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시놉시스 

늙은 돼지 메이저가 그 생각을 떠올린 건 새 틀니를 받던 날이었다. 얼굴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만큼 현명한 돼지 메이저는 아침에 거울을 보다가 문득 그 돈이 떠올랐다. 메이저는 입이 귀에 걸릴만큼 큼지막한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 시각 늙은 돼지 메이저의 옆집 이웃인 조지 볼링 역시 거울을 쳐다보며 새 틀니를 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지 볼링은 뚱뚱한 외모 탓에 터비(나무통 tub를 연상시키는 외모탓에)라고 불리는 인간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경마를 통해 부인 몰래 비자금을 마련해두었는데, 그 돈을 자신의 정원 나무 아래 감추는 장면을 늙은 돼지 메이저에게 들키고 말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터비는 그날 아침 새 틀니를 받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들뜬 마음은 곧이어 자신이 감춰놓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값비싼 식당에서 예쁜 여성과 식사를 할까? 내 주위에 그렇게 예쁜 여성이 없었지! 그럼 그렇게 예쁜 여성을 꼬시기 위한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할텐데. 뭐가 있을까? 향과 맛이 좋은 와인? 값비싼 자동차? 뭐가 되었든 숨겨둔 돈만으로는 무리다!


터비가 사치스러운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즈음 메이저는 일찌감치 집을 나서 이웃 터비의 차고 앞을 서성거렸다. 분명히 터비는 오늘 숨겨둔 돈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터비도 오늘 새 틀니를 찾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 틀니를 찾은 터비는 숨겨둔 돈을 찾아 어디론가 떠날 것이고, 메이저는 그를 따라 어디든 따라나설 생각이었다.


터비는 힐다의 무성의한 배웅을 무시하고 집 현관을 나섰다. 발걸음을 차고로 옮겨, 낡은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자 메이저는 쾌액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몸을 피했다. 계산된 동작이었다. 터비는 당연히 차를 멈추었고, 키 낮은 관목들을 뭉개고 누운 메이저를 내려다보며 사과하고, 손을 뻗어 일으켜 주었다. 이때 한 블록 옆에 살고 있는 나폴레옹이 자전거를 타고 자나가다가 이 장면을 보았다. 젊고 튼튼한 돼지 나폴레옹은 늙은 돼지 메이저에 대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은 곧바로 터비를 쏘아붙였고, 터비는 더 할말을 잊은채, 그의 말을 다 인정했다. 메이저는 합의금과 치료비를 요구했다. 나폴레옹은 거기서 일정부분은 자신의 몫으로 요구했다. 그리고 터비는 그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그 금액은 정확히 터비가 숨겨둔 돈의 액수와 같았다.


터비는 결국 나폴레옹과 메이저에게 설득당해 숨겨둔 비자금을 모두 내주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메이저는 그 돈을 오랫동안 계획해왔던 거사를 준비하는 자금으로 썼다. 나폴레옹은 그 돈의 일부를 거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나머지 돈은 자신의 사욕을 위해 사용했다. 인간과 동물의 권리가 동등하다는 이른바 ‘동물권리선언’이 채택된지 백여년이 지났지만, 동물들 중에서 그 조항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나폴레옹처럼 중간에서 착취를 일삼는 친인간파 돼지들이 있으리라고는 대부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메이저는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곧 영원히 잠이 들었지만, 나폴레옹은 그동안 쌓아왔던 혁명적 기반을 바탕으로 마침내 동물 혁명을 일으킨다. 오랜 세월을 공고히 이어져왔던 인간의 동물에 대한 지배권이 무너지고, 서류상의 평등이 아닌 실 생활에서의 평등이 정착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마침내 동물은 인간과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었으나, 혁명 직후의 오랜 혼란기를 거치면서 각 동물들은 다양한 입장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분파로 이루어진 혁명 2세대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다.



제목 : 혁명기의 동물들
감독 : 감은빛

각본 : 감은빛

원작 : 조지오웰

주연 : 메이저, 조지 볼링, 나폴레옹

조연 : 힐다. 복서, 스노볼, 스퀼러 등


조지 오웰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낸 ‘동물농장’이나 ‘1984’ 등의 소설을 쓰기 직전에 발표한 소설이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발표된 적이 없는 미지의 작품. 조지 오웰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현실을 꿰뚫는 시선이 드러나는 숨은 걸작이다.


‘동물농장’과 ‘1984’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전쟁의 기운이 만연한 시대에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의 불안과 개인의 소외를 드러낸 문제작이다. 역시 조지 오웰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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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1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신랄한 우화설정이군요~
옛날엔 이랬지만 요즘은 그나마 세상 좋아졌어,,,라고 말하기 민망한 현실이 참 그렇습니다--;

감은빛 2011-05-11 13:10   좋아요 0 | URL
글이 비약이 좀 심하죠? ^^
현실을 생각하면 참 한숨만 나옵니다.

굿바이 2011-05-1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반가운 책을 여기서 보네요. 좋은 책 소개 잘 읽었습니다 ^^

감은빛 2011-05-11 13:11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루쉰P 2011-05-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조지 오웰의 매니아로서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인데 감은빛님의 리뷰를 읽으니 더욱 댕끼는 이 마음 ㅋㅋ 역시 조지 오웰처럼 역시 감은빛님이란 말이 절로 나오네요.

감은빛 2011-05-11 13:15   좋아요 0 | URL
역시 루쉰님도 조지 오웰 마니아였군요.
요즘 계속해서 조지 오웰 책들이 꾸준히 나와서 좋네요!

루쉰님 자꾸 그렇게 비행기를 태우시면,
나중에 떨어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찢어진 낙하산이라도 하나 챙겨주실거죠? ^^

루쉰P 2011-05-11 15:37   좋아요 0 | URL
전 은근히 냉정해서 낙하산 따위는 챙기지 않습니다. 다만 떨어지지 않게 계속 띄울 뿐이죠. ㅋㅋㅋ

그리고 오해 하실까봐 얘기드려요. 전 칭찬에 인색해요. 푸훗.

감은빛 2011-05-12 01:20   좋아요 0 | URL
앗! 찢어진 낙하산도 안되나요? ^^
제 서재에 남긴 댓글로 보아 인색하다는 말씀은 믿기 어렵사옵니다!
떨어지지 않게 계속 띄워주신다는 말씀만 믿겠습니다! ^^

루쉰P 2011-05-15 08:21   좋아요 0 | URL
네 믿어주세요. ㅋㅋ 아 누군가에 믿음을 주다니 저도 교주의 끼가 있나봐요. 헤헤헤

마녀고양이 2011-05-1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 농장을 하두 오래전에 읽어서
순간적으로 동물 농장인가 하고 다시 읽었어요.
아, 읽고 싶은 소설인데요. 청년 시절 조지 오웰에 한번쯤 다들 심취하잖아요.
정말 신랄하고 심란한 소설들이었죠.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지금 더욱 심란하려나요?

감은빛 2011-05-12 01:24   좋아요 0 | URL
두 책을 섞어서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졸리고, 급한 마음에 그만 허술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이 책은 본격적인 조지 오웰의 소설보다는 조금 읽기 쉽습니다.
국내에 첫 소개된 소설이라니,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님께는 취향에 맞으실 듯, 재미있게 읽으실 거예요.

양철나무꾼 2011-05-12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진짜 재치발랄한 시놉인걸요, 저 아래 어딘가의 마늘밭이 생각나는 것이...
이 책 쟁여만 놓고 아직 못읽었어요.
숨쉬러 나가려 하지만, 마땅히 숨 쉴 곳을 찾지 못하는 얘기라고 하여...
좀 숨쉴만 할 때 읽어보려구요~^^

감은빛 2011-05-12 01:29   좋아요 0 | URL
앗! 마녀고양이님 댓글을 읽고 답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짠'하고 양철님 댓글이 나타났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유, 졸음을 참아가며 급하게 쓴 글이라,
허술하기만 한 글입니다.
뭔가 좀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 풀어내지 못해서 아쉽네요.

어서 밀린 책들을 읽어치우고!
양철님이 보내주신 두꺼운 책들을 펼쳐들어야 할텐데....

따라쟁이 2011-05-1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갑자기 감은빛님은 비자금이 생기면 어따가 쓰실까.. 뭐 이런 궁금증이 생기네요.

아 발랄깜찍한 시놉에 이런 댓글을 다는게 좀 죄송하지만, 원래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 다는게.취미자 특기니까^-^

감은빛 2011-05-15 23:27   좋아요 0 | URL
저요? 요 글에 답이 있습니다.
비자금이 생기면 좋겠지만, 평생 그럴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 -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
박희선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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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우리 바다 

가끔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나도 모르게 바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독립해서 집을 떠나 살기전까지, 나는 늘 바다 가까이에서 살아왔다. 멀리 해운대 바다가 보이는 장산 기슭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독립하기전 유일하게 집을 떠나있던 시기였던 군생활도 바닷가에서 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지금껏 아름답고 유명한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었다. 해운대는 지금은 모래사장이 10분의 1도 채 남지 않아 그 명성이 무색해졌지만, 여전히 피서철이되면 수많은 인파로 발디딜틈이 없다. 어릴적 보았던 그 해운대 바다는 참 멋졌는데,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으로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군대 생활을 했던 동해바다의 북쪽 끝자락도 참 아름다운 바다였다. 멀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측땅 해금강이 보이는 맑고 푸른 바다. 무엇보다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기에 물이 정말 맑았다. 딱 한번 청소하러 철책선 안으로 들어갔다가, 그 아름다운 바다 빛깔에 반해버려, 총이고 옷이고 다 벗어던지고 뛰어들고 싶은 맘을 참느라 힘들었다. 조금 남쪽으로 내려오면 유명한 화진포 해수욕장이 있다.(여기도 해안청소하러 두어번 갔었다.) 김일성과 이승만이 경쟁하듯 별장을 지어놓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어디 이 두 곳 뿐이겠는가. 운 좋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많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바다에 어떤 인연이나 추억이 곁들여진다면, 그 바다가 더욱 각별해질 수 밖에 없다. 유명해지기 전이라 아직 인적이 드물었던 정동진이나, 곱디 고운 모래와 소나무의 멋이 기억에 남는 남해 송정해변 등도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들이다. 

지금껏 동해와 남해만 아름다운 바다인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서해에도 아름다운 바다가 무척 많다! 신두리 해안 사구의 절경과 밀물때는 사라졌다가 썰물때 나타나는 신비한 모래섬을 볼 수 있는 대이작도는 그냥 사진으로만 봐도 정말 아름다웠다. 이외에도 이 책에 소개된 14곳의 바다는 모두 다 아름답기만하다.

바다는 언제나 마음의 휴식처 

모든 생명은 원래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던가. 맨 처음 말문을 열엇듯이, 힘들고 지칠때면 어김없이 바다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의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무의식 때문일까. 답답한 회색 건물틈을 벗어나 시원하게 열린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기억속에 남아있는 어떤 그리운 추억 때문일까.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그러나 이 낯선 대도시에 살면서, 보고 싶다고 아무때나 바다를 보기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힘들었을 때, 주위 친구에게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더니 데려간 곳은 인천 월미도였다. 월미도도 나름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할만한 곳이고, 나름의 풍경이 있는 곳이지만, 솔직히 내가 원한 바다의 모습은 아니었다. 데려다준 친구가 무척 고마웠기에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잘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이 대도시에서 손쉽게 갈 수 있는 바다는 월미도 뿐이구나 싶었다. 가끔 주말이 되어 가족 나들이를 가고 싶어도 어디가 좋은 곳인지, 비교적 가까이에 가볼만한 곳은 없는지 잘 몰라서 주저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바다는 죄다 강원도, 경상도, 부산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구원'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멋진 바다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위치와 찾아가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게다가 책 뒷부분을 보면 해변이나 갯벌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바다생물들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저자가 추천하는 곳들을 부지런히 돌아보아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그냥 한가로이 바닷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돌아오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올해부터는 이 책을 가방에 넣고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다.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 

솔직히 제목만 들었을 때는 그냥 그런 여행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해양보호구역 답사기'라는 부제는 조금 딱딱한 느낌이어서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막상 책을 손에 쥐고 보니, 왜 제목에서 '특별하다'는 의미를 강조했는지 알 것 같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시원시원한 사진들이 일단 인상적이고, 부드럽게 읽히는 저자의 글도 괜찮은 느낌이다. 조곤조곤 풍경과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가끔 던져지는 질문이나 문제제기도 맘에 든다. 마냥 들뜬 기분이었다가 툭 던져지는 한마디에 갑자기 숙연해지거나 심각해지기도 하는데, 덕분에 아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의 책이 된게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을 들자면, 우선 글이 조금 모자란 느낌이다. 흔히 접하는 여행에세이 느낌으로 읽었는데, 다녀온 곳들마다 충분히 할말을 다 못한 느낌. 각각의 바다에 대해서 좀 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뒤쪽에 '해양생물찾아보기' 부분도 설명이 모자란느낌이다. 

이제 책을 다 읽었으니, 바다로 여행을 떠날 일만 남았다. 뭐 당장 여행을 떠날 형편이 못된다해도, 괜찮다. 생각날때마다 꺼내어 멋진 사진들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아주 특별한 바다 여행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바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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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5-0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낮에 TV로 「오션스」를 봤어요. 어린이날 특집으로 해준 모양인데 아무튼 넋을 잃고 봤어요. 바다, 시원시원한 사진들이 인상적이라고 하시니 우선 담아갑니다. ^ ^

감은빛 2011-05-06 13:4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다큐멘터리 봤어요.
큰애가 좋아할줄알고 보여줬는데, 아이는 중반쯤 관심을 잃어버리고,
저는 점점 더 열중하게 되서,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나니, 저 혼자 열심히 보고 있더라구요.
아이는 저기서 혼자 인형놀이 하고 있었어요. ^^

바다 속 사진은 조금 밖에 없어요.
대부분 해안 사진인데,
정말 우리나라에 저렇게 멋진 곳이 많구나~!
새삼 감탄하게 되었어요!

순오기 2011-05-0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다는 막힌 걸 확 뚫어줘서 좋더라고요,
저도 사는 게 답답하고 답이 안 나올 때 무조건 기차타고 바다를 보러 갑니다.
그러면 가슴이 뚫리고 다시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감은빛 2011-05-11 13:05   좋아요 0 | URL
광주에서는 주로 어디로 가시나요?
기차를 타신다니, 남쪽으로?

네, 바다는 답답한 마음을 확 뚫어주는 존재죠.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1-05-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모로 이쁜 책이에요 ^^

감은빛 2011-05-11 13:06   좋아요 0 | URL
네, '이쁜 책'이란 단어가 어울리네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5-0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녀 시절,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를만한 사람을 골라서 만나던 시절에 말이죠.
저는 바닷가 여행을 가면, 해변가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몇시간씩
바다만 바라보던게 특기였답니다. 물속에 들어갈 생각도 없이
바다와 햇살이 변화하는 모습을, 해가 지는 모습과 달이 뜨는 모습을 보는거죠.

그런데 결혼하여 한자리에 엉덩이 30분 이상 걸치지 못 하는
신랑을 만난 이후, 한번도 못 그랬어요. ㅠ. 그런데 머.. 그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

감은빛 2011-05-11 13:08   좋아요 0 | URL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거,
저도 결혼 전에는 혼자 겨울 바다를 찾아가서, 종종 하던 일이었어요.

결혼 후에는 그러질 못했죠.
신경써야 할 사람이 늘 옆에 있게 되었으니까요.
네, 그것도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
 

환경연합에서 정부의 안일안 태도에 더이상 기대지 않고, 스스로 방사성물질을 측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고가의 방사선검출기를 구매하기 위한 모금에 들어갔다. 네이버 해피빈에 마련된 이 모금함은 며칠째 논란에 휩싸여,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가 어제 양이원영 국장의 해명글 이후로 조용해진 듯 하다.  

일단 정부의 태도야 뭐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하고, 그렇다면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기 위한 모금활동에 대한 부분인데, 여러가지 반론이 있었지만, 대부분 지난번 공금횡령과 성스캔들 건을 언급했다. 오래전 녹색연합이 장원씨의 스캔들로 큰 타격을 입고, 그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환경연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때 그 일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모금활동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과연 해피빈의 모금만으로 그렇게 큰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또 그 장비를 구매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인데, 이부분에서 얼마나 상세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 모금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할만한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을지. 뭐 이런 부분들에 조금 의문이 든다. 

이번 논란과 관련하여 양이원영국장이 쓴 글을 읽으면서 또한번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측의 태도에 놀라게 되었다. 

1. 방사성물질 검출은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나서 국방기관에서 제논이 검출될 때까지 일주일에 1회밖에 측정하지 않다가 28일부터 뒤늦게 매일 측정을 시작하고 

2. 후쿠시마현 부근 4개현에서 식품 수입 금지한다고 발표하더니, 알고 봤더니 그쪽에서 출하금지된 것만 수입금지하고(수입할래야 할 수 없는 출하금지 된 품목들)

 3. 방사선방호를 책임지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방사능 비 매일 2리터 마셔도, 방사능비 한 달 내내 맞아도 안전하다고 하고 

4. 요오드 기체를 검출하는데 추가로 더 필요한 활성탄 필터를 사용하지 않은 전국 12개 측정소와 활성탄 필터를 추가로 사용한 울진민간환경감시기구 측정 결과가 최고 6배가 차이 나는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활성탄으로 측정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5. 방사능비 맞은 채소에 방사성물질 검출되었는데 그것도 40개 표본 조사해서 나온거고 유통된 뒤 4일 후에 발표했어요. 지금도 농수축산물 전수조사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어떤 품목은 한 달에 한 번 어떤 품목은 일주일에 두 번 합니다. 

6. 우리나라는 이런 공간방사선량을 측정하는 곳이 전국에 70곳이고, 방사성물질을 검출하는 곳이 전국 12곳입니다. 물론 요오드와 세슘만 가능합니다. 서울은 한양대 옥상 한 곳이 전부입니다. 이곳의 측정 결과로 서울 전체가 안전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인용한 6개의 항목 중에 제일 황당한 건, 3번이다. 방사능 비 매일 2리터씩 마셔도 안전하다고 한 한국원자력기술원장이란 인간은 제발 매일 2리터씩 마셔보고 주둥아리 놀렸으면 좋겠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주변지역에서는 여러 경로로 피폭으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니, 아직도 그 양이 절반 이상 남아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방사성물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앞으로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는 양이원영 국장의 마지막 말에 공감한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정보를 누구라도 알기 쉽게 공개하는 것이다. 정부와 한수원이 제 할일을 등한시 한다면, 환경단체라도 나서서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네이버 해피빈 모금함 바로가기
http://happylog.naver.com/happykfem/rdona/H000000054116 

양이원영 국장의 해명글 바로가기
http://www.kfem.or.kr/kbbs/bbs/board.php?bo_table=discussroom&wr_id=30469&sca=&sfl=&stx=&sst=&sod=&spt=0&pag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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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0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방사능은 우리 뇌리에서 잊혀진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죠.ㅜㅜ
앞으로가 문제인데 정부 대책은 없고 한심하고 두려운 날들이 계속 될 듯...

감은빛 2011-05-11 13:04   좋아요 0 | URL
어제는 후쿠시마 원전 사구 2달간의 상황을 정리한 기사를 읽었는데,
무려 2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하나도 좋아지지 않았더라구요.
일부에서는 올해 안에 수습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고 예상하던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고리 1호기를 재가동 시켰다지요?

젠장! 어디 이민이라도 가야할 것 같아요.
 

하나. 곤조 혹은 고집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곤조 있는 나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또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의 고집이 마음에 듭니다. 같이 일해보고 싶습니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고집이 쎈 사람이군요.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예전에 친했던 어느 녀석은 누가 네 고집을 꺾겠냐고 혀를 내둘렀다! 

어찌보면 같은 면을 보았을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맘에 들기 위해 변해야 할까. 변하지 말아야 할까. 아니 과연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변할수는 있을까? 

답을 찾고 싶어서 밤 늦게까지 술을 잔뜩 마셨는데, 돌아오는 건 피로와 숙취뿐이다. 

둘. 취향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냐고? 그닥 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는 대답을 하려다가 맘을 바꿔 기억을 더듬었다. 뭔가 있었는데, 뭐였더라? 기억이 안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리속에서 해마다 보았던 영화제목과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넘겨보았다. 결국 9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동사서독>과 <타락천사>였다. 특히 <타락천사>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번 보았을 뿐 아니라 그런 분위기에 젖어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분명히 뭔가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를 기억해보려고 무진장 노력을 했지만,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 질문 자체를 깨끗이 잊고 바쁜 일상을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서였을까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등 앞에 서있는데 문득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타인의 취향> 아니 그 감독의 다른 영화 <룩 엣 미> 였던가. 아녜스 자우이 감독은 아내가 무척 좋아하는데, 같이 살면 취향까지 비슷해지는 건가.

셋. 변화 

자료를 찾기 위해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했는데, 내가 예전에 써놓았던 글이 검색되어 나왔다. 이거 좀 신기한데! 어느새 나는 자료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처음 보는 글인양, 내가 썼던 글을 읽고 있다. 낯설다. 그땐 이런 글을 썼었구나. 

영화 <봄날은 간다> 였던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때는 사람도, 사랑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그런 말을 계속 머리속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한다. 사람도, 사랑도 시간이 지날수록 변한다.   

넷. 다시 고집

오래전 내 고집을 싫어한다고 했던 이가 겪었던 나와 며칠 전 내 고집 때문에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했던 이가 보았던 나는 과연 같은 나였을까, 다른 나였을까? 나의 곤조가 좋다던 이와 나의 고집이 마음에 든다던 이는 같은 면을 보았던 것일까, 다른 면을 보았던 것일까? 

내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머리가 아프다. 그냥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작고, 여리고, 보잘것 없고, 곤조를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상처주고, 적을 많이 만들어 왔던 나였지만, 그래도 그런 나를 이해하고 좋아해주었던 이는 분명히 있었다. 

갑자기 이승환의 '나는 나일뿐' 이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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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4-2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모르게 추천을....!

감은빛 2011-05-03 11:48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이승환 팬이셨죠!
고맙습니다! ^^

pjy 2011-04-2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 변하고 있고, 생각해보면 정말 많이 변했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선택을 하는거보면 도루 그대로인듯 싶습니다^^;

감은빛 2011-05-03 11:49   좋아요 0 | URL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많았는데,
지나고보면 또 별것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많이 변한 것 같은데, 또 생각해보면 별로 안 변한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러네요. 사는게 다 그런건가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4-2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신을 포장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 점에서는 아주 고집이 세죠. 제게 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어딘가 꾸민듯 하거나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에게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낀 후에
항상 근처에서 고민한답니다. 내가 '그사람'을 본게 맞을까? 하고.

저두 그냥 저이고 싶은데, 감은빛님두 그러신가봐여.
저는여, 감은빛 님의 페이퍼가 아주 좋습니다!

감은빛 2011-05-03 11:52   좋아요 0 | URL
저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어느정도씩은 '과장'과 '포장'을 한다고 생각해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요.
거의 안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좀 심하게 많이 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지만, 맘처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늘 칭찬과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4-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갑자기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친구 한 둘만 있어도 괜찮지 않나요? 그 정도는 충분히 있으실것 같은데요^^

감은빛 2011-05-03 11:53   좋아요 0 | URL
아! 그노래. 참 좋아했던 노래예요.
갑자기 듣고 싶어졌어요!

변하지 않는 친구. 딱 둘 정도 있는 것 같은데요. ^^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1-04-30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타락천사라는 영화 완전 좋아해요.
그 중 忘記他라는 노래는 더더욱이요~

감은빛 2011-05-03 11:57   좋아요 0 | URL
와! 영화에서도 겹치는 군요!
말씀하신 노래는 저도 기억에 남아있는 곡이예요.
댓글 보고 찾아서 들어봤어요.
당시에 구입했던 영화OST는 어디있는지 찾아도 보이질 않네요.

수이 2011-05-03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감은빛님? 닉네임이 낯익어서 와봤더니만 제가 아는 감은빛님이 맞으시네요. 후훗.
다시 읽어도 좋네요. 저도 추천 꾹. ^^

감은빛 2011-05-03 11: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민맘님.
알라딘에서 보니 더 반갑네요!
얼른 가서 '즐찾' 누르고 왔습니다. 자주 뵐게요. ^^

따라쟁이 2011-05-0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감은빛님은 그냥 감은빛님 같아요.

감은빛 2011-05-04 14:20   좋아요 0 | URL
갑자기 그 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걸요. ^^

잘잘라 2011-05-0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술 안 먹으면 까칠하고 술 먹으면 완전 까칠해서 한 사람씩 붙잡고 일대일 면담해요(한데요. 그 정도면 늘 필름 끊기니까요..ㅜㅜ;;)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쟤는 술 멕여도 까칠하고 안멕여도 까칠하니까 그냥 냅둬." 이런 소리 들어요. 요즘엔 사람들이 저를 너무 냅둬서, 심심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계속 이러면 더 까칠해질텐데.. 흑. 고민이예요.ㅜㅜ;

감은빛 2011-05-04 14:23   좋아요 0 | URL
술과 관계없이 까칠하신 포핀스님~~
아무리 까칠해도 함께 놀아줄 분이 분명히 계실텐데,
혹시 일이 끝나서 그런 거 아닌가요?
아직 울산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 건 아니죠?

근처라면 제가 잠시라도 말벗이 되어드릴텐데....

순오기 2011-05-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조~ 우리 아버지가 즐겨 쓰던 말이었는데, 우린 '근성'이란 말로 바꿔 쓰죠.
근성이나 고집 없는 사람은 매력도 없지 않을까요?^^

감은빛 2011-05-11 13:02   좋아요 0 | URL
자고로 남자는(사람은) 곤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어느 어른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네, 그렇겠죠. 누구나 다 나름의 고집과 근성이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순오기님도 한 곤조 하실 것 같은데요. ^^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시겠죠~!
 

하나. 비와 이별 

 차창 밖으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지구의 살갗을 파헤쳤다. 얇은 철판과 조금 두꺼운 유리에 사정없이 떨어져 내리는 비는 청각을 마비시켜 정신을 멍하게 만든다.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올려놓고 담배불을 당긴다. 어김없이 비에 대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한때 제법 좋아했던 노래지만, 하필 지금 이 순간 이 노래가 나오다니! 

매캐한 담배 연기가 좁은 차 안을 가득 메운다. 창문을 조금 열었더니, 곧바로 비가 들이쳐 얼굴을 때린다. 이마를 쓰윽 닦아내고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후욱 하고 내뱉은 연기는 열린 창문 틈으로 빨려나간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른다. 작게 따라불러보지만, 역시 고음에서 삑사리가 난다.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다. 창문을 다시 올리고 얼굴에 묻은 빗물을 또 한번 닦아낸다. 코와 입 언저리를 닦아내던 손이 입술에 닿는 순간 흠칫 동작을 멈춘다. 나도 몰래 입술을 만지작거린다. 

불과 이십여분 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꼈던 입술.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되살려보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더듬어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매몰차게 문을 닫고, 저 빗속으로 걸어나간 그 여성을 아마 다시는 볼수 없을 것이다. 입술의 촉각따위 기억해보려해도 부질없는 짓이다! 

둘. 만남 

민방위 대원은 4년차까지 일년에 4시간 교육훈련을 받는다. 올해 4년차, 마지막 교육훈련이다. 내년부터는 1년에 1시간 소집훈련이면 끝난다던가. 하필 가장 바쁜 시기에 민방위 훈련이 떨어졌다. 뒤로 미룰까 어쩔까 고민을 했지만, 이것저것 행정절차가 귀찮을 것 같아서 그냥 받았다. 

바쁜 아침, 한창 바쁜 사람들을 불러놓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어를 뱉어내는 사람들. 어떤 유용한 정보도 없고, 어떤 합리적인 이론도 없다. 그저 시간낭비일 뿐! 그렇게 헛된 시간을 보내게 만든 댓가로 너희는 내가 낸 세금에서 강의료를 받아 챙기겠지. 

두번째 시간이었던가 말투가 어눌한 강사가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노사연의 '만남' 노래를 들려줬다. 자신과 우리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며, 소중한 인연이라는 뜻'을 전달하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 강사는 어눌한 말투로 이것도 인연이니, 다음에는 꼭 아는 척이라도 하고, 같이 커피라도 한잔 하는 사이가 되자고 지껄인다. 순간 우엑! 구토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시대에 뒤떨어진 안보교육과 화생방 교육 따위로 인해 내 아까운 인생의 한 순간이 낭비되었다.  

구역질나는 민방위 강사와의 만남 말고, 미치도록 가슴이 뛰는 어떤 만남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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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2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사람 여럿을 멜랑꼬리하게 만들었네요.
시인 취소예요, 비와 이별 필이라면 여심을 울리는 멋진 로맨스소설 작가로 등극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민방위훈련이라고요~
참 좋을때군요.

감은빛 2011-04-28 10:54   좋아요 0 | URL
여심을 울릴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로맨스소설은 꼭 한번 써보고 싶어요!
양철님의 말씀에 힘입어 꼭 한번 도전해볼거예요! ^^

저의 시간은 영원히 이십대 후반
(그러니까 양철님의 '참 좋을 때'보다 좀 더 좋을 때!)에 멈춰놓고 싶어요!
하지만 현실은......
아직은 좋은 때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락방 2011-04-28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eter Cetera 의 [No explanation] 이라는 노래를 혹시 아시나요, 감은빛님? 그 노래의 가사중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My mouth is still wet from our last kiss'

감은빛님의 이 페이퍼는 자꾸만 이 가사를 떠오르게 하네요.

다락방 2011-04-28 13:00   좋아요 0 | URL

감은빛 2011-04-28 16:30   좋아요 0 | URL
아니오. 그 노래를 알지 못했는데,
다락방님 덕분에 알게되었네요! 고맙습니다!
노래가 참 좋네요.
목소리가 낯익어서 검색해보았더니,
그룹 시카고의 보컬이라고 나오네요.

좋은 노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라쟁이 2011-04-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아하. 오호.. 헉~!

감은빛 2011-04-29 03:19   좋아요 0 | URL
음, 이건 무슨 뜻일까요?
저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통역해주시면 안될까요? ^^

따라쟁이 2011-05-03 17:01   좋아요 0 | URL
음.. 이걸 이해하실 수 있어지시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감은빛 2011-05-04 06:48   좋아요 0 | URL
헉! 그럼 우린 아직 친구가 아니었단 말인가요?
갑자기 슬퍼지는데요. 흑~~

루쉰P 2011-04-29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핫, 민방위에서 노래 부른 대목에서 완전 자빠짐. ㅋㅋ 대박! 첫번째 글에서는 제 얘기를 하시는 것 같은 묘사에 완전 놀람! 왜 이렇게 잘 쓰셨나요? 저 역시 비 때리는 차 안에서 노래를 들었거든요. 전 이소라의 '바람소리'를 듣다가 필 받아 따라 부르다 삑사리 냈어요. 전 감은빛님의 도플갱어이지 않을까요?

감은빛 2011-04-29 12:47   좋아요 0 | URL
민방위 교육에서 노래를 부른 건 아니었고, 강사가 강의자료인 PPT 파일에 '만남' 음악파일을 첨부해놓고 들려주었던 거예요. 어처구니 없죠? 정말!

루쉰님이 공감해주시니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언젠가 제가 말했었죠. 루쉰님과 저 비슷한 면이 제법 있는 것 같다구요. ^^

근데 도플갱어라면, 평생 마주치지 않아야 되겠네요.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어느 한 쪽이 죽게 되는 거라고 하던데요. ^^

마녀고양이 2011-04-29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깊은 어떤 것은 종종 사소한 모티브로 떠오르게 되더라구요.
'비와 당신과의 이야기'는 제 첫사랑이 기가 막히게 부르던 노래인데,
제가 불러달라고 막 조르면 안 부르고 도망가버리곤 했어요. 칫.

그런데 부활만 보면 그녀석이 생각나죠. 에이, 이젠 왕뚱땡이가 되어버린 그녀석. ^^

감은빛 2011-05-04 06:51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이 댓글을 놓쳤군요. 죄송!
그 노래를 기가막히게 불렀다니, 노래솜씨가 엄청 좋았나봐요.
제 대학 동기 중에도 이 노랠 엄청 잘 부르는 녀석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녀석은 그 당시에도 왕뚱땡이였어요! ^^
저는 녀석을 보면서 울림통이 커서 노래를 잘 부르는 거라고 이해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