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손가락을 다쳤다. 급하게 발송할 책을 포장하다가 종이에 베었는데, 그냥 살짝 베인 게 아니라 폭 2밀리에 길이 7밀리정도 반달모양으로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아니 어쩌면 종이에 베인게 아니라 뭔가 더 날카로운 것에 다친건지도 모르겠다. 다친 순간에는 약간 뜨끔하고 말았는데, 워낙 맘이 급해서 포장을 서두르다가, 포장용 박스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보고, 그제서야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걸 발견했다. 뜯겨나간 살점의 가장자리가 떨어질 듯 말듯 붙어있고, 피가 왈칵 쏟아져 나온다. 행여 책에 피가 묻을까봐, 얼른 휴지를 찾아서 닦았다. 휴지를 상처에 감아매고 포장을 서둘렀다.

평소 '책 포장의 달인'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내가 포장 작업중에 손을 다치다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써야하는 말인가보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평소처럼 했다면 큰 실수없이 포장을 마쳤을 텐데, 무슨 일이든 맘이 급하면 이렇게 사고가 생기나보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기륭(구 기륭사옥앞 골목)에서 문화제를 열었다. 인디밴드들의 공연도 있었고, 영화상영(애니 포함)도 있었고, 마당극도 있었고, 먹거리 판매(물론 술도)도 있었다. 여기에 책을 판매하는 가판도 열렸다. 인문사회과학도서를 주로 내는 출판사들에서 책을 후원받아 아주 싼 값에 팔고, 그 판매금은 전액 투쟁기금으로 후원하기로 했다.

우리 잡지 과월호도 좀 추려서 보내고, 근처에 있는 출판사에서도 책을 실어다 주기로 했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을 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책 주문이 들어왔다. 금요일이라서 오늘 꼭 보내달라고 한다. 빨리 기륭에 책을 갖다주러 가야하는데, 주문이 들어온 책도 오늘 꼭 보내야하니, 빨리 포장을 해놓고 택배아저씨께 연락을 드려야 했다. 급한 마음에 책 포장을 서두르다가 결국 손가락을 다치고 말았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이어진 기륭 문화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잡지 과월호가 인기리에 판매되었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다. 금요일 낮과 토요일 저녁에 한동안 문화제에 참석했다. 아주 오랫만에 몇몇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때는 열심히 참여했었는데, 이렇게 인사를 나누다보니, 새삼스레 한동안 내가 얼마나 기륭문제에 무심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한쪽에서 숯불에 양미리를 구워서 판매하고 있었다. 알이 꽉 찬 양미리 너댓마리에 만원. 막걸리 한 병에 이천원.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다면 좀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맛있는 양미리와 막걸리를 걸신 들린듯 먹어치웠다. 차를 안 갖고 왔더라면 막거리와 함께 좀 더 먹었을텐데, 이 맛있는 안주를 두고 술을 한 잔 밖에 못 마신다는게 무척 아쉬웠다. 

토요일 저녁엔 영화 '반두비'를 보았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제대로 된 스크린이나 스피커 없이 보는게 조금은 안타까웠지만, 그럭저럭 볼 만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직접 나와주셔서 영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셔서 좋았다. 비록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앉아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 집중해서 재밌게 영화를 보았다. 

기륭에서 열리는 마지막 문화제. 1900일이 가까운 시간동안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벌여온 생존권 투쟁이 그 막을 내렸다. 비록 200명이 시작한 싸움에서 복직한 사람은 10명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 승리가 주는 의미는 클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반가운 소식은 기륭의 6년만의 승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의 장기투쟁사업장들이 다시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도 조금만 더 버티면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쌍용자동차 동지들의 경우도 뿔뿔이 흩어졌던 조합원들이 다시 뭉쳐서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라도, 막거리와 양미리를 좀 더 팔아줬어야 하는데 말이지. 하필 차를 갖고 간 것이 안타깝다. 

영화 '반두비'를 보고나서 김성만 동지가 공연으로 마지막 무대를 빛내고 있을 무렵, 먼저 자리를 떴다. 이제 더이상 그 골목을 찾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기륭 조합원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그래도 밝아보여서, 씁쓸했던 기분이 조금은 좋아졌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6년 동안의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을만큼 복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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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흥겨운 축제였을거 같아요.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축제이기도 하고.
양미리와 막걸리라... 좋은데요.

그런데, 첫 문단의 손베이는 장면,, 으으, 너무 생생해요.
그렇게 베이는거 진짜 아프잖아요. 빨랑 나으세요!

감은빛 2010-11-17 03:0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그대로 기쁘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축제였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고생했던 조합원들 앞에서는 마냥 즐거운 척 해습니다.

다친 날이랑 그 다음날까지 무척 아팠는데,
아내의 배려 덕분에 이삼일 설겆이에서 해방되었더니,
일요일부터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선인 2010-11-16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륭과 함께 하시는 날들, 잘 읽고 있었어요. 댓글을 못 단 건 아마도 죄책감 때문일 거에요.

감은빛 2010-11-17 03:09   좋아요 0 | URL
죄책감이라뇨?
저도 한때 열심히 했지만, 그 후로 한동안 손놓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자기 몫이 있잖아요!
조선인님께서 한미FTA(그 이전에는 제가 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국면부터
이번 4대강사업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목소리를 내어왔던 사실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 겸손하신거 아닌가요?
이러시면 제가 민망해지는걸요!!

비로그인 2010-11-1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안녕이라고 말하고 잠수탔던 뇨자...여기 짠 나왔는데요, 손가락 다친 페이퍼로 절 반겨주시는 거예요?ㅠ
병원엔 가보셨어요?
에구에구~~~

감은빛 2010-11-17 03:14   좋아요 0 | URL
와! 마기님! 무척 반갑습니다!
마기님 소식이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사실 트위터로 짧은 소식이나마 주고 받았던 기억이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

병원갈 정도로 다친건 아닙니다.
한 삼사일 부지런히 소독하고, 약발라서 많이 나았습니다.
(무엇보다 설겆이에서 해방시켜준 아내 덕분에 빨리 나았습니다.)

2010-11-1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7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곳은 제가 아는 분들이 오시는 곳이네요. 앞으로 종종 들르겠습니다.

감은빛 2010-11-17 16:1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노이에자이트님. ^^
 

학교 다닐때에는 순대를 참 좋아했다. 그땐 대낮부터 학교 앞 분식집에 죽치고 앉아서 밤이 늦도록 순대와 튀김을 놓고 막거리 사발을 들이키곤 했는데, 아무리 마셔도 술값 부담이 적었다. 자주 가던 분식집 아줌마와는 이미 가족같은 관계였기 때문에 아줌마가 바쁘실때는 내가 가게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 집 순대는 맛도 있었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양이 많았다는 것이다!(그렇기에 단골이 된 것이겠지!) 

서울에 오고 부터 순대를 잘 안 먹게 되었다. 순대를 시키면 쌈장을 주지 않고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어서 내주는데, 이걸 어떻게 먹으라는 건가 싶었다. 소금에 찍어먹는 순대는 전혀 순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후로 순대 볶음은 몇 번 먹어봤다. 어느 겨울 종로 큰 길 포장마차에서 순대볶음을 맛있게 먹으며 소주 한 병을 달라고 청했다가 이상한 취급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내 고향에선 길가 포장마차에서도 다 소주를 마실 수 있었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참 이상했다. 

암튼 서울에서는 순대를 잘 안 먹고 살았는데, 몇 해가 지나고 나니 소금에 찍어먹는 순대도 먹을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혀가 익숙해졌다고 해야겠지.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 근처에는 큰 재래시장이 있었는데, 그 중간에 맛있는 분식집이 있어서 순대를 종종 사다먹었다.(물론 막거리도 함께~) 

작년에 이사온 이곳엔 집 근처에 분식집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지하철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분식집이 하나 있어서, 여기서 튀김과 떡볶이 그리고 순대를 먹어봤는데, 별로였다. 사람은 엄청 많은데, 엄청 불친절했다. 그 후로 그 집은 다시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분식집 가기 전에 할머니와 할어버지가 하는 작고 허름한 분식집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이 집은 단 한번 먹어본 후로 바로 단골이 되었다. 이유는 물론 양이 많기 때문이다! 떢볶이와 튀김은 주로 할아버지가 담아주시고, 순대는 늘 할머니가 썰어주시는데, 이 할머니 인심이 너무 후하셔서 늘 양이 많다! 1인분만 시켜도 거의 2인분을 주신다. 저번에 한번은 너무 많이 담아주시길래, 미안한 마음에 천원을 더 드렸더니, 또 순대를 썰기 시작하신다. '아니예요! 너무 많이 주셔서 그래요. 그냥 받으세요!' 라고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건데 양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는거지. 양이 많으면 기분좋게 먹고 또 오면 되는거지' 하신다.

안그래도 양을 많이 주시던 할머니는 내가 자주오는 단골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더 많이 주신다. 분명히 1인분을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2인분보다 더 많아 보인다. 할머니가 순대를 썰면서 옆 가게 아줌마랑 말씀을 나누고 계셨는데, 이야기에 집중하다 그랬는지, 순대를 너무 많이 썰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걸 다 담아 주시다니! 옆에서 옆집 아줌마가 '아니 1인분인데 그렇게 많이 주는거예요?' 하고 깜짝 놀랐지만, 할머니는 태연하게 '자주오는 사람이니까 많이 줘야지!' 하신다.  

늘 바쁜 퇴근 길에 (어린이집에 시간맞춰 가기 위해) 서둘러서 순대를 사가다가, 며칠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큰아이를 데려온 후에 함께 할머니집에 갔다. 할머니는 '총각인줄 알았는데, 애아빠네!' 하시며 또 순대를 많이 썰어주신다. 그리고 오늘은 아내가 하루종일 애 보느라 힘들었다고, 나갈거면 아기를 데려가라고 해서 둘째아이를 안고 나섰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하며 언덕길을 걸어내려갔다. 찬바람이 아기에게 닿지 않게 꽁꽁 여미고 나섰더니, 아기는 답답해하며 한동안 발버둥치다가 내 품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들었다.  

할머니집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먼저 하고, '순대 1인분 주세요!' 했더니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그리고는 '아니, 애가 둘이야?' 물으신다. '네.'하고 대답했더니, '아니, 총각인줄 알았더니 애가 둘이야?' 하시며 순대를 썰기 시작하신다. 오늘도 2인분 가까이 되는 순대를 담아주시는 할머니. '맛있게 먹고 또 와!' 하고 정겹게 웃으신다. 

아무래도 막걸리를 너무 자주 마시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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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0-11-08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가끔 보고만 가다가 이제서야 인사드립니다!^^

순대먹고 싶어지는 글.
정이 그리워지는 글.
추천 누르고 갑니다~

감은빛 2010-11-09 13:0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리뷰가 엄청 많던데요.
참 부지런하신가봐요!

고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0-11-08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맛이 변하나봐요~!
제가 예정에 튀김이라면 무조건 잘 먹었거든요. 그런데 이젠
막 튀긴 튀김이 아니라면, 기름이 입에 배어서 못 먹겠는거예요.
입이 점점 고급화가... 큭큭.

얼마전 TV에 부산 출신 연예인들이 나와서
순대를 쌈장에 찍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먹고 싶다고 왁자지껄 하면서.
아........... 순대 볶음 먹고 싶다. 신림동 철판 위의 순대 볶음. ^^

감은빛 2010-11-09 13:10   좋아요 0 | URL
어! 저랑 비슷하신대요.
저도 예전에 튀김 엄청 좋아했는데,
요즘은 별로 안땡기더라구요.
입이 고급화가 되어서 그런거였구나~ ^^

저도 그 남쪽 나라 출신 맞습니다!
순대볶음 저도 먹고 싶네요! ^^

양철나무꾼 2010-11-1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각인줄 알았다는 말씀이 듣고 싶어서 자주 가시는 거 아녜요?
전 그런 집 있으면 맨날 갈텐데...

글도 참 맛있어요.
그래서 제가 맨날(아니다,자주) 놀러오잖아요~^^

감은빛 2010-11-10 22:40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주 갔던 거였구나! ^^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저야말로 나무꾼님 글이 너무 좋아서 자주 가는 걸요! ^^

꿈꾸는섬 2010-11-11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번주에 순대곱창볶음과 막걸리를 마셨는데 이번주에도 또 먹어야겠네요.^^

감은빛 2010-11-12 12:20   좋아요 0 | URL
순대곱창과 막걸리!
환상의 조합이군요! ^^
 

 

가산동 어느 골목에는 이미 이사해버린 일터를 상대로 단식 농성을 벌이는 일들을 만날 수 있다. 예전 일터의 경비실 옥상에서 목숨을 걸고 벌이는 단식농성. 이미 1800일을 훌쩍 넘겨버린 생존권 투쟁. 자본가와 국가권력은 당연한 권리를 돌려달라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오히려 용역깡패들을 동원하여 짓밟는다. 단식농성을 벌이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용역깡패들과 함께 거대한 포크레인이 나타났다. 아예 경비실 자체를 철거해버리기 위해서 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포크레인을 점거해버렸다. 두 명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경비실 맞은 편에는 두 명이 포크레인을 점거하여 고공노성에 들어갔다. 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포크레인 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송경동 시인이 지난주 2m가 넘는 포크레인 위에서 떨어져서 다쳤다. 병원에 입원중이고, 부러진 뼈를 바로잡기 위해 수술을 받았다. 경찰과의 말다툼과정에서 불상사가 생겼다고 들었다. 경동선배가 거기 올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가봐야지. 생각만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다가 결국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다쳤다는 얘길 먼저 듣게 되었다. 

다음주 금토일에는 농성장 주변에서 다양한 문화행사와 바자회 등이 열린다. 설치미술과 음악공연,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상영, 감독과의 대화, 작가와의 대화, 마당극, 시사만화전 등등 준비된 건 무지 많다! 게다가 각종 도서할인판매도 준비되어 있다. 지금까지 도와주지 못한 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 행사에는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 점심시간에 이 글을 올리고 나서 한참 일하다가, 조금전(4시반경)에 잠시 숨을 돌리며 페이스북을 열어보았다가, 기륭건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마! 정말? 반신반의하며 뉴스검색을 했더니, '기륭전자 사태 6년만에 극적타결' 등의 소식들이 몇 개가 올라왔다. 1895일간의 긴 투쟁의 결과 10여명의 조합원들만 정규직으로 복직된다고 한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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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0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가슴이 쓸쓸해져버렸습니다.
1895일간의 투쟁이란, 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상상조차 되질 않습니다.
6년. ㅠㅠ. 그래도 복직된 분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네요.

감은빛님. 우리 하늘 한번 보고, 길게 숨 한번 쉬구요..

감은빛 2010-11-05 16:30   좋아요 0 | URL
답이 늦었네요.
엊그제는 또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이었던 동희오토가 협상을 타결했네요.
하지만 아직도 장기투쟁 사업장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었던 기륭이 타결이 되어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200명이 시작한 투쟁이 6년을 끌었고,
결국 10명만이 복직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계속 맘에 남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저도 아침뉴스에서 그 소식 듣고 참 씁쓸했어요.
웬지 쓸쓸한 11월이예요~^^

감은빛 2010-11-05 16:31   좋아요 0 | URL
시작부터 참 쓸쓸한 11월입니다.
연말을 앞두고 여러모로 바빠지는 시기인데요.
이렇게 쳐진 기분으로 시작해서 걱정이네요.
뭔가 기분 좋은 일 없을까요?
 

 바쁜 하루하루를 지나가나면 참 많은 일들이 가슴에 남는다. 좋은 기억도 있고, 씁쓸한 기억도 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짜증나는 기억도 있다. 잠이 들기 전에 가만히 하루를 되돌아보면 세상이란건 참 재밌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장면 1. 

며칠 전, 전날 새벽까지 술을 퍼마신 덕분에 지각을 했다. 깨질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곧 들어올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앉는다. 오후에 거래처 방문 일정을 조율하느라 동료랑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앞으로 쭉 뻗은 다리로 스르륵 교복치마가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학생이 내 옆에서 교복 치마를 벗었는데, 나는 문자 메시지를 완성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게 무슨 의미지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경악은 잠시 후, 내 곁에 있던 한 아줌마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찾아왔다. 잠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여학생이 대체 뭘 하는 건가 싶어서 당장이라도 얼굴을 쳐다보고 싶었지만, 치마가 내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 곁에 서있던 아줌마는 아주 황당한 표정으로 그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직접 쳐다볼 수 없었기에, 그 아줌마의 표정으로 대충 어떤 상황인지를 짐작해야만 했다. 아줌마의 표정을 분석해본 결과 이 여학생이 교복 치마 아래에(그러니까 속옷 위에) 뭔가를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서였다. 슬쩍 곁눈질로 돌아보니, 아주 짧은(무릎에서 한 뼘이상 올라오는) 미니스커트를 걸치고 있었다. 여학생은 교복 치마를 접어서 가방에 넣은 후에, 교복 재킷을 벗어서 가방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다른 재킷을 꺼내서 걸쳐 입었다. 

그리고 열차가 승강장에 들어왔다. 의자에서 일어설 때 보니, 처음 교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의 학생 분위기는 이미 없고, 성숙한 아가씨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함께 열차에 오른 후에 이 여학생은 가방에서 화장도구를 꺼내어 오랫동안 볼터치를 하고 눈주변을 꾸몄다. 그야말로 대변신의 순간이었다. 

뭐 어디가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변신이 필요한 장소로 가는 거라고 짐작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교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는 건 좋은데, 하필 지하철 역 승강장에서 치마를 벗는 건 뭔가? 하필 술이 덜 깬 내 옆에서 웃을 벗는 건 또 뭔가? 정말이지 술이 덜 깨서 헛것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장면 2. 

얼마 전, 존경하는 선배로부터 일종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지금보다 훨씬 나은 대우에, 안정적인 자리였다. 하지만 현재 일터로 옮겨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현재 일터에서의 생활에 나름 만족하고 있던 터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그 제안에 별로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잘 아는 다른 친구도 나와 똑같은 제안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들었다. 결국 그 친구가 거절한 자리가 뒤늦게 나에게 찾아온 거였다. 뭐랄까 좀 거시기한 기분이었다.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장면 3

오랫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나보다 훨씬 일찍 출판계에 들어온 업계 선배다. 그동안 서로 존대를 하며 교류하다가, 몇 번의 술자리를 갖고 나서, 슬슬 말을 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딱 계기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어색하게 존댓말과 반말 섞인 어정쩡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어제 술자리를 계기로 서로 말은 놓고 지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말을 놓자마자 하는 말이 내 인상이 차갑단다. 그 차가운 느낌 때문에 선뜻 말을 놓지 못하고 지금까지 지냈다는 것이다. 무척 반듯한 모범생 이미지가 느껴지는데, 그 이면에는 차가운 인상이 있다는 거였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가 차가운 인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딜가면 대부분 따뜻한 인상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새벽, 세수를 하다가 오래도록 거울을 들여다본다. 내가 차가운 인상이라고? 글쎄 잘 모르겠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자꾸만 어깨가 움츠려든다. 이럴때 본격적으로 몸을 좀 만들어야 할텐데, 이상하게 이번 가을엔 술의 유혹이 심하다. 가을은 이미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온 듯한 날씨인데, 내 마음은 이제서야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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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8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술이 확 깨셨겠는데요? 아하하, 기가 차긴 하지만 보기 드문 구경이겠어요.
2. 음.. 복잡미묘한 기분, 진짜 수긍 갑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 있거든요.
3. 감은빛님이 차가운 인상인지 꼬옥 확인하고 싶지만,,, 큭큭
저도 처음 본 분들이 좀 차갑게 생겼대요, 하지만 한번만 웃으면 싸악 풀린대요~
감은빛님께서 요즘 바쁘고 스트레스 쌓이셔서, 무표정하게 다니셨을까요?

날이 풀리네요. 좋은 일 가득하세요!

감은빛 2010-10-28 13:13   좋아요 0 | URL
어제 새벽까지 술마시고 들어와서 이 글을 두드렸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대체 내가 왜 글을 두드렸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나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오히려 편안한 인상이라는 얘길 자주 듣는 편입니다.
차가운 편이라는 건 오히려 제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갖고 말한건가 싶기도..
그렇다해도 그 친구에게 그런 얘길 들은건 참 의외였어요.

점심먹고 돌아오니, 날이 좀 풀렸네요.
마녀고양이님도, 좋은 일이 잔뜩 생기기를 바랍니다! ^^

양철나무꾼 2010-10-2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그러면서 기선제압하고 호형호제하고...그런 거 아닌가요?
인상이 차갑다는 거지,인간성이 차갑다는 건 아니잖아요~

암튼,그 친구 분 좋지 않은걸요~
편안한 인상의 감은빛님을 이렇게 술렁이게 만들고 말야.

이 동네 '가을'에 주의보,대피령 발령해야 겠는걸요~^^

감은빛 2010-10-29 12:28   좋아요 0 | URL
기선제압하거나 그럴만한 사이는 아닌데, 암튼 좀 의외였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을 좀 해봤는데,
통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잊어버릴려구요.

이번 가을은 바빠서 '가을이다!'하고 한번 숨돌릴 여유도 없이 지나가네요.
유난히 술약속이 많은 시기였어요.
겨울이 오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
 

 

 

 

 

 

 

 

아이가 좋아하는 백창우 노래중에 '착하고 싸우고 착하고'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을 보면 참 재밌고 기발한 것 같다. 

   
 

 은성이는 착하고 착하고 착하고

희동이는 착하고 싸우고 착하고

종혁이는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은아는 착하고 징징짜고 착하고

나는 착하고 멋있고 착하고

 
   

가끔 아내가 가사를 이렇게 바꿔서 아이에게 '세뇌'시키곤 한다. 

   
  엄마는 착하고 착하고 착하고 

아빠는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안야는 착하고 징징짜고 착하고
 
   

 아직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라 둘째는 여기에 안 들어있다.(안야는 아이의 별명) 내 생각에는 엄마 자리에 아빠를 넣어야 맞는 것 같은데, 아이는 이 가사가 재밌다고 열심히 따라 불렀다!

요즘 내 상태를 이 노래처럼 표현해보면 '바쁘고 정신없고 바쁘고'가 될 것 같다. 왜 이렇게 바쁜지,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지치고...... 그래서 사소한 실수도 많아졌다. 예전에도 바쁜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는데. 바쁘면 바쁠수록 의욕을 갖고 일에 몰두하곤 했는데, 요즘은 바쁘지만,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마지못해 처리하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요즘 재미가 없다! 

이런 상태를 바꿔줄만한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그게 뭐가 될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읽고 나서 서평 쓰려고 생각해둔 책도 여럿되고, 사놓고 안 읽은 책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서점만 들렸다하면 사고 싶은 책이 엄청 늘어난다. 요즘 돈에 쪼들려서 헉헉대며 살아가느라, 책을 살 여유따위는 없는데, 자꾸만 책 욕심이 생겨서 큰일이다! 

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두서없는 끄적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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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모두 바쁜 거군요.. 책을 살 금전의 여유는 둘째치고, 책 읽을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게 더 문제입니다.^^

감은빛 2010-10-22 13: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하루하루 놓고보면 책 읽을 시간이 참 모자라단 생각을 합니다.
천천히 여유있게 책과 벗하며 살고파요! ^^

2010-10-21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10-2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고 정신없고 바쁘시군요.^^
저도 이번달엔 책 구매 안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ㅎㅎ
도서관을 잘 활용해보려구요. 하지만 책 사고 싶은 욕구가 줄진 않네요.ㅜㅜ

감은빛 2010-10-22 13:57   좋아요 0 | URL
바쁜 건 늘 그래왔는데, 문제는 요즘 정신이 좀 없다는 거!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고민중입니다.
책의 유혹이 너무 강해서 떨쳐내기가 어려워요!
가을이라 그럴까요? ^^

양철나무꾼 2010-10-2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의 식스팩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전,다른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싸우러 다니시기엔 벌써 추운 계절이잖아요.
그냥 맹숭맹숭하더라도...따뜻한 봄이 올때까지는 이렇게 지나가 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0-10-22 14:01   좋아요 0 | URL
흐~ 한동안 술과 함께 새벽까지 달리느라 최근에 진도가 안나가고 있네요.
내년 봄까지라고 기한을 정했으니, 겨울 동안 바짝 진도나가고,
가을까지는 좀 놀아볼까 생각중입니다! ^^

최근엔 투쟁현장에 얼굴을 잘 비추질 못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 경동선배가 포클레인 위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는데,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보지만, 그래도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0-2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노랫말에,, 집에서 흥얼거리시는 노랫말이 더 정감가네요.
무척 바쁘셨군요. 그래도 건강 챙기시면서 일하세요.
곧 겨울로 접어들거 같습니다. 여름 - 초가을 - 초겨울 이런 느낌이랄까요.

감은빛 2010-10-25 13:29   좋아요 0 | URL
오늘 갑자기 엄청 추워졌네요!
아무생각없이 얇은 옷 하나 걸치고 나왔다가 깜짝 놀랐어요!
바쁘기도 하지만, 정신이 없다는게 더 큰 문제예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뭔가 놓치고 지나가는 게 많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