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멘붕
며칠 전이었다.(요샌 정신이 없다 못해 날짜 관념도 점점 희박해지는 듯) 새벽까지 마신 술이 다 깨지 않아 괴로워하면서 출근해서 급한 일을 처리하고 메일함을 열어보려고 하는데, 계속 비번이 틀렸다고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거 이상하네. 실수로 틀린건가 싶어서 천천히 한 글자씩 넣어봐도 틀리다. 그제서야 이건 내가 술이 덜 깨서 틀린 게 아니라 진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밀번호 확인을 눌렀고, 예비 이메일을 통해 인증번호를 받았다. 잘 안들어가던 예비 이메일 계정에 들어가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네이버에서 보낸 메일이 세 통이나 있었다. 모두 아침 시간으로 각 30분 간격으로 보냈다. 난 아침에 아이들 준비시키고, 나도 준비해서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다. 첫 메일은 중국에서 로그인을 시도해서, 차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이라(정확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고 되어있었음)! 그로부터 30분 후에 비밀번호를 변경했다는 메일이 왔다. 다시 30분 후에 또 비밀번호를 변경했다는 메일이 왔다. 도대체 누가, 왜, 어떻게 내 이메일 계정에 접속해서 무엇을 하고 비번을 바꿨을까? 메일 발송내역, 쪽지 발송내역, 블로그, 카페 등 여기저기 뒤져봐도 내 계정으로 뭔가 한 흔적은 없었다.
얼마전에 있었던 국민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빠져나간 내 주민번호로 누군가가 중국을 경유해 내 계정에 들어왔던 것일까? 오늘은 또 KT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뉴스가 보였다. 젠장! 젠장!
다행히 예비 메일계정으로 발송한 인증번호를 통해 비번을 바꾸고 다시 그 계정을 잘 쓰고 있는데, 문득 네이버를 탈퇴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계정은 지금 이 업계에 들어왔던 때부터 계속 쓰던 메일이라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지금은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서 그냥 잊어버리게 될 듯한데, 그 순간에는 정말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어서 더 무서웠다. 한편 이건 이제 시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곧 여기저기 다른 계정들도 쉽게 털리는 거 아닐까? 아휴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나고, 화도 나고, 무섭다!
켈로이드 두번째 치료
지난 달에 이어 켈로이드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작은 아이 감기가 낫지 않아,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나도 주사를 맞았다. 마을 주치의(의료생협 의사)에게 그간 내가 알아본 몇 가지 내용을 물어보고 상담했다. 우선 켈로이드가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봤다고 했더니, 거의 그렇다고 주사를 맞아도 적어도 1~2년간 꾸준히 맞아야하고, 그래도 완전히 낫지 않는다고 했다. 주사를 안 맞으면 다시 부풀기도 한다는 내용을 봤다고 했더니, 역시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알라딘 이웃이 댓글로 알려준 켈로이드 커뮤니티에서 본 내용을 물었다. 나처럼 무릎 흉터가 부풀어오른 경우였는데, 이 분은 흉터에 메스로 깨끗하게 상처를 다시 내고, 이게 아물면서 켈로이드가 작아졌다고 했다. 이걸 깨끗하게 상처를 내고, 잘 아무는 과정을 몇 번 거쳐서 많이 나았다는 글이었다. 이 얘길 들은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고, 또 효과가 있다해도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켈로이드를 직접 보면서 의사는 깜짝 놀랐다. 많이 작아졌네요! 라고 했다. 그런가? 내 느낌은 작아지긴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거였다. 의사는 오히려 주사 요법이 안 맞는 사람도 가끔 있는데, 나는 다행히 잘 맞는 것 같다고 어쩌면 주사 치료 기간을 줄일 수 도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보름에 한 번 방문하라고 했고, 스테로이드의 농도도 더 높이겠다고 했다. 이제 드디어 주사를 맞을 시간. 작은 아이가 자꾸 내 무릎(켈로이드가 없는 쪽)에 기대서 귀찮게 해서, 그걸 신경쓰느라 상대적으로 덜 아프긴 했지만, 여전히 주사바늘을 뺐다가, 방향을 바꿔 또 찔러넣을 때는 아주 날카로운 아픔이 신경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아픔이 지나가고 치료가 끝났을 때, 앞으로 이 짓을 1년이나 2년간 해야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들었다. 의사에게 붙이는 패치 얘길 들었다고 했더니, 좀 비싼 연고를 처방했다. 나중에 계산하는데, 진짜 비싸더라! 에휴 이래저리 힘 빠진다.
요즘 좀 더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재미와 감동이 있고, 핵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글쓰기 연습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적절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전처럼 필사를 해볼까? 글 잘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글들을 읽다보면 왜 나는 이렇게 글을 못 쓸까 싶어서 기가 죽는다. 여러 글 잘쓰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는 특히 이계삼 선생님 글을 좋아한다. 쉽고, 깔끔하면서도 감동이 있고, 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 어떻게 이 짧은 내용안에 이걸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신기하다. 이계삼 선생님 글을 필사하면서 글 공부를 다시 좀 해보면 어떨까 싶다.
어제 밤 잠들기 전에 책장을 뒤지다가 발견했다. 언젠가 아내가 조이여울 님 출판기념회에 간다는 얘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사왔던 모양인데, 그게 한참 전이었는데, 왜 나는 그동안 이 책을 못 봤을까? [페미니즘의 도전] 개정판을 다시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
또 금요일이 돌아왔다. 지난 주엔 일정이 많아서 주말에 책을 읽지 못했다. 이번 주에도 일정이 많다. 과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일단 오늘 저녁엔 술과 소설 한 권을 골라봐야지. 퇴근하면서 즐거운 고민에 빠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