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합 활동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강의 요청과 언론 인터뷰 요청이 많아졌다. 초기에는 인터넷 블로그 기자(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에너지 단체 등) 수준에서 연락이 많이 왔고, RPS 정책 비판 및 FIT 재도입 요구 기자회견 이후로는 에너지 관련 언론에서도 가끔 연락이 왔다. 그러다 몇몇 케이블 방송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블로그 뉴스 수준과 달리 방송 인터뷰는 처음에 좀 떨리던데, 특히 특정 멘트를 실수 없이 차분하게 카메라 앞에서 읽는거 생각보다 어렵더라. 읽는게 아니라 내가 말을 해야 하는건데, 그러려니 자꾸 특정 단어에서 실수하는 일이 많더라.


처음 응했던 방송은 담당 피디가 카메라 하나 메고 와서는 빠르게 원하는 장면만 찍고 갔다. 나중에 실제 방송 영상을 보내줬는데, 무척 짧게 나왔고, 딱 찍은 만큼 활용을 잘 했더라. 두번째 응했던 방송은 담당피디, 카메라 기자, 보조 기자, 조명 기사까지 네명이 왔다. 조명 세팅하는데만 거의 삼사십분 걸렸다. 의외로 촬영은 그 절반도 안 걸려 끝났다. 카메라를 무척 가까이 들이대기도 했고, 이러저래 요구사항이 많았다. 이때 처음 알았다. 말을 할 때 내가 얼마나 산만하게 행동하는지를. 나는 계속 손을 움직였고, 가끔 얼굴이나 몸을 조금씩 움직였는데, 그럴때마다 카메라 기자님이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달라고 하셔서, 그 다음부터는 몸이 경직되어 버렸다.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의식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암튼 제일 고생하면서 찍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방송이 나간 건지, 어떤지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한참 후에 생각나서 물어보니, 영상이 완성되면 보내주겠다고 해놓고는 그 후로도 소식이 없다. 아마도 방송 자체가 취소된 경우일 듯.


이후 방송 인터뷰가 두 건 더 있었다. 하나는 케이비에스의 유명한 프로그램이었다. 담당 피디의 연락을 받고, 바쁜 시기였음에도 억지로 시간을 내서 왠만한 요구사항은 다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를 통으로 빼서 취재에 응했다. 이사 중 한 분께 부탁드려 댁에서 미니태양광을 설치한 모습도 촬영하고, 인터뷰도 따로 했다. 나는 우리 조합 발전소 앞에서 더운 날씨에 땡볕에서 한참을 요구대로 움직였다. 이렇게 걸으라고 하면 걷고, 저렇게 움직이라면 움직이고, 웃으라면 웃고, 대화하는 척 하라고 하면 대화했다. 그리고 막판에는 억지로 조합원들 불러모아서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해서 찍었다. 이후로 상임이사님 인터뷰도 또 찍었다.


그리고 3주쯤 후였던가 방송하는 날, 나는 집에 티비도 없거니와 다른 일정이 있어서 방송을 보지 못하고, 같이 일하는 활동가에게 방송 어떻게 나왔는지 물었더니, 아주 짧게 상임이사님 인터뷰 나오고, 발전소 드론 촬영장면만 나왔다고 했다. 앞서 이사님 집에서 서너시간 촬영했던 장면이나, 발전소 앞에서 두어시간 내가 촬영했던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안 실렸다. 담당 피디가 방송 디비디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했을 때, 무척 미안해하며 분량이 너무 적어서 죄송하다고 했다. 며칠 후 디비디를 받았는데, 컴퓨터와 노트북 모두 디비디 롬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다. 친한 후배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가 동영상 파일을 구해줘서 그제서야 방송을 봤다.


조합원 모임 장면 아주 짧게 살짝 나가고, 상임이사님 인터뷰 나가고, 드론으로 찍은 발전소 영상 나가고 끝이더라. 배신감이 느껴졌다. 사실 찍을 때부터 내 인터뷰는 안나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나는 방송에 안 나와도 (아주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니태양광 설치한 조합원 가정에서 찍고 싶다는 담당 피디의 요청에 바쁘신 이사님 일정을 간신히 맞춰 섭외해서 서너시간이나 촬영했는데, 그걸 단 한 장면도 안 쓰다니! 이건 너무 예의가 없는 거 아닌가? 그 이사님도 바쁜 시간 쪼개셨지만, 가족들도 불편을 겪었다. 손자가 아직 어린 아기인데, 방송 촬영 때문에 집이 시끄러우면 아기가 잠을 못 잘 것 같다고 촬영팀이 오기 전에 며느리가 아기를 데리고 피해있었다. 그 더운 날씨에 편안한 집 놔두고 어린 아기 데리고 고생했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다. 내가 피디였다면 억지로라도 한 장면이라도 넣었을 것 같다.


한가지 신기한 일은 녹색당 당원 한 사람이 그 방송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다고 축하한다고 전하더라. 내 목소리가 나왔던가? 동영상을 여러차례 돌려봐도 나는 안 들리던데. 내 모습은 회의하는 장면을 위에서 찍은 장면 빠르게 지나갈 때, 윗모습으로 스쳐 지나갔다. 방송으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못 알아봤겠지만, 나는 동영상을 멈춰놓고 당시 참석한 사람들 하나하나 다 알아봤다. 근데 내 목소리는 아무리 반복해봐도 안 들리던데. 혹 내가 본 동영상과 방송 영상이 또 달랐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다음은 케이블 방송이었는데, 인터뷰 와서는 아무것도 안 찍고, 내용 취재만 해갔다. 대신 조합에서 제공한 홍보용 사진들을 엮어서 방송 영상을 만들었다. 우리가 제공한 사진이고, 우리가 하고 싶은 내용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여기 제공한 십여장의 사진 중 절반 이상에 내 모습이 들어가있다. 초기부터 열심히 참여하는 조합원이었고, 중간에 활동가로 일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내 모습이 가장 많이 나온 방송 영상이 되었다.


방송 영상이나 신문(잡지) 지면에 내가 나오고 안 나오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내용을 잘 전달하는가이다. 그런 지점에서 보면 대부분 아쉬움이 있다. 적은 지면과 짧은 분량 때문에 어쩔수 없을거라고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는 주간지 기자가 인터뷰를 왔다. 전화통화로는 짧은 내용 취재 정도로 이해했고, 아무 준비도 없이 일하다가 기자를 만났는데, 곧 사진기자가 와서 사진을 찍을거라고 했다. 헉!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면도도 못하고 나왔는데, 옷도 구겨진 셔츠 차림인데. 미리 얘기해줬으면 정장을 갖춰입진 못하더라도 예쁜 자켓이라도 걸치고 나왔을텐데.


이 기자는 일단 취재하는 자세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고 해서 관련이 있을만한 자료는 미리 메일로 보내줬고, 질문에 답할 때에도 되도록 알아듣기 쉽게 배경부터 설명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아직 결론을 말하기도 전에 말을 끊고 다른 질문을 던진다. 자기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충분히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십수차례 이런저런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완전히 페이스에 말려 충분히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 중간에 사진 기자가 도착했고, 그는 분주하게 우리가 대화하는 장면을 찍더라. 간혹 부담스럽게 가까운 거리에 렌즈를 들이밀고 찍을 때마다, 아침에 면도를 안 하고 나온 걸 후회했다.


인터뷰 후 같이 발전소를 찍으러 갔다. 자연스럽게 몇 컷 찍고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표지용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몇 가지 포즈를 요구했다. 팔짱 끼고 똥폼 잡는 포즈부터, 급기야 양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선 포즈까지. 이때 입고 있는 셔츠가 짧아서 배꼽이 보일까봐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카메라는 밑에서 올려찍고 있었다. 근데 잠깐! 표지용 사진이라고? 그럼 내 사진을 주간지 표지에 쓴다고? 아니 아무리 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주간지라고 해도 표지라니!


사진 기자님은 자꾸 웃으라고 하는데,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고 웃는 일이 정말 쉽지 않더라. 자꾸만 표정은 굳어지고, 해는 뜨겁고, 땀은 등줄기를 줄줄 타고 흐르고, 몸은 힘들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래놓고 정작 표지로 쓸 리는 없을거라고. 지금까지 십수차례 겪어봤듯이 이번에도 안 쓸거라고. 마지막에 기자도 그렇게 말했다. 만약을 위해서 찍는 거라고. 실제로 안 쓸지도 모른다고 했다. 억지로 시간빼서 고생해가며 찍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제발 표지 사진으로는 안 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냥 본문에 작게 들어가는 참고용 사진으로만 쓰시길.


초기 몇 차례 인터넷 블로그 기자들의 기사에서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글 자체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간에 팩트와 다른 내용들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분명 나는 저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기자가 잘 못 이해하고 그대로 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참, 이 활동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재작년 여름에는 시청에서 주최하는 '쿨비즈 패션쇼' 모델로 워킹을 했고, 이번에는 무슨 광고 찍는 모델처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 못 해봤다. 


몇 년전 지방의회 후보로 선거에 나갔던 후배를 옆에서 지켜보니, 사진 찍는 일이 진짜 힘들더라. 카메라 앞에서 웃는 일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처음 알았다. 웃는 것마저 이렇게 힘들다니!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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