다.


깊고 넓은 늪 속에서 조금씩 몸을 끌어올려야겠다. 언제까지 늪에 빠진 몸을 내려다보며 신세 한탄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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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면서 단 한번도 제 몸을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 없는 운동기피자로서, 멋있고 부럽습니다......

2018 감은빛 님의 손에서 살짝 벗어난 것들이 죄다 웃으며 돌아오는 2019를 기원합니다^-^

감은빛 2019-01-07 20:57   좋아요 0 | URL
저는 쇼님이 무지 부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시는지.
하루종일 책만 읽어도 그렇게는 못 읽을 것 같은데요. ^^

새해 좋은 일들 가득하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18-12-2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헬스센터에 다니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러닝 머신 뛰면서 예쁜 몸매 만드는 일이 즐겁다고요.
건강만 생각한다면 운동할 마음이 크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운동할 땐 몸매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봤자지만요... ㅋ

감은빛 2019-01-07 20:59   좋아요 0 | URL
몸매를 가꾸려 운동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요.
저는 몸매가 목적은 아닙니다만,
운동을 하고도 몸매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건 좀 억울하긴 하더라구요.
사실 먹는 걸 조절하지 않으면 열심히 운동해도
저절로 몸매가 따라오진 않더라구요.

2018-12-28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7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12-31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하시는 바 많이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감은빛 2019-01-07 21:0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인사말씀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18-12-3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이 시작입니다.
새해에는 올해 오지 못했던 행운까지 더해서 늘 좋은 일들 함께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따뜻한 연말과 행복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은빛 2019-01-07 21:0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인사말씀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영상 세대


아이들을 보면 확실히 요즘 애들은 유전자 자체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늘 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폰으로 셀카를 찍거나 영상을 찍는 걸 보면 그렇다. 한번은 애들 밥 챙겨주느라 주방에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내 폰으로 영상을 찍었더라. 자기 장난감이나 인형을 막 소개하고,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걸 막 설명하고, 그러다 내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고 막 소개했더라. 어디서 이런 걸 배워서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늘 보던 유튜브 채널을 따라하는 거였다.


작은 아이가 자기 물건들 하나씩 보여주고, 소개하다가 뭔가 더 없어서 내 물건들을 막 뒤져서 꺼내오는데, 대학 시절부터 갖고 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예전에 아이가 뒤져봤던 거라서 거기에 예전 내 사진들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거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군대 때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그리고 오래된 신분증들. 학생증, 도서관증, 태권도 단증 등등 이런 것들에 있는 내 사진들을 막 영상에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 여깄네


나중에 아이가 단체 사진들에서 아빠를 찾겠다고 했다. 찾아보라고 했더니 대학 시절 동기들과 찍은 사진들이나, 동아리 단체 사진에서는 금방 나를 찾아냈다. 그러다 군대에서 완전 군장에 총까지 메고 찍은 사진들에선 쉽게 찾지 못했다. 당연히 방탄모를 써서 얼굴이 잘 안 보이니 찾기 어려울 수 밖에. 결국 아이가 힌트를 달라고 했다. 그제서야 나도 자세히 살펴보니 소대 전체가 같이 찍은 사진에선 나도 나를 못 찾겠더라. 근데 가만 떠올려보니 그때 내가 분대장이었단 걸 기억해냈고, 견장과 호르라기를 차고 있는 나를 곧 발견했다.


아이에게 남들한테 없는 걸 어깨에 달고 있다고 했더니, 그래도 사진이 작아서 잘 찾지 못하더라. 그래서 아이가 다시 왼쪽, 중간, 오른쪽 중에 어디냐고 묻더라. 당시 내가 가장 선임 분대장이라 가장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중간이라고 알려줬더니. 두세번 만에 아이가 찾아냈다. 아~ 아빠 여깄네. 


아빠 책 읽어 줄게


주말 아침에 피곤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로만 애들 뭘 좀 먹여야 하는데, 피곤해서, 이불 밖이 너무 추워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었다. 큰 아이가 깬 걸 느끼고, 작은 아이가 내 품으로 쏙 파고들어서 춥다고 속삭이는 걸 듣고 반사적으로 아이를 꼭 껴안고 토닥여줬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아이들이 배고프단 소리가 나올 때쯤에야 일어나서 먹을 걸 챙겼다.


밥을 먹이고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누워있는데, 아이가 책을 읽어주겠다고 그림책을 가져왔다. 동물들과 관련한 몇 개의 짧은 에피소드가 있는 그림책이었는데, 아마도 싸구려 전집에 포함된 책이었던지, 정식 판매하는 책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용도 뭐 별 내용이 없었는데, 아이는 그 별거 아닌 게 그렇게 웃기다며 막 웃었다.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과장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열심히 읽어주곤 했는데, 이젠 그 쪼그맣던 녀석이 나에게 책을 다 읽어주는 구나 싶었다. 별로 재미없었지만, 아이가 열심히 읽어주는 걸 보고 급 반성하고 열심히 들었다. 다음에 또 읽어달라고 해야겠다.


아빠 게임하자


토요일에 아이들과 동네 서점에 가서 책과 문구류 등을 샀다. 가방 속에 몇 년째 숨어있었던 5만원 상품권으로 모자라 추가로 돈을 써야 했다. 그 와중에 작은 아이랑 문구 코너를 돌다가 보드게임을 하나 샀다. <식객> 이란 게임이었고, 전국을 돌며 음식을 맛보고 포인트를 모으는 방식이었는데, 살짝 아쉬웠다. 뭔가 집중이 잘 안되고 허술한 느낌.


한동안은 아이들과 트럼프 카드 게임을 많이 했다. 나도 어릴때 여러 종류의 카드 게임을 자주 했고, 많이 알고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애들하고 하려니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 그래도 애들하고 어울려 제법 자주 했는데, 요새 큰 아이가 시들해하니 작은 아이랑 둘이서만 하는 건 또 별로 재미가 없더라.


또 한동안은 애들과 윷놀이도 자주 했다. 우리 지역의 어느 사회적기업에서 우리 동네 사회, 경제, 문화적 자원들을 배치한 지도로 윷놀이 판을 만들었는데, 정말 아이디어 좋게 잘 만들었다. 그걸 말판으로 놓고 윷놀이를 하면 자주 다니는 익숙한 공간들 위에서 윷놀이를 하는 것이라 애들도 좋아했다.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계속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폰으로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그것보다 주기적으로 애들이 질리지 않을만한 재미있는 게임들을 찾아보고, 개발해야겠다. 예전엔 그런 궁리를 많이 하고 살았는데, 요샌 여유가 없으니 생각도 못했다.


연말


벌써 꽤 오랫동안 침체기에 푹 빠져 있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정말 올해가 며칠 남지도 않았다. 일이 안 풀려도 지독하게 안 풀려서 정말 저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막판에 하나 기분 좋은 성과를 올렸다. 덕분에 칭찬도 좀 받고 격려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아주 조금은 올라온 듯하다.


그래도 연말 안에 끝내야 할 일들과 1월 초까지 마쳐야 할 프로젝트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절로 한 숨이 난다. 벌써 이틀째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야근 중인 지금 술 한 잔 생각이 간절하지만 참고 있다. 오늘은 공식적인 송년회 일정도 하나 있었지만, 일 때문에 포기했고, 친했던 후배로부터 따로 연락이 왔건만 그것도 거절했다.


기억해보면 작년 이맘 때는 완전 술독에 빠진 것처럼 매일 술을 퍼부으며 지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그래도 작년 보단 조용히 보내는 구나.


워낙 주변에서 걱정어린 시선과 건강을 염려하는 말들을 많이 받고 들어서, 이젠 좀 멀쩡한 것처럼 연기라도 해야겠다 싶다. 실제 이 긴 침체기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를 올라올 날이 언제일 지는 몰라도 이대로 계속 가다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를 걱정하고, 소문이 퍼질 것 같아서 안되겠다. 과연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를 속인다는 각오로 혼신의 연기를 펼쳐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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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7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0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7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8-12-20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초등학생들은 유트브 계정이 있는 아이들이 최고 인기인라고 하더군요^^

감은빛 2018-12-27 20:1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직접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 같아요.

정말 유전자 자체가 다른 아이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들어요.
 

잔뜩 흐린 하늘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냥 만사가 다 싫고 그 중에서 나 자신이 제일 싫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없어졌으면 싶었다. 사실 간단하다. 내가 없어지면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까.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만, 내 기준에선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난 이미 없어졌으므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세나 윤회는 없다. 애초에 종교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일 뿐.


어제 평소보다 목을 더 많이 써서 오늘 하루종일 목이 아팠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후로 내 원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목소리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톤이 더 낮아졌고 굵어졌다. 원래 목소리가 작고 목이 약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스트레스를 이유로 담배는 또 줄창 피워댔다.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 연기를 내 뱉었다. 타들어가는 담배소리를 들으며 한숨 또 한숨, 후회 또 후회가 이어졌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나는 그에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을까?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그냥 내가 못난 사람임을 인정하면 되었을텐데, 왜 그에게 상처를 주며 허세를 부렸을까? 그는 또 왜 그날 따라 그렇게 신경질 적이었을까?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조금만 더 화를 덜 냈다면, 조금만 더 톤을 낮췄다면 그렇게 까지 되지 않았을텐데. 사실 계속 두려웠다. 이 관계가 쉽게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깨져버릴까봐.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을 잃게 될까 싶어 늘 두려웠다.


뭐라고 해야할까? 어떻게 연락해야 할까? 연락을 받아주긴 할까? 그냥 아무런 예고 없이 훌쩍 찾아가서 사과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을까?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고민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다 타버린 담배를 던져버리고, 발로 밟았다.




생활비를 다 써버려 라면 하나 사지 못하고 이틀째 굶고 있던 날, 그는 엄마 몰래 반찬과 밥을 잔뜩 싸서 가져왔다. 몰래 가져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설명하면서 그는 내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오빠를 위해 이렇게 애 썼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했다.


그는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었지만, 주말마다 꼬박꼬박 나를 만났다.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싶었을테지만, 일찍 일어나 내 자취방에 와서 먹을 걸 챙겨주고, 피곤하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눕곤 했다. 난 그런 그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함께 누워 있는 것이 좋았다. 문득 잠이 들었다 깨면 그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 좋았다.


그는 화를 냈다. 집안 곳곳을 뒤져 겨우 찾아낸 동전 몇 개로 라면을 두어 개 살 지, 담배를 살지 고민하다가 결국 담배를 사는 나를 보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왜 오빤 자기를 아끼지 않아? 왜 오빤 오빠를 함부로 굴려? 제발 그만해! 지긋지긋해!


글쎄 어떻게 답해야 했을까? 소설을 쓰겠다고 골방에 칩거하며 산 게 벌써 몇 달째였다. 집에서 보내주는 얼마 안 되는 용돈으로는 한 달을 버티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돈은 밥과 반찬이 아니라 담배와 술 값으로 대부분 나갔다. 수입 없이 더 버티기 어려워 결국 학원 강사를 선택한 날, 난 마음 속으로 소설을 포기했다.


어쩌면 그랬다. 나는 소설가가 될 수 없었다. 내 주제에 무슨. 하지만 찌질한 나는 뭔가 구실이 필요했다. 지긋지긋하다는 그의 말이 그 구실이 되어 주었다. 나는 편하게 그를 원망하며 소설을 접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내가 부족해서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고 나는 마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수도 있었는데, 그의 말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기억을 조작했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제일 싫은 건 나 자신이었다. 그는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내가 싫다 했다. 나도 내가 싫다 그래서 나를 잘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싫은 사람을 누가 잘 돌보겠나.


나는 사실 신기했다. 나조차 싫어하는 나를 좋아해주는 그가 신기하고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불처럼 내게 빠져들었다. 허세에 가득 찬 교만하고 삐딱한 인간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나조차 좋아하지 못하는 날 좋아하고 챙겨주는 그를 잃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고 싫다. 잃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젠 느낄 수 있다. 이 관계가 이젠 더 이어지지 어려울 수 있겠다. 돌릴 수만있다면 뭐라도 하겠지만, 돌릴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걸 안다.


슬픔을, 아픔을, 구차함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 차라리 그만두면 안 될까? 이렇게 힘든 삶이라면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그만둘 용기조차 없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는 오늘도 온갖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 시키며 살아간다. 그 옛날 그랬듯이.언제나 그랬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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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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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9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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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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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8-12-1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허지원 임상심리전문가의 책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를 추천합니다.
어쩌면 눈꼽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어요.

감은빛 2018-12-19 19:55   좋아요 0 | URL
뇌과학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