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안심


주사 4방의 약효는 하루쯤 지나 나타난 듯 하다. 어제 오후가 되니 통증이 확실히 줄었다. 먹는 약은 시키는대로 잘 먹고 있는데, 아침을 안 먹기 때문에 아침 약을 점심때 먹었다. 대신 저녁 약은 확실히 늦은 밤에 먹고 있으니 괜찮겠지.


그제 저녁에 들어와 혼자 티셔츠를 벗으려니 통증 때문에 팔을 뺄 수가 없었다. 누구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아픈데 옷 벗고 눕지도 못하는 구나 싶어서 좀 서러웠다. 통증을 참고 억지로 팔을 빼고 옷을 벗었더니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어제 아침 전날과 별로 달라지지 않은 통증에 좀 놀라고, 도저히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씻기도 어려웠고, 또 옷을 입기도 어려웠다. 사무실은 하루 빠지기로 마음 먹고, 자판을 두드려야 하는 일 대신 전화로 조율해야 하는 일을 주로 했다. 마침 에너지 슈퍼마켓 건과 태양광 발전소 추진 건으로 급한 통화를 해야 했다. 거래처와 시공사와 관련 공무원 등 통화해야 할 사람들은 많았다. 20통 이상의 통화를 했고, 통화 시간은 대부분 5분을 넘겼고, 가장 긴 통화는 40분 가량이었다.


다행히 전화 업무를 통해 해결하려던 부분들은 대부분 잘 풀렸다. 출근을 하진 않았지만, 퇴근 시간 무렵 나도 자체적으로 일을 접었다. 밀려 있는 엄청난 서류 작업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전화로 해결한 일들이 있으니 마음이 아주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눈을 뜨니 어제보다 훨씬 더 증상이 좋아졌다. 드디어 조심스레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절대 올려지지 않던 팔이 이젠 귀에 닿을 만큼 올라갔다. 몸을 일으켜 친구가 보내준 볼빨간 사춘기의 신곡들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노래는 아직 귀에 익지 않아서인지 아주 좋은 줄 모르겠는데, 목소리는 참 좋다! 왠지 저 목소리로 들으면 뽕짝이라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노트북을 켜고 급한 메일 확인하고 간단한 업무를 하면서, 통증이 줄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거 또 일하다보면 다시 근육이 굳을테고, 그러면 또 아픈거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든다. 여전히 승모근의 피로는 그대로였고, 손을 대기만 해도 아팠다. 무리하지 말아야 하는데, 연휴가 끝나면 몰려들 그 어마어마한 일을 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연휴 시작!


어쨌거나 연휴 시작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애들을 만나는 날이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애들이랑 재밌게 놀아야지. 이번에는 부산에 가서도 부모님과 잘 지내고 돌아와야지. 아버지와 정치 얘기로 다투지 말고, 어머니와 종교 문제로 다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벌써 꽤 오래 전. 애들 엄마가 부산에 따라가지 않으면서 명절마다 혼자 애들을 데리고 부산을 다녀왔는데, 그러다 재작년쯤 본인도 명절에 애들과 집에 가고 싶다는 애들 엄마의 요청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그도 명절을 애들과 보내고 싶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장모님은 가까이 사시니, 평소에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명절 두 번과 여름 휴가 한 번, 일년에 겨우 3번 밖에 아이들을 못 보니, 당연히 명절은 부산에서 보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애들엄마의 요청은 당연한 것이어서 곧바로 수락했다. 여름 휴가를 다녀오면 오래지 않아 추석이 오니, 설은 부산에서 보내고, 추석은 서울의 처가에서 보내기로 약속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혼자 부산에 갈 예정이다. 아이들이 없으니 기차표를 구하는 것도 한결 더 여유로웠다. 정 안되면 입석이라도 타도 된다 싶었다. 이번엔 연휴가 워낙 길어서 뒤늦게 알아보아도 표가 있었다. 평소엔 애들 때문에 고려도 하지 못했던 새마을과 무궁화를 중심으로 알아봤다. 고속열차에 비해 1시간, 2시간 가량 늦게 도착하지만 비용은 훨씬 더 쌌다.


그렇게 저렴한 비용으로 기차를 예매해두었는데, 고향 친구(대학 동기)와 통화 하다가 그들 형제가 일요일 새벽에 차를 몰고 내려간다는 얘길 들었다. 애들이 없다면 새벽에 내려가는 것도 가능하다. 게대가 기찻값도 아끼고, 오랜만에 걔네와 수다도 떨고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곧바로 내려가는 기차를 취소하고, 친구 동생 차에 한자리를 예약했다.


게다가 이번 추석엔 어머니가 어쩐 일로 먼저 우리끼리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아직 입금이 되진 않았지만, 마침 지난 번에 동네 쉼 활동가 프로그램에 뽑혀서 휴가비가 지원되니, 그 돈으로 짧게 놀다와야겠다 싶었다. 아직 어딜 갈지는 정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원하는 곳으로 갈 생각이다.


아직 짐을 싸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무슨 책을 가져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 권을 가져갈지, 두 권을 가져갈지. 가방이 작아서 두 권은 무리다 싶어 한 권으로 정하려는데, 최근에 구매한 책이 좀 많아서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이책 저책을 놓고 저울질하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 계단]으로 정했다. 최근 다시 읽은 [제노사이드]의 영향이 컸다. 얼른 이 책을 다 읽고 [KN의 비극]도 읽어야지.
















자, 이제 씻고 애들 만나러 가야겠다. 그 전에 볼빨간 사춘기 노래 한 번만 더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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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3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감은빛 2017-10-03 16:16   좋아요 1 | URL
늘 먼저 인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transient-guest 2017-10-11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카노 가즈아키 책 참 재미있어요. 즐겁고 편안한 휴식시작 되셨기를...

감은빛 2017-10-19 20:1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재밌었어요.
이제 사놓은 또 다른 책을 읽어야 할텐데,
책에 손 댈 여유가 안 생기네요. ㅠㅠ

고맙습니다!
 

최근 뒷목과 승모근이 딱딱하게 굳어 아프고, 머리까지 아팠다.

안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바쁜 와중에 신고리5,6호기 건으로 주말마다 나가는 등 일에 대한 피로 때문에 그런 거라 여겼다.

그게 이번 일요일부터는 몸살기운처럼 온 몸이 다 아팠다. 특히 뒷목과 어깨 쪽에 통증이 심했다. 몸살이라고만 여겼다. 좀 쉬고 나니 괜찮길래 그런줄 알았다.

오늘 아침 중학교에서 에너지 교육을 마치고 사무실에 와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어깨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심해져 결국 팔을 움직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분명 아침에는 멀쩡했는데, 그닥 힘쓸 일도 없었는데, 짧은 시간 갑자기 이러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오른 팔을 아예 꼼짝도 못할 지경이 되니, 겁이나서 통증 부위를 살피고 검색을 통해 상황을 파악했다.

주요 어깨 통증은 3개로 보는데, 오십견의 세부 증상을 살펴보니 나와는 달랐고, 회전근개 파열과도 증상이 달랐다. 딱 이거구나 싶었던 게, 충돌 증후군이었다.

사실 10대부터 20대까지 어깨 관절의 유연성이 떨어져 운동하면서 어려움을 좀 겪었고, 20대 후분 오른쪽 어깨 인대를 크게 다친 적도 있어서, 저 충돌 증후군 이란 증상에 어느정도 수긍이 갔다.

문제는 왜 하필 오늘 갑자기였다. 계속 피로가 누적된 감은 있었지만, 딱히 무리하게 근육을 쓴 적이 없었던 터라 원인을 모르겠다.

암튼 조금만 팔을 움직여보려고 해도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어쩔수 없이 병원을 찾았다. 마침 사무실 근처에 큰 정형외과가 있었다.

몇 해 전 골반쪽 인대를 다쳐 두어달 이상 절뚝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가 아닌가 의심하며 갔던 병원이었다. 당시 의사는 깨끗한 내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엑스레이로는 진단이 안되니 MRI를 찍자고 했고, 나는 고액의 MRI를 쉽게 찍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나왔다. 제법 장기간 다리를 절면서 걸을만큼 인대를 다쳤다는 사실은 나중에 깨달았고, 스트레칭과 운동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켰다.

이렇게 썩 미덥지 못한 (아니 어쩌면 20대때 어깨와 무릎 때문에 오래 고생하면서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기에 뼈속 깊이 불신이 쌓인) 정형외과 이지만, 당장 통증 때문에 갈 수 밖에 없었다.

접수를 하고 오래 기다렸다. 기다리는 와중에 X레이 사진을 10장 이상 찍었다. 오랜 기다림 후에 만난 의사는 조심스럽게 전한 내 판단, 충돌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아주 조심스럽게 부인했다.

역시 X레이로 판단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고, 내 팔과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라고 해보고, 잘 움직이지 못하자, 본인이 움직여보더니, 두 가지 판단을 내렸다.

1. X레이 상 뼈에는 이상이 없다.
2. 팔과 어깨를 움직여보니 근육 파열은 아니다.

그리고 결론은 원인은 알수 없지만 염증 때문이라는 것이었고, 주사와 먹는 약 4일치를 처방했다.

병원비를 결제하는데 거의 7만원 가까이 나왔다. 세부 내역을 보니 주사가 4만원이 넘는데, 비급여항목이었다. 엄청 돈이 아까웠지만, 주사를 맞으면 좀 낫겠지 기대하고 이동했다.

주사를 맞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팔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혼자 옷을 벗을 수 없었다. 시도해보다가 계속 통증 때문에 실패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남자 간호사가 대신 상의를 벗겨줬다.

그리고 어깨와 목 주위에 4번 주사를 맞았다. 엄청 아프더라. 친절한 남자 간호사가 주사 4번을 맞은 내 경우는 무척 많이 맞은 것이고, 주사 약이 많이 투입되었으니 어지러울 수 있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또 통증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3~4일 정도 지속될 거라고 했다.

헐! 주사 맞으면 나아질 줄 알고 병원 온건데, 여전히 팔을 움직일 수는 없었고, 오히려 주사를 맞은 이후로 팔의 감각이 이상했다. 마치 내 팔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약을 태와서 사무실에 앉았는데, 왼손만을 써서 일하려니, 타자를 치기도 어렵고, 마우스를 다루는 것도 어색했다. 한 손 독수리 타법으로 느릿느릿 천천히 일을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왼팔로 오른팔을 들어올려 책상 위에 올려두고, 무선 키보드를 최대한 몸 가까이 가져온 후 양손으로 자판을 두르릴 수 있었다.

왼손 독수리로 자판 치려니 성질 급한 입장에서 무척 답답했는데, 그나마 이젠 양 손 타자가 가능하니 속은 좀 시원해졌다.

그나저나 내일도 계속 어깨와 팔이 이 모양이면 일은 대체 어쩌나? 명절 앞두고 할 일이 정말 태산처럼 쌓여있는데, 이게 뭔 꼴이냐! 에휴 미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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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9-28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밖에 없어서...
언능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7-09-30 12:58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 고맙습니다!
주사 맞고, 약 먹고, 쉬었더니 오늘은 한결 낫습니다.
좀 걱정이 되는 건 아직 완전히 나은건 아닌 듯해서
다시 일하다보면 또 아플까봐 그게 걱정이네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키치 2017-09-29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놀라시고 힘드시겠어요.
연휴에 푹 쉬시고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17-09-30 12:58   좋아요 0 | URL
키치님, 고맙습니다!
연휴에 푹 쉬고 싶은데, 우선 고향을 오가는 일 자체가 엄청 힘든 일이라서요.
게다가 연휴 끝나고 첫 출근날 열리는 워크숍에서 중요한 발제를 맡았는데,
아직 손도 못 대고 있어요.
이외에도 밀린 일이 수없이 많아서 이틀 이상은 머리 싸매고 일을 해야 해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7-09-2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으로 진단을 내린 의사의 소견이 찝찝하게 들립니다. 비용이 들겠지만, 다른 정형외과에 가보셔서 증상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17-09-30 13:03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고맙습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20대 시절부터 무릎, 어깨, 골반 등 주요 관절 문제로
정형외과를 계속 다녔지만, 단 한번도 만족할만한 진료를 받은 적이 없어요.

단 한번도 명확한 증상을 밝혀준 적도 없구요.
계속된 피로 누적으로 근육이 뭉쳐 제 기능을 못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주사와 약의 영향도 있겠지만, 확실히 쉬고 나니 통증이 거의 없어졌네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9-3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고생하시는 것 같았는데..
몸으로 나타나네요..
잠시 쉬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시고 연휴동안 어여 나으시기를..

감은빛 2017-10-10 23:50   좋아요 0 | URL
나와같다면 님 말씀 덕분에 연휴 끝나고 한결 좋아졌어요.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7-10-1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성은 아닐지요?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계속 이어지면 뒷목하고 승모근이 딱딱하지는 경우가 있어서 저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면 스트레칭과 마사지, 그리고 침으로 풀어주면 좋아지더라구요. 물론 스트레스가 낮아져야 가장 좋구요.

감은빛 2017-10-19 20:1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피로와 스트레스가 주 원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좋아졌다가도 무리한 다음 날엔 꼭 통증이 심해지더라구요.
문제는 지금 무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라서요.
당분간은 야근 혹은 밤샘을 이틀에 한 번 꼴래 해야 되는 일정입니다. ㅠㅠ

transient-guest 2017-10-19 20:19   좋아요 0 | URL
사우나나 찜질방에서 하루를 마감하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 잘 못 만나 이 무슨 고생!


최근 3주간 단 하루도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했다. 물론 주중에 반차를 내는 등 잠시 쉬는 날이 있긴 했지만, 하루를 온종일 쉬어 본 적은 없다. 물론 그 전에도 늘 바쁜 일정에 파묻혀 살았지만, 이번엔 진짜 대박이다! 살면서 이렇게 여러 일들이 몰려 든 적이 별로 없었다.


하루나 이틀쯤 밤새 일해도 그닥 피로를 못느끼는 편이었다. 이 서재에만 해도 그런 글을 여러번 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 죽을 것처럼 힘들다! 2주전부터는 뒷목이 뭉쳐서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아팠고, 어깨가 아파서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탈핵 운동 활동가들이 다들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보니 나처럼 뒷목, 승모근,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활동가들이 여럿 있었다.


나를 비롯해 이 땅의 에너지 활동가들이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이유는 대통령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탈핵 선언과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선 공론화 선언 때문이다. 유독 환경에 대한 측면에서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 처럼 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건 노무현과 똑같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줄 알았더니 최근 몇몇 환경 활동가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럴까? 아래 사례를 보면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까?


1. 신고리4호기, 신울진1,2호기


 현재 약 90% 가량 공사를 진행한 이 세 핵발전소에 대한 애초 공약은 중단 후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 거취를 결정한다 였다. 하지만 현재 이 세 발전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냥 짓고 있고, 이대로 가면 현 대통령 임기 내에 발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신형 핵발전소는 구형보다 수명이 두 배나 길어 60년이나 돌아간다. 이 세 기가 지어져 발전을 시작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행한다면, 나는 죽기전에 탈핵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도 평생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야 한다.


아니 탈핵을 선언한 대통령의 임기 내에 핵발전소가 3개나 늘어나고(만약 신고리5,6호기를 포함하면 5개) 탈핵 시점이 60년이나 더 늘어나면 그게 무슨 탈핵 선언인가? 이 무슨 장난인가? 탈핵을 하긴 할건데 너네 죽은 후에 할거야! 뭐 이런 건가?


2. 신고리5,6호기


 애초 공약은 전면 백지화였다. 저 위의 세 개는 공사가 많이 진행되어, 국민들의 의견을 묻겠다고 했지만, 이 두 개의 핵발전소는 아직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겨우 10% 가량 되었기에 무조건 취소하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공론화를 하겠다고 했다. 백번 양보해서 공론화를 하겠다는 뜻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갑자기 터트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아직 내각도 다 갖추지 못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조차 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마피아가 학계와 정계와 재계를 다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론화를 하겠다고? 차라리 그냥 탈핵 안 하고 계속 핵발전소 짓겠다고 하지 그랬나? 이렇게 불공정한 판에서 무슨 토론을 하라고?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슨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나?


원자력문화재단에서는 작년 1해 동안 집행했던 광고비의 약 80%를 올해 3달 동안 썼다고 한다. 이들이 광고를 한 방송과 언론은 딱 그만큼 열심히 핵발전을 옹호하는 거짓으로 가득찬 엉터리 방송과 기사를 내보냈다. 반대로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정확한 내용을 담은 방송과 기사는 거의 없었다.


거리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하거나, 욕하면서 떠드는 내용 대부분이 저 엉터리 기사들이다. 


- 전기요금 폭탄? 

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로 거짓임이 금방 드러났다. 


- 전기가 부족하다고? 촛불켜고 살 거냐고? 

올해 가장 더운 날을 기준으로 해도 전기는 30% 이상 남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60% 이상 전기가 남아돈다. 근거는 전력거래소 홈페이지 가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 핵발전이 세계적 대세라고? 1996년 전세계 핵발전 비중은 17.6%로 최고치를 찍었으며 이후 20년째 내리막길이다.

2015년 기준 전세계 발전량 비중은 10.7%로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적다.

세계적인 핵발전 기업인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한 것도 바로 

핵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증거다.


600조 수출 시장이라고?

600조라는 금액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진짜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전세계 짓고 있는 핵발전소 갯수에 건설비를 곱한 값이었다.

그럼 현실은 2009년 아랍 에미리트 수출 단 한 건 계약 이후로 전혀 없다.

게다가 그 아랍 에미리트 건은 엄청난 이면 계약으로 아무런 득이 없는 형편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핵발전 기술은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다.

현재 핵발전소를 짓는 나라는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몇 개 되지 않는데,

대부분 우리보다 기술이 더 뛰어난 나라 뿐이다.

600조는 커녕 이면 계약 없이는 단 돈 1원도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


- 후쿠시마에 사람이 살아도 된다고?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가 방송에서 그랬다지?

그럼 당신이 가서 단 하루라도 살아보고 돌아와서 말해보지 그랬나?

후쿠시마 현청 홈페이지를 보면 서울시 면적의 3/5이 고농도 오염지역으로 나와있고,

7만9천4백4십6명이 현재 피난중이라고 나와있다.

최근 의대 교수인 김익중 선생님 강연을 들으니,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갑상선 암, 유방암, 백혈병, 심근경색, 

각종 유전진환과 중추신경계질환 등이 200% ~ 300% 이상씩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떠드는 말이 아니라 모두 근거 자료가 있는 얘기다.


그 뿐인가 일본 통계청 인구 통계를 보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4년 동안 1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줄었다. 


3. 한빛4,5호기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4호기 격납건물의 철판이 부식되고, 콘크리트에 수백개의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지만, JTBC와 연합뉴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보도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후 한빛4호기 증기발생기 안에 이물질(망치)가 발견되었을 때도 보도하는 곳이 없었다. 망치가 움직이다가 관 하나만 잘못 건드렸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 뿐인가 이번에는 한빛5호기 핵폐기물 격납건물에 큰 구멍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또 뒤늦게 알려졌다. 핵폐기물은 수백가지 방사능을 내뿜는다. 그래서 격리보관해야 한다. 꺼지지 않는 불덩이이기 때문에 물이나 공기를 이용해 계속 식혀줘야 한다. 생명체에 치명적인 물질 중 하나는 반감기가 무려 10만년 이상이다. 반감기가 10만년이니 완전히 없어지려면 20만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 10만년 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인류에게 없다! 

핀란드의 온칼로는 단지 가능성이 조금, 아주 조금 있다고 여겨질 뿐, 실제로 가능한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으로 부터 10만년 전은 구석기 시대였다.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제 감이 오시나?

4.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 케이블카는 이전 정권에서 부결된 사업이었다. 당시에도 아주 치열하게 싸웠고, 어렵게 얻은 승리였음에도 언제라도 이를 뒤집어 다시 시도할 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뒤따랐다. 왜냐하면 그 사업으로 인한 금전적 이득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정권 바뀌자마자 곧바로 손바닥을 뒤집을 줄은 미처 몰랐다. 노무현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걸었던 금정산과 천성산을 지키지 못하고 파괴했다. 그 뒤를 이어 문재인은 과연 설악산을 파괴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5. 4대강 복원 미루기

촛불 시민의 염원을 이어받아 적폐 청산을 하겠다는 정권에서 왜 아직 4대강 얘기가 없는 걸까? 적폐중의 적폐인 이명박은 왜 아직 건드리지 못하나? 아마 아직 준비중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면 왜 신중하게 준비했어야 할 탈핵은 그렇게 툭 던져두고, 이미 두 정권을 거치며 많은 자료가 나와있어서 추진만 하면 될 4대강 복원은 미루고 있는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뭐라고 답할 건가? 정답을 알려주겠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수 년째 썩은 강을 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안다면 이렇게 미루고 있을 일이 아니다. 


모기 32마리

애초에 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죽을 것처럼 몸이 힘들다고 하소연만 할 생각이었는데, 쓰다보니 너무 나갔다. 결국 퇴근도 못하고 12시를 넘겨 사무실에 앉아 있다니! 저녁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11시쯤엔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이 글 쓰는데 시간을 제법 썼다.

지난 주엔 아이들 보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야근을 했다. 아침 출근길엔 지하철 역에서 탈핵 캠페인을 진행하고, 퇴근 시간에는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에서 탈핵 서명을 받았다. 주말에는 녹색당 정당연설회를 열어 탈핵 서명을 받았다. 2주 연속 정당연설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속 떠들었더니 목이 금방 가버렸다. 

신고리5,6호기 관련 글도 써야했고, 이런저런 회의와 토론회와 워크숍에 불려다녔다. 그 와중에 행정업무는 잔뜩 쌓여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컨퍼런스 보고서 책임편집을 맡아 수십편의 보고서 교정교열도 봐야 했다.

지난 주 목요일 탈핵 강연을 마치고, 저녁 10시쯤 사무실로 돌아왔다. 밀린 일을 잔뜩 하리라 맘 먹고, 밤새 일할 작정이었다. 늘 그렇듯 의지와 달리 일은 진도가 더뎠고, 자꾸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모기였다. 헐! 여름에도 이렇게 많지 않았던 모기가 왜 이렇게 많은거지? 그날 야근하면서 눈 앞을 어른거리는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일하다보면 발가락 끝이나 등이 자꾸만 가려워 모기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화장지 한 칸을 떼어 잡은 모기 시체를 쌓았는데, 시체가 자꾸만 늘어나길래 한번 세봤더니 7마리였다. 그때부터 메모장을 열어 내가 잡은 모기를 세기 시작했다. 밤새 일하는 동안 과연 몇 마리나 잡을까 궁금했다.

아침에 해가 뜰 때 메모장에 적힌 숫자는 32마리였다. 엄청난 숫자였다. 그 순간에도 내가 잡지 못한 모기들이 사무실 안을 날고 있었다.

















지난 주 어느 저녁 탈핵 서명을 받은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아직 구하지 못한 레미제라블 3권을 찾았는데, 역시 없었다. 1,2,4,5권은 다 있는데, 왜 3권만 없을까?


이 책장 저 책장 돌아보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골랐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였다. 물론 사온 당일 잠시 살펴본 후로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다. 주말에 읽고 싶었지만, 계속 밖에 있느라 시간이 없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절차가 끝나야 짬이 날 것이다. 아니 그땐 또 그때대로 엄청난 일이 몰려들겠지 적어도 지금보다 마음은 더 가볍겠지. 어떤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만약 계속 짓겠다고 결론이 난다면 예전 고속철도나 새만금 싸움처럼 정부와 핵마피아 세력에 대한 전면전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중단하기로 결정이 나면, 이제부터 신고리4호기와 신울진1,2호기 싸움을 시작해야겠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난다. 이렇게 고생하고도 살아있는 동안 탈핵을 보지 못하면 진짜 억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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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7-09-2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핵과 관련해 교수놈, 학자놈들이 돈과 밥그릇 때문에 엄연한 과학적 사실, 객관적 통계 등등을 가리고 왜곡하고 조작하다니 분노가 치밉니다. 왜 헬조선 이 땅의 인간들은 그렇게 양심적이지 못할까요? 문재인 또한 노무현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아니라 확신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요? 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불가능한 정권 교체를 울 국민들이 해줬는데, 정권 교체 4~5개월째 접어드는 지금까지 정권의 틀조차 잡지 못하고 지리멸렬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죽음의 핵발전소 건설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은빛 2017-09-30 12:53   좋아요 0 | URL
퀄리아님,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콕 찝어 해주시니, 덕분에 제가 좀 후련하네요!

이제 추석 연휴가 끝나면 금방 공론화 결론이 나올텐데,
얼른 끝났으면 싶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노력을 해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둘 다 들어요.

어떤 결론이 날지 조금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젠 제 손을 떠났다는 생각도 한 편 들기도 하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7-10-11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쓰모토 세이초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4대강 때 전문가라고 나와서 떠들던 놈들도 그렇고, 비타민제 논쟁때도 그랬고, 탈핵가지고 밥그릇 싸움이군요. 근데 전문가라면 적어도 후쿠시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죠. 학계를 파보면 실력보다 연줄과 충성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 그런 부류는 아닐까 싶네요. 실력이 있는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더 문제..-_-:

감은빛 2017-10-19 20:11   좋아요 1 | URL
저 책 아직 펼쳐보지도 못 했네요.
내일 신고리5,6호기에 대한 공론화 위원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제가 저 책을 읽을 시간이 날 지 어떨지 정해질 것 같네요.

이번에 느낀 건데 전문가라는 작자들, 교수라는 작자들이
정말 헛소리를 많이 하더라구요.
진짜 배웠다는 인간들이 저럴 수 있나 싶어요.

transient-guest 2017-10-19 20:18   좋아요 0 | URL
일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이 참 별 사람들이 다 교수니 박사니 하는 것으로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적음 숫자인 듯 합니다
 


제발 쉬기를 바래


올해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중 휴식이 꼭 필요한 활동가 5명을 선정해 휴가비를 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제목이 "제발 쉬기를 바래" 였다. 작년에는 2명을 선정했었다. 나와 친한 선배 두 명이 선정되어 제주도를 다녀왔던 것이 기억난다. 올해는 규모가 더 커졌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지역 활동가들 사이에서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여러차례 받았지만, 추천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을 추천하기가 어려웠다. 다들 바쁘고 힘들게 활동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중 누구 한 명을 선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왠지 나를 추천하고 싶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면상 내가 나를 추천할 수는 없었다. 그냥 참여도 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비염이 심해 꼭 참석했어야 할 컨퍼런스 폐막식에 못가고 뻗어있었던 날, 그 5명 중 한 명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전 추천을 받은 활동가들을 소개하고, 다시 현장 투표를 통해 다수를 얻은 5명을 뽑는 방식으로 선정했단다. 누가 나를 추천했으며, 누가 내게 표를 줬을까 궁금했다. 나중에 들으니 평소 가장 친했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는 선배 2명이 적극적으로 나를 추천하고, 홍보도 열심히 했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과연 내가 저걸 받아도 될까? 물론 내가 열심히 활동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바쁘게 어렵게 힘들게 활동하지 않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소 야근도 많이 하고, 늘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바쁜 척 돌아다닌 덕분에 표를 많이 받았던 걸까? 소식을 전해들은 이들로 부터 축하 인사를 계속 듣고 있는데, 기뻐야 할 일인데 계속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미 7월 말에서 8월초까지 여름휴가를 다녀왔는데, 휴가비를 받아서 무슨 소용인가? 이사장님은 올해 연말까지 다시 휴가 일정을 정해보라고 하시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바빴지만) 이제 정말 바쁜 하반기 일정을 두고 과연 휴가를 또 쓸 수 있을까 싶다. 지금 드는 생각은 긴 추석 연휴 동안 저 휴가비로 부모님과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한편으론 혼자 훌쩍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고, 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한데, 며칠 전 어머니께서 전화해서 추석 연휴에 우리 셋(부모님과 나) 어디 놀러 갔다 오면 어떠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실상 마음을 정했다.


아이들은 이번 추석에는 애들엄마와 처가에 머물 예정이다. 1년에 돌아오는 명절 둘 중에 설은 우리 집(그러니까 고향집)에서, 추석은 처가에서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지난 주 토요일에 행사가 있었는데, 일이 많아서 전날 금요일부터 밤새 일을 했다. 토요일 아침 같은 사무실을 쓰는 이웃 기업 사람들이 출근했는데, 내 모양새를 보더니 밤을 샜음을 짐작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일을 하냐고 한 마디씩 했다. 특히 한 친구는 "제발 쉬라고 휴가비도 받으셨는데, 이렇게 주말까지 밤새 일을 하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또 곧바로 행사 진행하러 나가시면 어쩌냐?" 라고 말했다. 그러게 "쉬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휴가비를 줄 게 아니라 실제로 일을 줄여줘야 쉴 수 있을거 아닌가? 쉬라고 해놓고 계속 일을 몰아주면 어떻게 쉬란 말인가?


요란했던 여름 휴가


여름 휴가를 다녀온 직후(그러니까 8월 초)부터 휴가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계속 짬을 내기 어려웠다. 가끔 시간이 날 때가 없지 않았지만, 그럴 때는 또 글을 쓰기가 싫었다. 그때 바로 썼다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길게 썼겠지만,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난 시점에서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려니 별로 흥이 나지 않는다. 간단히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보자.


**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 어려워 **


늘 여름휴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올해는 다른 곳에서 이삼일 놀다가 부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어디를 갈지를 두고 계속 고민하다가 삼척으로 정하고 고속버스를 예약한 것이 휴가 떠나기 이삼일쯤 전이었다. 


점심때쯤 아이들을 데리고 강변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배가 고팠다. 애들은 아침을 늦게 먹어 배가 고프지 않다고 음료수를 사달라고 했다. 애들에게 쥬스를 하나씩 사주고, 난 포장마차에서 콩국수를 빨리 먹었다. 국수를 먹는 중에 큰 아이가 자꾸 자기 아이스티가 맛이 이상하다고 못 먹겠다고 투덜거렸다. 내가 먹어보니 맛과 향이 독특했다. 시간이 없었지만, 아이가 하루종일 짜증내는 걸 보기 싫어서, 주문한 아이스티를 그냥 버리는 것이 아까워서 가게로 가서 따졌다. 직원이 자기 매장은 일반적인 아이스티 맛과 다르다고 답했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따지다가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다른 음료수를 다시 주문하고, 그 맛없는 아이스티는 내가 마시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들에게 빨리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재촉하고, 삼척행 버스를 탈 승강장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을 나온 아이들 손을 양손에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승강장을 찾아다녔다. 승강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뒤져도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제 버스 출발 시간이 몇 분 남지도 않았다. 마침 직원이 보이길래 표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여기가 아니라 건너편이라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건너편이라는 게 어디를 말하는 건지, 어떻게 가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직원에게그대로 물었는데, 매우 불친절한 태도로 계속 건너편이라는 답만 반복했다. 나 역시 어떻게 가는 거냐는 질문만 반복했다. 결국 옆에서 보다못한 다른 직원이 2층으로 올라간 후 건너가서 다시 내려가라고 답했다. 시간은 이제 3분 남짓 남아있었다. 미칠 것 같았다! 다시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꼭 쥐고 빠르게 길을 찾기 시작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탔는데, 몇 칸을 걸어오르니 하필 어르신 두 분이 길을 막고 서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머리 끝까지 열이 올랐다. 어르신들은 에스컬레이터가 끝까지 올라간 후에도 느릿느릿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빨리 비켜주면 좋을텐데, 여전히 길을 막고 있었다.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 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어르신들이 완전히 비켜서기까지 몇 초가 몇 시간인 것 처럼 길게 느껴졌다.


길이 열리자마자 애들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통로를 빠른 속도로 뛰었다. 내려가는 계단에서는 애들이 뒤처지길래, 빨리 쫓아 오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혼자 뛰어내려갔다. 막판에 이번에는 할머니 한 분이 손수레에 짐을 잔뜩 실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분이 비켜주기를 기다리면 무조건 차를 놓칠 것 같았다. 빠르게 눈을 돌려 시계를 보니 이미 출발 시간이 살짝 지나있었다.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뛰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할머니가 무거운 수레를 끄느라 낮은 자세로 힘을 쓰고 계신 동안, 뛰어 내려온 탄력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착지한 순간 등과 양쪽 어깨에 맨 무거운 짐들이 휘청거렸지만, 곧바로 균형을 잡고 뛰었다. 전력질주. 저쪽에서 삼척행 고속버스 문이 닫히려는 걸 발견했다. 마침 내가 뛰어오는 걸 본 직원이 닫히고 있는 버스 문을 두들겨 기사님께 차를 세우라고 했다. 딱 우리 세 명 자리가 비어서 잠시 기다리다 포기하고 출발하려던 모양이다.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고, 바코드를 찍는 동안, 아이들도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아까 만났던 직원은 정말 불친절했지만(여유가 있었다면 그 예의없는 태도를 꼬집어줬을 것이다.) 이 직원은 또 엄청 친절했다. 늦어서 죄송하다가고, 숨을 헐떡이며 표를 처리하는 동안, 괜찮다고 천천히 하시라고 말해줬다. 버스에 오르니 일제히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 때문에 거의 5분쯤 출발이 늦어졌을 것이다. 기사님과 승객들에게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 버스를 놓쳤다면 일정이 엄청 꼬였을 것이다. 휴가 첫날 출발부터 땀을 엄청 흘렸다.


삼척에 도착해서도 자주 오지 않는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가 정말 어려웠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다녀야 했고, 버스 도착 시간을 알지 못해 1시간 이상을 땡볕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버스를 잘 못 타서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 택시 잡기, 방 구하기 **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해변에서 아이들은 즐겁게 해수욕을 즐기고, 나는 아이들이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가끔 애들과 물에서 놀다가 나오기도 했다. 이때가 가장 즐겁고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결혼 후엔 휴가 중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늘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뭔가를 챙겨야 했고, 맘 편히 책을 읽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휴가는 쉼이 아니라 가사 노동과 육아의 연장이었다. 비록 한 나절이었지만, 그 해변의 독서가 정말 좋았다.


예약해 둔 레일바이크를 타러가려고 여유있게 짐을 챙겨 해변을 떠났다. 대중교통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라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적절한 곳에서 택시를 기다렸는데,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급하게 콜택시를 검색해서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직원은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도 없고, 콜택시 회사에서도 답이 없이 시간만 계속 흘렀다. 급한 마음에 다른 콜택시 회사를 검색해서 전화했는데, 아까 전화받았던 여직원이 다시 받았다. 번호는 달라도 다 같은 곳이란다. 계속 기다리란다. 


길에서 20분 이상을 보내고, 이제 택시를 타도 시간 맞춰 도착하기 어려울 시점이 되었을 때, 포기할 수 밖에 없겠다 생각이 들었다. 레일바이크를 못 타더라도 이 해변을 벗어나야 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교통 통제하는 분에게 다가갔다. 택시를 잡으려면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아저씨가 콜택시를 부르라고 하길래, 전화했는데, 20분 넘게 답이 없다고 말했다. 그 분은 진작 자기에게 말하지 그랬냐고, 택시를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진짜 5분 후에 택시가 도착했다.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했다. 검색 결과 그 해변에서 레일바이크 승강장까지 30분 정도 걸리는 걸로 나왔는데, 남은 시간은 17분 정도였다. 기사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어쩌면 시간 맞춰 도착할 수 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했다. 본인이 집이 남쪽이라 이 길을 매일 오가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빨리 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정말 엄청난 속도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신호에 걸리면 이런저런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다. 가장 차량이 많은 구간을 지나면서 기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음 놓으라고, 무조건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기사님은 3분 가량 남겨두고 우리를 내려줬다. 뛰어 들어가 개찰구 앞에서 시간을 보니 정확하게 출발시간이었다.


레일바이크 구간은 길었다. 내리막 길이 많아서 그리 힘들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라 바람이 선선했고, 바다를 끼고 달리는 풍경은 멋있었다. 다만 앞에 줄줄이 늘어선 바이크들이 속도를 내지 못해 좀 답답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8시 조금 넘어 도착할 줄 알았는데, 9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일정이 어떻게 될 지 몰라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었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서 숙소를 정할 생각이었으나, 도착이 늦어져 이미 버스가 끊긴 시간이었다.


방을 구하기 위해 펜션을 돌아다녔는데, 계속 빈 방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 번을 돌아서고 나니 작은 아이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말로는 분명 빈 방이 있을거라고 아이를 안심시켰지만, 나 역시 속으로는 이러다 방을 못 구하는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펜션에서 엄청나게 넓은 방을 구했다. 30평짜리 방을 예약한 팀이 갑자기 취소해서 비어있다고 했다. 어차피 주인장은 위약금을 받았으니, 그냥 작은 방 가격에 주기로 했다. 들어가보니, 방이 2개, 화장실이 2개에 거실이 엄청나게 넓었다. 축구해도 되겠다 싶었다.


** 휴대폰 분실 **


삼척에서 지낸 3일은 계속 시간에 쫓겼다. 삼척 마지막 날 부산 가는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가는 길에 큰 아이가 갑자기 발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모기 물린 곳을 긁어서 상처가 났는데, 맨발에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피가 터진 모양이었다. 갑자기 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좀 당황해서 얼른 가방을 열어 휴지와 약과 대일밴드를 꺼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자기 휴대폰을 나에게 건넸다. 큰 아이는 평소에도 그렇고, 이번 여행에도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은 채, 폰을 계속 손에 들고 다녔다. 가방에 넣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에도 폰을 둘 곳이 없으니 나에게 맡겼는데, 나는 아이 발의 피를 닦고 약을 바르느라 건네받은 폰을 공중전화 부스에 올려두고, 신경도 쓰지 못했다. 대일밴드까지 붙이고 아이 손을 잡고 출발하면서 폰을 놔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부산행 버스 표를 끊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짜장면을 먹고 버스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는데, 아이가 폰을 달라고 했다. 아이의 폰을 어디 뒀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급하게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뛰었다. 아까 폰을 놔둔 후로 약 20분 가량 지났는데, 폰은 그 자리에 없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어이없게 잃어버리지 않았을텐데, 여러 이유로 너무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누가 가져갔는지 몰라도 안 받았다. 그 근처를 돌면서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울릴 뿐 받지 않았다. 대여섯번 가량 전화를 걸다가 결국 버스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랐다.


부산으로 가면서 큰 아이는 울었다. 나중에는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나는 계속 아이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폰을 주웠다면 부산집으로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대신 사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폰을 습득한 이는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몇 십번을 걸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걸어도 소용없었다. 결국 절반쯤 갔을 때, 포기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끔 한번씩 전화를 걸긴 했지만, 이젠 기대를 접었다.


** 문 부수기 **


큰 아이는 부산에 온 첫날은 잃어버런 휴대폰 때문에 계속 기분이 안 좋았지만, 다음날 사촌동생들과 만난 후에는 다시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3일을 잘 놀고 서울로 돌아가는 날 큰 거 한 건을 터뜨린다.


전날부터 아이들에게 여러차례 미리 짐을 잘 챙겨놓고 나갈 준비를 다 해놓으라고 말했는데, 두 꼬마 녀석들은 준비도 하나도 안 하고 티비만 보고 있었다. 내가 분주하게 짐을 챙기고 준비하는 동안, 그렇게 티비만 보는 녀석들에게 아버지가 참고 참다가 한 마디 했다. 미리 다 챙겨놓고 티비 보라고. 하지만 티비에 푹 빠진 녀석들에게 그 말이 들릴 리가 없다. 결국 한참 후에 아버지가 화를 내셨고, 나도 한 마디 거들수 밖에 없었다. 


그럼 죄송하다고 한 마디하고 씻고 준비하면 될 것을 한창 사춘기에 돌입한 큰 아이가 화를 내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부산집은 아주 아주 오래된 아파트다. 문틀이 다 내려앉아서 문이 제대로 안 닫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화장실 문이 잘 안 닫히고, 잘 안 열린다. 명절에 우리 식구와 동생네 식구까지 모이면 10명 이상이 그 화장실 하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닫히고 잘 안 열리는 화장실은 치명적이다.


잠시 얘기가 화장실 문으로 샜는데, 암튼 작은 방 문 역시 아귀가 안 맞아서 안 닫힌다. 이 문은 잘 안 닫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닫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큰 아이가 화가 난다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엄청 큰 소리가 났고. 문이 닫혔다. 나는 짐을 싸다가 큰 소리에 화가 나서 달려가 당장 문을 열라고 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큰 아이는 문 안 잠갔다고 소리를 높여 대들었다. 나는 문이 안 열리니 빨리 열라고 했고, 안에 같이 들어가있던 작은 아이가 손잡이를 돌려보더니 안 열린다고 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인 끝에 안에서도 밖에서도 안 열리는 상태, 즉 문 손잡이가 완전 망가져서 고장난 상태임을 깨달았다. 


점점 기차 타러 출발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준비를 거의 안 한 아이 둘이 방 안에 갇혀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게다가 큰 아이의 반항 때문에 아버지와 나는 화가 날대로 난 상태였다. 즉, 차분하게 다른 생각을 할 상태가 아니었다.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가며 신경질적으로 문 손잡이를 돌려 보다가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나에게 문을 부수라고 말했다. 나는 어깨로 문을 들이 받기 시작했다. 두꺼운 나무문은 여러차례 들이받고 나서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깨로 치고, 발로 차고, 손바닥으로 내려 치는 등 십여차례 온 힘을 다한 결과 문의 위쪽 부분이 조금 갈라져서 방 안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잠금쇠가 잠긴 손잡이 부분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장도리를 가져오셨다. 나는 망치 부분으로 손잡이를 내려치고, 뾰족한 부분으로는 손잡이 이음새에 걸고 당기며 손잡이를 해체하려고 힘을 썼다. 저 손잡이만 어떻게 뽑아내면 문이 열릴것 같았다. 몇 분 후 손잡이를 부셔서 뽑아냈다. 하지만 문은 여전히 단단히 잠겨 있었다. 


손잡이를 뽑은 자리에 동그랗게 구멍이 나서 안에 갇힌 아이들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그렇게 문 손잡이가 뽑히고, 구멍으로 밖이 보이는 모습이 우스웠나 보다. 까르르 웃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안 그래도 화가 난 상태에서 간신히 화를 참고 계셨는데, 아이들이 웃으니 버럭 화를 내셨다.


결국 다시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두꺼운 나무 문을 절반 이상 쪼개어 뜯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문을 열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손을 조금 다쳤다.) 아이들에게 빨리 준비하라고 시키고, 절반 가량 뜯겨나가서 마치 폐가에 와있는 듯한 문짝을 우울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나와 아이들은 이제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가지만, 남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 문을 계속 보고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실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문틀에 박혀있는 나사못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나사못을 따 뽑아서 문짝을 떼어내고 지내는 게 낫겠다 싶었다. 시간이 좀 있었으면 내가 떼어냈을텐데, 이젠 빨리 준비해 출발해야 했다.


큰 아이는 그 난리가 났는데도 그닥 뉘우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부산역에서 한바탕 야단치고, 혼자 반성하고 있으라고 내버려두고 작은 아이를 데리고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 갔다.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 한참 혼자 있던 아이는 막판에 내게 와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아이에게 할아버지께 사과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아이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사과를 해야했다.


서울로 돌아오고 하루쯤 지나서 어머니께서 연락하셔서 그때 문을 부수지 말고, 119에 신고했어야 했다고, 왜 아무도 그 생각을 못 했냐고 말씀하셨다. 사실 몰랐다. 살면서 단 한번도 119를 불러 본 적이 없으니, 아예 생각나지 않았다. 게다가 불이 난 것도 아닌데 불러도 되는줄 몰랐다.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읽고 싶은 책 읽기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책보다, 일과 관련한 책들 그러니까 읽어야 하는 책들 중심으로만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만큼의 여유는 없었으니까. 최근에는 읽어야 하는 책들을 안 읽고 일부러 읽고 싶은 책들,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지난 몇 달간 정유정의 책들을 찾아 읽고, 요 네스뵈와 스티븐 킹 등도 읽었다. 문제는 신작이나 안 읽었던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내가 왜 이 작가를 선택했는지 깨닫기 위해 이미 읽고 좋았던 책들을 먼저 다시 읽어야 다른 작품에 손이 갔다. 그래서 정유정은 가장 먼저 읽었고, 가장 좋았던 [28]을 세 번이나 읽고 나서야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을 읽을 수 있었고, 요 네스뵈 역시 가장 먼저 읽었던 [아들]을 다시 읽고 나서 [스노우 맨]과 [레드 브레스트]를 읽었다. [제노사이드]를 읽고 꼭 다른 작품들도 읽어야지 맘 먹었던 다카노 가즈아키도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13계단]이나 [KN의 비극]을 시작하려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제노사이드]를 다시 읽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시작해야 할텐데, 역시 먼저 썼던 [13계단]부터 손을 댈지, 아니면 나중에 쓴 [KN의 비극]을 먼저 읽을지 고민이다.


그 중간에 아마 8월 중후반쯤 아이들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레미제라블1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슬슬 시도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쭉 살펴보니 3권을 제외하고 다 있었다. 왜 3권만 없을까 궁금했지만 일단 나머지 4개의 책을 사고,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도 샀다. 레미제라블은 3권까지 다 구해놓고 읽으려고 아직 시작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다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더니 여전히 3권은 없었다. 이번에도 3권을 제외한 나머지 1,2,4,5권은 다 있었다. 왜 계속 3권만 없을까? 그것만 특별히 재밌어서 다들 안 파는 건가? 그것만 특별히 적게 찍어서 유통량이 적은가? 그것만 특별히 불량이 많아서 중고 판매가 잘 안 이뤄지나?


암튼 급할 건 없다. 일단 다카노 가즈아키의 책 2권을 먼저 읽을 생각이니까. 그동안 레미제라블 3권을 구해봐야지. 중고로 못 구하면 새 책으로 구하지 뭐.















최근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분에게 에너지 강의를 들어볼 일이 있었다. 늘 탈핵 진영 선수들의 강의만 듣다가 처음으로 정부쪽 선수의 강의를 들은 건데,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다. 들으면서 계속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라면 이렇게 접근했을텐데, 나라면 이렇게 설명했을텐데, 저 사람은 저렇게 얘기하는 구나. 신기하다! 이러면서 푹 빠져들어서 들었다.


하나 부러운 것은 이분 과학쪽 기초 지식을 잘 알고 계셔서 물리학과 화학 관련 내용이 나왔을 때 막힘없이, 비교적 쉽게 설명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분야이고, 매우 취약한 분야이다. 그래도 환경운동하면서 생물학 쪽은 조금 배웠는데, 물리와 화학 쪽은 정말 모른다. 그나마 에너지 영역에서 일하면서 조금 아는 분야가 지구과학이었다. 암튼 뒤늦게 과학 공부를 새로 하려니 힘들다. 조금씩 천천히 배워가다 보면 재미를 붙일 수 있으려나? 암튼 [지구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일과 관련해서 특히 원고 작업과 강의 등을 할 때 기초 소양을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책인 듯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대로 이행하지 않고 한 발 뒤로 후퇴한, 신고리5,6호기 공론화 문제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안 그래도 바쁜데, 이것 때문에 진짜 두배, 세배는 더 바쁘게 됐다. 상황이 정말 어렵다!


짧게 간단하게 쓰려던 글이 엄청 길어졌다. 이 바쁜 와중에 몇 시간을 쏟아부은 건지. 아휴! 이제 다시 정신차리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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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9-15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서재가 있었군요.
막연하게 관심 갖던 주제인데 님의 서재에 좋은 책과 정보가 많아서 친구신청하고 갑니다.

감은빛 2017-09-26 00: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인연을 맺어 무척 반갑습니다!

cyrus 2017-09-15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스펙터클한 부산 여행이었군요. 출발하기 전에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여행 일정을 짜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면 여행이 완전 꼬여 버립니다. 단체 여행이 늘 이런 식이죠.. ㅎㅎㅎ

감은빛 2017-09-26 00:41   좋아요 0 | URL
저는 정말 아무 계획도 없으 그냥 출발하는 여행을 좋아해요.
젊은 시절에는 자주 그랬죠.
요즘도 가끔 그냥 기분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미리 숙소 예약하고, 어디갈지 다 정해놓고
이런 건 여행인 것 같지 않아서 별로 안 좋아해요. ㅎㅎ
 

인터뷰


조합 활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강의 요청과 언론 인터뷰 요청이 많아졌다. 초기에는 인터넷 블로그 기자(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에너지 단체 등) 수준에서 연락이 많이 왔고, RPS 정책 비판 및 FIT 재도입 요구 기자회견 이후로는 에너지 관련 언론에서도 가끔 연락이 왔다. 그러다 몇몇 케이블 방송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블로그 뉴스 수준과 달리 방송 인터뷰는 처음에 좀 떨리던데, 특히 특정 멘트를 실수 없이 차분하게 카메라 앞에서 읽는거 생각보다 어렵더라. 읽는게 아니라 내가 말을 해야 하는건데, 그러려니 자꾸 특정 단어에서 실수하는 일이 많더라.


처음 응했던 방송은 담당 피디가 카메라 하나 메고 와서는 빠르게 원하는 장면만 찍고 갔다. 나중에 실제 방송 영상을 보내줬는데, 무척 짧게 나왔고, 딱 찍은 만큼 활용을 잘 했더라. 두번째 응했던 방송은 담당피디, 카메라 기자, 보조 기자, 조명 기사까지 네명이 왔다. 조명 세팅하는데만 거의 삼사십분 걸렸다. 의외로 촬영은 그 절반도 안 걸려 끝났다. 카메라를 무척 가까이 들이대기도 했고, 이러저래 요구사항이 많았다. 이때 처음 알았다. 말을 할 때 내가 얼마나 산만하게 행동하는지를. 나는 계속 손을 움직였고, 가끔 얼굴이나 몸을 조금씩 움직였는데, 그럴때마다 카메라 기자님이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달라고 하셔서, 그 다음부터는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암튼 제일 고생하면서 찍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방송이 나간 건지, 어떤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한참 후에 생각나서 물어보니, 영상이 완성되면 보내주겠다고 해놓고는 그 후로도 소식이 없다. 아마도 방송 자체가 취소된 경우일 듯.


이후 방송 인터뷰가 두 건 더 있었다. 하나는 케이비에스의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담당 피디의 연락을 받고, 바쁜 시기였음에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왠만한 요구사항은 다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통으로 빼서 취재에 응했다. 이사 중 한 분께 부탁드려 댁에서 미니태양광을 설치한 모습도 촬영하고, 인터뷰도 따로 했다. 나는 우리 조합 발전소 앞에서 더운 날씨에 땡볕에서 한참을 요구대로 움직였다. 이렇게 걸으라고 하면 걷고, 저렇게 움직이라면 움직이고, 웃으라면 웃고, 대화하는 척 하라고 하면 대화했다. 그리고 막판에는 억지로 조합원들 불러모아서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찍었다. 이후로 상임이사님 인터뷰도 또 찍었다.


그리고 3주쯤 후였던가 방송하는 날, 나는 집에 티비도 없거니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방송을 보지 못하고, 같이 일하는 활동가에게 방송 어떻게 나왔는지 물었더니, 아주 짧게 상임이사님 인터뷰 나오고, 발전소 드론 촬영장면만 나왔다고 했다. 앞서 이사님 집에서 서너시간 촬영했던 장면이나, 발전소 앞에서 두어시간 내가 촬영했던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안 실렸다. 담당 피디가 방송 디비디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했을 때, 무척 미안해하며 분량이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며칠 후 디비디를 받았는데, 컴퓨터와 노트북 모두 디비디 롬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다. 친한 후배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가 동영상 파일을 구해줘서 그제서야 방송을 봤다.


조합원 모임 장면 아주 짧게 살짝 나가고, 상임이사님 인터뷰 나가고, 드론으로 찍은 발전소 영상 나가고 끝이더라. 배신감이 느껴졌다. 사실 찍을 때부터 내 인터뷰는 안나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나는 방송에 안 나와도 (아주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니태양광 설치한 조합원 가정에서 찍고 싶다는 담당 피디의 요청에 바쁘신 이사님 일정을 간신히 맞춰 섭외해서 서너시간이나 촬영했는데, 그걸 단 한 장면도 안 쓰다니! 이건 너무 예의가 없는 거 아닌가? 그 이사님도 바쁜 시간 쪼개셨지만, 가족들도 불편을 겪었다. 손자가 아직 어린 아기인데, 방송 촬영 때문에 집이 시끄러우면 아기가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촬영팀이 오기 전에 며느리가 아기를 데리고 피해있었다. 그 더운 날씨에 편안한 집 놔두고 어린 아기 데리고 고생했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 내가 피디였다면 억지로라도 한 장면이라도 넣었을 것 같다.


한가지 신기한 일은 녹색당 당원 한 사람이 그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축하한다고 전하더라. 내 목소리가 나왔던가? 동영상을 여러차례 돌려봐도 나는 안 들리던데. 내 모습은 회의하는 장면을 위에서 찍은 장면 빠르게 지나갈 때, 윗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방송으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못 알아봤겠지만, 나는 동영상을 멈춰놓고 당시 참석한 사람들 하나하나 다 알아봤다. 근데 내 목소리는 아무리 반복해봐도 안 들리던데. 혹 내가 본 동영상과 방송 영상이 또 달랐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케이블 방송이었는데, 인터뷰 와서는 아무것도 안 찍고, 내용 취재만 해갔다. 대신 조합에서 제공한 홍보용 사진들을 엮어서 방송 영상을 만들었다. 우리가 제공한 사진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내용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여기 제공한 십여장의 사진 중 절반 이상에 내 모습이 들어가있다. 초기부터 열심히 참여하는 조합원이었고, 중간에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나온 방송 영상이 되었다.


방송 영상이나 신문(잡지) 지면에 내가 나오고 안 나오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용을 잘 전달하는가이다. 그런 지점에서 보면 대부분 아쉬움이 있다. 적은 지면과 짧은 분량 때문에 어쩔수 없을거라고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는 주간지 기자가 인터뷰를 왔다. 전화통화로는 짧은 내용 취재 정도로 이해했고, 아무 준비도 없이 일하다가 기자를 만났는데, 곧 사진기자가 와서 사진을 찍을거라고 했다. 헉!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면도도 못하고 나왔는데, 옷도 구겨진 셔츠 차림인데. 미리 얘기해줬으면 정장을 갖춰입진 못하더라도 예쁜 자켓이라도 걸치고 나왔을텐데.


이 기자는 일단 취재하는 자세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고 해서 관련이 있을만한 자료는 미리 메일로 보내줬고, 질문에 답할 때에도 되도록 알아듣기 쉽게 배경부터 설명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아직 결론을 말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충분히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십수차례 이런저런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완전히 페이스에 말려 충분히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중간에 사진 기자가 도착했고, 그는 분주하게 우리가 대화하는 장면을 찍더라. 간혹 부담스럽게 가까운 거리에 렌즈를 들이밀고 찍을 때마다, 아침에 면도를 안 하고 나온 걸 후회했다.


인터뷰 후 같이 발전소를 찍으러 갔다. 자연스럽게 몇 컷 찍고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표지용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몇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팔짱 끼고 똥폼 잡는 포즈부터, 급기야 양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선 포즈까지. 이때 입고 있는 셔츠가 짧아서 배꼽이 보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카메라는 밑에서 올려찍고 있었다. 근데 잠깐! 표지용 사진이라고? 그럼 내 사진을 주간지 표지에 쓴다고? 아니 아무리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주간지라고 해도 표지라니!


사진 기자님은 자꾸 웃으라고 하는데,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고 웃는 일이 정말 쉽지 않더라. 자꾸만 표정은 굳어지고, 해는 뜨겁고, 땀은 등줄기를 줄줄 타고 흐르고, 몸은 힘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래놓고 정작 표지로 쓸 리는 없을거라고. 지금까지 십수차례 겪어봤듯이 이번에도 안 쓸거라고. 마지막에 기자도 그렇게 말했다. 만약을 위해서 찍는 거라고. 실제로 안 쓸지도 모른다고 했다. 억지로 시간빼서 고생해가며 찍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제발 표지 사진으로는 안 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냥 본문에 작게 들어가는 참고용 사진으로만 쓰시길.


초기 몇 차례 인터넷 블로그 기자들의 기사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글 자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간에 팩트와 다른 내용들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분명 나는 저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기자가 잘 못 이해하고 그대로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참, 이 활동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재작년 여름에는 시청에서 주최하는 '쿨비즈 패션쇼' 모델로 워킹을 했고, 이번에는 무슨 광고 찍는 모델처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 해봤다. 


몇 년전 지방의회 후보로 선거에 나갔던 후배를 옆에서 지켜보니, 사진 찍는 일이 진짜 힘들더라. 카메라 앞에서 웃는 일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처음 알았다. 웃는 것마저 이렇게 힘들다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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