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큰 아이가 학교에서 '어린이날 노래'를 배웠다고 자랑하며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중간 중간 가사를 잘 모르길래, 나도 오랜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가르쳐주었다. 그러고보니 어린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며 '오월이 푸르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나는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에 둘러쌓인 대도시에 안쪽에 살고 있었다. 좀 걸어나가면 제법 큰 천(川)이 하나 있었지만, 그 천 마저도 콘크리트로 덮혀있었고, 일년의 대부분은 쫄쫄쫄 가는 물줄기의 냄새내는 똥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오월과 푸르다는 단어는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중에 조금 더 자라서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했을 때, 비로소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따라 자연이 바뀐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TV 화면이 아닌) 보게 되었다. 산을 오르내리고, 계곡과 들판과 언덕을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시절이다. 지금 그 곳에 가보면 이미 계곡과 들판과 언덕은 다 사라졌고, 오르내리던 산 마저도 중턱까지 아파트가 올라가있다. 지금 아이들은 뛰어놀 언덕과 들판과 계곡을 잃어버리고, 집 앞까지 들어온 자동차와 오토바이 덕분에 골목에서 조차 맘껏 뛰어 놀지 못하고 있다. 모래조차 없이, 폐타이어를 깔아놓은 좁은 놀이터에서 간신히 미끄럼틀과 그네 정도만 타고 놀아야 하는 아이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직 도시 안쪽에 살았던 그 시절에도, 비록 콘크리트 바닥이긴 했지만, 어린 나이때부터 동네를 쏘다니며 아이들끼리 어울려서 놀곤 했다. 유치원 따위는 다니지도 않았고, 매일 아침먹고 나가서 놀다가 점심 무렵 들어와서 밥먹고 잠시 졸다가 또 뛰어나가 놀았고, 해질녁에야 겨우 들어와서 다시 저녁을 먹었다. 흙 한 톨 없는 아스팔트 바닥에서도 그렇게 열심히 놀았다. 그때는 골목으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뛰어다니다가 차에 치일 일은 없었다. 가끔 덩치 큰 개와 자전거를 조심해야 했다. 그시절과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지만 집앞 골목길을 함부로 내보낼 수가 없다. 차에 치일까봐 혹은 험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큰 아이는 여전히 길을 걷다가 차나 오토바이가 달려오면 무서워하며 내 손을 꼭 잡는다. 동네 놀이터에 한번 가려고 해도 꼭 부모와 함께 다녀야 한다. 동네 구멍가게(이런 가게가 이젠 거의 남아있지도 않지만)에 심부름을 한번 보내는 것도 안심할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곳까지 따라가서 지켜봐야 한다.

 

게다가 오월이 너무 덥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보다는 '기후변화'라는 말을 써야한다고 하는데, 어쨌든 오월 초의 날씨가 거의 초 여름 수준이다. 이 더운 날씨에 뛰어 놀으라고 했더니, 금방 땀을 뻘뻘 흘린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두 반팔을 입었다. 기억 속의 내 어린이날들 중에서 한 번도 반팔을 입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얇은 봄 잠바를 입고 있는 사진은 기억난다.

 

그래도 오월이다. 그래도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은 열심히 뛰어놀고 또 열심히 자란다. 아이들 선물과 조카들 용돈에 주머니는 가벼워졌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은 좋다.

 

 

 

아래는 어제 파주 어린이책잔치에 가서 구경하거나 구매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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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5-07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죠~?^^
정말 '푸르다'를 '덥다'로 개사해서 불러야할 것 같아요.
윤달이 들어서일까요?
아님,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이상기후 때문일까요?^^

감은빛 2012-05-09 14:58   좋아요 0 | URL
양철님! 오랫만이지요?
한반도의 기후 패턴 자체가 바뀐게 아닐까라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요 몇 해동안 늘 정상적인 날씨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잘 지내시고, 언젠가 약속을 지킬 기회를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

기억의집 2012-05-0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시절 변두리에 살아서 그런지 주변이 다 배밭이어서 무서울 때가 있었어요. 학교 갈 때 작은 산도 넘어갈 정도였는데, 그 나트막한 산도 이십대 시절에 아파트단지로 변하더라구요. 초등학교땐 동네에 개천이 있을 정도였으니깐요. 불과 이십년이 넘은 그 기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아요. 강남이 80년대 초중반서부터 개발되었으니깐요.

도시화가 무섭긴 하죠. 딸애가 11살인데 학교등하교를 제가 다 해 줍니다. 혹시나 해서.

감은빛 2012-05-09 15:04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그랬죠. 80년대 초만해도 왠만한 변두리는 아직 자연이 남아 있었을텐데요.
2~30년 사이에 자연이 참 많이 망가지고 없어졌습니다.

11살인데도 여전히 등하교를 다 해줘야하는군요.
저희는 아침에 제가 데려가고,
점심식사후에 아내가 데리러 갑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나 조금 고민이 되네요.
 

 

의욕상실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작년 가을부터 녹색당을 창당하기 위해 뛰기 시작하여, 총선일정에 맞춰 어렵게 창당을 이루고, 쉴 틈도 없이 총선준비로 들어갔다. 처음으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을 위해 선거운동이란 것도 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뭔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현실이었다. 기적처럼 어렵게 창당한 녹색당은 선거에서 득표율 2%를 채우지 못해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녹색당 뿐 아니라 이번 총선에 참여한 신생(소수)정당들은 모조리 같은 운명이 되었다. 진보신당도, 청년당도 모두 등록취소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어이없는 결과가 나왔다. 녹색당의 결과도, 진보신당의 결과도, 새누리당의 결과도 모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해서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다. 다만 기적같은 창당을 이룬 녹색당이 뭔가 이변을 가져오기를 간절히 바랬고, 그랬기에 그토록 열심히 움직였던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거의 넋을 놓고 며칠을 보낸 듯 하다. 밤 늦도록 술도 많이 마셨다. 낮엔 또 일터에서 미처 신경 못쓰고 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었다. 대체 지금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번 하고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더 늦기전에 멘붕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언가 전환점이 필요하다. 그 전환점이 되어줄 사건을 이번 주말에는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봄에는 도감을

 

봄이 오긴 왔나보다. 마음은 아직 춥기만 한데, 몸은 따뜻한 날씨에 반응하고 있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올리는 봄 꽃 사진들을 보며 얼어붙어버린 마음을 조금씩 녹여가야겠다. 봄이다. 이번 봄에는 아이들과 함께 도감을 열심히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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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2-04-21 0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운 내세요. 도감들고 들로 산으로 나가보는 것도 좋겠네요.

감은빛 2012-04-27 17:49   좋아요 0 | URL
날씨가 따뜻했다가 또 추워지고,
주말에 나가려고 했더니 또 비가오고.....
이번 봄엔 뭔가 잘 안맞는 듯 하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카스피 2012-04-2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술에 배부를순 없지요.통합 진보당의 경우 13석의 의석을 갖기위해서 수십년간 각곡의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녹색당의 진심도 조만간 국민들이 알아줄날이 옵겁니다.
감은빛님 기운내셔요^^

감은빛 2012-04-27 17:50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의 말씀 덕분에 힘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차트랑 2012-04-2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매체를 바라보는 국민의 의식이 매체의 질을 결정하듯....
국민이 녹색당의 참 뜻을 이해해 줄 날이 올것이라 믿습니다.
원자력의 위험성과 청청에너지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긍정적 변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박혜령 후보가 출마한 울진은 공해에 찌든 서울에 비하면
참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다음을 위해 다시 준비하셔야죠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감은빛 2012-04-27 18:03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늘 따뜻한 응원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시까지 남겨주시다니!
천천히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녹색당은 이미 '녹색당 더하기'라는 임시 이름으로 재창당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차트랑 2012-04-27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창당을 하셨군요.
제 발로 뛰지는 못하더라도 관심과 응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더욱 힘 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12-05-08 17: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봄나무 2012-05-0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른길을 위한 목소리는 소수여도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시길!!! 저도 관심가지고 지켜볼게요

감은빛 2012-05-08 17:51   좋아요 0 | URL
봄나무님 고맙습니다!
녹색당의 존재에 대해 주위 분들에게도 알려주세요! ^^
 
나무 심으러 몽골에 간다고요? 웃는돌고래 그림책 1
김단비 글, 김영수 그림, 푸른아시아 감수 / 웃는돌고래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나무 심으러 몽골에 가보자!

 

2000년 여름 몽골을 방문했다. <한국 휴먼네트워크>와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 NGO>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몽골생태투어였다. 당시 나는 어느 학회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학회 지도교수님의 소개와 지원 덕분에 우리 학회에서 4명이 생태투어에 참여했다. 생태투어에 앞서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막화방지운동에 참여했다. 학교 내에서 사막화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허브를 판매하여 수익금을 몽골 식수기금으로 보태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한편 생태투어에서 나는 단순 참가자가 아닌 전체 행사 중에 하나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 NGO에서 활동하는 학생들과 소통하며 생태투어 중간쯤에 한·일·몽 문화교류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도 서툴렀지만 뭔가 해보려는 열정으로 부딪쳐야했다. 게다가 생태투어에 참여하는 후배 3명만으로 행사를 준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후배들과의 일을 나누고 조율하는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고, 덕분에 대부분의 일을 혼자 처리했고, 그래서 더욱 후배들과 거리가 생겼다. 몽골에 도착해서도 문화교류행사의 밤을 치루기까지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때 그나마 기분이 풀어지게 된 것은 몽골 청년들과의 만남이었다.

 

문화교류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인교회에 다니는 몽골 청년의 도움을 받았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마른 느낌이었다. 선한 눈동자에 웃는 얼굴이 참 좋았다. 그가 떠듬떠듬 우리말을 조금 했지만,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다. 뭔가 급하게 물어볼 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면 좀 답답했지만, 손짓 발짓 해가면서 어떻게든 준비를 해나갔다. 둘이서 물건을 사러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아다녔던 햇살이 유난히 따갑던 몽골의 여름 오후가 마치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충분히 했던가? 내 스트레스 때문에 좀 더 친절하게 잘 대해주지 못한 것 같은 맘이 들어 살짝 후회가 된다.

 

또 한명의 인연은 좀 별나게 만났다. 우리가 묵었던 외국인 전용 숙소의 야간 경비를 서는 경찰이었다. 문화교류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숙소에서 선, 후배들과 술을 한잔 하다가 혼자 담배를 물고 건물 밖을 나와서 서성였다. 경비사무실에 근무하던 경찰(경비원이 아닌 진짜 경찰이었다.)이 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라”는 말이라고 혼자 짐작을 했다. 담배를 끄고 방으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나왔는데, 이번에도 그 경찰이 다가왔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계속 듣다보니 같은 말을 반복했고, 나중에는 내가 물고 있던 담배를 가리켰다. 아! 담배를 달라는 뜻이었구나! 흔쾌히 한 개비를 꺼내주고, 불을 붙여줬다.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후에 그는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와 담배를 나눠 피우고, 간식꺼리를 나눠주기도 하면서 12시 즈음부터 새벽 4시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둘이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냥 손짓 발짓, 억양과 말투 등으로 판단했고, 나중에는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나눈 대화를 통해 그가 나와 같은 나이이고(훨씬 더 많아 보였다!)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참 독특한 경험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책은 몽골에 나무를 심으러 간 힘찬이가 몽골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또 몽골 친구를 사귀고 돌아오는 내용을 짧은 분량에 잘 담고 있다. 이 책을 감수한 단체는 <푸른아시아>로 힘찬이는 바로 <푸른아시아>가 주최하는 에코투어에 다녀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한국 휴먼네트워크>는 이후 이름을 두 번 바꾸었는데, 현재의 이름이 바로 <푸른아시아>이다. 즉 나는 힘찬이보다 십여 년 전에 같은 단체에서 주관하는 같은 프로그램에 다녀온 것이다.(물론 그 동안 프로그램이 훨씬 더 많이 좋아졌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몽골의 경험들이 하나둘 다시 떠올랐다. 말을 타고 달릴 때의 짜릿한 느낌. 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힘겨웠던 식사시간. 시큼한 마유주의 맛. 드넓은 초원과 황량한 사막. 4인용 게르에서 혼자 춥고 외롭게 보낸 밤. 위에서 언급한 친구들 외에도 몽골에서 만난 선한 사람들. 이 책을 읽고 몽골에 나무 심으러 한번 가보시길 권한다. 단순히 나무만 심고 오는 행사가 아니라 몽골의 문화를 겪어보고, 나무도 심어서 사막화를 막고,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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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정치 혐오

돌이켜보면 나는 정치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아니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가 노동운동을 하셨고, 80년대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면서 정치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 살림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몸을 바쳐 정치를 하셨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모셨던(이건 아버지의 표현이다.) 분은 아버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다.(그때 함께 버려진 사람이 노무현이다.) 3당 합당이 기정사실이 되면서 아버지는 당을 나오셨다. 그리고 다시는 정치판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돈을 버는 재주는 정말 없었지만, 운동과 정치판에서는 무척 유능한 분이셨다. 학생때는 학생회장. 노조에서는 노동조합장. 정당에서는 사무국장.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아버지가 당을 떠난 후에도 선거철이 되면 유능했던 아버지를 찾는 전화가 종종 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셨다.

내가 정치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정치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된건 아마 아버지의 영향일까? 아니면 고등학교 때 사회에 대한 눈이 띄인 이후로 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면을 봐왔던 덕분에 더러운 정치의(그리고 정치인의) 이면을 자주 봐왔기 때문일까? 아마도 둘 다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와 뜻을 같이하는 진보정당 조차도 지지는 할 수 있지만, 그 판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그닥 정의롭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노무현 정권에서 정치를 시작했을 때에도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실망했다. 노무현 정권의 마지막 무렵 한미FTA를 두고 정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이던 그 교수님은 나의 안부전화를 받지 않으셨다.(아마 단순히 바빠서 못받으셨을 수도 있다.) 범국본에 관여하고 있었던 제자와 청와대에 있었던 스승은 그 이후로 다시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물론 그 뒤로 연락을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다.)

운동의 한계, 정치의 필요성

정치에 대한 혐오는 갖고 있었지만, 진보정당처럼 우리의 뜻을 대변해줄 정당과 정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새만금과 고속철도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던가! 예전에 다른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새만금 개발과 경부고속철도 건설은 모두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국책사업이었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정치인의 말 한마디 때문에 벌어진 끔찍한 환경파괴 사업이었고, 온갖 비리로 얼룩진 더러운 사업이었으며, 국민의 혈세를 국토를 파괴하기 위해 낭비한 사업이었다.

공교롭게도 국토의 파괴와 경제성장 따위는 전혀 관계없이 말 한마디 뱉은 노씨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나 많은 국민들이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추앙하는 노씨 대통령 재임시절에 나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장과 경부고속철도 공사 예정지역에서 땀과 눈물을 쏟으며 깨달았다. 환경운동만으로는 안된다! 이 땅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대변할 진보정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그릇된 정치 논리에 맞서 올바른 정치를 펼쳐나갈 녹색 정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시절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생태운동가인 프란츠 알트씨를 만났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적으로 그 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 분께 독일 녹색당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에도 꼭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여러번 해주셨다.

실패와 성공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초록정치연대의 존재를 알게되었다. 그들은 내가 원했던 바로 그 녹색 정치를 이 땅에서 시도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때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는 몇가지 이유 때문에 힘을 보태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무엇보다 이명박의 오랜 삽질과 후쿠시마의 핵폭발사고 등으로 인해 이 땅에 녹색 정치가 좀 더 간절해졌다. 처음에는 나도 조금 고민을 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괜히 실패의 횟수를 한번 더 늘리고 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어느 순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합리적인 이유를 대기 어렵지만, 녹색당 창당에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녹색당이 창당하고, 지금 첫번째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지독한 정치 혐오자였다. 정치가 처음이고 낯선만큼, 선거운동이란 것도 처음이고 낯설다. 하지만 하루종일 수시 때때로 나는 선거에 대해 고민하고,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선거운동이 뭐 그리 대단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생활속에서 사소한 것부터 고민하다보면 뭐든 다 선거운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요즘 즐겁게 깨닫는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행복한 모임

녹색당 동료들과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오면서, 한편으로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곰곰히 그 이유를 따져봤다. 합리적인 이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저 사람들이 좋았다.

우리지역 녹색당원들의 첫 모임에서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늘 혼자이거나 소수였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주장을 해도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았는데, 오늘 우리 동네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하고 깨닫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실제 그 분의 말씀이 조금 각색되었을 수도 있음!) 그말을 듣고 나서 나도 새삼 깨닫는다. 녹색당이 꼭 필요한 이유! 녹색당이 좋은 이유! 녹색당에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사람때문이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난 늘 소수였는데, 여기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만나다니! 반갑고 또 행복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모임이 이 나라의 요상하고 해괴한 선거법 때문에 창당하자마자 다시 사라지게 놔둘 수는 없다. 이제 막 돋아난 새싹인 녹색당이 무럭무럭 자라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탐스러운 과실을 맺게 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분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4월 11일에는 꼭 투표장으로 가셔서, 녹색인 정당투표용지에 11번 녹색당을 찍어주시기를!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선택!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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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09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4-0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녹색당을 적극 지지합니다~!!!
(선거법에 위반되는 발언이라면 지적해주십시요~)

오해는 하시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감은빛님 사랑합니다~!!!^^

감은빛 2012-04-09 16:23   좋아요 0 | URL
선거법 위반 아닙니다!
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매번 제 글에 1등으로 댓글 달아주시는데,
저는 통 찾아뵙지도 못해 죄송합니다.
선거가 끝나면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차트랑 2012-04-10 01:22   좋아요 0 | URL
선거에서 뜻하시는 바를 꼭 이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녹색당, 적극 지지합니다!!

글의 추천수가 아주 많습니다.
힘내십시요!!!

굿바이 2012-04-08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짝짝!!!! ^^

감은빛 2012-04-09 16:24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2-04-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이 선전하길 기원합니당^^

감은빛 2012-04-13 01:07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고맙습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 선거법상 정당등록이 취소되지만,
녹색당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 땅의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다윈의 동물원 - 국어 선생님의 논리로 읽고 상상으로 풀어 쓴 유쾌한 과학 지식의 놀이터 1
김보일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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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일 선생님은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지만, 과학책을 아주 열심히 읽는 분이시다.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라는 책도 내셨는데, 거기엔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셨을지 궁금하다. 마침 『다윈의 동물원』을 끝냈으니, 이번에는 그 책으로 넘어가봐야겠다. 『다윈의 동물원』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생물과 진화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실려 있다. 표지에 실린 작은 그림들이 무척 인상적인데, 그림을 모두 김보일 쌤이 직접 그렸다.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김보일 쌤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국어를 가르치고 과학책을 읽고 다시 책을 쓰고, 마라톤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과연 선생님은 못하는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살짝 질투심이 생긴다.

 

아는 이 중에 ‘오리너구리’라는 별명을 쓰는 친구가 있다. 처음 ‘오리너구리’라고 소개받았을 때 조금 놀랐다. 귀여운 여성이 굳이 저 독특한 동물을 자기 별명으로 쓰는 것이 신기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오리너구리가 무척 독특한 동물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포유류로서 젖먹이 동물이지만 알에서 태어난다. 넓적한 주둥이는 마치 오리를 연상시키지만, 짧고 땅딸막한 몸통은 너구리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이 특이한 동물은 발끝에 물갈퀴도 달려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부해안과 남동쪽에 위치한 섬 태즈메이니아에만 살고 있다. 얘기를 듣고 보니 흥미를 가질만하다. 그렇다고 별명으로 쓰는 이유까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뭐 별명이 굳이 그럴듯한 이유를 가질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도 오리너구리도 둘 다 귀엽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멸종위기 보호종인 오리너구리처럼 그도 사람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갑자기 오리너구리 이야기를 꺼내는 건 이 책이 주로 독특하게 진화한 동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오리너구리와 그 별명을 쓰는 친구가 떠올랐다. 이 책에 혹시 오리너구리가 나오는지를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오리너구리는 왜 저렇게 독특하게 진화했을지 무척 궁금했고, 김보일 쌤이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내 기대를 저버리셨다.

 

그래서 홀로 백과사전을 검색해가며 가설을 세워보았다. 1) 포유류이지만 알을 낳는 것은 체구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체구는 새끼가 충분히 클 때까지 뱃속에 품고 있기가 불편했고, 그래서 알 속에서 충분히 자라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2) 넓적한 주둥이는 진흙 속에서 갑각류와 연체동물 등을 쉽게 찾아내어 먹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3) 물갈퀴는 주로 냇가와 호수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헤엄을 잘 쳐야하는 생존조건 때문일 것이다. 2번하고 3번은 그럴듯한데 1번은 조금 애매한 것 같다. 뭐 오리너구리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앞서 짧게 말했듯이 이 책은 온갖 독특한 생물들과 인간의 특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두운 동굴에서 100년 동안 살아가는 ‘올름’이나, 스타쉽트루퍼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항문으로 대포 같은 것을 쏘는 벌레의 원 모델인 ‘폭격수 딱정벌레’ 등 신기한 생물들이 잔뜩 나온다. 36억 년 전 ‘시아노 박테리아’ 때문에 지구에 산소가 많이 만들어졌고, 그래서 이 모든 역사를 시아노 박테리아의 탓으로 돌리는 글은 제법 재밌다. ‘코르티솔’ 이라는 호르몬에 대한 얘기를 읽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고, 몸은 타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는 말에도 역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위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축산업과 인간의 입맛에 대한 글도 관심을 갖고 읽었고, 공룡이 벌레들에게 멸종당했다는 설과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가 된 것에 대한 가설 등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독특한 특징 하나는 가끔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과 김보일 쌤과의 대화이다. 이 분들은 책 제일 뒤에 있는 작가의 말 아래쪽에 소개되어 있다. 모두 페이스북에서 김보일 쌤과 친구를 맺고 있는 분들이다. 김보일 쌤이 예전에 가끔 단상처럼 어떤 동물에 대한 이야기나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던지곤 했는데, 여기에 달렸던 수많은 답글들 중에서 의미 있는 대화들을 추려서 책에 실어놓았다. 그때 그렇게 하나씩 던졌던 이야기들이 이 책으로 엮여 나왔을 줄이야! 게다가 당시에 열심히 읽어보곤 했던 대화들을 다시 책에서 만나니 재밌다. 즐기는 사람이 상상력의 눈을 뜬다는 김보일 쌤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기며 뭐든 즐기는 마음으로 살아가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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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4-0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선생님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입니다.
모든 영역을 통섭하는 독서력을 지닌 분들이 아닌가 싶어서죠.
수능의 지문에는 철학, 예술, 역사, 과학, 생명 등등...
거의 모든 분야를 두루 망라하는 비문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다 가르치시려면
세상의 모든 것을 모두 알고 계셔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곤하죠.
그래서 제일 무서운 분들은 철학이나, 과학, 역사 전공자분들이 아니라
국어선생님들입니다 ㅠ.ㅠ
그분들은 동양의 고전에서도 해박하시더군요.
4서는 물론 '시경'까지 줄줄 꿰시는 국어 선생님께...
제가 졌더랬습니다.

국어 선생님들의 가늠기 힘든 파워입니다 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은빛님~

감은빛 2012-04-08 02:46   좋아요 0 | URL
늘 이렇게 댓글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늘 뒤늦게 답을 남겨서 죄송하구요!

차트랑공님의 말씀을 읽고나니,
확실히 그렇군요.
국어선생님들 무서운 분들이셨군요.
불행히도 제가 학창시절에 만난 분들은 그렇지 않았던 듯 합니다.
앞으로 국어선생님들과 좀 친해져서 가르침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