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VS 달리기


9월 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전거를 제대로 타는 것을 성공했다. 그 당시 글에도 적었지만, 그 전에 시도했던 건 20년 전이었고, 그때도 골목에서 조금 타는 것은 성공했으나, 차도를 만나자마자 도저히 더 탈 수가 없어서 그냥 포기했었다. 자전거를 평생 못 탈거라고 생각하고 시도할 생각도 안 하고 살았는데, 자전거를 정말 좋아하는 후배들 덕분에 다시 해봤고, 첫 시도에서 바로 자전거를 탔다. 당일 사람 없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연습하다가, 우리 동네 천변 자전거 도로를 같이 달려보자는 후배들 말을 믿고 따라가다가 골목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을 보고 괜히 혼자 긴장해서 어버버 하다가 넘어져서 손가락과 손바닥이 까져 피가 났다. 그리고는 다시 한 달 이상 자전거를 안 탔다. 최근에 어쨌든 이번에는 꼭 제대로 자전거를 익히고 싶어서 다시 짧게 연습했다. 두 번. 그래서 지금까지 세 번 자전거 연습을 한 셈이다. 사람이 없는 곳을 그냥 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시야에 사람이나 차량이 보이는 순간 긴장해서 자꾸만 균형을 잃는다.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도 한데, 다음 순간에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자전거를 타면 긴장해서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조금만 타도 엄청 힘들고 피곤하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이렇게 힘들구나. 게다가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는 무거워서 초심자들이 타기에 적절치 않다고 지인들이 전했다. 그렇구나. 뭐 가벼워도 나는 여전히 잘 타지 못할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어 준 두 후배는 늘 내게 칭찬만 한다. 잘 탄다고. 처음 타는데 이 정도면 엄청 잘 하는 거라고. 두번째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라고. 며칠 전 세번째 탈 때에는 그 두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내가 자전거 연습을 하는 그 공간 전체를 한 바퀴를 돌았다. 도중에 계속 사람들을 마주치고 심지어 차량도 마주쳤는데,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잘 왔다. 물론 중간에 위태로운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주 낮은 플라스틱 과속방지턱이 한 대여섯 개 정도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긴장하며 속도를 줄이고 조심조심 넘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좀 타고 나서는 달리기를 했다. 자전거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단계라면, 달리기는 제법 자신 있는 종목이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단거리 경주를 해본다면 한 2~30미터 정도까지는 내가 자전거 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전거는 속도를 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는 바로 전력질주가 가능하니까. 한 50미터 이상 넘어가면 자전거가 앞서가기 시작해서 100미터 이상 지나면 차이가 벌어지겠지만.


여름 동안 너무 더워서 달리기를 쉬었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달리기를 조금 했는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0월엔 달리기를 별로 못 했다. 그걸 반성하는 의미로 10월 말부터 그러니까 이번 주부터 다시 매일 조금씩이라도 달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1킬로미터 최고 속도를 찍기도 했다. 엊그제 달리기를 마치고 앱에서 기록을 확인해보니 올해 거의 95킬로미터를 달렸더라. 4월과 5월에 좀 많이 달렸고, 6월부터 7월까지는 확 줄었고, 8월엔 거의 달리지 않았었다. 9월에 다시 조금 달리기 시작했고, 10월엔 다시 확 줄었다. 암튼 욕심 내지 않고 하루에 1~2 킬로미터 정도로, 1주일에 5킬로미터 정도를 목표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도중에 분명 못 달리는 기간이 생길테니, 연말까지 120 킬로미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저번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선배와 최근에 달리기 이야기를 좀 했었다. 그 양반은 매주 금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고, 나는 매주 목요일에 달리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 분은 거의 준 프로에 가까워서 본인의 달리기 실력은 뭐 말이 필요 없지만, 다른 참가자들을 챙기는 데에는 조금 신경을 덜 쓰는 듯하다. 나는 평소 달리기를 할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사람들 보다는 잘 달리지만, 그래도 그냥 아마추어라 내 실력은 아직 내세울 것이 없다. 다만 내가 어렵게 힘들게 폐활량을 키우고, 주법을 익히며, 바른 자세와 호흡법을 배웠던 과정을 생생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달리기 경험이 별로 없는 다른 참여자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많이 알려주고,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해주는 편이다.


그 형이랑 제대로 달리기를 딱 두 번 했는데, 확실히 장거리 달리기를 주로 하는 사람을 내가 따라가기가 정말 어렵더라. 나는 단거리, 무호흡, 전력질주 중심으로 훈련하는 사람이라, 장거리 달리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폐활량을 키우기 위해 장거리를 안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1킬로미터나 2킬로미터 단위로 끊어서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는 편이다. 목요일에는 하루에 5킬로미터까지 달리지만, 나머지 평일에는 보통 1킬로에서 멈추고, 좀 컨디션이 좋다 싶으면 2킬로까지 가곤 한다. 그런데 저 형은 제일 짧게 달리는 것이 6킬로 이상이다. 도중에 전혀 멈추거나 쉬지 않는다. 나로서는 그런 훈련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기는 했다. 진짜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노랗게 변했다가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함부로 저 사람이랑 같이 달릴 일이 아니구나 깨닫기도 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내게 좋은 자극이 되어서 아주 가끔 도전해 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짧게 달리기를 자주 하고, 매주 목요일엔 쉬지 않고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할 생각이다.


어제 목요일 오후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좀 과한 육체노동을 할 일이 갑자기 생겼다. 처음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다가 한 시간도 안 되어 셔츠가 완전히 땀에 젖어버렸다. 젖은 옷을 입고 계속 일하기가 그래서 티셔츠를 벗었다. 어제 아침에 속에 받쳐 입을 옷이 없어서 여름 휴가 때 해변에서나 입는 새빨간 민소매 셔츠를 안에 입고 나왔던 것이 기억나서였다. 위에 입었던 티셔츠가 다 젖었으니 당연히 민소매 셔츠도 다 젖어 있었고, 몸에 완전히 붙는 옷이라 좀 민망하긴 했다. 게다가 새빨간 색이라서 더욱. 다행히 작업하던 곳에 지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오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경이 쓰이긴 햇다. 하지만 처음에만 잠시 그랬을 뿐, 나중엔 일하느라 그걸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저녁까지 그렇게 육체 노동을 한 후에 달리기 모임을 위해 잠시 쉬면서도 땀에 젖은 긴팔 셔츠를 입지 않고 민소매 셔츠 차림으로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 빠르게 땀이 식길래, 조금 고민을 했다. 달리기를 하면 또 땀에 젖을텐데, 이 차림으로 달릴까 아님 지금 조금 몸이 식기 시작하니 젖은 옷이라도 그냥 긴 팔 셔츠를 입어야 하나. 그런데 기다리는 중에 오시기로 한 참여자가 더 늦는다고 연락이 왔고, 슬슬 맨 몸인 팔에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더 고민하지 않고 그냥 옷을 다시 입었고, 참여자가 온 후에 그 상태로 그냥 달리기를 했다. 


믹스 커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커피 맛도 잘 모르고,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일을 하기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돌리려고 가끔 믹스 커피를 타 마신다. 그런데 단 맛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믹스커피는 너무 달다. 그렇다고 커피 맛도 모르는데, 밖에 나가서 비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물을 많이 타서 약간 밍밍한 믹스 커피를 종종 마셨다. 최근에 매니저님께서 사무실에 전혀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의 두유를 좀 많이 사 두신 것을 봤다. 잘은 모르지만, 커피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는 우유를 못 마시니 두유를 한 번 타서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면서 두유를 엄청 많이 섞어서 마시니 단 맛이 거의 안 느껴지고 담백한 맛이 제법 괜찮게 느껴졌다. 


나는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날이 많아서, 저녁 한 끼만 먹는 1일 1식을 하는 편이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어도 별로 지장이 없는데, 가끔 머리를 많이 쓴 날이나, 가끔 육체 노동을 한 날이면 오후에 좀 허전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 이렇게 믹스 커피와 함께 두유를 섞어 마시니 점심 대용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이거 제법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점심을 거르고 일을 하다가 집중이 필요할 때 커피와 함께 두유를 타서 마셨다. 아직 매니저님께서 사두신 두유가 좀 있으니 한동안은 이렇게 계속 마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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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03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기 거리를 미터가 아니라 킬로미터로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두 분 다 프로시네요.
자전거를 세 번쯤의 연습으로 타신다면 훌륭합니다. 옆에서 동기부여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요. 커피 좋아하지 않는 점은 참 좋은 점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커피를 끊고 싶은데 그건 할 수 없겠더라고요. 자기의 기록에 도전하고 새로운 걸 배우며 사는 게 좋아 보입니다. 파이팅!!!

감은빛 2023-11-24 20:0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답이 좀 늦었네요.
보통 한 번 달리면 1~2킬로미터 달립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 기준으로는 적은 거리죠.

자전거는 첫 시도에서 어떻게 타긴 했는데,
말 그대로 그냥 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 제대로 타지는 못 했죠.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요.
고맙습니다!

cyrus 2023-11-04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평소처럼 삼시세끼를 먹지 않아요. 주말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날인데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면 어느새 밥 먹는 시간을 놓쳐버려요. 밥 대신에 커피를 마실 때가 많아요.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혀가 심심하면 달콤한 맛이 나는 라떼를 마셔요. ^^

2023-11-11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3-11-24 20:12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반가워요.
밥 시간이라고 밥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저는 좀 신기하더라구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입맛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요.
그런데 아침과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길들어진 후로는
낮엔 배고픔을 거의 느끼지 못해서요.

저는 커피도 몸에 안 받아서 잘 마시지 않아요.
단 맛을 싫어해서 라떼는 거의 먹어 본 적이 없구요.
간혹 먹을 일이 생기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죠.

주말에 뭔가 집중하면 다른 일은 잊게 마련이죠.
시루스님의 멋진 글들 잘 읽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3-11-11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향하는 삶을 사시는 감은빛님, 달리는 사람 감은빛님, 1일 1식 감은빛님.

근데 저는 그걸 지키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ㅎ

감은빛 2023-11-24 20:15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안녕하세요.
저도 저녁만 먹기 시작하기 전에는 낮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일단 한 번 시도해보시면 어때요?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탄수화물이 적게 들어가면 그만큼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되더라구요.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요.
저도 얄라알라님께 부러워하는 점이 있고,
저만의 어려움도 많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선물


오늘은 큰 아이의 생일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이 눈에 선한데, 아이는 벌써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다. 이제 어른이 다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진통 주기가 짧아져서 병원에 문의한 후에 애들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오늘 아이가 태어나면 시월의 마지막 날이 생일이 되겠네." 라고 이야기하며 가수 이용의 유명한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나는 정말 숫자를 못 외우는 편이라, 가장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부모님 생신도 자주 잊는다. 정말 외우기 쉬운 숫자로 된 내 생일도 가끔은 잊는다. 그런데 시월의 마지막 날인 큰 아이의 생일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어쩌면 이런 아빠를 둔 큰 아이의 전략은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아이는 5월 2일에 태어났는데, 5월 1일인 노동절이 생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때도 손잡고 병원으로 걸어가면서 "어제 태어났으면 노동절이 생일이었을텐데. 그럼 내가 행사 때문에 생일을 못챙기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데, 잘 됐다." 이런 말들을 주고 받았기 때문에 작은 아이의 생일도 한번도 잊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는 내게 정말 소중한 보물이자, 태어나줘서 고마운 선물 같은 존재다. 어제 밤 자정을 막 지나 아이에게 축하의 문자를 보내며 지금껏 아이와 지낸 시간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리 속에서 상영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심하게 아픈 적도 없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특히 큰 아이는 첫째라 내게는 더 각별한 존재였다. 물론 둘째도 막내로서 내게 중요한 의미이지만, 맏이인 첫째는 철이 일찍 들어서 아빠를 잘 챙기는 편이고, 가끔 친구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실기 수업을 하는 날이라 못 만나고, 내일 저녁에 만나 생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빈 시간이 없이 일정이 꽉 찼고, 오후 워크숍은 약 4시간 동안 혼자 진행해야 해서 엄청 힘든 하루가 될 예정이다. 내일이 휙 지나가고 얼른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떠남


어제는 모친상을 당한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올해 초에 어떤 수술을 받은 후에 갑자기 여기저기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잠시 퇴원해 계셨고, 곧 다시 병원에 가실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새벽에 돌아가셔서 임종을 지키지도 못 했다고 한다. 애써 웃음 짓는 그의 어깨를 쓸어주며,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흰머리 가득한 남자들이 껴안는 모습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당황할 것 같아서 참았다.


나를 비롯해서 내 주위에 참 독특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는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특이한 사람이다. 나도 무엇이든 의심하고 보는 편이고, 무엇이든 분석부터 하고 보는 편인데, 이 사람은 나보다 한 백배 정도 더 한 사람이다. 본인 주장이 너무 강한 편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 안 듣는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고, 적을 많이 만드는 편인데,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 보인다. 나는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듣기 싫은 이야기도 들어주려 노력하고,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는 편인데, 이 사람에게서 그런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좀 이상하고 고약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가장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리고 옳은 주장을 펼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 성격 탓에 남들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는 일들을 시원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글을 참 잘 쓴다. 내가 이 사람에게서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이다. 글을 쓰는데 좀 오래걸리는 것이 흠이지만, 다 쓴 글을 검토해달라고 가장 먼저 내게 보내는데, 읽다보면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지?


방금 말한 것처럼 그는 글을 쓰면 대게 제일 먼저 내게 봐달라고 보낸다. 이건 오래 전 그가 시민신문 기자였고, 내가 편집위원이었을 때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일인 것 같다. 신문 마감하는 날이면 그가 급하게 마무리한 기사들을 받아서 교정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었다. 편집위원을 그만 둔 후에도 가끔 그는 글을 봐달라고 연락을 해왔었다. 그건 그가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어제 장례식장에 한동안 앉아 있으면서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멀리 계셔서 자주 뵙지 못하는 부모님이 생각났고,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생각났다. 장례식장에 앉아 있으니 어쩔수 없이 기억 속의 다른 장례식장 모습들이 겹쳐졌다. 고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기간 내내 잔심부름을 하며 함께 있다가 장지까지 따라가서 운구를 도왔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멍하니 장례식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역시 장례식 내내 멍하니 지내다가 화장장에서 화로에 관을 넣고 나서야 갑자기 울컥 감정이 솟구쳤던 기억도 났다. 그때 어머니께서 내 품에 안겨서 통곡을 하셨던 것도 함께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본 많은 지인들은 부모님의 죽음 앞에서도 대개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우리가 못 본 다른 시간에 아주 많이 슬퍼했겠지만.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애들 엄마는 바쁘게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렇게 슬퍼보이지는 않았다. 장례식 내내 함께 있었지만, 우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물론 마찬가지로 어디 다른 공간에서 혼자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재수없게 여길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는 담담히 장례식장 앉아서 손님들을 맞아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상상했다. 인간은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헤어짐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오더라도 슬퍼하지마. 아빠는 갈 때가 되어서 가는 거니까. 절대 아빠가 너희를 떠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쩔수 없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대로 잘 받아들이면 좋겠어." 물론 쉽지 않을 일일 것이고 나 역시도 마음과 달리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아이들이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심정이다.


나는 삼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거의 죽을 뻔 했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현대 사회는 워낙 많은 일들이 예상하지 못하게 벌어지니 우리 모두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야 하는 상황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와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오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1999년 10월 30일 벌어진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에 대한 글을 읽었다. 당시 1층 고기집 손님들과 3층 당구장 손님들은 모두 무사히 잘 대피했는데, 유독 2층 호프집 손님들은 갇혀 있다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56명이 죽고 78명이 큰 부상을 당했는데,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당시 2층 호프집은 그 화재 7개월 전에 안전기준 미달로 영업 정지를 당했었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으로 영업을 계속 해왔다고 했다. 그날은 학교 축제를 마친 고등학생들이 그 호프집을 가득 채웟다고 했다. 비상구도 없는 호프집은 창문들도 모두 석고보드로 막아두어서 유일한 탈출구는 출입문 하나였는데, 불이 나서 대피하려는 학생들을 주인이 못 가게 막았다고 했다. 술값을 내고 가라는 이유로 그랬단다.


예전에 이 뉴스를 흘려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는데, 정말 몰상식한 일이다. 게다가 이 고등학생들은 술집에 갔다가 죽었다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당했을 지 상상도 못할 지경이다. 나는 주말부터 계속 작년 이태원 참사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전 국민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이태원 참사. 그런데 99년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유로 56명의 고등학생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니! 


오늘은 할일이 많았는데도 마음이 심란하여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 알라딘에 들어와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내일 워크숍 준비 때문에 계속 머리 속이 복잡하지만, 나는 늘 임기응변에 강한 편이니, 내일의 나를 믿고 오늘을 그냥 보냈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공부만 하셨어요?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약 두 달 반 정도 주말마다 일정이 있다. 계속 주말을 온전히 쉬지 못해 피로가 많이 쌓였다. 일정이 계속 있다는 건, 그 준비를 위해 어마어마한 업무가 기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제나 바쁘다는 말을 달고 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늘 가장 바쁜 사람으로 언급되는 편인데, 이번 두어달은 정말 역대 최악으로 정신이 없이 지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 달 더 남았다. 죄다 중요한 일정들이고 잘 준비해야 하는데, 나는 늘 피곤하다는 말만 하고 있다.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에 동네 축제에 판매 부스와 체험 부스를 운영한 날이었다. 무대가 가까이에 있었고, 무대 스피커 음량이 너무 커서 부스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방문하는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자꾸 내 목소리가 지워져 계속 목을 많이 써야했다. 그래도 최근 후배에게 두성을 배운 것을 응용해 가급적이면 성대를 쓰지 않고 배 힘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쓰긴 했지만, 설명을 하다보면 목을 아예 안 쓸수는 없어서 금방 목이 가버렸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몇 주째인지 기억도 못할만큼 계속 주말을 못 쉬었기에 너무너무 피곤했다. 그날 우리 체험 부스를 방문했던 친한 언니들이 다들 내 얼굴을 보고 너무 피곤해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하셨다.


암튼 축제를 마칠 때쯤 짐을 정리하면서 손수레에 여러 박스를 쌓고 고무줄로 고정하고 있었다. 이런 손수레를 별로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고무줄을 어떻게 잘 묶어야 할지 몰라 조금 헤매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시던 매니저님이 내게 아주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사님, 공부만 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서 아주 익숙하게 고무줄로 짐들을 고정시켰다. 아, 내가 이런 일에 너무 서툴러서 공부만 했느냐고 물었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사실 공구를 사용하거나, 뭔가 도구들을 사용하는 일을 별로 해보지 않았다. 매니저님의 말씀처럼 공부만 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나도 막노동도 많이 했고, 이런저런 힘쓰는 일들을 많이 해봤는데, 도구 사용에 조금 익숙치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에 차를 구매한 후배가 가까이에 살고 있다. 업무 상 짐을 옮길 일이 많은데, 우리 법인은 차가 없고, 나도 차가 없어서 공유카 서비스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날은 근처에 비어있는 공유카가 없어서 후배에게 연락해 차를 잠시 빌렸었다. 저녁에 그 후배가 퇴근하면서 우리 사무실에서 차를 받아갔는데, 차 오른쪽 뒷바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가 떴다고 했다. 나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 후배 집에 놀러 갔다가 생각난 김에 차 바퀴를 살펴보기로 했다. 주차타워에서 차를 꺼내 뒷바퀴를 보니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센서에서는 압력이 낮다고 나오니 타이어에 공기를 좀 더 넣어보기로 했다. 트렁크에서 전기에어펌프를 꺼낸 그 후배의 손놀림이 좀 많이 어설퍼 보였다. 차를 운전하고 관리한 경험이 적으니 그건 당연했다. 나는 예전에 차가 있을 때 손 펌프나 발 펌프를 주로 사용했었는데, 이런 전기식 펌프는 본 적이 없어서 그냥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한참을 후배가 애쓰는데, 전혀 해결이 안 되는 눈치였다. 그 전기펌프의 소음이 너무 커서 잘 몰랐는데, 공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오히려 계속 새고 있었다. 내가 자세히 보니 연결 부위를 끝까지 돌려넣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보였다. 설명을 했는데도 그 친구가 잘 이해를 못 한거 같아서 내가 나서서 해결해줬다. 한번에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가 전반적으로 이런 류의 경험이 부족해 뭔가 고치는 등 손으로 하는 작업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차는 그래도 오래 몰았었고, 간단한 점검과 정비는 직접 했었기 때문에 경험이 있는 일은 또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공부만 해서 이런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심지어 나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했던 사람도 절대 아니고.


그 손수레의 고무줄 고정하는 방법도 매니저님이 보여주셔서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순하고 조용조용한 매니저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나한테 저런 말을 했을까?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는 재밌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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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01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월 마지막 날이 첫째 따님이 태어난 날이었군요 오늘 만나시겠네요 몇 시간 뒤에...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님이 숫자 기억 못하는데 두 따님은 기억하기 좋은 날 태어나서 잊지 않겠습니다 감은빛 님이 쓰신 것처럼 보물처럼 여기니 더 기억하는 거겠지요 사랑은 내리사랑이죠

사람은 다 죽고 그렇게 헤어지기도 하죠 그런 일을 평소에 생각하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덜 슬플지... 많이 슬프지 않도록 평소에 잘 지내면 좋을 듯합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이나... 그렇게 할 시간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감은빛 님은 따님하고 지낼 시간은 만들기도 하시는군요 앞으로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처음 하는 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해도 한번 하면 다음엔 잘 하기도 하죠 감은빛 님 십일월 즐겁게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감은빛 2023-11-24 20:18   좋아요 0 | URL
와! 제가 이 댓글에도 답을 안 달았었군요.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딸아이의 생일만큼은
어떤 이유를 달아서라도 외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죠. 사랑은 내리사랑이니까요. ㅎㅎ

저 며칠 전에도 해외에서 만든 이태원 참사 다큐를 보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계속 우느라 멈췄다가 다시 보다가 또 울고 그랬네요.

늘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23-11-03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4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년 10월 돌아오는 일정

해마다 이맘 때에는 이곳 알라딘 서재에 이 이야기를 썼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난주 쯤부터 이 북플 ‘지난 오늘‘ 쓴 글에서ㅠ이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정확한 날짜는 달라도 늘 10월 중순에는 애들 엄마가 약 1주일 정도 해외출장을 간다. 그럼 나는 그 1주일을 아이들과 보냈다. 이건 애들 엄마가 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해마다 해왔던 일이고, 큰 아이를 낳고 다음 해에도 다녀왔고, 작은 아이를 낳고도 다녀왔었다. 그리고 이혼하고도 매년 다녀왔다. 이혼 후에는 이 기간 동안 내가 온전히 1주일동안 아이들과 지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갔다. 혼자 아이 둘을 챙겨 어린이집과 학교에 보내주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서 애들 데려와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를 많이 찾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다 옛날 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이젠 엄마를 찾아 울지 않았고, 보고 싶더라도 속으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아침에도 내가 할 일이 적은 편이다. 그저 나를 닮아 아침 잠이 많은 두 녀석을 차례로 깨워 화장실에 보내고, 가벼운 아침을 먹이고, 시간 맞춰 출발하도록 잔소리를 좀 하면 끝이다. 아이들은 씻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는 일을 스스로 다 잘한다. 저녁에도 내가 회의가 있어 늦으면 아이들끼리 차려 먹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나한테 주문해달라고 요구할 줄도 안다.

올해 좀 다른 점이 있긴하다. 큰 아이의 대학 입시 때문에 실기 시험 일정 두 개가 이 기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애들 엄마는 여러 이유로 내가 큰 아이를 데리고 실기 시험장에 다녀와주기를 원했다. 사실 아이를 혼자 보내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와 길찾기 등에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시험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배려일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세 곳의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한 학교는 본고사 시험을 한 번 보았고, 나머지 두 학교는 면접만 봤는데, 세 번 모두 나 혼자 학교를 찾아갔었다. 뭐 그게 대단한 일이라는 뜻도 아니고 꼭 그래야 한다는 뜻도 아니고 그냥 그랬었구나 하는 회상이다. 하긴 내가 대학에 갈 때는 수시입학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서, 지금 큰 아이가 수능도 치기 전에 많은 학교에 원서를 넣고 면접과 실기시험을 보러 다니는 일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아이는 시를 쓰고 있다. 여러 백일장과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대상도 몇 번 수상했지만, 그 정도로는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학교 선생님이 말했다고 했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대학에는 문창과가 별로 없다. 하긴 나도 그 옛날에 대학 입학 할 때는 문창과의 존재를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나서 편입을 해서라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알아보니 문창과를 가진 학교가 별로 없었었다. 그래도 서울에는 2년제 예술대학들이 몇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이는 문창과가 아닌 극작과에 실기 시험을 보러 들어갔다. 아이는 지금 열심히 주어진 주제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시험을 마칠 때까지 학교 근처 커피숍에 차를 시켜놓고 기다리며 이 글을 폰으로 두드리고 있다. 극작과는 문창과와는 많이 다를텐데, 아이는 학교에서 2학년 때부터 전공을 나눠서 극작에 대해서도 별로 배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글을 쓴다는 점에서 대학을 못 가는 것 보다는 나을수도 있겠지.

음, 이번에 아이에게 들어보니 여러 대학에 원서를 넣는라 원서 접수비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내년에는 아이의 대학 등록금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겠구나. 내 경우엔 일부 장학금을 받았고, 일부는 알바를 해서 벌기도 했고, 나중에는 학자금 대출도 좀 받았었다. 아이는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대학에 합격한다면 등록금을 납부해야 할테니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아이는 토요일에도 경기도 어딘가의 대학에 실기 시험을 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이라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였는데, 토요일엔 차로 움직여야 한다. 아이는 아마 지금 여러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 시절에 내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고민이 많았었다. 원서를 넣었던 세 곳의 대학 중 하나만 부산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지역이었기에, 태어나서 쭉 자라왔던 고향을 떠나는 문제부터 변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행이 세 학교 모두 합격했고 가장 좋은 학교였던 부산에 있는 학교를 입학했지만, 만약 다른 지역을 선택했다면 내 인생은 아마 제법 많이 달라졌으리라.

아까 아이를 시험장 건물에 들여보내면서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었는데, 극본을 써본 경험이 없어서 딱히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쉽게 쓰고 편하게 쓰라는 말만 겨우 해줬다. 소설이었다면 뭔가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까? 이미 아이는 학교에서 나보다 더 전문가인 선생님들에게 잘 배우고 있으니 내 조언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2년 전, 아이가 아직 1학년이었을 때에는 내가 이런저런 조언을 가끔 해줬으나, 2학년이 되어 전공을 시로 정한 후로 나는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끔 백일장이나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시를 보내달라고 해서 살펴보고 잘 썼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유일하게 해줄수 있었던 일이었다.

당장 아이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 이렇게 여러 학교에 응시해서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는 것은 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경험은 반드시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어제 밤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너는 아빠 딸이라서 면접도 실기시험도 다 잘 볼거야. 아빠는 면접에서 떨린 적도 별로 없고,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 아이는 잘난 척 한다고 뭐라 했지만, 마음 속에 잘할 수 있다는 씨앗 하나를 심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 자신감을 잘 품고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길 바란다. 나중에 아이가 이 시기를 돌아볼 때, 그때 아빠가 이런 말로 나를 응원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쪼그려 앉기

어제 작은 아이가 자기는 쪼그려 앉는 동작이 안 된다고 발바닥을 붙이고 앉으면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나는 아빠 닮아서 그런거래.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쪼그려 앉는 동작을 보여줬다. 이 자세는 스쿼트의 기본 동작으로 이 자세를 못하면 역기를 들 수가 없다. 중학교때부터 역기를 들었던 내가 이 자세를 못할수는 없는 일이다. 큰 아이도 내 옆에서 같은 자세를 편하게 취했다. 작은 아이는 그럼 왜 나만 안 되는 거냐고 약간 투정을 부렸다. 발바닥을 대고 쪼그려 앉았을 때 뒤로 무게중심이 쏠려 넘어가는 건 발목 유연성과 관련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발목 유연성을 길러줄 수 있는 동작 두세가지를 아이에게 알려주고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하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그닥 열심히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라면서 좀 나아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좀 신기한 일은 며칠 전에 인스타그램 쇼츠 콘텐츠를 넘겨보다가 운동 영상을 주로 올리는 어느 채널에서 정확하게 이 문제를 다룬 영상을 올렸더뉴걸 봤었다. 그래서 내가 그 기억을 떠올려 작은 아이에게 그 얘기를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끔 우연히 이렇게 딱 들어맞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생각해보면 큰 아이와는 대화도 많이 하는 편이고, 글쓰기와 관련해 공통의 대화 주제도 풍부한 편이고, 내가 아이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것들도 많았는데, 작은 아이와는 접점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나도 어릴 때에는 만화를 그렸다. 다만,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고 시기를 놓치고 난 후에는 관심도 많이 멀어졌다. 나중에 잠깐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재주가 영 별로라는 현실을 확인하고 좌절하게 되었을 뿐이다. 작은 아이에게 평소 미술학원에서 그린 것들을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고 여러번 얘기했는데, 아이는 사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 단순히 잊은 것인지, 아니면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암튼 작은 아이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겠구나. 좀 더 세심한 태도로 아이와 지내야 하겠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해야할 일이 잔뜩 밀려 있는데, 지금 이렇게 커피숍에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편치 않다. 당장 다음 주에 토론자로 참여해야 해서 토론문을 써서 보내야 하는데, 내용을 다 구상해놓지 못했다. 이번 주말 일정 때문에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고, 11월 중순까지 일정이 빽빽하고 그들 대다수가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이다.

에휴, 이걸 성격 탓을 해야할지, 운명이나 팔자 탓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암튼 또 힘을 내서 해나갈 수 밖에. 바쁜 탓에 시간이 잘 가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지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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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0-1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창과 이야기를 하시니...

얼마 전에 저희 회사 동료분의
자제분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
다고 해서 한참 이야기한 기억
이 났습니다.

결국 문창과 대신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들었네요.

그렇게 우리의 시간들을 흘러
가는 모양입니다.

감은빛 2023-10-19 18:2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 진학하고 한참 후에 문창과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문예창작이라는 과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갓 같은 기분이었어요. 국어국문과에서는 어학 수업이 더 많아서 제가 원했던 문학 수업은 아쉬움이 많았거든요.

레삭매냐님 지인의 자제분은 결국 다른 길을 선택했군요. 우리 큰 아이는 원하는대로 갈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10-19 1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극작과라는 것도 있군요?
요즘 아이들 대학에 과 종류도 정말 많고, 생소한 과들도 정말 많이 생겨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조언 해주기도 참 조심스럽더군요. 너무 생소하고 지식이 없으니까요.ㅜ
전 그냥 듣고만 있는...ㅋㅋ

따님의 좋은 소식 기원드립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 따님이라 극작과에 합격한다면 재미나게 수업을 받으리라 생각되네요.
요즘은 글 쓰는 작가들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기량을 쌓는 좋은 발판이 되겠습니다.^^

감은빛 2023-10-31 18:09   좋아요 2 | URL
책읽는나무님, 안녕하세요.
정말 요즘은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전공이 생겼더라구요.
극작과라는 과가 있다는 걸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우리 아이는 아마 대학 진학과 관계없이
평생 글 쓰는 삶을 살거라고 생각해요.
결과가 좋아서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좋은 일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더라도 또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yamoo 2023-10-20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은 정말 좋은 아빠인듯합니다.
아내분이 해마다 10월이면 해외출장을 가는군요! 어는 직종인지 부러운 직종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잘 돌보시는 감은빛 님...리스펙 합니다!!ㅎㅎ 어찌 그리 불평도 안하시는지..ㅎㅎ

감은빛 2023-10-31 18:13   좋아요 0 | URL
야무님, 고맙습니다!
애들 엄마의 해외출장은 부러운 면도 있겠지만,
엄청난 강행군이라 막 부러워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불평을 할 수는 없죠.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또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저에게는 거의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라
제게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ㅎㅎ

희선 2023-10-21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첫째 따님이 고등학교 3학년이군요 어느새 그렇게 됐다니...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가면 다른 것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따님이 공부하고 싶은 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따님하고도 이런저런 거 함께 하고 더 알아가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3-10-31 18:4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아이는 정말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싶게 금방 어른이 되었네요.
태어나자마자 눈도 못 뜬 조그만 아기를 품에 안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데요.

아이들이 공부만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으로 학창시절을 보내라고 말하곤 합니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히 잘 자라주면 좋겠어요.
 


즐거웠던 큰 아이와의 데이트


이 글은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923 기후정의행진의 후기와 비슷한 느낌이 글이 될 것이다. 엊그제 월요일부터 이 글을 쓰고 싶었으나, 이틀 동안 바빴고 오늘도 바쁘다. 바쁘지만 알라딘에 들어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개의 일을 몰아서 해치우는 와중에 한 두가지 일을 마쳤으니, 나머지 일을 해치우기 위해 집중하기 전에 내 두뇌를 잠시 쉬어가게 하고 싶어서 였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일이 정말로 내 두뇌를 쉬게 하는 것 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은 없다.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은 기분이 들 뿐.


지금까지 전국 규모의 기후행진은 세 번 있었다. 2019년이 첫번째였고, 작년인 2022년이 두번째, 올해가 세번째였다. 나는 당연히 세 번 모두 참여했고, 늘 깃발이나 짐을 들고 행진을 했다. 대학 시절부터 깃발을 드는 일이 재미있고 좋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에 깃발은 늘 키가 큰 친구들이 들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깃발은 그 아래 모인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준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뭔가 벅찬 느낌이 든다.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일은 당연히 그냥 맨 몸으로 걷는 것 보다는 힘들다. 그럼에도 깃발 들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깃발을 들면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19년 첫 행진 때는 작은 아이와 같이 참여했다. 큰 아이도 함께 데려오고 싶었지만, 뭔가 다른 사정이 있어서 큰 아이는 못 데려갔었다. 작은 아이는 그때만 해도 아직 어려서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사실 언니 없이 자기 혼자 아빠랑 나서는 것이 조금은 불만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이라면 작은 아이만 혼자 데려가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집회나 행진에 많이 참여했다. 아이들이 주로 기억하는 건 박근혜 탄핵 국면의 집회들이지만, 나는 아직 아기였던 큰 아이를 데리고 한미FTA 범국본 주최의 시위나 행진에 데리고 다녔고, 그 이후에 촛불 국면에서도 자주 데리고 나갔다. 이런 대규모 시위나 행진 외에도 기륭전자 투쟁, 두물머리 투쟁 등 다양한 소규모 농성이나 행진에도 데리고 다녔다. 작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한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일을 중단했다. 큰 아이도 챙기면서 아직 어린 아기인 작은 아이까지 데리고 장시간 거리에 머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은 아이가 조금 더 자란 이후 부터 다시 둘 다 데리고 거리로 자주 나갔다. 언젠가는 시청-광화문-안국-종로-을지로-시청 이라는 평소보다 좀 긴 거리이자 아직 어린 아이들이 걷기에 좀 힘든 거리를, 전체 대열 후미에서 따라 갔던 기억이 있다. 그날 아이들 입장에선 정말 많이 힘들었을텐데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며 씩씩하게 잘 따라와 주었다. 


이렇게 열심히 아이들을 데리고 집회, 시위, 행진 등에 다녔는데, 아이들은 어릴 때의 기억들은 대부분 잊고 자신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기억이자 비교적 최근 기억인 박근혜 탄핵 국면의 집회만 기억했다.


심지어 작은 아이는 4년 전 가을인 19년의 첫 기후행진에 자신이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얼른 떠올리지 못했다. 그때 다잉 퍼포먼스를 하느라 차도인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운 아주 독특한 경험을 했고, 그에 대해 나와 여러번 얘기했음에도 말이다. 그날 어린이 참가자들도 많았었다. 내 주위에는 작은 아이처럼 초등학생인 어린이들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 동네 이런저런 모임이나 행사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던 아이들이었다. 작은 아이는 그 아이들과 캠프에서 함께 논 적도 있었다. 그 집 부모들 중 엄마와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좀 있어서 우리는 일부러 같이 걸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같이 어울리도록 했다. 


작년, 두번째 행진 때에는 아이들 둘 다 데려가지 못했다. 아마 애들 엄마랑 뭔가 다른 일정이 있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그 분위기 때문에 첫번째에 비해 어린이, 청소년 참가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모들도 많았다. 아마 아이들과 함께 했다면 아이들에게도 강하게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못 나온 것이 아쉬웠지만, 작년 행진은 좀 유난히 힘들었다. 대오가 길었고, 우리 대오는 이번에도 조금 후미에 있어서 경찰의 교통 통제에 발이 묶여 있다가 뛰어가기를 반복했다. 내가 들었던 깃발은 유난히 짧은 깃대에 묶여 있었는데, 처음 깃발을 제작했던 사람이 들고 다니기 편하자고 일부러 짧은 깃대를 샀었다고 들었다. 그냥 남들처럼 접이식 낚시대를 사서 메고 다니는 편이 훨씬 더 편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암튼 19년에도, 작년 22년에도, 올해 가을에도 세 번 모두 짧은 깃대를 높이 치켜들고 행진하느라 좀 힘들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작년에는 행진 거리도 좀 길었고, 상대적으로 뒤쪽에서 따라가느라 더 힘들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는 작은 아이가 다른 일이 있어서 못 오고 큰 아이만 데려왔다. 큰 아이와 이렇게 거리에 나서는 일은 참 오랜만이라 동네 활동가들이 다들 오랜만에 만난 아이를 엄청 반가워했다. 큰 아이는 중학생 때 키가 훌쩍 컸는데, 동네 활동가들은 다들 그 이후로는 큰 아이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확 커진 키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새삼 느꼈는데, 내 주위 여성 활동가 선배들과 후배들은 대부분 우리 큰 아이보다 키가 작았다. 하긴 이 아이는 중학생 때 이미 엄마 키를 추월했었다. 빨리 아빠 키도 따라 잡겠다고 했었지만, 아직은 내 키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큰 아이와 나는 깃발과 손피켓을 만들 재료들(깨끗하게 잘라놓은 종이상자들과 여러 색이 든 매직 세트 등)을 갖고 집결 시간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 처럼 먼저 도착한 다른 참가자들도 삼삼오오 깃발 아래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지역 활동가들을 기다리며 큰 아이는 직접 손 피켓을 하나 만들었다. MZ 세대 감성이 듬뿍 담긴 최신 밈으로 피켓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림부터 그리고 문구를 쓰더니 색칠까지 했다. 아이가 제법 긴 시간을 들여 그 피켓을 다 만들 즈음에 동네 활동가 선배 한 분이 그 작업을 유심히 보시더니 자기 손 피켓과 바꿔달라고 부탁했고, 아이는 완성하자마자 흔쾌히 바꿨다. 그 선배가 자신이 만든 피켓을 잘 보이도록 높이 들고 다니는 모습을 즐겼다. 음,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넓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만약 나였다면 그렇게 정성스레 만든 피켓을 바꾸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물론 아이도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지못해 응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가끔 내 깃발을 들어보기도 하고, 짐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나와 함께 손을 잡고 걸었다. 동네 선배 활동가들은 내가 그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했다. 한 명만 말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다른 타이밍에 내게 말했다. 질투가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아들이나 딸은 이런 행진에 나오지도 않고, 손을 잡고 같이 걷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씩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니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처음에 우리 부부가 이혼하고 내가 집을 나왔을 때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결혼생활 중에도 둘 중 하나는 늘 일과 모임 등으로 자리를 비우고 다른 한 명만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 부부가 둘이 같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 한 사람하고만 지내는 것에 익숙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그래도 한 집에 같이 사는 것과 다른 집에 따로 사는 건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나는 당시 아이들이 살던 집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서 아이들이 언제든 편하게 오고 갈 수 있도록 했고, 그 당시에만 해도 일주일에 3일은 우리 집에서 나머지 4일은 엄마 집에서 보내도록 했다. 아이들은 엄마 집과 아빠 집을 오가며 지내는 생활에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아, 당시 내가 얻은 집이 좀 많이 작고 열악해서 그런 측면에서는 불만이 있었지만, 단순히 엄마 집과 아빠 집을 오간다는 사실 자체에 불평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큰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 사춘기를 겪을 무렵부터 갑자기 이게 뭔가 이상하다고 깨달았던 것 같다. 가끔 작은 아이가 잠들고나서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그런 질문들을 하곤 했다. 큰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며 아빠인 내게 부쩍 더 친밀하게 대했다. 시간이 지나 나는 아이들이 사는 집에서 조금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갔고, 그 전처럼 편하게 오가지 못하게 되자 아이들이 우리 집에 오는 횟수를 줄였다. 일주일에 3일에서 2일로, 나중에는 일주일에 겨우 하루나 이틀을 억지로 오기도 했다. 그럴 수록 큰 아이는 내게 더 친밀감을 표현했다. 먼저 다가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내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려고 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한 편으로 좋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


이번에 내가 같이 기후정의행진에 가자고 했을 때, 큰 아이는 특별히 다른 일이 없다며 너무나도 당연히 함께 가겠다고 했다. 아마 작은 아이였다면 혼자 따라가는 일은 싫다고 했을 것이다. 언니랑 함께라면 당연히 좋다고 했겠지만. 이런 모습도 큰 아이가 나를 대하는 특유의 태도라고 여긴다. 아이는 멋 모르고 겪었던 부모의 이혼을 나중에 깨달으며 무언가 많이 고민하고 힘들었을 것이고 평소 곁에 자주 있어주지 못했던 아빠에 대한 어떤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죄인일 수 밖에 없다. 세상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한창 자라는 시기에 평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 만큼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상처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처와 아픔이 지금의 나와 아이들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


지난 토요일 기후행진에 참여한 덕분에 큰 아이와 나는 재미있는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행진을 다 마친 후 나와 아이는 무척 피곤했고, 엄청 배가 고팠다. 우리는 동네 활동가 선배들이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는 것을 짐과 깃발을 사무실에 갖다 둬야 한다는 핑계로 거절하고 단 둘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다. 뭐가 먹고 싶냐는 질문에 큰 아이는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사무실에 깃발과 짐들을 두고 근처 맛이 괜찮은 중국집을 찾아갔다. 아이는 짜장과 함께 탕수육을 얘기했지만, 나는 아이가 예전에 먹고 싶다고 말했던 크림새우를 주문했다. 우린 정말 맛있게 또 배부르게 먹으며, 그날 행진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너무 늦지 않게 큰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이 얼굴도 잠시 보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의 완벽한 데이트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이에게도 그럴 것이다. 아이는 올해 기후정의행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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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9-28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큰따님하고 데이트였네요 어릴 때부터 여러 곳에 데리고 가서 지금도 어딘가에 가는 게 어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릴 때 일은 잊었다 해도, 아주 다 잊어버린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아빠하고 어딘가에 갔다는 건 기억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만하네요 중 고등학생 되고 아빠하고 손 잡고 다니는 아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큰따님이 마음이 넓고 깊네요 감은빛 님도 23일 일 오래 기억하시겠습니다

감은빛 님 명절 잘 쇠시고 연휴 즐겁게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얄라알라 2023-09-29 14:29   좋아요 2 | URL
부럽다고 말씀하신 감은빛님의 지인분들은 얼마나 솔직하고 쿨하신 건가요?

기후정의를 위한 가두행진에 함께 하신 따님과 감은빛님!!!

고맙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거리로 나서는데, 누군가는 9월 말에도 에어컨을 켜고 살고요^^;;;

감은빛 2023-10-05 20:03   좋아요 1 | URL
희선님, 연휴 잘 지내셨어요?

아이들 어릴 때 정말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다녔어요.
이 글에 쓴 것처럼 집회나 행진도 많이 데리고 다녔지만(일 때문에),
주말마다 아무 계획없이 무작정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놀러도 다녔어요.
큰 아이는 그런 모험(?)들을 어느 정도 기억하던데,
작은 아이는 별로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사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같이 시간을 많이 못 보내서 정말 아쉬워요.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함께 놀아야 하는데 말이죠.

늘 고맙습니다!

감은빛 2023-10-05 20:07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연휴 잘 보내셨어요?

부럽다고 말하는 것이 쿨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그날 함께 행진에 참여한 30여명 정도의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저랑 꽤 친한 사람들이고,
저한테 솔직하게 이런저런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예요.

얄라알라님처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저도 정말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3-10-02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녀에게 부모와 함께한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는 것은 참 의미 있고 좋은 일이에요.
이것도 시간과 마음을 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죠. 바쁘게 살다 보면 이미 아이는 훌쩍 커 버리고
심지어 결혼을 해서 나가 살기도 하거든요.
저는 앞으로 가족 사진을 많이 남기려고 해요. 아이 어릴 때의 사진을 찾아보면 작은애 사진이 많지 않더라고요. 큰애 때는 열심히 찍어 줬는데.. 작은애가 섭섭해 해서 미안했어요.ㅋㅋ

감은빛 2023-10-05 20:13   좋아요 1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정말 아이들은 금방 훌쩍 커버리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큰 아이가 주민등록증 신청하러 주민센터에 다녀왔다는 얘길 듣고,
이젠 정말 어른이 다 되었구나 생각했어요.
고3이어도 여전이 제 눈에는 애기처럼 보이는데요.
정말 태어나자마자 제 품에 안겼던 그 조그만 아기가
이젠 저랑 키가 비슷한 어른이 다 되었네요.

저도 사진을 많이 찍고 싶은데, 이 녀석들은 사진 찍는 걸 극도로 싫어해요.
여자아이들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허락없이 제가 사진을 찍으면 지우라고 그렇게 난리를 쳐요. ㅎㅎㅎㅎ

저도 큰 아이에 비해 작은 아이 사진이 별로 없어서 늘 아쉬워요.
그땐 왜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 했을까요?

yamoo 2023-10-05 1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을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3-10-05 20:14   좋아요 1 | URL
야무님, 연휴 잘 지내셨죠?
응원 고맙습니다!
저도 야무님을 늘 응원합니다!!
 

패션 근육


최근 친한 후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단지 보기에 좋은 정도로만 근육을 키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맨날 운동한다면서 의외로 힘을 잘 못 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긴 지금의 내 상태는 그런 말을 들어도 반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긴 하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오래 운동을 쉬어서 근육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후 가끔 근육을 회복해보고자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예전처럼 근육이 잘 늘지 않아서 포기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금은 차라리 먹는 양을 줄여서 날씬한 몸매라도 유지해보려고 하는데, 이것도 나이 탓인지 쉽지 않다.


그래, 차라리 패션 근육이라도 좋으니, 그 정도 근육이라도 회복하면 좋겠다. 예전에 샤워 후에 내 몸을 보며 만족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걸 잘 안다. 운동을 다시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나는 늘 일에 치여,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운동을 미루고 있다. 가끔 미친듯이 운동을 할 때도 있는데, 젊었을 때처럼 근육이 성장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진다.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923 기후정의행진 선전전


어제 저녁 퇴근시간에는 유동인구가 무척 많은 지하철 역 출입구에서 1시간 반 동안 피켓을 들고 선전전에 참여했다. 내 피켓을 보고 단 한명이라도 더 많이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할 수 있다면 1시간 반이 아니라 몇 시간이라도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1시간 반 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더라. 가만히 서 있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지루했다.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급격하게 체력이 방전되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차라리 걸으면서 선전전을 하는 거라면 두시간이나 세시간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만히 서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래도 유동인구가 워낙 많은 곳이라 퇴근하는 인파가 한 무리씩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나와 피켓을 살피고 지나가는 시선을 느끼며, 저 분들 중에 10%만이라도 아니 1%만이라도 토요일에 거리에 함께 나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 있었다. 거기 서 있는 동안 몇 가지 흥미로운 일들이 있었다.


#1

나와 동료들은 각 출구마다 1명씩 맡아서 출구에서 나오는 인파에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을 찾아 서 있었다. 6시부터 7시 반까지 1시간 반이었다. 내가 처음 피켓을 들고 갔을 때부터 몇몇 분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 대부분은 약속한 친구나 연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유독 한 여성 분은 계속 나와 함께 그 공간에 남아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그 자리에 있었고, 40분이 지날 때까지 계속 함께였으니, 그 분은 최소 40분은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이다.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어디서 산 것인지는 몰라도 작은 과자나 사탕, 젤리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어디 가방이나 봉투에 넣은 것도 아니고 불편하게 한 손에 여러 봉지를 쥐고 있었다.


그 시간에 만나는 것이라면 아마도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한 것일텐데, 저 군것질 거리들은 선물하기 위한 것일까? 아님 식사를 다 마치고 함께 나눠 먹기 위한 것일까? 가방도 메고 있던데, 왜 가방에 넣지 않고 40분 넘게 손에 들고 있었을까?


함께 그 공간에 서 있은지 30분이 넘어가면서부터, 저 분도 참 힘들겠다. 누굴 기다리는 건지 몰라도 왜 굳이 역 앞에 계속 서 있는 것일까? 어디 먼저 들어가서 전화나 문자를 남겨도 될텐데. 뭐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기다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궁금해했다. 저렇게 오래 기다리는 사람은 과연 저 분에게 어떤 존재일까?


40분이 조금 더 지나서 마침내 그 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한 사람은 그 분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다. 친구? 아니면 가족? 얼굴이 닮지 않아서 직계 가족은 아닐 것 같았다. 아주 친한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암튼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2

많은 사람들이 지나는 곳이라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은 대체로 휴대폰을 쳐다보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와서 나를 비롯해 주위에 시선을 주지 않고 그대로 걸어 나왔다. 중년부터 어르신들은 대체로 나와 피켓에 한번씩 눈길을 주고 빠르게 스쳐갔다. 간혹 몇몇 어르신들은 글씨를 읽느라 혹은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내 앞에 멈춰서서 한참을 쳐다보고 계시기도 했다. 간혹 남성 어르신들이 내 피켓을 쳐다보며 표정이 일그러질 때면 혹시라도 시비를 걸어오는 것은 아닐지 긴장이 되기도 했다. 만약 소리를 지르거나 시비를 걸면, 능청스럽게 대처해야지 하고 어떻게 답할지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다.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정장과 캐주얼, 트레이닝 복 같은 간편한 차림과 아주 한껏 멋을 낸 원피스 같은 옷들이 끊임없이 눈 앞을 스쳐갔다. 사람들의 머리 스타일도 눈에 잘 들어왔다. 남성들은 대체로 짧은 머리, 물론 그 안에서도 아주 짧은 흔히 스포츠 머리라고 부르는 형태나 옛날말로 상고 머리라고 부르는 귀 주위와 뒷머리만 밀어 올린 형태 등 다양하게 나뉜다. 간혹 나처럼 남성인데도 긴 머리도 있었다.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짧은 커트 머리나 단발 머리가 많았고, 긴 머리는 적었다.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 반대편에 조금 멀리 거리를 두고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단발머리에 체격이 크고 조금 살이 찐 몸매였다. 편한 트레이닝 복 상하의를 입고 신발도 크록스 샌들을 신고 있었다. 조금 거리가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실루엣만 보고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잘 구분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단발머리에 조금 살이 있는 몸매의 형태가 그렇게 보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표현해서 정말 죄송하지만) 가슴 쪽에 살이 도드라져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분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가끔씩 눈길이 갔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얼굴형이 어쩐지 남성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 남성이건 여성이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때는 좀 지루하기도 했고, 슬슬 허리도 아프고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해서 나도 모르게 그 분에게 자꾸 시선이 갔다. 한번 남성인 것 같다고 생각이 바뀌자 이젠 여성으로 보이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그 분이 반가운 표정으로 출구 쪽으로 다가왔다. 출구에선 인파에 섞여오던 한 여성 분이 그 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갑게 껴안았고, 기다리던 그 분이 출구에서 나온 여성 분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뺨에 입을 맞췄다. 목소리가 들렸는데, 확실히 남성이었다. 여성 분은 세미정장 차림이었는데, 세련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저쪽으로 멀어졌다.


문득 누군가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나를 보고 저 사람 남자야? 여자야? 하고 궁금해하지 않을까? 몇 차례 남자 화장실에서의 에피소드도 있었고, 얼핏 보면 잘 알아채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나처럼 머리를 기른 남성이 많아지면 이런 편견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내 주위에 여러 명 있었다. 머리가 짧은 여성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 같았다. 이제 머리를 기른 남성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3

가끔 눈에 확 띄는 사람들이 지나가곤 했다. 키가 크거나, 몸매가 빼어나거나, 옷을 잘 입었거나,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쁘거나. 거기 서 있으면서 내가 워낙 눈에 띄지 않는 편이라는 점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 머리를 길렀다는 점 외엔 딱히 눈에 들어오는 외모는 아니다. 이럴 때에 내가 연예인처럼 외모가 빼어나다면 지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내 외모에 호감을 가지게 된다면 토요일에 거리에 함께 나서주지 않을까? 순간 내 외모에 대한 실망 아니 절망감이 들었다. 좀 더 키가 컸다면, 좀 더 체격이 좋았다면, 좀 더 얼굴이 잘 생겼다면 좋았을텐데. 뭐, 어쩌겠는가? 이미 이렇게 태어난 걸 이제와 무슨 수를 써도 어쩔 수 없는 것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여성 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평범한 옷이 아니었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입을만한 옷, 독특한 모양의 까만 원피스였다. 게다가 옷의 모양으로 보아 누구나 쉽게 소화하기 어려우리라 짐작했다. 어지간히 몸매에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옷이었다. 게다가 그 원피스의 길이가 무척 짧았다. 짧은 치마 아래로 늘씬하게 긴 하얀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일부러 보려고 쳐다보지 않아도 그냥 눈에 들어온 정보였다. 


나는 기후정의행진을 홍보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 여성분을 눈으로 쫓지 않았다. 내가 그 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면, 나를 향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인파들 중에 상당 수가 내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 지 눈치챘을 것이고, 그 다음 순간 나를 향해 욕을 하거나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나는 일부러 그 방향을 보지 않으려고 몸을 돌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서던 한 중년의 아저씨는 그 여성 분을 쳐다보더니 눈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숱이 급격하게 줄고 있는 입장에서 무척 슬픈 단어이지만) 그 대머리 아저씨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면서도 그 여성 분을 눈으로 쫓았고, 다음 순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 하는 모습을 연출해, 그 자리에 함께했던 수많은 인파들에게 마치 한 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은 장면을 제공했다.


아, 아저씨. 알아요. 누구라도 그럴 수 있어요. 나도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이상한 변태 같은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저절로 눈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쳐다보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야죠. 아무리 눈이 가도 한번 봤으면, 이제 그만 쳐다보고 눈길을 돌려 계단을 인지하고 발을 디디셨어야죠. 곁에 동반자(아내나 연인이나 가족)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조심히 가세요. 


#4

가끔 그렇게 거리에 서면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예전부터 1인 시위, 선전전, 캠페인, 서명운동, 연설회, 기자회견 등을 하다보면 자주 아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어제는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료 활동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가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나도 반가움에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는 바빠서 그랬는지 자전거를 멈추지는 않고 손짓으로 수고하라는 의미를 전하며 멀어졌다.


그가 멀어지고 나서 또 아는 사람을 몇 명이나 더 마주칠지 예측을 해봤다. 유동인구가 워낙 많고 이쪽 동네에 아는 사람도 많아서 아마 두 세명은 더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다가 다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지금 다른 지하철 역의 다른 출구에 서 있구나 하는 사실도 깨달았다. 아, 그럼 또 아는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쉽지는 않겠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일부러 나를 보러 온 선배 한 명을 만난 것 외에 다른 지인을 만나지는 못했다.


#5

그렇게 서 있으면서 몇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부러움이었다. 그 전철역 앞 출구를 약속 장소로 정한 사람들은 끝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한결같이 약속한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며 악수를 나누거나 포옹을 나누거나 심지어 뺨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손을 잡고 혹은 팔짱을 끼고 혹은 어깨에 손을 얹고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나도 저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저렇게 반갑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는 서러움이었다. 나는 배가 고팠다. 7시 반에 선전전을 마치면 피켓을 사무실에 갖다 놓고 서둘러 회의를 하러 이동해야 했다. 회의는 아마 9시 반은 되어야 마칠 것이다. 9시 반에 누군가 나와 함께 밥을 먹어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들 이미 저녁을 먹었을테니. 나는 그 시간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어야 할까? 그 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여서 밥도 못 먹고 돌아다니는 내 팔자가 문득 서럽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나는 피로를 느껴고 허리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 씻고 편히 쉴텐데, 나는 땀에 쩔은 옷차림으로 아직도 다음 일정이 남아 있는 이 상태라는 것이 서러웠다.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이었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나를 향한 눈빛에서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분들이 있었다. 말로 전하지는 않았지만, "응원하고 있어요." 혹은 "고마워요. 함께 할게요." 라거나 "그날 만나요." 등의 의사가 내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 적어도 내가 이 피로와 허리 통증과 지루함을 감수하고 1시간 반을 서 있었던 것은 이 분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서였어. 비록 부러움과 서러움의 감정을 다 메워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피로를 이겨내고, 허리 통증 참으며 끝까지 시간을 채우고, 다음 회의 장소로 서둘러 이동할 정도의 동기를 만들어주었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 이번주 토요일 저와 데이트 하시지 않을래요? 거리를 맘껏 쏘다니며 소리도 지르고 몸짓도 해봐요. 자동차가 독점했던 아스팔트를 잠시나마 차지하는 특별한 경험을 함께해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몸이 되어 함께 걷고, 함께 뛰며, 한 목소리로 외치는 신기한 경험을 함께해요. 9월 23일 오후 2시 세종대로에서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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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감은빛 2023-09-27 19: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

희선 2023-09-21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곳에 오래 서 있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을 보셨군요 여러 가지 과자 사탕 젤리 들고 계시던 분 오랫동안 기다리셨네요 만나기로 한 사람 만나서 다행입니다 안 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누군가를 만나는 모습이 글 속에 있었네요 피켓 보고 뭔가 안 좋은 말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은 생각 들 것 같아요 그런 사람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감은빛 님이 하시는 일 거의 좋게 생각했겠지요


희선

감은빛 2023-09-27 19: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희선님.
제 글을 읽으며 혹시 저 분이 기다리던 분을 못 만나면 어쩌나 생각하셨을까요?
평소 글과 댓글을 읽으며 희선님의 감수성이 무척 풍부하다고 느껴요.
제가 들고 있던 피켓을 보고 어르신들이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신거죠?
네, 그런 일이 없어서 저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거든요. 막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사람이거나,
인상을 쓰며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들.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