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은?

 

뉴스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얼핏 보았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22사단이란 부대명을 보고서야 깜짝 놀라 찾아봤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아래 칼럼을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32045505&code=990303



이 글에선 임병장이 전입되어 온 병사라고 했다. 그리고 잔류와 전입 등이 육군본부도 잘 모르는 변칙과 편법이라고 했다.

난 22사단 출신이다. 이등병 때 GOP에 올라갔다가 나중에 페바에 내려왔는데, 병장이 될 무렵 다시 GOP 투입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내가 제대한 후에야 우리 대대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당시 매우 비정상적이면서 큰 규모의 부대 이동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급 규모의 부대 하나가 사라지면서 해당 부대 병사들은 여기저기 쪼개져서 흩어져 남의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에 대략 한 개 소대 규모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편에선 GOP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부대에, GOP 경험이 풍부한 부대원들을 무더기로 몰아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를 곧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

즉,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GOP 투입을 앞두고 임병장과 같은 전입 병사가 대거 들어왔단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 큰 혼란이 이어졌다! 군생활은 무조건 서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갑작스레 들어온 여러명의 전입 병사들은 기존 소대원들의 서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전혀 뒤섞이지 못하고, 서로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당시 우리 소대에 GOP를 경험한 병사는 서열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내 뒤로는 모두 페바에 있을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서열상 내 바로 뒤에 여럿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원래 소대에서 내 바로 뒷 서열이었던 상병들은 갑작스럽게 자기 앞으로 끼어 들어온 전입 병사들을 고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동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쓴 사람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경험과 임병장의 경험이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당시 그 어이없던 대규모 전입 사태가 왜 일어났던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간다. 육군본부조차 모르는 편법이라니.

 

 

살인 충동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여성들은 가본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 바로 군대 얘기다. 즉,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놓자면, 군 생활하는 동안 위험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일단 자대배치를 위해 전방으로 투입되는 날, 사상 최악의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전방으로 들어가는 포차 안에서 말이다. 휴일이라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축구공이 공터를 벗어나 길 옆 풀밭으로 떨어졌고, 평소에 늘 다니던 길에서 불과 몇 발짝 더 벗어났을 뿐이라 아무 생각없이 공을 주으러 갔다. 축구를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명이 우루루 공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고,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혹은 제일 계급이 낮은 한 명이 공을 주으러 풀밭에 들어가서 공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M16이라는 대인 지뢰가 사람 머리 보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다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 죽었다고 들었다. 머리 위에서 터진 지뢰가 사람 몸을 찢어 놓아서 시신 수습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소초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배치받은 소초의 소초장은 한 마디로 미친 인간이었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경계근무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순찰을 다니는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을 따라다니는 임무를 받았다. 소초장은 길이 아닌 곳으로 함부로 돌아다녔다. 또 버젓이 '지뢰지대'라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과연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를 물었다. 그 인간 말은 이랬다. 사실 지뢰는 방심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인데, 저렇게 해골을 그려놓거나, 지뢰지대라고 써놓으면 누가 들어와서 밟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즉, 저건 가짜로 만들어놓은 지뢰지대이고, 저기엔 지뢰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신병이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와 "네 그럽습니다!"만 크게 외쳐댔는데, 그 인간이 실제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보고 들어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첫 날 들었던 소식은 실제로 주변 초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 때문에 유독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소초장이 진심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 인간은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나도 꼭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뢰지대라는 안내판이 붙은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서 안 쪽으로 서너 발쯤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건 정말 미친짓이야를 머리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가 밟았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려 애쓰며 딱 그가 갔던 곳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수명이 줄었다는 관용어구를 정말 이럴 때 써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오피에서 경계 근무를 나갈때는 실탄과 수류탄을 받는다. 적과 조우할 수 있는 위험지역인만큼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실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하나 있었다. 서열은 대략 5위 정도 였던가. 나는 화기분대 탄약수로 배정받았고, 그 병장은 화기분대 기관총 사수였다. 화기분대에는 기관총 사수가 두 명있는데, 그는 내 사수는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의 사수였다. 소초로 발령받아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쯤에 그 병장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갈군다는 말이 아마 사투리였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대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냥 괴롭힘이었다.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며 하루 하루 지나던 날들. 나는 신병이었기 때문에 맞아도 참아야 했고, 욕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내 바로 위 탄약수는 일병이었는데, 키가 크고, 골격이 크고, 얼굴도 시원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지오피는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을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신병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는 꽤 오랜동안 소초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야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내게 참 잘해줬다. 뭐든 다 챙겨주고, 가르쳐 주고, 지저분한 일들, 누구라도 꺼릴 일들을 척척 해내곤, 씩 웃곤 했다. 나는 맏이라서 형이 없는데, 만약 가족 중에 형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나와 그 일병은 화기 분대의 선임 사수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선임사수와 앞서 소개한 또 한 명의 사수, 그 병장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우리 사수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건만 그 병장은 자주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임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들, 부사수와 두 탄약수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의 전부였다.

 

어느 날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 나와 그 일병을 밖으로 불러내 굴리기 시작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엎드려 뻗쳐 등등 얼마나 굴렀을까, 지쳐서 가쁜 숨을 내 쉬느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군화발이 날아왔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던 일병이 뭐라고 했던가? 아니면 그냥 눈빛만 보냈을까? 아픔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병장은 이게 감히 어디서 개기냐며, 일병을 패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 붓고,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순찰조가 우리 근무지로 접근했다. 근무지에 누군가 접근하면 암구어를 외치고,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멈추게 한 다음, 포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계속 접근해온다면 경고한 후에 사격하도록 되어있다. 멀리 있을 때는 알수 없었으나,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이 오고 보니, 순찰조는 부소초장과 그 병장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외치고, 곧이어 암구어를 불렀다. 평소대로 였다면 곧바로 답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암구어를 불렀다. 또 답이 없었다. 걸어오던 부소차장이 힐끔 그 병장을 쳐다보았다. 암구어를 외우는 것은 늘 후임의 몫이다. 언제나 2인 1조로 움직이는 전방에서, 선임은 암구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후임이 외우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늘 선임이었을 그 병장은 아마 암구어 때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리고 부소초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왔다. 나는 세 번째로 암구어를 불렀다. 역시 답은 없었다.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을 쳐다봤다. 그도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고, 누군지 알는 상대이므로, 암구어를 모른다고 굳이 포박할 이유는 없었다.

 

순찰조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병장을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인 충동. 조준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암구어를 불렀던 순간부터 나는 계속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병장을 겨눴다. 조준경의 막대 위에 그의 얼굴이 올라왔다. 이제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그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증언 할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구어를 세 번 부를 동안 답이 없었고, 멈추라는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다면 나는 죄가 없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 병장은 손을 들어 내 화이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야, 암구어를 세 번 대는 동안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어? 왜 가만히 있는거야?" 어이가 없었던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구어를 안 외운 것은 본인 실수인데,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고 나를 때리다니. 몇 번의 욕을 듣고, 몇 번의 구타가 이어진 후 부소초장은 슬쩍 그 병장을 말렸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암구어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경계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 근무지에서 또 암구어를 댈 수 없을 것이고 또 망신을 당할테니까. 그 병장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고 나를 한 대 더 때렸고, 보다못한 우리 경계조의 선임이 암구어를 알려줬다. 다음 근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그 병장을 쏘아보며,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쏴 버릴걸 하고 후회했다.

 

진짜로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내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었고, 손가락만 까딱 했으면......

 

아, 역시 군대 얘길 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애초 생각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전쟁과 군대와 남성

 

이건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고 있던 책이 바로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였다. 작년 지역의 시민신문에 글을 연재하면서 때로는 소액의 도서상품권을 원고료로 받았고, 때로는 책을 받기도 했다. 또 때로는 신문사 측에서도 잊어버리고, 나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연재를 마칠 때쯤 신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던(여기저기서 기증받았던) 도서 목록을 공유하면서 필자들에게 책을 신청하라고 연락해왔는데,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저거였다. 책을 받으러 가겠다고 말해놓고는 거의 반 년동안 신문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고 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후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편집장님과 잠시 수다를 떨고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대략 3분의 1 정도를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글이 어렵고, 번역 상태와 교정 상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참 전쟁과 군대 그리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 옛날 군대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올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난히 많은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군대의 경우 '사고 사례 전파' 등을 통해 몇 차례 접했던 GOP 총기 난사 및 수류탄 투척 사건들이 기억났다. 세월호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평소에도 늘 있었던 일이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만 유독 무장 탈영과 저항으로 이어져서 알려진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무기를 들어야만 한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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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6-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국방부에서 불 나기를 기다리는 병사로 있었지만 못난 선임들을 소방차에 빠트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ㅎ
근데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니 전방의 그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네요...
완전 몰입해서 읽었네요 그 병장 저도 쏘고 싶네요...
흠. 군대 문화 끔직해요

감은빛 2014-07-27 01:27   좋아요 0 | URL
루쉰님, 답이 한 달 늦었군요.
사실 7월 초반에 이 댓글을 보긴 했는데,
여유가 없어 답을 쓰지 못하고 넘어갔던게, 한 달이 늦어지게 되었네요.

국방부에 불 나기를 기다렸다니, 무서운 병사였군요!
오랜만에 루쉰님이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루쉰P 2014-07-27 17:22   좋아요 0 | URL
나름 군대 문화를 저주하는 병사였죠. ㅋ
감은빛님이 무서운 병사라고 하시니 흠...저도 솔직히 자신에게 소름이 좀 끼치네요. 흠..이게 다 군대 문화 탓이에요. 전 평화를 사랑하는 데...
 

 

"아빠, 어디가? 선거에 가는거야?"

 

2년 전 총선때 녹색당을 '노찌따'라고 발음했던 작은 아이는 이제 분명하게 '녹색당'을 발음할 수 있을만큼 자랐다. 하지만 '선거사무실'이라는 단어는 아직 어렵고 낯선가보다. 줄여서 '선거'라고 부른다. 어린이집에서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는 엄마는 어디 있는지, 언니는 어디있는지를 먼저 묻고, 지금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묻는다. 묻지 않아도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선거사무실로 데려가는 중이라는 것을. 작은 아이 손을 잡고 골목길을 걷다보면 저만치에서 큰 아이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작은 아이 데리러 오기 전에 전화로 동생 어린이집으로 오라고 말해뒀기 때문이다. 언니와 동생은 마치 몇 년만에 만난 듯이 서로 뛰어가 부둥켜 안고, 반가워한다. 두 녀석의 손을 잡고 선거사무실로 돌아온다. 지난 두 달간 저녁 풍경이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말에서 나온 잔인한 달, 4월은 개인적으로도 늘 그런 느낌을 주는 달이었다. 실연, 실직, 갈등 유독 해마다 4월이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4월도 그랬다. 3월 말에 정리해고를 당해, 실직 상태로 4월을 맞았다. 하필 그때가 지방선거로 녹색당이 한창 바쁜 때였다. 그리고 우리동네에는 친하게 지내던 후배 당원이 구의원 후보로 출마를 결심했다. 마을 활동을 고민하던 시기에 마침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서 제대로 동네를 바꿔보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약 3년 전 창당준비위원회때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동네 구의원 후보의 선거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왔지만 나는 유난히 선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학생회 간부로 활동도 했고, 과 학생회장이나 단과대 학생회장 출마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다 거절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찍어달라고 나서는 모양새가 왠지 우스워 보였다. 나중에는 출마하는 후배들이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요청도 많이 했는데, 그때도 모두 거절했다. '선거'라는 행위, 그 단어 자체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선거가 내 인생에서 제대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녹색당 창당 후 맞은, 2012년 총선 때부터였다.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정치인과 정당, 이 나라의 정치 지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선거를 치르면서 깨달은 내부 지형은 또 달랐다. 그리고 선거 결과 예상보다 저조했던 진보정당들의 득표율을 보면서 실망도 많았다.

 

이번이 녹색당에서 맞는 두 번째 선거다. 지난 총선에 녹색당은 부산과 영덕 2군데 밖에 지역구 후보를 내지 못했고, 비례 후보를 3명 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번 지방 선거에는 11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고, 광역 비례 후보는 12명을 냈다. 2년 밖에 안된 신생정당이며, 유명한 정치인이 없는 시민의 정당, 녹색당 입장에서는 이 숫자를 만들어 낸 것만도 기적에 가깝다. 당파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었다 없어지고, 합쳤다가 분열되기를 반복하는 기존 정당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녹색당의 후보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리 실제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녹색당 후보들을 한명씩 소개해보고 싶다.

 

과천시장 후보로 나온 서형원 선배는 두 번 연속 무소속으로 과천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첫 당선 당시 여당과 야당의 후보들이 1번부터 앞번호를 다 차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13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당선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이끌어 냈던 사람이다. 그만큼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같은 과천시의원 출신인 정의당 황순식 후보와 단일화를 이뤘다. 경선에는 과천 시민의 10%라는 경의적인 참여를 끌어냈다. 개인적으로는 환경연합 선배 활동가이기에 이 사람에게 더욱 믿음이 간다. 부디 시장으로 당선되어 과천을 대한민국의 생태도시로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녹색당은 창당하자마자 두 명의 시의원을 얻었다. 과천의 서형원 의원과 구미의 김수민 의원이 그들이다. 김수민 씨는 고향인 구미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번에는 녹색당에서 재선에 도전한다. 현역 시의원인 만큼 녹색당 내에서 아주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고, 젊은 시의원인만큼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벌여왔다. 판에 박힌 공약, 선거에서만 써먹는 공약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공약을 내세워 이번에도 당선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 경북 구미시 마 선거구(인동동(구평동, 황상동, 인의동, 신동), 진미동(진평동, 임수동, 시미동))에 녹색 정책을 펼쳐나갈 김수민 후보를 응원한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 서울에 두 명의 지역구 후보를 냈다. 서대문구 가 선거구(충현동, 천연동, 북아현동, 신촌동)에 출마한 이태영 후보는 한국YMCA 전국연맹 활동가 출신이고, 현재 신촌민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또한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함께 일해 본 이태영 씨는 젊은 나이와 외모에서 나오는 느낌과는 달리,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일을 풀어가는 사람이다. 신촌 일대에서 활동하는 만큼 선거운동도 참신하고, 세련되게 펼쳐나가고 있다. 신촌 일대의 녹색 미래를 책임질 이태영 후보가 꼭 당선되기를 희망한다.

 

은평 마 선거구(갈현2동, 구산동)에 출마한 박종원 후보는 어린이, 청소년 놀이 프로그램 기획진행자로, 고무신학교 교사였다. 서울KYC 활동가 였고, 현재 작은 도서관인 '초록길도서관' 운영위원이다. 마을 활동을 활발히 펼쳐나가고, 교육, 보육 정책에 관심이 많다. 은평구의 녹색 미래를 책임질 믿음직한 후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당선 되길 바란다!

 

의왕시 가 선거구(고천동, 부곡동, 오전동)에 출마한 안명균 후보는 환경운동연합에서 20년 이상 활동했던 활동가 출신이다. 안양천 살리기 운동을 오랫동안 해왔고,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에도 정통한 전문가이다. 개인적으로 환경연합에 일할 당시에 인연을 맺었던 선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성격이 그러하듯, 환경운동 뿐 아니라 노동, 인권, 여성 등 다양한 의제에도 활발하게 참여해온 정책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꼭 당선되어 오랜 경험을 시민들을 위해 활용해주기를 바란다.

 

이천시 다 선거구(부발읍, 대월면, 모가면, 설성면, 장호원읍, 율면) 임을재 후보는 귀농한 여성 농민이며, 도농직거래 '콩세알 나눔마을' 운영위원이다. 또 한강 환경지킴이 활동을 3년째 해오는 등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신 분이다. 꼭 당선되셔서 녹색 이천을 만들어주시길 희망한다.

 

 

전남 보성 제 2선거구(벌교읍, 겸백면, 율어면, 복내면, 문덕면, 조성면)에 출마한 최혁봉 후보는 10년 전 벌교 산골로 귀농한 농민이다. 강정과 밀양 등 전국적인 이슈가 있는 곳에는 항상 달려오는 최혁봉 후보는 긴 수염이 매력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면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었다니!) 꼭 당선되셔서 특유의 부지런하고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시기를 바란다.

 

춘천시 바 선거구(소양동, 조운동, 약사명동, 근화동, 신사우동) 박설희 후보는 춘천 여성 민우회 활동가이며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시절부터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SNS를 통해 활발하게 녹색당을 알리는 박설희 후보를 보면 나도 모르게 표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이다! 꼭 당선되어 춘천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처음 쓸 당시만해도 모든 지역구 후보와 비례 후보를 다 소개해야지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선거운동을 하다가 틈틈히 쓰는 글이라 벌써 3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이제 내일이면 선거일이라 더이상 미루면 이 글을 쓰는 의미가 없고, 다 소개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리므로 정말 미안하지만, 남은 후보들은 이름만 소개하는 걸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부득이 소개못한 후보님들께는 죄송!)

 

충청남도 천안시 제7선거구(성정1동, 성정2동, 백석동)에는 이윤상 후보가 출마했고, 충청남도 홍성군 제1선거구(홍성읍, 홍북면, 금마면, 갈산면, 구항면)에는 정영희 후보가 출마했다. 광주광역시 북구 사 선거구(삼각동, 일곡동)에는 박필순 후보가 출마했다.

 

이상이 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이며, 광역 비례 후보도 12명을 냈다. 아래 지도에 출마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서울시의원 비례 후보로 나선 이유진 후보는 녹색연합 활동가 출신이며,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분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에너지 전문가이다. 박원순 시장의 '원전1기 줄이기' 사업은 거의 대부분 이유진 후보가 만들어낸 내용이었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 녹색당 이유진 후보가 당선되어 서울시의 에너지 정책을 좀 더 제대로 만들어 내길 바란다!

 

경기 비례 후보 이동현 씨는 딴지일보 기자다. 2011년 늦가을 서울녹색당 발기인 대회에서 취재차 왔다가 바로 당원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딴지 팟캐스트를 듣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 도의원으로 당선되길 바란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다.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없는 선거가 되도록 오늘 자정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더 자세한 후보 소개는 녹색당 선거 홈페이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http://www.kgreens.org/election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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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6-03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하는 정당이 없어서
투표 안하려고 했는데
녹색당 당원분이 겨기 비례 후보로 나오셨군요.

작은 한표 보태겠습니다...


감은빛 2014-06-03 15:57   좋아요 0 | URL
경기도민이시군요. 고맙습니다!
함께 녹색 미래를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chika 2014-06-0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안그래도 오늘 감은빛님이 생각나던데... ^^;;

지지정당 얘기를 하는데, 녹색당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ㅠㅠㅠㅠ
암튼 꿋꿋하게 녹색당 얘기를 꺼냈는데, 다행히 함께 식사를 하던 신부님께서 녹색당 지지 발언을 해 주셨습니다. 옆에 계시던 분들이 그냥 혹,하게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단 말이지요 ^^
어머니는 음식물 쓰레기 봉투 얘기하다가, 언니는 사전투표 하러 가다가 특별히 찍어야되는 곳 없으면 녹색당,이라고 했더니 뭐라고 투덜대면서도 녹색당에 표를 줬다고 합니다 ^^

근데 선거공보물이 없는데다가 정당이 어떻게 나오는지도 공고되지 않아서 저도 혹시나 하는 맘에 검색까지 해봤더랬습니다. 녹색당 지지하라고 떠들어댔는데 막상 정당 투표에 없으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에... ㅡ,.ㅡ
그래서 정말 홍보가 필요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은빛님의 글이 올라오길 기다렸는데...
암튼. 이번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14-06-03 21:2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치카님.
제 글을 기다리셨다니, 좀 더 일찍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계속 빨리 글을 써야지 했는데,
여유가 없어서 생각만하다가
겨우 틈을 만들어 글을 쓰긴 시작했는데,
한번에 쓰지 못하고 며칠간 조금씩 쓰다말다 하다보니 늦어졌네요.

녹색당에 투표해주시고, 지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던가? 요즘 자주 울컥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 잦다. 두 달 전부터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콧물과 기침이, 이번 달 초에 아예 고열과 몸살로 이어졌던 때,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아빠, 눈 크게 떠봐." 라고 말했다. 난 사흘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왜?" 라고 물었다. 아이는 한번 더 "눈 크게 떠봐. 아빠~" 라고 재촉했고, 나는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곧이어 "아빠 눈에 나 있어. 아빠,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 라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아이는 원하는 답을 들어서인지 곧이어 몸을 돌려 장난감에 집중했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린 시야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했다.

 

또 며칠 전에는 정유정의 [28]을 읽다가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이어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다. 기준이 아내와 어린 딸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읽을 때였다.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라고 물은 작은 아이가 떠올라서 였을까? 내 울음은 점점 더 커져서 한동안 책을 덮고, 빈 가슴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땅에 박고 울었다.

 

어제와 오늘은 포털 사이트에 뜨는 뉴스와 SNS 상에 링크된 각종 소식들을 보면서 계속 눈 앞이 흐려져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제는 조금 나았다. 처음 접한 소식은 아이들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얘기였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게 오보였다고 하고, 구조자 수가 확 줄어든 이후에도 그래도, 설마, 그래도 하는 마음이었지, 막 눈물이 흐를 지경은 아니었다. 나중에 퇴근할 무렵부터 전해지는 소식들을 보며, 이거 뭔가 이상한데, 심각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문득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자꾸만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잠시후 눈 앞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저녁에는 약속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객지에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고, '친구'라고 소리내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꽤 오랫동안 서로 바빠 못 만나다가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만나기로 정한 날이었다. 한 친구가 하필 오늘 아이엄마가 지방 출장을 가서 자신이 아이를 봐야 한다며 차라리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정말 미안한데, 자기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못 오겠다며, 자기 몫까지 재밌게 놀라고 했다. 사실 어제 아침까지만해도 이 친구들 만나 놀 생각에 잔뜩 기대를 했건만, 막상 퇴근하려고 일어나는데,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저 오늘이 아니면 또 날을 잡기도 어려우니, 벌써부터 정해놓은 약속이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나는 술을 샀고, 한 친구는 족발을 샀고, 또 한 친구는 치킨을 샀다. 우리는 먹고 마셨지만 눈을 자꾸만 틀어놓은 티비 화면으로 향했다. 나중에 아파서 못 오겠다고 한 친구가 나타났다. 몸이 안 좋아 일찍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건만, 아파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게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으로 가자고 말을 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가 모이기로 한 친구 집 근처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들렀다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친구가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단다.

 

그제서야 우린 티비를 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직장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아이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함께 직장 상사를 욕하면서 족발을 뜯었고, 함께 아이 사진을 보면서 치킨을 입에 넣었고, 함께 임신을 축하하며 술잔을 비웠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오늘은 좀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취하지 않고는 이 미친 세상을 견딜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술을 좀 많이 마셨다. 아프다는 녀석과 임신 소식을 전한 녀석이 일찍 일어서고, 아내가 출장을 가서 아이와 함께 밤을 지낼 녀석과 나, 둘만 남았다. 아이를 재우고 우린 차가운 발코니 바닥에 앉아 술잔을 비웠다. 이런 저런 인간관계에 대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2시가 넘어설 무렵 녀석은 졸려서 눈이 감겼다. 녀석도 나도 내일 출근을 해야하니 그만 마시고, 나는 일어났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하나도 취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뭐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살폈다. 어제 오전 배가 가라앉은 이후로 아무런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그저 정부 발표가 오락가락 했을 뿐이고, 전 국민들의 마음을 점점 더 미치게 만들었을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개념도 없이 현장을 찾아갔다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비난을 들었고, 생존자들이 보냈다는 문자나 카톡은 모두 거짓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고, 사망자는 확연히 늘어났건만, 추가로 구조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게 지금 현실인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아주 기분 나쁘고 슬픈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고 또 눈 앞이 흐려졌다.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는 기분이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못했을까? 내일은 할일이 많은데, 저녁 늦게까지 회의도 해야하는데, 이런 기분으로, 이런 컨디션으로 어떻게 버틸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

 

때론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바로 현실이다. 손아람의 [소수의견]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또 [28]과 이번 세월호 사건을 비교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씨랜드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구포 열차 전복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용산 참사' 등의 각종 대형 참사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그때마다 또 눈물이 난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잘 죽지도 않고, 사고가 나도 곧잘 사람들을 구해내던데, 특히 [28]의 기준은 지옥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초인적인 수준으로 사람들을 구해내던데, 이 정부는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할까? 이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이틀 가까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도 추가로 더 구해내지 못하다니.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상황인가.

 

글을 쓰다보니 결국 동이 틀 무렵이 다 되었다. 오늘은 잠을 한숨도 못 자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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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4-2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도 그러네요...
할 말도 없고 지루한 지옥 속에 있는 기분입니다.
티비에서는 배가 뒤집어 지는 장면을 자꾸 내 보내는 데 그 속에 아이들이 고함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보는 것 만으로도 끔찍해요...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 정말로요..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3주기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가 일이난지 3년이 되는 해다. 페이스북에 지인이 쓴 글을 보니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에 후쿠시마에서 대지진이 일어났고, 곧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왔으며, 쓰나미는 핵발전소를 덮쳐고, 핵발전소는 물에 잠겼다. 전기가 끊어졌고, 끊임없이 냉각수를 순환시켜 식혀줘야 할 핵 연료봉의 온도가 올라갔고, 결국 차례로 핵 폭발 사고가 일어났고, 어마어마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방사능은 바다로, 하늘로, 땅으로 퍼져나갔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던 농부들은 평생 일궈왔던 땅을 잃고 쫓겨나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부피폭과 외부피폭의 피해를 입었다.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사고 규모와 방사능 유출량을 감추고, 축소 발표해왔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이 사고를 잘 수습,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외부의 핵 전문가들은 이미 멜트다운(핵 연료봉이 지반을 뚫고 내려가는 현상)이 진행되었다고 추측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후쿠시마는 죽음의 땅으로 남아있고, 방사능 유출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죽음의 땅으로 남을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핵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는 핵 발전소가 돌아가고 있고, 또 새로 짓고 있으며, 심지어 수명이 끝난 낡은 핵 발전소를 제대로 된 검증없이 다시 돌리고 있다. 한편 안전을 위해 사소한 부분까지도 철저하게 신경써야 할 핵 발전소에 불량부품을 쓰고, 돈을 횡령하는 등 온갖 비리가 일어났음에도, 이러한 사실들이 밖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친일 청산 문제도 그렇고, 독재 미화 문제도 그렇고, 온갖 환경파괴 문제도 그렇지만, 핵 발전에 대한 문제를 들여다봐도 역시 우리는 도통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아마도 국민들은 제대로 배우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가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배우려고 하지 않는 거겠지. 이 땅의 친일파, 군부 독재의 수혜자들, 돈에 눈이 먼 기업들, 핵 마피아들이 이 나라를 배우지 못하는 나라로 만들어 가고 있다.


3월 8일 시청 앞에서 열린 후쿠시마 3주기 탈핵 집회에서 김익중 선생은 "탈핵은 세계적인 추세이며, 유행이다."라고 했다. 핵 발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경제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부터 서구 국가들은 핵 발전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몇몇 국가들은 단계적으로 핵 발전소를 폐기하여, 일정 기간안에 완전히 핵 발전에서 벗어나는 탈핵 선언을 했다. 김익중 선생은 우리나라만 유독 세계적인 유행에서 벗어나 혼자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언젠가는 대세를 따르게 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지금 중국에 지어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핵 발전소 건설 상황을 보면, 우리 뿐 아니라 중국도 유행에 뒤처져 있다. 일본 역시 그런 생지옥을 겪고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여전히 핵 발전을 고수하려고 한다. 어쨌거나 한, 중, 일 3국이 김익중 선생의 말씀처럼 부디 세계적 유행에 따라 탈핵 결정을 내려주길 간절히 바라며, 그 결정이 대재앙이 될 핵 폭발 사고가 또 일어나기 전에 내려지길 바란다.


최근에 나온 탈핵 도서들을 갈무리해본다. 작년까지 사모은 탈핵 관련 도서들도 제대로 다 읽지 못했는데, 읽어야 할 책들은 자꾸 늘어나는 구나.
















마음의 파멸


3월 8일 토요일에는 청계광장에서 여성의 날 행사가 있었고, 시청 앞에서 탈핵 집회가 열렸다. 아이들을 데리고 시청을 향해 가면서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았다. 노동당 부대표의 부고 소식이 있다고, 처음에는 부고라고 해서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인 줄 알았다. 부대표가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사람 이름을 못 외우는 불치병에 걸린 주제에 그걸 어떻게 기억해내겠는가 싶어, 버스에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봤다. 그런데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가 '노동당 부대표 박은지'였다. 박은지라면 익숙한 이름이다. 예전에 진보신당이었던 시절 대변인이었고, 직접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집회에서 여러번 스쳐갔던 인연이며,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자주 접했던 사람. 어떻게 이 사람이 검색어 1위가 될 수 있지? 한편으로 이상하다 느꼈고, 또 한편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부고처럼 그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클릭해서 읽은 내용은 충격이었다. 박은지 씨가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젊은 패기와 미모를 겸비한 당찬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자살이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나다를까 시청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서 왠지 그늘이 느껴졌다. 다들 선뜻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듣고 마음이 무거운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나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았다. 말했듯이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한 사이였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죽음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장애인이자 장애인 인권 활동가인 아버지의 딸이었고, 기간제 교사였으며,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으며, 사회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였고, 소수 정당의 정치인이었다. 이 모든 요소들을 늘어놓는 순간, 아득한 느낌이 든다. 대개 이 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여 자살 충동을 느낄수도 있을 터, 그의 삶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웠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언론에서 우울증 얘기가 나왔다. 경박한 언론은 그의 삶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고인의 명예를 깍아내리는 추측성 짧은 기사를 쏟아내면서 검색어 1위의 덕으로 페이지 뷰를 올리려고 애썼다.


토요일 집회 뒤풀이에서도, 일요일 강연 뒤풀이에서도, 어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도 계속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묘한 일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저 페이스북을 통해 단편적인 정보를 전해 들었건만, 그의 죽음 이후에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많은 얘기들을 전해 듣는다.


그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떠오른 건, 스테판 츠바이크의 [마음의 파멸]이란 단편소설이다. 군대를 가기위해 학교를 휴학했던 시절에 읽었는데, 당시 어떤 책에서 이 글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건, 한 사람이 어찌보면 별 것도 아닌 일로 얼마나 철저하게 무너져가는지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두운 면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청소년 시절을 남들과 다르게 보냈고, 덕분에 많은 일을 겪었다. 게다가 예민한 성격이라 쉽게 상처 받는 편이었다. 수없이 많은 자살충동을 느끼며 살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큰 교통사고로 죽는 상상을 하고, 다리를 건너다가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고, 새벽에 길을 걷다가 빠르게 달리는 차량으로 뛰어드는 상상을 하곤 했다. 당시 썼던 일기에는 유독 자살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저 [마음의 파멸]이란 작품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읽고 또 읽었다. 그 책에 수록된 다른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 하지만, 저 작품 하나만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춘기를 지나서도 나는 자살충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자의식이 강하고, 상대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고, 그런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해 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상황은 스트레스가 되어 나를 짓눌렀고, 달리 그걸 풀지 못해, 늘 술로 마음을 달랬다. 술은 또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고, 그 감정(슬픔, 우울, 분노 등)은 나를 집어 삼켜버리곤 했다. 


지금 나는 한때 같은 깃발 아래서, 같은 구호를 외쳤던 동지의 죽음을 보면서, 한편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 용기로 더 열심히 살라고 말을 하는데, 나는 죽음을 택하는 용기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이 미칠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때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사실 생각으로는 수없이 해 봤지만, 현실에서는 그 만큼의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역시 나는 그 정도의 용기가 없는 그런 인간이다. 그저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 봐야겠다.


덧, [마음의 파멸]을 다시 한번 읽고 싶은데, 검색해봐도 그 작품이 수록된 책을 찾지 못하겠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제보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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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4-03-1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기도합니다. (요즘에 '짝'을 둘러싼 사건도 그렇고...언론도 그렇고, 다들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후쿠시마 사건 이후에 저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련된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사건으로만 보자면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관련된 증거들을 보자면 그렇게 결론을 내리는 게 합리적일 듯 합니다.우리는 바로 옆나라이면서도 거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정부의 원전에 대한 태도를 보자면요.

감은빛 2014-03-14 11:2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자살율, 특히 청소년 자살율과 노년층의 자살율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습니다.
그런 지표들은 아무리 숨기고 싶어도 점점 드러나게 마련이죠.
이 사회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거라 생각합니다.

후쿠시마는 아마 인류 최악의 사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보다 더 심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반드시 핵 발전을 폐기해야 해요.
100년도 못 사는 인간이 10만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동안
밀폐보관해야하는 위험물질을 만들어내다는 것이 말이 안되지요.
핵 발전의 단가는 어느 발전보다 더 높아져야 합니다.
핵 발전소의 폐기, 핵 폐기물의 보관비용이 전혀 책정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핵 마피아들이 에너지 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재생가능 에너지가 심각하게 미숙한 단계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의사들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고 말하는 방사능 물질도
무조건 안전하다고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있어요.

노원구에서 방사능 아스팔트가 발견되었을 때에도 안전하다고 하고,
일본산 생선들에서 세슘이 검출되었을 때에도 안전하다고만 말하죠.

cyrus 2014-03-1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라는 이 절대불변의 존재는 무섭습니다. 한 번 지나간 건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고 망각되기 쉬우니까요. 뉴스와 신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의 모습을 다루기는 했지만,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이 부족한 것 같아요.

츠바이크의 ‘마음의 파멸’은 <황혼의 이야기>(서문당)이라는 책에서 수록되어 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432105

감은빛 2014-03-14 11:3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언론은 후쿠시마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다루지 않았지요.
미국과 유럽 언론들이 아주 오랫동안 심각하게 이 사고를 다루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잘 알수 있어요.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의 소식을 우리 국민들은 유럽인들보다 더 모르고 있어요.
게다가 핵 마피아들에게 세뇌되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심각한 일인지도 몰라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안그래도 한 알라딘 이웃도 페이스북 쪽지를 통해 제목을 알려줬어요.
덕분에 다시 읽어볼 수 있겠네요.
 

 

말 그대로 멘붕

 

며칠 전이었다.(요샌 정신이 없다 못해 날짜 관념도 점점 희박해지는 듯) 새벽까지 마신 술이 다 깨지 않아 괴로워하면서 출근해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메일함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계속 비번이 틀렸다고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거 이상하네. 실수로 틀린건가 싶어서 천천히 한 글자씩 넣어봐도 틀리다. 그제서야 이건 내가 술이 덜 깨서 틀린 게 아니라 진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밀번호 확인을 눌렀고, 예비 이메일을 통해 인증번호를 받았다. 잘 안들어가던 예비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네이버에서 보낸 메일이 세 통이나 있었다. 모두 아침 시간으로 각 30분 간격으로 보냈다. 난 아침에 아이들 준비시키고, 나도 준비해서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다. 첫 메일은 중국에서 로그인을 시도해서, 차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이라(정확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되어있었음)! 그로부터 30분 후에 비밀번호를 변경했다는 메일이 왔다. 다시 30분 후에 또 비밀번호를 변경했다는 메일이 왔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내 이메일 계정에 접속해서 무엇을 하고 비번을 바꿨을까? 메일 발송내역, 쪽지 발송내역, 블로그, 카페 등 여기저기 뒤져봐도 내 계정으로 뭔가 한 흔적은 없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국민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빠져나간 내 주민번호로 누군가가 중국을 경유해 내 계정에 들어왔던 것일까? 오늘은 또 KT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젠장! 젠장!

 

다행히 예비 메일계정으로 발송한 인증번호를 통해 비번을 바꾸고 다시 그 계정을 잘 쓰고 있는데, 문득 네이버를 탈퇴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계정은 지금 이 업계에 들어왔던 때부터 계속 쓰던 메일이라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지금은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서 그냥 잊어버리게 될 듯한데, 그 순간에는 정말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한편 이건 이제 시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곧 여기저기 다른 계정들도 쉽게 털리는 거 아닐까? 아휴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나고, 화도 나고, 무섭다!

 

켈로이드 두번째 치료

 

지난 달에 이어 켈로이드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작은 아이 감기가 낫지 않아,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나도 주사를 맞았다. 마을 주치의(의료생협 의사)에게 그간 내가 알아본 몇 가지 내용을 물어보고 상담했다. 우선 켈로이드가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봤다고 했더니, 거의 그렇다고 주사를 맞아도 적어도 1~2년간 꾸준히 맞아야하고, 그래도 완전히 낫지 않는다고 했다. 주사를 안 맞으면 다시 부풀기도 한다는 내용을 봤다고 했더니, 역시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 이웃이 댓글로 알려준 켈로이드 커뮤니티에서 본 내용을 물었다. 나처럼 무릎 흉터가 부풀어오른 경우였는데, 이 분은 흉터에 메스로 깨끗하게 상처를 다시 내고, 이게 아물면서 켈로이드가 작아졌다고 했다. 이걸 깨끗하게 상처를 내고, 잘 아무는 과정을 몇 번 거쳐서 많이 나았다는 글이었다. 이 얘길 들은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고, 또 효과가 있다해도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켈로이드를 직접 보면서 의사는 깜짝 놀랐다. 많이 작아졌네요! 라고 했다. 그런가? 내 느낌은 작아지긴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거였다. 의사는 오히려 주사 요법이 안 맞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나는 다행히 잘 맞는 것 같다고 어쩌면 주사 치료 기간을 줄일 수 도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보름에 한 번 방문하라고 했고, 스테로이드의 농도도 더 높이겠다고 했다. 이제 드디어 주사를 맞을 시간. 작은 아이가 자꾸 내 무릎(켈로이드가 없는 쪽)에 기대서 귀찮게 해서, 그걸 신경쓰느라 상대적으로 덜 아프긴 했지만, 여전히 주사바늘을 뺐다가, 방향을 바꿔 또 찔러넣을 때는 아주 날카로운 아픔이 신경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아픔이 지나가고 치료가 끝났을 때, 앞으로 이 짓을 1년이나 2년간 해야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의사에게 붙이는 패치 얘길 들었다고 했더니, 좀 비싼 연고를 처방했다. 나중에 계산하는데, 진짜 비싸더라! 에휴 이래저리 힘 빠진다.

 

 

 

 

 

 

 

 

 

 

 

 

 

 

 

 

요즘 좀 더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재미와 감동이 있고, 핵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글쓰기 연습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처럼 필사를 해볼까? 글 잘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글들을 읽다보면 왜 나는 이렇게 글을 못 쓸까 싶어서 기가 죽는다. 여러 글 잘쓰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이계삼 선생님 글을 좋아한다. 쉽고, 깔끔하면서도 감동이 있고, 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짧은 내용안에 이걸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이계삼 선생님 글을 필사하면서 글 공부를 다시 좀 해보면 어떨까 싶다.

 

 

 

 

 

 

 

 

 

 

 

 

 

어제 밤 잠들기 전에 책장을 뒤지다가 발견했다. 언젠가 아내가 조이여울 님 출판기념회에 간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사왔던 모양인데, 그게 한참 전이었는데, 왜 나는 그동안 이 책을 못 봤을까? [페미니즘의 도전] 개정판을 다시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

 

또 금요일이 돌아왔다. 지난 주엔 일정이 많아서 주말에 책을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도 일정이 많다.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저녁엔 술과 소설 한 권을 골라봐야지. 퇴근하면서 즐거운 고민에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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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3-08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이 호구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계정정보가 유출되는데 대책이 없네요. 그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죠.-_-:

감은빛 2014-03-11 14:53   좋아요 0 | URL
제가 조심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내 개인정보는 중국으로, 전 세계로 팔려나가네요. ㅠ.ㅠ
이렇게 피해를 당해도 뭐 하나 해볼 수도 없네요.
주민등록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바꿔야 할 것 같아요.

blanca 2014-03-08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침내 KT 개인정보 유출 이야기까지 나오니 실소가 나오더라고요. 다 해당되거든요. 켈로이드, 여자들은 제왕절개 부위들을 많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감은빛님 하루하루 나아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4-03-11 14:55   좋아요 0 | URL
여성들은 제왕절개 부위에 많이 생기나봐요.
의사 말씀이 저도 무릎이라, 벌어지는 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위라,
켈로이드가 생긴 것 같다고 했어요.
배도 벌어지는 힘을 많이 받을 것 같네요.
(제 배를 보면 말이죠. ㅠ.ㅠ)

2014-03-11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4-03-17 11:52   좋아요 0 | URL
오래 걸린다고 들었지만, 그렇게 오래 걸릴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구요.

연고를 바르니 조금씩 더 작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요.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