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스미스 W. Eugene Smith 열화당 사진문고 12
샘 스티븐슨 지음, 김우룡 옮김, 유진 스미스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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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맨 앞장에서 펼치면 작가 유진 스미스의 생전 모습이 전면으로 나온다. 학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털보아저씨다. 그리고 간략하나마 그의 생애에 대한 글줄이 나온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고통받는 사람의 일그러진 표정을 부드럽게 고치고, 늙어 하찮게 된 사람을 곱게 그려내며, 도착된 현실의 끔찍함을 완화된 모습으로 표현한다면, 또한 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현실을 덮어 가장하고 부드럽게 그려낸다면, 그 예술가는 추악함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가 그리하는 것은 진실에 맞서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는 유진 스미스.

그래서일까....그를 형용하는 그 글에는 그가 얼마나 독립적인 입장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사진에 대한 강박적인 몰두로 인해 약물에 의존하는 그의 황폐한 일상을 말하기도 한다.

모과이의 음악을 들으면서 유진 스미스의 사진집을 들여다본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괜찮은 사진을 보려면 음악부터 찾게 된다. 시각과 청각은 노선을 같이 하는 모양인지, 이 사진집엔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선 모과이다.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점.
1951년 스미스는 사우스케롤라이나 주의 시골로 가 몇 주를 보낸다. 거기서 그는 궁핍한 이웃들을 찾아다니던 흑인 조산사 모든 캘런을 따라다닌다. 무제(꽃을 들고 집 입구에 서 있는 조산사 모드의 근접 사진)는 캘런의 사진이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 나오던 카페 여주인이 생각난다. 그녀의 얼굴과 시선은 정면에서 많이 비껴나 있다. 왕진 가방처럼 생긴 것을 안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일상의 고됨이 묻어 있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엔 유독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오를 것을 배경으로 하는 사진이 많았다. 공업의 발전과 그만큼 영향의 입게 되는 주변 환경과의 상반 관계가 우울을 품은 공장 굴뚝 연기에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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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11-0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인간에게 아주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말로 학생들을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음...! 잊고 있었던 것을 상기시켜 주고 가시네요~
 
마님되는 법
진산 지음 / 부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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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은 무협 작가라던데.....작품을 읽은 게 없으니 마님의 필체를 알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이 쓴 리뷰가 상당히 재밌어서 믿고 고른 책이다. 또, 마님이 되는 비법도 좀 얻어 듣고자 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삼돌이는 아무나 될 수 없으며, 진산 마님께서 말하는 좋은 삼돌이의 조건은 따로 있었다. 각지고, 거짓말 안하고,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 진산이 주로 말하는 것은 이런 삼돌이의 조건을 갖춘 자와 결혼이라는 종신 계약을 통해 어떻게 서로를 마주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삼돌이 입장이야 어떨지 모르겠으나 필자인 마님의 관점에서 읽어서 그런지, 둘의 관계에서, 마님 쪽이 조금 더 지혜로워 보인다. 삼돌이가 결혼의 이상을 잊지 않게끔 시종일관 구슬리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뭐, '마님과 삼돌이'라고 해서 한쪽을 휘두르고, 이 책에서 말하는 부부 관계가 한쪽은 복종만 하는 그런 관계는 결코 아니다.

진산은 어린 자식과 성질 좀 있는 남편을 둔, 그리고 부부 작가로 살고 있는 사람으로,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마님이 애를 낳을 때 이야기, 그리고 여러 치과를 전전했던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다.)들을 입담이 좋게 풀 줄 아는 재미있는 작가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산 마님이 내가 아는 친구이거나, 선배이거나 였다면 참 경제적이었겠단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들은 지면을 빌어 듣는 거 보담, 직접 듣는 게 훨씬 생생하고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또, 굳이 팔천원이라는 거금을 들이며 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즉, 본전이 생각나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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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문학세계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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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의 책들은 입 소문도 세고, 각종 매체 광고도 세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항상 고맙게도 재미를 보장한다. 원제는 Metaphysique des tubes로 해석을 하자면 '튜브의 철학(?)'쯤 될 것 같다. 이런 제목이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로 바뀐 것에 대해선 좀 의아함이 있다. 번역에 있어서 아니, 제목을 붙이는 데 있어 너무 세 살만 조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이 태어나서 처음 2년간 자폐적 성향이 있어 어떤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기 시절. 무(無)에서 충만을 느끼며 스스로를 신(神)으로 느끼던 그 시절의 이야기, 즉 도입부가 더 흥미진진했고 아기가 나이를 먹어 세 살이 되어 갈수록 뻔한 스토리가 되어 갔다고 생각한면, 내 취향이 조금 남다른가.......

출생 후 2년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건네준 화이트 초콜릿의 몰카당몰카당한 맛에 반해, 아기는 비로소 '삶'을 깨닫는다. “나야! 내가 살아 있는 거야. 난 너의 제일 친한 친구야. 너에게 쾌락을 느끼게 해주는 게 바로 나니까 말이야.”아기의 입을 통해 우리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를 알게 된다. 사람을 살게 만드는 건 바로...인생에는 초콜렛의 달콤함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쾌락'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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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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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는 아직도 무엇에 대한 '각오' 따위가 영글지 못한 탓인지, 유난히 다른 사람의 각오를 듣는 걸 좋아한다. 사회 생활 초년기에 우연찮게 흘러 들게 된 지금의 이 직종에 몸담으면서 비교적 한눈 팔지 않고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셈이긴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길이 아닌가보다.'내지는 '이 길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그리고 나는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의 각오'라기보단 그냥 단순히 '각오'라는 것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 십대 시절 이야기와 망해가는 통신사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업무 틈틈히 몰래몰래 써 내려간 소설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화려한 등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업 작가로서의 애환 등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사고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이상은 무리가 되더라도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강인한 삶을 자처하며, 다른 세계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등뼈인 북알프스 산맥 한 자락에 자리한 조그만 산 마을에서 시골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 그. 작품을 한편 쓰고 나면 소설에서 확실하게 멀어지기 위한 방법으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다. 개와 함께 산을 뛰어다니며 녹초가 될 만큼 지켜서 돌아와서는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청한단다. 이런 일과를 매일 반복한단다. 그러다보면 먼저 쓴 소설에 대해선 잊고 또 다른 새로운 소설을 쓸 여력이 생긴단다.

그가 쓴 각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는 자연(산수)과 깊이 연결 관계를 갖는 작가이며, 넓이보다 깊이를 선호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똑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는 것. 하나의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끝없이 다양한 생활 방식을 실험하기 보다 몇 가지 의식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동경 같은 대도시 지역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여분의 오락이나 기회가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대자연에서의 영원하며 심오한 연결 관계를 대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통성을 추구하는 작가일 것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현란한 현실, 엄격한 규칙, 그리고 합리성 따위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는 결합적인 연결성 안에서 영적인 문학의 뿌리를 내리려는 애씀의 결과이다.

물론 마루야마 겐지의 이 글 곳곳에 깊이 숨어 있는 편견은 무척이나 껄그럽게 느껴진다. 특히 그의 말 중에 '여자나 게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입니다. 그런 치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어집니다'라는 말과 '여자와 부모가 하는 소리에 일일이 상대를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발언은 정말 충격이었다. 밑도끝도 없이 싫은 건 죽어도 싫은 거고, 자신이 생각하는 엄격한 규칙 외에는 다 아닌거라는 식이니.....보통 독선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나의 생각조차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보통 사람이 열을 가지고 있는 거보다 하나나 둘(높은 도덕성이나 인류애 등등)을 더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말이다. 소설가는 마루야마 겐지처럼 보통 사람보다 하나나 둘 결여되기 십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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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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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문장력으로 잘 쓴 책이다.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관찰력으로 일관한, 그리고 잘 읽히니까, 번역도 좋았다고 말해야겠다. 그런데 나의 이 불편한 속내는 어디서 오는건지 모르겠다. 저자는 클린턴도 보보스이고, 자신도 보보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 보보들은~ 한다'가 아니라, '우리 보보들은 ~ 한다.'라는 문장을 줄곧 사용하여 말한다. 하지만 '우리'라니, 독자인 나는 명명백백 보보스 족이 아닌 것이 문제이다.....

번역자는 이 책이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사상적 태도와 인생살이의 잣에 대해서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돕는다고 말한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기 계발을 중요한 미덕으로 꼽는다는 보보스 족의 견해는 내 생각과 일치한다. 하지만 나는 보보스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예술적인 자유를 지향하고 답답한 일상에 얽매이지 않는 쿨하게 사는 척하고 싶어도, 고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고학력의 엘리트가 아니라면 해당 사항 없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보스들이 삶의 모습과 그들의 갈등 및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스타일을 분석적이고도 내밀히 보여 주고 있는 책이다. 세속적인 성공과 내적인 덕목 사이의 갈등, 야망 때문에 영혼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출세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골몰, 어떻게 물질적인 것에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원하는 어떤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의 최상층에 살면서 어떻게 속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기 처세 보고서'가 바로 이 책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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