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잘 못 만나 이 무슨 고생!


최근 3주간 단 하루도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했다. 물론 주중에 반차를 내는 등 잠시 쉬는 날이 있긴 했지만, 하루를 온종일 쉬어 본 적은 없다. 물론 그 전에도 늘 바쁜 일정에 파묻혀 살았지만, 이번엔 진짜 대박이다! 살면서 이렇게 여러 일들이 몰려 든 적이 별로 없었다.


하루나 이틀쯤 밤새 일해도 그닥 피로를 못느끼는 편이었다. 이 서재에만 해도 그런 글을 여러번 쓴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진짜 죽을 것처럼 힘들다! 2주전부터는 뒷목이 뭉쳐서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아팠고, 어깨가 아파서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했다.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탈핵 운동 활동가들이 다들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보니 나처럼 뒷목, 승모근,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활동가들이 여럿 있었다.


나를 비롯해 이 땅의 에너지 활동가들이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이유는 대통령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탈핵 선언과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선 공론화 선언 때문이다. 유독 환경에 대한 측면에서 공약을 지키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것 처럼 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건 노무현과 똑같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줄 알았더니 최근 몇몇 환경 활동가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럴까? 아래 사례를 보면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까?


1. 신고리4호기, 신울진1,2호기


 현재 약 90% 가량 공사를 진행한 이 세 핵발전소에 대한 애초 공약은 중단 후 국민들의 의견에 따라 거취를 결정한다 였다. 하지만 현재 이 세 발전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냥 짓고 있고, 이대로 가면 현 대통령 임기 내에 발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신형 핵발전소는 구형보다 수명이 두 배나 길어 60년이나 돌아간다. 이 세 기가 지어져 발전을 시작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행한다면, 나는 죽기전에 탈핵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들도 평생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야 한다.


아니 탈핵을 선언한 대통령의 임기 내에 핵발전소가 3개나 늘어나고(만약 신고리5,6호기를 포함하면 5개) 탈핵 시점이 60년이나 더 늘어나면 그게 무슨 탈핵 선언인가? 이 무슨 장난인가? 탈핵을 하긴 할건데 너네 죽은 후에 할거야! 뭐 이런 건가?


2. 신고리5,6호기


 애초 공약은 전면 백지화였다. 저 위의 세 개는 공사가 많이 진행되어, 국민들의 의견을 묻겠다고 했지만, 이 두 개의 핵발전소는 아직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겨우 10% 가량 되었기에 무조건 취소하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공론화를 하겠다고 했다. 백번 양보해서 공론화를 하겠다는 뜻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갑자기 터트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아직 내각도 다 갖추지 못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조차 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마피아가 학계와 정계와 재계를 다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론화를 하겠다고? 차라리 그냥 탈핵 안 하고 계속 핵발전소 짓겠다고 하지 그랬나? 이렇게 불공정한 판에서 무슨 토론을 하라고?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슨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나?


원자력문화재단에서는 작년 1해 동안 집행했던 광고비의 약 80%를 올해 3달 동안 썼다고 한다. 이들이 광고를 한 방송과 언론은 딱 그만큼 열심히 핵발전을 옹호하는 거짓으로 가득찬 엉터리 방송과 기사를 내보냈다. 반대로 과학적 사실에 입각해 정확한 내용을 담은 방송과 기사는 거의 없었다.


거리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언성을 높이며 삿대질하거나, 욕하면서 떠드는 내용 대부분이 저 엉터리 기사들이다. 


- 전기요금 폭탄? 

현대경제연구원의 발표로 거짓임이 금방 드러났다. 


- 전기가 부족하다고? 촛불켜고 살 거냐고? 

올해 가장 더운 날을 기준으로 해도 전기는 30% 이상 남았다. 나머지 대부분은 60% 이상 전기가 남아돈다. 근거는 전력거래소 홈페이지 가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 핵발전이 세계적 대세라고? 1996년 전세계 핵발전 비중은 17.6%로 최고치를 찍었으며 이후 20년째 내리막길이다.

2015년 기준 전세계 발전량 비중은 10.7%로 재생에너지보다 훨씬 적다.

세계적인 핵발전 기업인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한 것도 바로 

핵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증거다.


600조 수출 시장이라고?

600조라는 금액이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진짜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전세계 짓고 있는 핵발전소 갯수에 건설비를 곱한 값이었다.

그럼 현실은 2009년 아랍 에미리트 수출 단 한 건 계약 이후로 전혀 없다.

게다가 그 아랍 에미리트 건은 엄청난 이면 계약으로 아무런 득이 없는 형편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핵발전 기술은 대부분 미국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다.

현재 핵발전소를 짓는 나라는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몇 개 되지 않는데,

대부분 우리보다 기술이 더 뛰어난 나라 뿐이다.

600조는 커녕 이면 계약 없이는 단 돈 1원도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시장은 없다.


- 후쿠시마에 사람이 살아도 된다고?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가 방송에서 그랬다지?

그럼 당신이 가서 단 하루라도 살아보고 돌아와서 말해보지 그랬나?

후쿠시마 현청 홈페이지를 보면 서울시 면적의 3/5이 고농도 오염지역으로 나와있고,

7만9천4백4십6명이 현재 피난중이라고 나와있다.

최근 의대 교수인 김익중 선생님 강연을 들으니,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갑상선 암, 유방암, 백혈병, 심근경색, 

각종 유전진환과 중추신경계질환 등이 200% ~ 300% 이상씩 늘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떠드는 말이 아니라 모두 근거 자료가 있는 얘기다.


그 뿐인가 일본 통계청 인구 통계를 보면 후쿠시마 사고 이후 4년 동안 1백만 명 이상의 인구가 줄었다. 


3. 한빛4,5호기


전남 영광에 있는 한빛4호기 격납건물의 철판이 부식되고, 콘크리트에 수백개의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지만, JTBC와 연합뉴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보도한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후 한빛4호기 증기발생기 안에 이물질(망치)가 발견되었을 때도 보도하는 곳이 없었다. 망치가 움직이다가 관 하나만 잘못 건드렸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 뿐인가 이번에는 한빛5호기 핵폐기물 격납건물에 큰 구멍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또 뒤늦게 알려졌다. 핵폐기물은 수백가지 방사능을 내뿜는다. 그래서 격리보관해야 한다. 꺼지지 않는 불덩이이기 때문에 물이나 공기를 이용해 계속 식혀줘야 한다. 생명체에 치명적인 물질 중 하나는 반감기가 무려 10만년 이상이다. 반감기가 10만년이니 완전히 없어지려면 20만년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 10만년 동안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 인류에게 없다! 

핀란드의 온칼로는 단지 가능성이 조금, 아주 조금 있다고 여겨질 뿐, 실제로 가능한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으로 부터 10만년 전은 구석기 시대였다.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제 감이 오시나?

4.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 케이블카는 이전 정권에서 부결된 사업이었다. 당시에도 아주 치열하게 싸웠고, 어렵게 얻은 승리였음에도 언제라도 이를 뒤집어 다시 시도할 지 모른다는 불안이 늘 뒤따랐다. 왜냐하면 그 사업으로 인한 금전적 이득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들이 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정권 바뀌자마자 곧바로 손바닥을 뒤집을 줄은 미처 몰랐다. 노무현은 후보 시절 공약으로 걸었던 금정산과 천성산을 지키지 못하고 파괴했다. 그 뒤를 이어 문재인은 과연 설악산을 파괴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5. 4대강 복원 미루기

촛불 시민의 염원을 이어받아 적폐 청산을 하겠다는 정권에서 왜 아직 4대강 얘기가 없는 걸까? 적폐중의 적폐인 이명박은 왜 아직 건드리지 못하나? 아마 아직 준비중이라는 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면 왜 신중하게 준비했어야 할 탈핵은 그렇게 툭 던져두고, 이미 두 정권을 거치며 많은 자료가 나와있어서 추진만 하면 될 4대강 복원은 미루고 있는지 다시 물어봐야겠다. 뭐라고 답할 건가? 정답을 알려주겠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수 년째 썩은 강을 보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안다면 이렇게 미루고 있을 일이 아니다. 


모기 32마리

애초에 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죽을 것처럼 몸이 힘들다고 하소연만 할 생각이었는데, 쓰다보니 너무 나갔다. 결국 퇴근도 못하고 12시를 넘겨 사무실에 앉아 있다니! 저녁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올 때는 11시쯤엔 퇴근할 생각이었는데, 이 글 쓰는데 시간을 제법 썼다.

지난 주엔 아이들 보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야근을 했다. 아침 출근길엔 지하철 역에서 탈핵 캠페인을 진행하고, 퇴근 시간에는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에서 탈핵 서명을 받았다. 주말에는 녹색당 정당연설회를 열어 탈핵 서명을 받았다. 2주 연속 정당연설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속 떠들었더니 목이 금방 가버렸다. 

신고리5,6호기 관련 글도 써야했고, 이런저런 회의와 토론회와 워크숍에 불려다녔다. 그 와중에 행정업무는 잔뜩 쌓여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컨퍼런스 보고서 책임편집을 맡아 수십편의 보고서 교정교열도 봐야 했다.

지난 주 목요일 탈핵 강연을 마치고, 저녁 10시쯤 사무실로 돌아왔다. 밀린 일을 잔뜩 하리라 맘 먹고, 밤새 일할 작정이었다. 늘 그렇듯 의지와 달리 일은 진도가 더뎠고, 자꾸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 원인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모기였다. 헐! 여름에도 이렇게 많지 않았던 모기가 왜 이렇게 많은거지? 그날 야근하면서 눈 앞을 어른거리는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일하다보면 발가락 끝이나 등이 자꾸만 가려워 모기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화장지 한 칸을 떼어 잡은 모기 시체를 쌓았는데, 시체가 자꾸만 늘어나길래 한번 세봤더니 7마리였다. 그때부터 메모장을 열어 내가 잡은 모기를 세기 시작했다. 밤새 일하는 동안 과연 몇 마리나 잡을까 궁금했다.

아침에 해가 뜰 때 메모장에 적힌 숫자는 32마리였다. 엄청난 숫자였다. 그 순간에도 내가 잡지 못한 모기들이 사무실 안을 날고 있었다.

















지난 주 어느 저녁 탈핵 서명을 받은 후 집으로 가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아직 구하지 못한 레미제라블 3권을 찾았는데, 역시 없었다. 1,2,4,5권은 다 있는데, 왜 3권만 없을까?


이 책장 저 책장 돌아보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책을 골랐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였다. 물론 사온 당일 잠시 살펴본 후로 아직 시작하지는 못했다. 주말에 읽고 싶었지만, 계속 밖에 있느라 시간이 없었다. 


신고리5,6호기 공론화 절차가 끝나야 짬이 날 것이다. 아니 그땐 또 그때대로 엄청난 일이 몰려들겠지 적어도 지금보다 마음은 더 가볍겠지. 어떤 결론이 날지 궁금하다. 만약 계속 짓겠다고 결론이 난다면 예전 고속철도나 새만금 싸움처럼 정부와 핵마피아 세력에 대한 전면전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다행히 중단하기로 결정이 나면, 이제부터 신고리4호기와 신울진1,2호기 싸움을 시작해야겠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난다. 이렇게 고생하고도 살아있는 동안 탈핵을 보지 못하면 진짜 억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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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7-09-26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핵과 관련해 교수놈, 학자놈들이 돈과 밥그릇 때문에 엄연한 과학적 사실, 객관적 통계 등등을 가리고 왜곡하고 조작하다니 분노가 치밉니다. 왜 헬조선 이 땅의 인간들은 그렇게 양심적이지 못할까요? 문재인 또한 노무현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아니라 확신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요? 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불가능한 정권 교체를 울 국민들이 해줬는데, 정권 교체 4~5개월째 접어드는 지금까지 정권의 틀조차 잡지 못하고 지리멸렬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정말 개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죽음의 핵발전소 건설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은빛 2017-09-30 12:53   좋아요 0 | URL
퀄리아님,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콕 찝어 해주시니, 덕분에 제가 좀 후련하네요!

이제 추석 연휴가 끝나면 금방 공론화 결론이 나올텐데,
얼른 끝났으면 싶은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노력을 해야 할텐데 하는 마음이
둘 다 들어요.

어떤 결론이 날지 조금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젠 제 손을 떠났다는 생각도 한 편 들기도 하구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7-10-11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쓰모토 세이초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4대강 때 전문가라고 나와서 떠들던 놈들도 그렇고, 비타민제 논쟁때도 그랬고, 탈핵가지고 밥그릇 싸움이군요. 근데 전문가라면 적어도 후쿠시마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죠. 학계를 파보면 실력보다 연줄과 충성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 그런 부류는 아닐까 싶네요. 실력이 있는 사람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더 문제..-_-:

감은빛 2017-10-19 20:11   좋아요 1 | URL
저 책 아직 펼쳐보지도 못 했네요.
내일 신고리5,6호기에 대한 공론화 위원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제가 저 책을 읽을 시간이 날 지 어떨지 정해질 것 같네요.

이번에 느낀 건데 전문가라는 작자들, 교수라는 작자들이
정말 헛소리를 많이 하더라구요.
진짜 배웠다는 인간들이 저럴 수 있나 싶어요.

transient-guest 2017-10-19 20:18   좋아요 0 | URL
일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이 참 별 사람들이 다 교수니 박사니 하는 것으로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적음 숫자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