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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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속에는 아직도 무엇에 대한 '각오' 따위가 영글지 못한 탓인지, 유난히 다른 사람의 각오를 듣는 걸 좋아한다. 사회 생활 초년기에 우연찮게 흘러 들게 된 지금의 이 직종에 몸담으면서 비교적 한눈 팔지 않고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셈이긴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길이 아닌가보다.'내지는 '이 길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문득문득 한다.

그리고 나는 마루야마 겐지에게 '소설가의 각오'라기보단 그냥 단순히 '각오'라는 것에 대해 듣고 싶었다.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 십대 시절 이야기와 망해가는 통신사 회사원으로 생활하면서 업무 틈틈히 몰래몰래 써 내려간 소설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화려한 등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전업 작가로서의 애환 등을 이야기한다.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겠다는 사고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하는 이상은 무리가 되더라도 혼자 사는 방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목표로 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대해, 혹은 모든 집단과 조직에 대해 홀로 버틸 대로 버티며 거기에서 튕겨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환원해야 한다. 가장 위태로운 입장에 서서 불안정한 발밑을 끊임없이 자각하면서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그 반복이 순수문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인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는 강인한 삶을 자처하며, 다른 세계를 동경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의 등뼈인 북알프스 산맥 한 자락에 자리한 조그만 산 마을에서 시골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 그. 작품을 한편 쓰고 나면 소설에서 확실하게 멀어지기 위한 방법으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다. 개와 함께 산을 뛰어다니며 녹초가 될 만큼 지켜서 돌아와서는 씻고, 밥을 먹고, 잠을 청한단다. 이런 일과를 매일 반복한단다. 그러다보면 먼저 쓴 소설에 대해선 잊고 또 다른 새로운 소설을 쓸 여력이 생긴단다.

그가 쓴 각오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는 자연(산수)과 깊이 연결 관계를 갖는 작가이며, 넓이보다 깊이를 선호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똑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는 것. 하나의 생활 방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끝없이 다양한 생활 방식을 실험하기 보다 몇 가지 의식만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동경 같은 대도시 지역에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여분의 오락이나 기회가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대자연에서의 영원하며 심오한 연결 관계를 대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통성을 추구하는 작가일 것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현란한 현실, 엄격한 규칙, 그리고 합리성 따위보다 더 깊은 곳에 뿌리를 두는 결합적인 연결성 안에서 영적인 문학의 뿌리를 내리려는 애씀의 결과이다.

물론 마루야마 겐지의 이 글 곳곳에 깊이 숨어 있는 편견은 무척이나 껄그럽게 느껴진다. 특히 그의 말 중에 '여자나 게이에게 인기가 있으면 끝장입니다. 그런 치들 덕분에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어집니다'라는 말과 '여자와 부모가 하는 소리에 일일이 상대를 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발언은 정말 충격이었다. 밑도끝도 없이 싫은 건 죽어도 싫은 거고, 자신이 생각하는 엄격한 규칙 외에는 다 아닌거라는 식이니.....보통 독선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나의 생각조차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는 편견일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보통 사람이 열을 가지고 있는 거보다 하나나 둘(높은 도덕성이나 인류애 등등)을 더 가지고 있을 거라는 편견말이다. 소설가는 마루야마 겐지처럼 보통 사람보다 하나나 둘 결여되기 십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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