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좀비라는 단어 떠올리면 나는 게임이나 영화에서 특유의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징그럽고 무서운 살아있는 시체보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라는 아일랜드 록밴드가 먼저 생각난다. 언젠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해졌던 [Ode to my family]라는 곡을 부르는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을 티비 화면으로 보면서 그녀에게 푹 빠져들었던 이후로 나는 제법 오랫동안 크랜베리스의 팬이었다. 독특한 창법과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담은 [Zombie] 라는 곡을 오랫동안 좋아했다.

 

뜬금없이 좀비 얘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지금 내 상태가 그에 가깝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시체! 이틀 연속 밤새 술을 마시고, 곧바로 출근했더니, 몸은 사무실에 앉아 있으나, 정신은 몸을 반쯤 떠나있고, 팔 다리가 흐느적거리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게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고 일어나서 걸으면 그 모습이 영락없는 좀비다!

 

어제 밤 늦게 회의를 마친 시점의 나는 전날 밤을 새웠으니 뒷풀이에 잠깐 들렀다가 곧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오늘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일어서리라 마음 먹었다. 12시가 가까운 시점이었고, 택시비도 없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조금만 더 있다가 갈까? 조금만! 으로 생각이 바뀐다.

 

어제는 특히 꼭 풀어야할 이야기가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풀긴 풀었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가 정리가 되었으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아침 6시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지하철을 타면서 유난히 길고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하루를 머리속으로 그려봤다. 아! 정말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쓸데없는 이야기

 

어느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다가 문득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많이 고민했던 것이고, 지금도 역시 그 고민은 이어지고 있다. 사랑이란 감정과 좋아한다는 감정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얼마나 어떻게 다른 걸까?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우정. 호감. 이끌림. 사랑. 남녀를 불문하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현 관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다.

 

 

 

 

 

 대학시절 열심히 읽고 고민했던 책이다.

 지금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책장 어딘가 구석에 꽂혀 있을텐데,

 시간 날때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부부'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부럽다!

 '새'를 인연으로 만나 결혼하고,

 매일 함께 새를 보러다니고,

 다친 새를 돌보고,

 희귀 새를 연구하는 삶이란

 얼마나 멋질까!

 

 

 

꽤 오랫동안 '사랑'이란 감정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내게 사랑이란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보고싶은 면만 바라보았던 착각.

 

더불어 좋아한다는 감정, 역시 착각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떤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는 내 착각 속에서만 그런 면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글쎄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역사상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꼽으라면,

 바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을 꼽아도 되지 않을까?

 

 이 분들의 삶의 태도, 즉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닮고 싶지만, 역시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더 내려놓고, 더 버리고, 더 누그려뜨려야 하는데,

나는 늘 욕심과 욕망에 휩싸여 매 순간을 보내는 듯 하다.

 

 

 

 

모르겠다. 고민을 거듭해도 답은 없다.

애초에 답은 없는 거다!

이 의미 없는 페이퍼를 그냥 지울까? 올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크랜베리스에 대한 추억 때문에 올린다.

왜 이러냐고? 난 지금 좀비다! 그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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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2-07-2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나갈려고 했는데 감은빛님의 글이 절 잡는군요. 이 댓글만 달고 나가야겠어요.
크랜베리스, 보컬의 맑은 고음을 좋아했어요. 전 좀비보다 드림스를 더 좋아했는데....^^

사랑이나 좋아하는 감정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셀레고 두근거리는 감정은 사랑이 더 쎄긴 하죠. 저는 사람들한테 너 아니면 절대 못 산다는 사랑을 믿지 말라고 하거든요. 그건 병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사랑이나 좋다는 감정이나 적절한 선에서 시작하고 마무리져야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결혼 십년 넘으면 사랑보다 그냥 좋다는 감정으로 사는 것 같긴 해요. 제 경우를 보더라도. 흐흐.

감은빛 2012-07-23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Dreams] 좋아했어요. 그보다 [Zombie]를 좀 더 좋아하긴 했지만요.
사실 돌로레스의 목소리는 무거운 곡보다는 밝고 경쾌한 곡에 더 잘어울리는 느낌이긴해요. 크랜베리스의 곡들은 무거운 곡의 비중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서 그점이 좀 아쉬웠죠. 저는 [I just Shot John Lehnon]이란 곡도 무척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돌로레스 목소리에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안들어요.

저는 요즘 총체적인 관계에 대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결혼관계, 혈연관계, 친구관계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죠. 뭐가 사랑이고, 뭐가 우정이고, 뭐가 호감인지? 내가 왜 누군가를 어떤 식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규정해보려 하고 있어요. 쓸데없는 짓이고, 불가능한 짓이겠지만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21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력이 대단하시네요~ㅎㅎ 저같음 길에서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사랑이란거 좋아하는건 어느정도의 착각이 동반되야하는게 아닐까 싶어요. 착각이 없다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너무 한정적이잖아요...^^

감은빛 2012-07-23 14:52   좋아요 0 | URL
사실 이틀 연속 밤새 술마시고 곧바로 출근하는 일은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있었던 일입니다.
최근에는 3일 연속 밤새 술을 마셨는데요. 이틀째까지는 정상 출근했구요.
3일째는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집에서 뻗어서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체력이 좋은 건 아니구요.
그냥 자주 그런 짓을 해서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이나 우정이나 그냥 좋아하는 감정이 모두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착각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지난 주말 삼척과 영덕으로 '탈핵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기획되었던 '희망'버스가 여러 다른 분야로 전파되어 또다른 희망을 실어나르고 있다. 내가 탔던 '탈핵 희망버스'는 3차였고, 강원도 골프장을 막기 위한 10차 '생명버스'가 이번 주 토요일(21일)에 출발한다. 그러고보니 21일 평택에서는 '쌍차 문제 해결을 위한 범 국민 공동행동'이 열린다.

 

본격 더위가 시작될 무렵 여기저기 현장들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밀양에서는 다시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었다. 분신하신 이치우 어르신의 동생, 이상우 어르신의 밭에 공사를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계삼 선생님의 편지에 따르면 이상우 어르신은 공공연히 다시 공사가 시작되면 구순 노모를 업고 와서 같이 죽겠다는 말씀을 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과연 한전은 '정말 죽는지 안죽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을까?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두물머리에서는 '행정대집행'이 눈 앞에 닥쳤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삼일 전 기습적으로 공사를 감행했고, 매일 같이 여러 활동가들이 포크레인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한편 어제는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앞에서 '세계최초 유기농 집회'가 열렸다. 공사 대신 농사를 짓겠다는 두물머리 유기농 농민들의 절절한 마음을 끝내 포크레인으로 짓밟겠다는 저들 역시 과연 인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8월 4일부터 5박 6일간 '평화 대행진'을 준비중이다. 1만명이 함께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해군기지를 막아내자는 취지다. 과연 1만명이 걸으면 해군기지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휴가기간에 1만명을 모을 수 있을까? 최근 들은 소식에 의하면 해군 측은 이미 구럼비 바위가 다 파괴된 것처럼 떠들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10분의 1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 평화대행진이 성과를 내어 이 국면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란다!

 

 

 

7월 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집회에 탈핵시민 17만명이 모였습니다.

(촬영: 노다 마사야 野田雅也) 출처- 페이스북 

 

 

한편 최근 일본의 반핵 집회에는 17만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접했다. 17만명이라! 이 나라에서 그 정도 인원이 모였다면 고리원전도 폐쇄하고, 삼척, 영덕 신규 원전도 막아내고, 현재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인 신규 원전들도 모두 중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저 위에 언급한 그리고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짧게 서두를 적으려고 했는데, 이걸로 하나의 글이 될 분량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지금 총체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이제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나는 삼척에서부터 1박 2일간 자의반 타의반 녹색당 깃발을 책임지는 '깃돌이' 신세가 되었다. 학생운동 시절 이후로 매우 오랫만인 것 같다. 애초에 버스를 타려고 마음 먹었을 때, 이번에는 아이들을 떼놓고 홀로 가는만큼 기록을 좀 꼼꼼히 해놓았다가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쓸 예정이었다. 가능하다면 기사 형식의 글을 하나 써서 기고도 해봐야지 생각하면서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깃돌이' 신세가 되면서부터 기록을 전혀 하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 후기는 포기하고 그냥 이 순간을 즐겨야지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그날 버스에서 마저 읽었던 [체르노빌의 아이들] 서평과 엮어서 간단하게 후기 성격의 글을 하나 썼다.

 

 

 그 글에 알라디너 '봄나무'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셨다. 동화는 워낙 잘 살펴보지 않아서 여태 몰랐던 책인데, 관심이 간다. 조만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어쨌거나 녹색당 깃발을 들고 있는데, 아이를 데려온 여성 한 분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인사를 꾸벅 하신다. 방향으로 보아 나를 향해 하는 것이 분명한데, 과연 누굴까? 일단 반사적으로 따라 인사를 꾸벅 했다. 누굴까?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잠시 후 그 여성은 여전히 반가운 얼굴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오지마! 오지마!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단 말야! 그런데 정말 누구지?

 

"녹색당 당원이세요?" 어, 첫 마디가 의외다. 혹 모르는 사이인데 그냥 깃발을 보고 반가워 인사를 한 것일까? 제발 그런 상황이기를 바랬지만, 잠시 후 두번째 말씀에 그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저 혹시 기억안나세요?" 흠 과거 어딘가에서 만난 분인데, 녹색당에서 만나서 의외다! 혹은 녹색당에서 만나서 반갑다! 뭐 이런 뜻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모른채,(아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고개만 절래 절래 흔들었다.

 

지금껏 조용했던 여성분의 말투가 갑자기 높아졌다! "나, 털털이떡 누나야!"라고 말했는데, 솔직히 그 순간에는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그 말을 잘 못 들었다. 누구라고 말했는지 듣지도 못했으면서 "아!" 감탄사를 한번 날려주고, 반가운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이 자동으로 이어졌다. 머리속으로는 여전히 그가 누군지 찾기 위해 메모리를 뒤지고 있었다. 여성은 그제서야 환한 웃음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저 웃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긴 한데. 떠오를 듯 말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원망하며 머리를 쥐어 뜯고 싶었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난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비닐 우비를 입고 있었다.

 

여성이 몇 개인가 질문을 던졌고,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겨우겨우 대답을 했다. 그러다가 그의 입에서 누군가의 별명이 나왔다. 딩동댕! 드디어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십수년전 문학 동호회에서 활동할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누나였다. 비로소 앞에 그가 말한 별명이 뭐였는지 생각났다. '털털이떡' 독특한 별명이어서 쉽게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을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나저나 이게 몇 년만이야?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 12년은 된 것 같은데!

 

그때부터 내 표정도 진심으로 반가운 표정으로 바뀌지 않았을까? 우린 긴 시간의 간극 때문에 무얼 물어야 할지 몰라 조금은 어색한 시간을 보내다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 사이 누나와 함께 온 일행들(그 분들은 경남녹색당 당원들이었다.)과도 인사를 나누고, 누나의 아들이라는 꼬멩이의 머리도 한번 쓰다듬었다. 몇 살인지 물었더니, 8살 초등학교 1학년이란다. 어! 우리 큰애랑 똑같네!

 

식당 앞에서 각자의 일행을 찾아 헤어지고 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 누나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 보았다. 흐릿한 기억들. 그러고보면 온라인 문학 동호회의 특성 탓인지, 이웃도시였지만 어쨌거나 도시가 달랐기 때문인지 자주 만나던 사이는 아니었다.

 

밤늦게 행사가 끝나고 각자의 '희망버스'를 타고 각자의 숙소로 헤어지기 직전, 누나와 다시 한번 마주쳤다. 어느 마을의 마을회관에서 묵게 될지 서로 모르는 상황. 어쩌면 다시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어! 안녕!

 

지친 몸을 버스에 던져넣었다가 숙소라는 마을회관에 도착하여 간신히 버스 밖으로 몸을 꺼내어 나오는데, 어라! 밀양에서 온 '희망버스' 1대가 같은 숙소앞에 서 있다. 혹시! 하는 예감은 역시! 로 돌아왔다. 누나가 이미 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숙소에는 밀양, 부산, 울산 등에서 온 '희망버스'참가자들이 배정되어 있었고, 우리 차에 타고 있던 소수의 서울 참가자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뒷풀이. 누나는 아까 제법 서운했던 모양이다. 내가 하나도 안 반가워했다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람 못알아보는 '불치병'에 걸린 나 자신을 치료할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12년만에 만난 누나는 느낌이 참 많이 달랐다. 예전에는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문학적 소양과 문장력 때문에 참 높아보였던 누나였는데, 지금은 그저 동네 아줌마 같은 친근한 느낌이다. 그 와중에 누나는 나와 같이 온 일행들에게 수다를 떨고 있다. '문학동호회에 함께 있었지만, 그때 글은 별로였어요.' 어! 지금 내 험담하고 있는거야? 그래 뭐 인정!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내 글은 늘 별로였다. 누나의 멋진 시와 간결하고 세련된 문장에 비하면 내 글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이 밝아올 무렵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잠시 눈을 붙인 후 다음날 영덕 일정을 소화하면서 밀양팀과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왔다. 80대 최고령 어르신 참가자들부터 765 송전탑 싸움을 어렵게 이어가고 계신 어르신들이건만 표정은 밝았고, 늘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르신들을 보면서 새삼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을 반성하고 좀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누나와 누나의 꼬멩이와도 작별인사를 했다. 또 언젠가 만나겠지. 아, 페이스북에서 소식 접할 수 있으니 뭐 작별이라는 단어의 애틋한 느낌이 많이 줄었다. 털털이떡 누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그리고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할게!(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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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7-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말인지는 몰라도 인디언 어느 부족은 오랜만에 만나면 멀리서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데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라 자기 이름을 부른다더군요. 흔히들 말하는 안면인식장애가 있거나 감은빛님 같이 가끔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디언들의 지혜가 아닐까요? ^^

감은빛 2012-07-19 16:12   좋아요 0 | URL
아, 그거 정말 굉장한 지혜로군요!
라고 잠시 생각했다가,
저에게는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치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좌절합니다.
이름을 듣고서도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 못알아보는 것은 똑 같을 것 같아요. ㅠ.ㅠ

카스피 2012-07-1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남 얼굴을 잘 기억하질 못해 난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ㅜ.ㅜ

감은빛 2012-07-23 14:23   좋아요 0 | URL
앗! 카스피님도 저와 같은 병을 갖고 계셨군요!
알라딘에 의외로 같은 병을 가진 분들이 많군요.

다락방 2012-07-2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과 저는 이런 상황을 일상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군요 ㅠㅠ

감은빛 2012-07-23 14:27   좋아요 0 | URL
일상적으로도 자주 겪지만,
이번 건은 좀 더 극적인 경우였어요.
상대방은 어떻게 나를 몰라보냐고 서운해하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해주지 않더라구요.
이럴때는 참 억울해요!

달사르 2012-07-2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게 오픈하고, 손님으로 와주신 이모 얼굴도 못 알아봤는데요..ㅠ.ㅠ

카스피님하고 다락방님하고 감은빛님하고, 저 하고..안면인식장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그지요? 여기 알라딘만 해도 벌써 이만큼이나 되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몰라보면 참 서운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그냥 눈이 나빠서 그래, 안면인식장애다, 어쩔래! 배째라 식으로 되려 당당하게 대하거든요. 미안한 표정은 짓지 않구요.

사실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그 사람과의 좋았던 것도 기억하지만, 나빴던 것도 죄다 기억한다는 건데..어차피 얼굴맹이라면 그 사람과 나빴던 걸 까먹어주는, 저질 기억력을 되려 기특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애요.

기억력이 좋아서 타인과 껄끄러운 거 까지 다 기억이 나서 사람 만나기 괴롭다...는 분도 저는 종종 보거든요. 그럴 때마다 저질 기억력 플러스 얼굴맹인게 얼마나 다행인지..싶더라구요. 감은빛님, 우리 얼굴맹 이거..복 받은 겁니다. ^^

감은빛 2012-07-23 14:38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몇 년만에 길에서 삼촌(실제론 5촌당숙)을 만나 누구였더라?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ㅠ.ㅠ

대개 제가 경험했던 분들은 무척 서운해하더라구요.
이 글의 주인공인 누나는 엄청 서운해했구요.

어쨌거나 알라딘에서 같은 증상을 가진 분들이 여럿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만 그런 불치병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군요!
 

언제나 그랬다. 비가 내리면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빗소리는 저절로 내 주의를 빼앗아 하던 일을 멈추게 만들었고,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잊혀져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머리속에서 리플레이 되곤 했다. 비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리플레이되는 기억에 따라 내 기분이 바뀌어 간다. 쓸쓸하고 외로웠던 기억들, 아프고 슬펐던 순간들, 기뻤던 기억들이 나를 그때 그 순간의 감정 속으로 빠뜨리곤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가 생각난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대략 2년쯤 전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야근을 하고 돌아와 설겆이와 손빨래 등의 집안 일을 조금 하고나서 자려고 누웠는데, 어떤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술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 새벽에 폭우를 뚫고 먼 거리의 편의점까지 다녀오기가 망설여졌다. 술에 대한 욕구가 좀 더 강했다면 그래도 집을 나섰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나보다. 나는 그냥 창가에 앉아 멍하니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슬프고 안타까운 기분에 휩싸여 자꾸만 같은 장면을 되새기고 있었다. 어차피 잠들지 못할거라면 뭐라도 하자 싶어서 컴퓨터를 켜고 트위터에 짧막하게 그 기분을 남겼다. 그런데 잠시 후에 김보일 선생님으로 부터 답이 왔다. 비가 오고, 어떤 기억 때문에 술이 땡기지만 자신은 지금 멀리 강원도 어딘가에 연수를 와 있어서 함께 술을 마시지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씀이었다. 그날 밤 바로 그 순간에 선생님도 나처럼 비와 어떤 추억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고, 술 생각이 간절하지만 술을 마시기는 어려운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어제 밤에도 폭우가 내렸다. 가볍게 마시고 일어서야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술자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조금씩 길어졌고, 누군가 반가운 이가 근처에 있다는 소식에 딱 한잔만 더 하기로 마음먹고 반가운 얼굴을 보러 갔다. 오랫만에 만난 만큼이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고,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가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야 밤을 새워 회포를 풀고 싶지만, 몸이 너무 피곤햇다. 아침에 출근해야 할 일이 걱정되어 일어선 것이 대략 2시 반이 넘어서였다. 아마 그때쯤 시작된 것 같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하필 집에 가려고 나서는데 비가 미친듯이 쏟아진다고 투덜투덜 화를 내며 택시를 기다렸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몸을 씻고,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 보고 나서 의자에 털썩 앉았는데, 몸의 피곤함과는 상관없이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법 마신 술도 소용이 없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2년 전의 그날 밤이 생각났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같은 기분에 빠져있던 나와 김보일 선생님은 그날 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아마 음악을 들었거나 다운받아놓은 영화를 보았을거다. 선생님은 연수원 숙소에서 무얼 하셨을까? 다음에 만나게 되면 묻고 싶었으나, 여태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새벽 3시 반, 이미 너무 늦어버린 이시간 피곤한 몸과 취한 정신은 휴식을 원하건만, 빗소리는 자꾸만 나를 붙잡고 있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지쳐 잠들 것인가? 읽다만 책들 중에 하나를 꺼내려고 책장을 살피다가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가방에서 퇴근 길에 사온 [빅이슈]를 펼쳐 책장을 넘기다가 곧 다시 덮어버렸다. 그래도 2년 전 그날 밤에 비해 다행인 것은 내가 이미 어느정도 술을 마시고 돌아온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술의 힘을 빌어 잠이 올거라고 확신하고 누워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왕이면 슬프고 아픈 기억보다는 즐거웠던 기억을 꺼내보려고 애쓰며 빗소리와 어둠을 응시하다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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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7-1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주무신건 아니예요?
정말 잠들기 싫은 날 있어요.
근데 딱히 할 건 없는데 잠 자기는 싫은...
술 한 잔 걸치고, 누군가는 마음 속에 기억나고, 세상은 적막하고...^^
잘 지내시죠? 여전히 그곳은 비가 오나요?

감은빛 2012-07-17 15:45   좋아요 0 | URL
저는 어렸을 때부터 밤에 활동하는 체질이었어요.
부모님께서는 늘 저를 '올빼미'라고 불렀죠.
요즘도 술과 관계없이 새벽 2,3시가 기본입니다.

'잘'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저냥 지내기는 합니다.
안부 말씀 고맙습니다!
 

 

나에게는 병이 하나 있다. 사람 얼굴을 잘 못 알아보는 병.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하는 병. 이것은 머리가 나쁘다거나 기억력이 안좋다거나 하는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다른 기억력에는 문제가 없으나, 유독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니 그런 듯하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듯 하다. 당시 유행하던 최진실, 왕조현, 소피 마르소 등의 책받침을 보면서 같은 사람의 다른 사진을 알아보지 못했다. 화장법이 바뀌거나 머리 모양이 바뀌면 도무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런 나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자꾸만 같은 사람의 다른 사진이 들어간 책받침들을 모아와서는 질문하곤 했다. "이 사람하고 이 사람하고 같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이야?", "다른 사람!" 그러면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나는 그게 왜 우스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저 녀석들 눈에는 이게 같은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나는 오히려 그게 궁금했다.

 

대학 때였다. 학생회 활동 등으로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역시나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덕분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은(아마 평생 잊지 못할듯) 한동안 친하게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다시 한동안 못 만났다가 어느날 우연히 학생식당에서 딱 마주쳤을때의 일이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아는 사람일거야, 그런데 동기야? 선배야? 아님 후배야? 얼굴로 보아 후배는 아닌 것 같고, 동기 아님 선배일텐데, 말을 놓아야 해? 아님 높여야 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돌면서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반가운 웃음이 아직 그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한 내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아직 안돼! 니가 누군지 떠올리지 못했어! 다가오지마!' 그러나 그는 곧 내 앞에 서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전해왔다.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말투에서 말을 높일지 낮출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안녕, 잘 지냈어."라는 평범한 인사말만 갖고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어, 어" 라고 얼버무리듯 입을 열었고, 내 곤혹스러운 표정을 읽은 그는 잠시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 정말 쥐구멍이롣 있다면, 머리만이라도 숨기고 싶은 기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의외로 빨리 그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뭐야! 너 나 못알아보는거야? 참, 나. 어이없네!" 잠시 혼자말로 뭐라고 궁시렁거리던 그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더니 곧 떠나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그 자리에 남아 계속 그가 누구인지를 떠올렸다.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그 마지막 경멸을 담은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그 이후로도 가끔 학교에서 마주쳤는데, 이젠 그 쪽에서 아예 내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기억은 어느날 갑자기 망치에 맞은 것처럼 떠올랐다. 그는 동기였다. 즉 말을 놓아도 되는 상대였다. 짧은 기간 여러번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들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그의 이름만은 생각나지 않았다.

 

역시 대학때였다. 마지막 2년은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서 호출이 와서 저녁 시간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여동생이 타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 쪽을 쳐다보았으나, 여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내 여동생은 당시에 거의 분장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있었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그래도 동생을 알아보지 못한 사실은 어쩔 수 없었다. 집 근처에 다 와서 복잡하던 버스 안이 한적해졌을 때, 자리에 앉아있던 동생이 "오빠야!"하고 불렀을 때까지도 나는 동생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내 동생이랑 비슷하네. 누구를 부르는 거지?' 싶어서 주위를 돌아볼 뻔 했다. 다시 한번 동생이 "오빠야!"를 부른 다음에야 얼른 정신을 차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을 착각하거나 잘못 알아보고 실수한 일이 무척 많다. 도무지 셀 수도 없다. 거래처를 방문했다가 담당자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 젊은 여직원들의 얼굴들을 열심히 살폈는데, 바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그 사람인 줄 모르고 30분 넘게 기다렸던 적도 있었고, 다른 거래처에서는 담당자인줄 알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가 처음 보는 다른 사람이어서 엄청 무안했던 적도 있었다.

 

작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녹색당에서도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당원들끼리 함께 FTA반대 집회에 나가기로 하고, 좀 늦게 집회장소에 도착했다. 전화로 위치를 확인해서 당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 자리에는 다른 당원들은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고 있던 한 여성당원이 있었다. 집회가 일단락되고 행진이 시작되면서 그 여성당원이 내게 다가와서 반갑게 말을 붙였는데, 이번에도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역시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이미 표정관리하기에는 늦어버린 상황. 그는 내가 적당한 반응을 보이지 못하자 그냥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간 듯 했다. 나는 그가 누군지 생각하느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그가 "말을 걸었는데, 반응이 없길래, 아, 못알아보시는구나! 싶었어요"라고 쿨하게 말했다. 그의 그런 태도 덕분에 나는 더 부끄러워져서 여러번 사과를 거듭해야 했다.

 

며칠 전에는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파티가 열렸다. 그 유명한 '햄머링 맨' 근처 거리에서 집회 겸 문화제를 열어서 참석했는데, 거기서 낯익은 여성 활동가를 한 명 만났다. 그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길래, 나도 정중하게 "안녕하세요!"라고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아마 활동하다가 만난 사람들 중에 한 명이겠지 싶었다. 그런데 그가 "아니, 왜 이렇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세요? 지금 나 못알아보시는거죠?"라고 정색을하면서 물었다. 그제야 뜨끔해진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살피면서 "아니예요. 기억나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머리는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메모리에서 '여성활동가' 항목을 뒤져서 나오는 얼굴과 이름들이 빠른 속도로 스쳐갔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분명히 낯이 익었다. 내가 활동했던 몇 개의 교집합을 차례로 떠올리다가 마침내 맞는 항목을 골라냈다. 환경단체 활동할 당시에 같은 기수로 교육을 받았던 동기였다. 그가 나보다 어렸기에 아마 당시에는 말을 놓고 지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왜 깍듯하게 인사하냐?"를 물었던 거겠지. 그러나 여전히 그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남자 아이를 하나 발견했다. 그의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중간쯤 되어 보이니 대략 대여섯살 쯤 된 것 같았다. 그렇구나! 그새 우리가 다들 결혼하여 아이들이 자라고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새삼 지나간 시간을 느끼면서, 그와의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역사가 워낙 오래되다보니,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상담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는 내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관심을 좀 가지라는 요구를 했고, 어떤 이는 그냥 포기하라는 주문을 했다.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많고, 앞으로도 활동을 중단할 생각은 없으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망신을 당하게 될까 싶어서 늘 불안하다. 그러나 며칠 전에 마주쳤던 동기와 헤어져서 돌아오면서 이건 난치병이 아니라 불치병이구나 싶었다. 그냥 포기하라는 조언을 했던 친구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듯 하다. 다만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라는 친구의 조언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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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7-10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감은빛님. 저도 언젠가 같은 내용으로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의외로 이런 증상을 가지신 분들이 많군요. 안면인식장애 말입니다. 제 경우에도 친구 얼굴을 못알아봐서 엉뚱한 사람한테 말걸고 그랬더랬어요. 하핫.

모두에게 적용되는건 아닌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이들의 얼굴은 아주 잘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어떤 이들의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앞머리가 있었지 머리가 길었지 스포츠머리였지, 이정도의 어떤 윤곽은 기억하지만 얼굴형태는 뿌옇다고나 할까요. 이미지만 남아있을때도 있고, 어떤 경우엔 이미지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저도 상당히 애먹는답니다. 특히 제가 지금 하는 일에서는 얼굴을 잘 기억해야 하는데, 그걸 통 못해서 누군가 찾아올때마다 동료직원을 쳐다봐요. 그러면 동료직원이 입모양으로 누구라고 말해주죠. orz


저는 사람 얼굴뿐만 아니라 모든 그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에요. 그림 기억을 전혀 못해요. 만화책은 재미있게 읽어도 전혀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요. 이쪽으로는 뇌가 발달하기를 멈춘듯 해요. 제 경우엔, 관심과는 별개로 말이지요.

감은빛 2012-07-13 11: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저와 같은 불치병을 갖고 계시군요.
(불치병에 반갑다는 표현을 써서 좀 그렇지만)
이거 정말 반가운데요!
다락방님이 쓰신 글을 찾아 읽고 싶네요.

시간날 때 검색해보겠습니다.

라주미힌 2012-07-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사람들을 익숙하게 하는 것도 방법인거 같아요;; 적극적으로 알려서.. 흐흐
저도 핸디캡이 있는데, 어쩔 수 없죠 뭐.. 본인들이 익숙해져야지 -_-;;

감은빛 2012-07-13 12:00   좋아요 0 | URL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이 제가 못알아본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어요.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렇지만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더라구요.
라주미힌님도 조금은 증상을 갖고 계신가봐요. ^^
저만큼 심하지는 않겠죠?
 

나는 방금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다.


책 만지는 일을 하루이틀 해본 것도 아니면서 가끔 이렇게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곤 한다. 조심성이 부족해서인 것 같다. 약 1년쯤 전에도 서두르다가 손가락을 깊게 베인 적이 있었다. 1년만에 다시 깊은 창상(베인 상처)을 입었다. 고작 종이에 베인 정도를 창상이라 표현한 것은 살갖이 좀 깊게 벌어져서 잘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상처가 아물려면 아무리 트롤(아내는 상처가 빨리 낫는 편인 나를 보고 트롤이라고 부른다.)이라 불리는 나라고 해도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베인 상처를 입고 보니, 상처가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들면서 갑자기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잠시 느려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아까 종이에 베일때에도 그랬다. 아무생각없이 종이를 꺼내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지면서 날카로운 종이 날에 베이는 순간, 문득 감각이 예리해지면서 찰나의 고통과 함께, 머리 속으로 생각이 빨라졌다. 일단 상처를 확인. 살갗은 벌어져있지만, 아직 피는 올라오지 않았다. 곧 피가 솟아 올라오리라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피가 솟아올라서 작업하고 있던 책을 못쓰게 만들기 전에 빨리 휴지를 찾아야 한다. 일단 피가 올라오면 먼저 지혈부터 해야겠지. 아니 그전에 물로 한번 씻고 소독을 하는게 더 좋을까. 소독약이 있었던가. 아니 없는 것 같아. 지금은 약국에 갈 여유가 없으니, 빨리 휴지를 찾아 지혈부터 하는게 더 좋을거야. 아주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빠르게 스쳐간다. 잠시후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휴지를 찾아 손가락을 감싸쥔다. 따뜻한 핏물의 온도가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두어 차례 크게 베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늘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무언가 만들기 위해 문구용 칼을 긋다가, 동생이 갑자기 발로 차고 지나가는 바람에 왼손 엄지를 그어버렸다. 뭔가 따끔한 감각이 잠시 들었다가 말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잠시 후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방 바닥에 흘러 주변을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지만, 나는 당황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칼에 베이고, 아픔을 느끼고, 피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그 짧은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던게 기억이 난다. 이게 정말 베인건가. 피가 안나니까 그냥 살짝 아프고 만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암튼 그 상처는 아주 컸다. 지금도 손가락의 절반가량 선명한 흉터가 남아있다.

 

대학시절 농활가서 왼손 검지를(또 왼손이다. 이 수난의 왼손!) 낫에 베였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한 순간의 따끔한 아픔이 지난 후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갑 때문에 상처가 직접 보이지 않아서 혹시 큰 상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잠깐 가져봤다. 하지만 잠시 후 피가 솟기 시작하자 순신간에 장갑이 붉게 물들어버릴 정도로 상처는 컸다.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나이였다면 당연히 병원을 갔어야 했다. 나는 솔직히 별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저절로 아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깊이 벌어진 상처가 저절로 아물거라는 철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농활 인원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선배들도 후배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며칠 더 일을 했다. 한 선배는 설겆이 하기 싫어서 일부러 다친게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농활을 끝내고 돌아올때까지도 손가락은 낫지 않았다. 상처를 본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며 당장 병원으로 데려갔다. 파상풍 때문에 자칫하면 큰일 날뻔 했다고 의사도 야단을 쳤다. 내가 시간을 끌었던 탓에 상처부위를 매끄럽게 꿰매지못하고 살갖의 일부를 잘라냈다. 덕분에 나는 손가락을 매끄럽게 굽히지 못하게 되었다. 약 1년 정도 왼손 검지를 늘 펴고 살았다. 검지 손가락의 윗부분을 주욱 가로지르는 이 흉터는 엄지에 난 매끄러운 곡선의 흉터와 달리 지그재그, 삐뚤빼둘이다. 꿰멘 흔적도 양 옆으로 남아있어 아주 보기 싫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 손에 자잘한 흉터들이 여러개있다. 이런 상처들은 언제 어디서 다쳤던 것인지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늘 다친 상처는 흉터가 남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 작년에 다친 상처도 이 보다는 더 컸는데, 흉터가 남지는 않았다. 어라 그러고보니 그때 다친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다쳤다고 인식하는 순간,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춘 것 처럼 느껴지는 것.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인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데서 누군가가 차에 치이거나,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런 장면을 종종 보여주는 것 같은데, 이건 내가 그런 장면을 많이 봐서 그렇게 착각을 하는건지. 아니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겪기 때문에 작가들도 보편적인 경험의 결과로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건지 모르겠다.

 

 

※ 작년 가을(10월 25일) 다른 블로그에 쓴 글. 해당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여기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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