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P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은?

 

뉴스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아서, 총기 난사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만 얼핏 보았을 뿐,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22사단이란 부대명을 보고서야 깜짝 놀라 찾아봤다. 그리고 경향신문의 아래 칼럼을 읽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232045505&code=990303



이 글에선 임병장이 전입되어 온 병사라고 했다. 그리고 잔류와 전입 등이 육군본부도 잘 모르는 변칙과 편법이라고 했다.

난 22사단 출신이다. 이등병 때 GOP에 올라갔다가 나중에 페바에 내려왔는데, 병장이 될 무렵 다시 GOP 투입에 대한 소문이 돌았으나, 다행히 내가 제대한 후에야 우리 대대가 다시 올라갔다. 그런데 당시 매우 비정상적이면서 큰 규모의 부대 이동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대급 규모의 부대 하나가 사라지면서 해당 부대 병사들은 여기저기 쪼개져서 흩어져 남의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중대에 대략 한 개 소대 규모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편에선 GOP 경험이 없거나 적은 부대에, GOP 경험이 풍부한 부대원들을 무더기로 몰아준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부대를 곧 투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

즉, 내가 있었던 당시에도 GOP 투입을 앞두고 임병장과 같은 전입 병사가 대거 들어왔단 얘기다. 그리고 당연하게 큰 혼란이 이어졌다! 군생활은 무조건 서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갑작스레 들어온 여러명의 전입 병사들은 기존 소대원들의 서열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그들은 전혀 뒤섞이지 못하고, 서로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한다.

당시 우리 소대에 GOP를 경험한 병사는 서열상 내가 마지막이었다. 내 뒤로는 모두 페바에 있을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서열상 내 바로 뒤에 여럿의 전입병사가 들어왔다. 원래 소대에서 내 바로 뒷 서열이었던 상병들은 갑작스럽게 자기 앞으로 끼어 들어온 전입 병사들을 고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동안 반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쓴 사람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 경험과 임병장의 경험이 전혀 관계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니, 당시 그 어이없던 대규모 전입 사태가 왜 일어났던 것인지는 조금 이해가 간다. 육군본부조차 모르는 편법이라니.

 

 

살인 충동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이 더 대단하다고 여기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여성들은 가본적도 없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이 바로 군대 얘기다. 즉,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는 얘기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풀어놓자면, 군 생활하는 동안 위험한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일단 자대배치를 위해 전방으로 투입되는 날, 사상 최악의 지뢰 폭발 사고 소식을 들었다. 전방으로 들어가는 포차 안에서 말이다. 휴일이라 축구를 하던 중이었다고 들었다. 축구공이 공터를 벗어나 길 옆 풀밭으로 떨어졌고, 평소에 늘 다니던 길에서 불과 몇 발짝 더 벗어났을 뿐이라 아무 생각없이 공을 주으러 갔다. 축구를 하던 중이었으니, 당연히 여러 명이 우루루 공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고, 그 중 가장 가까이 있던 혹은 제일 계급이 낮은 한 명이 공을 주으러 풀밭에 들어가서 공을 집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M16이라는 대인 지뢰가 사람 머리 보다 더 높이 튀어올랐다. 다음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다 죽었다고 들었다. 머리 위에서 터진 지뢰가 사람 몸을 찢어 놓아서 시신 수습도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런 얘길 들으면서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게 될 소초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배치받은 소초의 소초장은 한 마디로 미친 인간이었다. 신병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경계근무에 바로 투입되지 않고, 순찰을 다니는 소초장이나 부소초장을 따라다니는 임무를 받았다. 소초장은 길이 아닌 곳으로 함부로 돌아다녔다. 또 버젓이 '지뢰지대'라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곳을 가리키며 저기에 과연 지뢰가 있을까 없을까를 물었다. 그 인간 말은 이랬다. 사실 지뢰는 방심한 적을 살상하기 위한 무기인데, 저렇게 해골을 그려놓거나, 지뢰지대라고 써놓으면 누가 들어와서 밟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즉, 저건 가짜로 만들어놓은 지뢰지대이고, 저기엔 지뢰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신병이었던 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 와 "네 그럽습니다!"만 크게 외쳐댔는데, 그 인간이 실제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보고 들어가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첫 날 들었던 소식은 실제로 주변 초소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 때문에 유독 지뢰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소초장이 진심으로 미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고, 결국 그 인간은 자신이 먼저 들어가 볼테니, 나도 꼭 따라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뢰지대라는 안내판이 붙은 철조망을 가볍게 넘어서 안 쪽으로 서너 발쯤 조심스레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건 정말 미친짓이야를 머리 속으로 외치면서도 그가 밟았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려 애쓰며 딱 그가 갔던 곳까지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수명이 줄었다는 관용어구를 정말 이럴 때 써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오피에서 경계 근무를 나갈때는 실탄과 수류탄을 받는다. 적과 조우할 수 있는 위험지역인만큼 당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실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병장이 하나 있었다. 서열은 대략 5위 정도 였던가. 나는 화기분대 탄약수로 배정받았고, 그 병장은 화기분대 기관총 사수였다. 화기분대에는 기관총 사수가 두 명있는데, 그는 내 사수는 아니었고, 다른 한 명의 사수였다. 소초로 발령받아 온 지 며칠이 지나면서 슬슬 이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 싶을 때쯤에 그 병장이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갈군다는 말이 아마 사투리였던가? 잘 모르겠다. 암튼 시도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대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그냥 괴롭힘이었다. 온갖 모욕과 수치를 견뎌내며 하루 하루 지나던 날들. 나는 신병이었기 때문에 맞아도 참아야 했고, 욕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내 바로 위 탄약수는 일병이었는데, 키가 크고, 골격이 크고, 얼굴도 시원하게 잘 생긴 사람이었다. 지오피는 처음 들어올 때 인원을 꽉 채워서 오기 때문에 들어와서 한참동안 신병이 들어올 일이 없다. 그는 꽤 오랜동안 소초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들어와서야 막내를 벗어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내게 참 잘해줬다. 뭐든 다 챙겨주고, 가르쳐 주고, 지저분한 일들, 누구라도 꺼릴 일들을 척척 해내곤, 씩 웃곤 했다. 나는 맏이라서 형이 없는데, 만약 가족 중에 형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그를 따랐다.

 

나와 그 일병은 화기 분대의 선임 사수에게 소속되어 있었다. 선임사수와 앞서 소개한 또 한 명의 사수, 그 병장은 서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우리 사수는 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했건만 그 병장은 자주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임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못하니까 그 밑에 있던 사람들, 부사수와 두 탄약수를 괴롭혔다. 이것이 내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그가 나를 괴롭히는 이유의 전부였다.

 

어느 날 그는 별일도 아닌 걸로 트집을 잡아 나와 그 일병을 밖으로 불러내 굴리기 시작했다.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엎드려 뻗쳐 등등 얼마나 굴렀을까, 지쳐서 가쁜 숨을 내 쉬느라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군화발이 날아왔다. 내 옆에서 나와 같은 얼차려를 받았던 일병이 뭐라고 했던가? 아니면 그냥 눈빛만 보냈을까? 아픔 때문에 제대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그 병장은 이게 감히 어디서 개기냐며, 일병을 패기 시작했다. 아,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을 쏟아 붓고, 할 수 있는 모든 저주를 퍼붓고 싶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 밤중에 경계근무를 나가 있었는데, 순찰조가 우리 근무지로 접근했다. 근무지에 누군가 접근하면 암구어를 외치고,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멈추게 한 다음, 포박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그가 내 명령에 따르지 않고 계속 접근해온다면 경고한 후에 사격하도록 되어있다. 멀리 있을 때는 알수 없었으나, 대화가 될 정도로 가까이 오고 보니, 순찰조는 부소초장과 그 병장이었다. 나는 큰 소리로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를 외치고, 곧이어 암구어를 불렀다. 평소대로 였다면 곧바로 답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답이 없었다. 한번 더 암구어를 불렀다. 또 답이 없었다. 걸어오던 부소차장이 힐끔 그 병장을 쳐다보았다. 암구어를 외우는 것은 늘 후임의 몫이다. 언제나 2인 1조로 움직이는 전방에서, 선임은 암구어 따위 신경도 안 쓰고, 후임이 외우도록 되어있다. 평소라면 늘 선임이었을 그 병장은 아마 암구어 때위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그리고 부소초장은 아예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두 사람은 멈추지도 않고, 속도도 줄이지 않고 우리 쪽을 향해 왔다. 나는 세 번째로 암구어를 불렀다. 역시 답은 없었다. 같이 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을 쳐다봤다. 그도 나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었고, 누군지 알는 상대이므로, 암구어를 모른다고 굳이 포박할 이유는 없었다.

 

순찰조는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그 병장을 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살인 충동. 조준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처음 암구어를 불렀던 순간부터 나는 계속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왼쪽 눈을 지그시 감고 그 병장을 겨눴다. 조준경의 막대 위에 그의 얼굴이 올라왔다. 이제 장전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그를 꿰뚫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증언 할 것이다. 구름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어두웠고,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안 보였습니다. 그리고 암구어를 세 번 부를 동안 답이 없었고, 멈추라는 명령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총을 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언한다면 나는 죄가 없는 것이다. 라는 상상을 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 앞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 병장은 손을 들어 내 화이바를 내려쳤다. "이 새끼야, 암구어를 세 번 대는 동안 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어? 왜 가만히 있는거야?" 어이가 없었던 나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암구어를 안 외운 것은 본인 실수인데, 오히려 가만히 있었다고 나를 때리다니. 몇 번의 욕을 듣고, 몇 번의 구타가 이어진 후 부소초장은 슬쩍 그 병장을 말렸고,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암구어가 뭐냐고 물었다.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경계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다음 근무지에서 또 암구어를 댈 수 없을 것이고 또 망신을 당할테니까. 그 병장은 대답을 빨리 안한다고 나를 한 대 더 때렸고, 보다못한 우리 경계조의 선임이 암구어를 알려줬다. 다음 근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그 병장을 쏘아보며,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쏴 버릴걸 하고 후회했다.

 

진짜로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을 느낀 건 아마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다. 내 사격 실력은 나쁘지 않았고, 그는 내 조준경 안에 들어와 있었고, 손가락만 까딱 했으면......

 

아, 역시 군대 얘길 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애초 생각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전쟁과 군대와 남성

 

이건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고 있던 책이 바로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였다. 작년 지역의 시민신문에 글을 연재하면서 때로는 소액의 도서상품권을 원고료로 받았고, 때로는 책을 받기도 했다. 또 때로는 신문사 측에서도 잊어버리고, 나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연재를 마칠 때쯤 신문사에서 보유하고 있던(여기저기서 기증받았던) 도서 목록을 공유하면서 필자들에게 책을 신청하라고 연락해왔는데,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책이 저거였다. 책을 받으러 가겠다고 말해놓고는 거의 반 년동안 신문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고 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오후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가서 편집장님과 잠시 수다를 떨고 받아왔다. 그리고 이제 대략 3분의 1 정도를 읽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글이 어렵고, 번역 상태와 교정 상태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래도 몰랐던 사실을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한참 전쟁과 군대 그리고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차에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접하고, 그 옛날 군대 시절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올해는 안타까운 죽음들이 유난히 많은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군대의 경우 '사고 사례 전파' 등을 통해 몇 차례 접했던 GOP 총기 난사 및 수류탄 투척 사건들이 기억났다. 세월호는 좀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군대에서의 죽음은 평소에도 늘 있었던 일이다.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만 유독 무장 탈영과 저항으로 이어져서 알려진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무기를 들어야만 한는 젊은 목숨들을 위해 잠시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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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6-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국방부에서 불 나기를 기다리는 병사로 있었지만 못난 선임들을 소방차에 빠트려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ㅎ
근데 감은빛님의 글을 읽으니 전방의 그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지네요...
완전 몰입해서 읽었네요 그 병장 저도 쏘고 싶네요...
흠. 군대 문화 끔직해요

감은빛 2014-07-27 01:27   좋아요 0 | URL
루쉰님, 답이 한 달 늦었군요.
사실 7월 초반에 이 댓글을 보긴 했는데,
여유가 없어 답을 쓰지 못하고 넘어갔던게, 한 달이 늦어지게 되었네요.

국방부에 불 나기를 기다렸다니, 무서운 병사였군요!
오랜만에 루쉰님이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무척 반갑네요!

루쉰P 2014-07-27 17:22   좋아요 0 | URL
나름 군대 문화를 저주하는 병사였죠. ㅋ
감은빛님이 무서운 병사라고 하시니 흠...저도 솔직히 자신에게 소름이 좀 끼치네요. 흠..이게 다 군대 문화 탓이에요. 전 평화를 사랑하는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