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 기록 갱신 중인 고공농성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정말 힘들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 때문에 옥상을 살펴봐야 할 일이 생긴다. 그나마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면 괜찮지만, 가끔 사다리로 올라야 하는 경우는 좀 무섭다. 작년 여름엔 긴 사다리로도 옥상까지 닿지 않아, 사다리 맨 끝에서 약 1미터 이상을 팔 힘으로 버텨 올라야했다. 사다리 자체도 부실해서 휘청거려 오르는 동안 불안했지만, 맨 끝에서 양 팔에 힘을 주고 몸을 끌어올일때는 이러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얼마나 다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옥상에 올라서도 작업하는 내내 많이 불안했지만, 가장 무서울 때는 내려올 때였다. 몸을 뒤로 상체를 양 팔로 받친채 하체를 내려 사다리를 밟아야 했는데, 사다리가 멀리 있어서 발이 잘 닿지 않았다. 간신히 사다리에 발이 닿아 내려올 수 있었는데, 대략 3~4분 남짓 걸렸을 그 시간 동안 나는 몇 십번이나 미끄러져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해가 바뀌어 이젠 작년이 되어버린 12월 초엔 또 눈이 쌓인 곳의 철제 사다리를 밟고 옥상을 올라야 했는데, 사다리가 많이 미끄러웠다. 그때도 역시 미끄러져 곤두박질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무려 75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서 420일이 넘게 농성중인 두 노동자가 있다. 오늘(1월 7일) 기준으로 422일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매일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 중이란다. 이전 기록 역시 같은 건으로 인한 고공농성이었다. 바로 파인텍 해고 노동자들 이야기다. 2014년 차광호 씨가 408일간 벌인 고공농성이 바로 이전 기록이었다. 지금은 박준호 씨와 홍기탁 씨 두 분이 동료의 기록을 갱신했다. 이전에 고공농성을 했던 차광호 씨는 현재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고, 29일째다. 파인텍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자 무기한 연대단식에 돌입한 4명(박래군․나승구․박승렬․송경동)은 21일째다. 그리고 김우 씨는 15일차, 이해성 씨는 14일차 단식 중이라고 한다.


문제는 굴뚝 위 두 노동자가 420일 이상 굴뚝 위에서 생활하면서 건강이 매우 나빠져 몸무게가 채 50킬로그램이 되지 않는데, 어제부터 단식에 돌입하겠다고 통보하고 음식과 물을 전달하던 줄을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굴뚝 위 농성은 그 자체로 최소한의 음식과 물만 섭취하며 지냈을텐데, 여기에 더해 아예 곡기를 끊는다니. 아니 물조차 올려보낼 수 없다니. 이건 아예 그냥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 75미터 굴뚝 위 좁은 공간에서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온갖 불편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여름의 그 폭염과 이 겨울의 혹한을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저 높이에선 폭염과 혹한이 수십배는 더 심하게 느껴질텐데 말이다.


이런 지경인데도 언론은 그닥 관심을 두지 않는 듯 하다. 연예인들의 온갖 잡다한 소식들이 각종 포털 사이트를 장식해도, 목숨을 걸고 악덕 기업메 맞서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다. 


작년에 마무리 했어야 할 일을 붙들고 사무실에 앉아,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지난 주말 아이들이 왔을 때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었다고 페이스북에 자랑했던 일이 괜히 부끄럽게 느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마음을 보태는 일 뿐. 부디 무사히 내려오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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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8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9-01-08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기사를 보았는데 회사가 얼른 근로자와 문제 해결을 했음을 하는 바램입니다.감은빛님 늦었지만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감은빛 2019-01-08 19:11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말씀츠럼 회사가 얼른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스타플렉스 김세권 사장이 하는 꼴을 보니
그렇게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