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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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유명한 SF 영화 스타워즈 프리퀄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당시 극장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할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영화랑은 전혀 관계없이 떠오른 이 엉뚱한 생각은 이후 살아오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위험(그 위험이 크면 클수록)은 잘 보이지 않고,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요소 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먹거리 문제라고 생각된다. 광우병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겠지만, 이외에도 각종 발암물질과 농약 그리고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과 방사성물질 등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에 3끼씩 먹어야하는 사람들은 그 음식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지 못하고(또한 알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다.

 

먹거리 문제에 대한 책들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온 주제는 바로 ‘채식’과 ‘동물권’이었다. 채식에 대해서는 아내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으니, 우선 동물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물권(혹은 생명권)’ 운동 안에 다시 3개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 복지’, ‘동물권’, ‘동물 해방’이 그 경향들이다. 이중 ‘동물 복지’가 셋 중에서 가장 온건한 방식의 운동이며, 마지막의 ‘공물 해방’이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다.

 

그 가장 급진적인 운동 흐름과 같은 이름이자, 그 운동의 시작을 연,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개정완역판이 최근 출간되었다고 하여 찾아 읽었다. 이 책은 1975년에 처음 나와서 2009년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는 1999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2009년의 개정판이 이번에 완역출간된 것이다. 역시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라, 그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이란 가치가 1792년에는 ‘여성 해방’이란 가치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재밌는 일화를 먼저 소개한다. 현대 여성 해방론의 선구자인 메리 울스턴이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출간하자, 뒤이어 [짐승의 권리 옹호]라는 책이 익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그랬다. 그 시대에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 라는 주장이 마치 짐승(단어부터 동물이 아닌 짐승이다)이 사람과 평등하다는 주장처럼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조롱하는 뜻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익명의 저작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거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저 제목은 아주 급진적인 운동의 흐름으로 많은 진보운동 진영으로부터 환영받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성 차별과 인종 차별에 저항하여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배우고 살았다. 그러나 종차별 즉 동물 차별에 대해서는 배우거나 들은 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농담이나 조롱의 표현이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종차별주의자’로 인식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근래 들어 점점 육식이 많아지고, 도로와 아파트와 골프장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살 곳은 점점 줄어들지만, 누구도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들이 인간과 동일하게 자연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우리가 잘 알기 어렵고,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실제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종차별주의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온갖 종류의 동물실험을 거친 상품들을 소비하고,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입거나 매고, 동물의 살과 뼈로 배를 불리며,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그들을 몰살시키고 있다.

 

이 책은 동물 아니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 외의 다른 생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나가는 일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동물 실험 장면들과 공장식 농장에서 가축들이 대량으로 사육되는 현장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들 그리고 그런 묘사들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들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다. 공장식 축산 농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 사전 지식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불편했는데, 동물 실험 부분에서는 정말 읽으면서 욕이 나올 정도로 상식에 어긋난 짓을 저지르는 장면들 때문에 자주 책을 덮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요즘은 ‘애완동물’이란 단어보다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이고, 길을 걷다가 심심찮게 동물병원도 마주치고, 길을 걷다 어렵지 않게 동물들을 마주치는 시대가 되었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 출신의 여성가수가 동물권 운동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채식을 하고, 가죽옷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시대이다. 이 책을 통해 지구상에는 인간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웃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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