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아졌던가? 요즘 자주 울컥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 때문에 눈물이 맺히는 일이 잦다. 두 달 전부터 유난히 오래 이어지던 콧물과 기침이, 이번 달 초에 아예 고열과 몸살로 이어졌던 때,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지낸지 사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더니, "아빠, 눈 크게 떠봐." 라고 말했다. 난 사흘 내내 거의 굶다시피 했던 터라,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어서 작은 목소리로 "왜?" 라고 물었다. 아이는 한번 더 "눈 크게 떠봐. 아빠~" 라고 재촉했고, 나는 억지로 눈을 치켜떴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본다. 곧이어 "아빠 눈에 나 있어. 아빠,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 라고 물었다. 왜 그랬는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는데, 아이는 원하는 답을 들어서인지 곧이어 몸을 돌려 장난감에 집중했다. 나는 눈물이 맺혀 흐린 시야로 아이를 보면서 내가 왜 우는지 궁금해했다.

 

또 며칠 전에는 정유정의 [28]을 읽다가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이어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까지 했다. 기준이 아내와 어린 딸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읽을 때였다. "내 눈에는 누가 있어? 아빠 있어?"라고 물은 작은 아이가 떠올라서 였을까? 내 울음은 점점 더 커져서 한동안 책을 덮고, 빈 가슴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땅에 박고 울었다.

 

어제와 오늘은 포털 사이트에 뜨는 뉴스와 SNS 상에 링크된 각종 소식들을 보면서 계속 눈 앞이 흐려져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제는 조금 나았다. 처음 접한 소식은 아이들은 전원 구조되었다는 얘기였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게 오보였다고 하고, 구조자 수가 확 줄어든 이후에도 그래도, 설마, 그래도 하는 마음이었지, 막 눈물이 흐를 지경은 아니었다. 나중에 퇴근할 무렵부터 전해지는 소식들을 보며, 이거 뭔가 이상한데, 심각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문득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소식은 없는지 자꾸만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잠시후 눈 앞이 흐려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저녁에는 약속이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객지에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고, '친구'라고 소리내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꽤 오랫동안 서로 바빠 못 만나다가 가까스로 시간을 맞춰 만나기로 정한 날이었다. 한 친구가 하필 오늘 아이엄마가 지방 출장을 가서 자신이 아이를 봐야 한다며 차라리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정말 미안한데, 자기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못 오겠다며, 자기 몫까지 재밌게 놀라고 했다. 사실 어제 아침까지만해도 이 친구들 만나 놀 생각에 잔뜩 기대를 했건만, 막상 퇴근하려고 일어나는데,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그저 오늘이 아니면 또 날을 잡기도 어려우니, 벌써부터 정해놓은 약속이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나는 술을 샀고, 한 친구는 족발을 샀고, 또 한 친구는 치킨을 샀다. 우리는 먹고 마셨지만 눈을 자꾸만 틀어놓은 티비 화면으로 향했다. 나중에 아파서 못 오겠다고 한 친구가 나타났다. 몸이 안 좋아 일찍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건만, 아파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게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으로 가자고 말을 한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가 모이기로 한 친구 집 근처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들렀다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 친구가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알려주었단다.

 

그제서야 우린 티비를 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직장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아이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함께 직장 상사를 욕하면서 족발을 뜯었고, 함께 아이 사진을 보면서 치킨을 입에 넣었고, 함께 임신을 축하하며 술잔을 비웠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서 오늘은 좀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취하지 않고는 이 미친 세상을 견딜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술을 좀 많이 마셨다. 아프다는 녀석과 임신 소식을 전한 녀석이 일찍 일어서고, 아내가 출장을 가서 아이와 함께 밤을 지낼 녀석과 나, 둘만 남았다. 아이를 재우고 우린 차가운 발코니 바닥에 앉아 술잔을 비웠다. 이런 저런 인간관계에 대해,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시간이 2시가 넘어설 무렵 녀석은 졸려서 눈이 감겼다. 녀석도 나도 내일 출근을 해야하니 그만 마시고, 나는 일어났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하나도 취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뭐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살폈다. 어제 오전 배가 가라앉은 이후로 아무런 새로운 소식은 없었다. 그저 정부 발표가 오락가락 했을 뿐이고, 전 국민들의 마음을 점점 더 미치게 만들었을 뿐이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개념도 없이 현장을 찾아갔다가 실종자 가족들에게 비난을 들었고, 생존자들이 보냈다는 문자나 카톡은 모두 거짓이라는 경찰의 발표가 있었고, 사망자는 확연히 늘어났건만, 추가로 구조된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게 지금 현실인지?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 아닌지? 아주 기분 나쁘고 슬픈 악몽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인터뷰를 보고 또 눈 앞이 흐려졌다.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는 기분이다. 왜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못했을까? 내일은 할일이 많은데, 저녁 늦게까지 회의도 해야하는데, 이런 기분으로, 이런 컨디션으로 어떻게 버틸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

 

때론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바로 현실이다. 손아람의 [소수의견]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또 [28]과 이번 세월호 사건을 비교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씨랜드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구포 열차 전복 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용산 참사' 등의 각종 대형 참사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그때마다 또 눈물이 난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잘 죽지도 않고, 사고가 나도 곧잘 사람들을 구해내던데, 특히 [28]의 기준은 지옥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초인적인 수준으로 사람들을 구해내던데, 이 정부는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할까? 이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이틀 가까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도 추가로 더 구해내지 못하다니. 이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상황인가.

 

글을 쓰다보니 결국 동이 틀 무렵이 다 되었다. 오늘은 잠을 한숨도 못 자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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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4-2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도 그러네요...
할 말도 없고 지루한 지옥 속에 있는 기분입니다.
티비에서는 배가 뒤집어 지는 장면을 자꾸 내 보내는 데 그 속에 아이들이 고함치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보는 것 만으로도 끔찍해요...
건강 잘 챙기셔야 합니다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