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가토 슈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사월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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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부터 유쾌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책

한편 수많은 고뇌 끝에 다다르는 안심인명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 유쾌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비극을 읽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비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참담한 처지에서 살아가므로 그런 주인공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비극을 읽는 효능 중에 으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본성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인데, 비극을 읽는 것은 그런 이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특별한 위기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비극이다.

가령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인 영웅들은 신탁으로 운명이 정해진다. “너는 언젠가 네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라고 신이 말한다. 그 일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른다. 아버지와 떨어져서 자라고 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싸움에서 사람을 죽인 영웅은 나중에 상대방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스스로 두 눈알을 뽑고 장님이 되어 방랑 여행에 나선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희귀한 상황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죄에 대한 가책감, 돌이킬 수 없는 인생, 그 인생을 조종하는 인간의 초월한 힘이 아닐까? 우리의 죄는 부모 살해는 아닐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조종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 받들던 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령 전쟁이나 중대한 사회 현상들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이다. 또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지 않을 수 없었던 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극단적 상황 속에서 분명해지는 인간의 조건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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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0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내일이 지나면 새해예요.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18-01-02 16:50   좋아요 1 | URL
친절한 서니데이 님 덕에 버려둔 서재인데도 불빛과 온기가 여전히 있는 듯한 착각을 주네요~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고자 하는 일 순조롭게 이루시길 바랍니다! ㅎ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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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먼저 쓴 편지)

병든 몸이라 문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제는 마침내 뵙고 싶었던 바람을 이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가 없습니다. 내일 남쪽으로 가신다니 추위와 먼 길에 먼저 몸조심하십시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이며 이황이 삼가 말씀 드렸습니다. 退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냄)

() 삼가 건강이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그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근근히 지내고 있습니다.

병도 다 낫지 않았는데 몸을 돌보지 않고 면신례를 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치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람의 핍박을 면할 수 없어서 무턱대고 나아가 일을 마쳤습니다. 이는 곧 저의 식견이 높지 않은 허물 때문이니 다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이런 사건에서 세상 살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의 놀림과 배척을 면하지 못하고, 끝내 몸이 위태로워지거나 뜻을 억눌러야 하는 데에 이르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제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십시오.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했습니다. 이 말의 뜻이 어떻습니까? 제가 드린 말씀을 살펴서 비판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언을 구하는 부분

평생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단지 두 번 뵙자마자 곧 서둘러 이별했습니다. 그리하여 제비와 기러기가 오가는 것처럼 되었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근심하고 선생님을 깊이 그리워함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종이를 대하니 아득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다시 올립니다.

8월 보름, 후학 대승이 머리를 숙입니다. 기운이 약해 간신히 썼습니다. 두렵고도 부끄럽습니다.

 

 

() 기정자 명언에게 답하는 글 (이황이 기대승에게)

이른 봄에 편지 한 통을 멀리 남쪽의 인편에 부친 다음 곧 동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서울 소식도 자주 듣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호남은 천리 밖에 있으니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그사이 그대가 서울로 왔음을 물어 알고서 편지를 적어 나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대는 바야흐로 신임 관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벼슬에 나아가고 들어가는 거취는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지, 내가 남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남이 나와 함께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호강후(胡康候)의 견해는 뛰어나서 본받을 만합니다. 다만 평소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스스로의 결정이 혹시 시대의 도리에 어둡거나 또는 바람과 그리움이 앞서게 되어, 그 마땅함을 잃을 뿐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그대는 편지에서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이 말은 진실로 간절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가 헤아려 보건대, 그대의 높은 학문은 크고 넓은 점에서는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세밀하고 오묘한 정수를 꿰뚫지는 못했으며, 마음을 두고 행동을 다스림에 있어서 사방으로 터져 자유로운 면에서는 얻은 것이 많으나 오히려 몸과 마음을 거두어 들여 굳히는 공부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글은 뛰어나지만 더러 들쭉날쭉 모순되는 병페를 면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위한 계획이 비록 보통 사람으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나 오히려 여기에 두었다 저기에 두었다 하고,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는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큰 일을 맡아서 큰 이름을 걸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처신하자면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종이를 앞에 두니 마음에 불안해 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춥고 얼음 어는 철입니다. 시대를 위해 자신을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삼가 절하며 아룁니다.

기미 1024, 병자 황이 절합니다.

제 편지에 환란을 염려하는 말이 별 까닭도 없이 많은 듯하지만, 늙은이가 세상일을 겪은 날이 많기에 자연히 염려가 이에 미쳤으니, 괴이쩍게 여기지 말기를 바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일은 평생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공부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것인데, 첫발을 내디디면서부터 헛된 명성이 먼저 세상에 퍼진다면,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늘 생기는 환란이니 매우 두려워할 만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이처럼 말할 수 있지만, 그대가 권력을 잡고 우뚝하게 드러난 날에는 벼슬도 없는 제가 이런 한가로운 말로 편지를 주고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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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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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해 말하는 것의 어려움

 

아인슈타인의 관한 책들은 ... 그는 물론 천재입니다만, 그의 어디가 어떻게 뛰어났는지에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그의 연구 성과인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을 한마디로 간결하게 가르쳐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거 참 곤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물리학이나 수학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해야 할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최첨단 이론은 예비 지식을 갖추지 않은 상대에게 한마디로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어느 정도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먼저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최첨단 일보직전까지는 모두 이해하고 있어서 최신의 연구 성과만을 전하면 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초보의 초보에 대한 해설부터 시작해서 최신 연구 성과의 엑기스만을 전달하면 되는 사람인지.... 대단히 폭넓은 선택지가 있고, 그래서 어느 길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수준도, 또 분량도 모두 달라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과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그 저자가 어떤 수준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인지 재빨리 판단하고, 자신이 그 수준의 독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나서 읽지 않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읽게 되기 일쑤입니다. 수준이 너무 안 맞는 책을 읽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설명 수준이 적절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판단은 단지 과학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의 책을 읽을 때에도 늘 중요합니다.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우선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서로 가늠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화제라도 그 화제에 대해 약간의 대화를 통해서 상대의 이해 수준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입니다. 공학적인 세계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온갖 시스템들을 서로 연결시킬 때 먼저 규격을 맞추고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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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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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6~37/39~4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오직 독서만이 살아 나갈 길이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나라나 월()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서 문제를 쓸데없는 물건 보듯 하는구나. 쏜살같은 세월에 몇 년이 지나면 나이 들어 신체가 장대해지고 수염도 텁수룩해질 텐데 갑자기 얼굴을 대면하다 해도 밉상스러워지기만 하지 아버지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천하에 불효자였던 조()나라의 조괄(趙括)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것이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독서에 힘쓰기를 바람.

폐족의 처지에서 자식들에게 살아 나갈 방도를 가르치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편지글

* 1, 2문단은 2007 개정 천재교육 독서와 문법36p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59~6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긍휼히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더구나.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느니 한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을 지낼 때에는 조그마한 근심이나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며 안부를 전해 오고, 안아서 부지해 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 주고 양식까지 대 주는 사람도 있어서 너희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은혜를 베풀어 줄 사람이나 바라면서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은정(恩情)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敗殘)하기는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힘이 없을 뿐이다. 남을 돌볼 여력이 없으나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라는 뜻 아니겠느냐? <중략>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 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원망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 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

남의 도움을 바라는 두 아들을 훈계하고 오히려 남을 도와주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지에서 일가친척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한탄하는 아들들의 편지를 받음.

편지글

* 2009 개정_중등 비상() 1단원 창작의 기쁨 선택 학습으로 수록된 제재입니다.

* 맥락 분석의 내용은 올백 교재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17~118,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

 

너희들의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둘째의 글씨체가 조금 좋아졌고 문리도 향상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덕인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덕인지 모르겠구나.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 그리고 초서나 저서(著書)하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라. 폐족이 되어 글도 못 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 집안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큰애가 4월 열흘께 말을 사서 타고 꼭 온다 하였는데, 벌써 이별할 괴로움이 앞서는구나(18022월 초이레지은이).

 

독서의 참뜻

 

종 석()이가 2월 초이렛날 되돌아갔으니 헤아려 보건대 오늘쯤에나 집에서 편지를 받아 보겠구나. 이달을 맞아 더욱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구나. 내가 너희들의 의중을 짐작건대 공부를 그만두려는 것 같은데 정말로 무식한 백성이나 천한 사람이 되려느냐? 청족으로 있을 때는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해도 혼인도 할 수 있고 군역(軍役)도 면할 수 있지만,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 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글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지 않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있겠느냐?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才)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꺾이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끊기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지난해 10월 초하룻날 입은 옷을 아직까지 그대로 입고 있어 몹시 군적스럽구나(1802217지은이).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폐족의 처지라도 공부의 뜻을 꺾지 말고 학문에 정진해라.

폐족이 되어 글공부를 포기하려는 자식을 타이르고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함.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식들이 글공부를 포기하고자 하는 의중을 읽음.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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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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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판화 작업

 

 인쇄소에 들렀다가 우체부를 만난 참에 자네 편지를 건네받았네. 자네의 제안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조만간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의논해 보도록 하세.
 요즘 네 번째 석판화를 작업중이네. 자네가 아직 보지 못한 작품 석 점을 이 편지와 동봉하겠네. 그 가운데 둘, 곧 「삽질하는 사람」과 「카페의 술꾼」은 데생 작업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성싶기도 하네. 석판화 작업을 하려고 거기 필요한 잉크를 썼는데, 종이 위에 인쇄를 잘못 하는 바람에 데생이 생명력을 잃어버렸네. 어쨌든 돌 위에 직접 작업하는 기존 방식과 종위 위에 데생을 옮기는 새 방식을 접목하려고 나름대로 시도 중이네.
 자네 「원 아웃Worn out」 데생 시리즈 기억하나? 최근에 서로 다른 두 모델을 대상으로 세 차례나 그것을 다시 작업했네. 하지만 아직 더 작업해야 할 것 같네.
 내 다섯 번째 석판화 작업의 모델을 발견했네. 늙은 노동자인데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에 머리를 푹 박은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네.
 내가 왜 석판화 작업에 관한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자네에게 이야기하는지 아나? 거기에 큰 희망을 품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네. 마찬가지로 그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만약 좋은 돌 몇 개를 손에 넣어 작업하게 된다면―그 중 한두 개의 작업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심지어 영국에까지 작품을 보내볼 생각이네. 말장난이나 하면서 무위도식하기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석판화 교정판을 보내는 편이 기회를 얻을 확률 면에서도 분명 더 이로울 걸세. 데생을 보내는 일은 아무래도 좀 꺼림칙하지. 분실될 수도 있으니까. 새 기법은 돌을 보내지 않고도 꽤 멀리 있는 석판화 인쇄소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네. 그날로 새로운 종류의 잉크와 분필을 구했네.
 지금 내 주소는 센트베그 136번지일세. 동봉하는 석판화 교정판에 대한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네. 고칠 여지가 있다면 미흡한 점들은 기꺼이 고치겠네. 하여간 새로운 「원 아웃」 시리즈가 자네 마음에 들리라 믿네. 내일 당장 돌 위에 작업을 시작하고 싶군.
 편지지가 다 채워진 것 같군. 시종 내 작업 이야기만 늘어놓은 꼴이 됐지만 자네 건강이 이만저만 염려스러운 게 아니네. 몸이 썩 안 좋다고 했잖은가. 올여름 나도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렸지. 자네는 그러지 않았음 좋겠군. 어쨌든 하루 빨리 낫기를 진심으로 기원함세. 악수를 청하며.

  날짜 미상


수상 소식

 

런던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니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에게 상을 안긴 유화 「실 잣는 여인」에 대해 최근까지 되풀이했던 내 말에 스스로 흐뭇해지는군. “「실 잣는 여인」의 색 배합은 내가 본 자네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훌륭하다”고 내가 말하지 않던가.
 어두운 계열의 색깔로 작품을 시작해 최대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기법은 독창적이네. 「실 잣는 여인」을 작업할 때 자네가 쓴 기법이지. 지난 금요일에 내가 또 한 번 말했지. “이 작품은 놀라운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자네의 방문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네. 이곳에 오면 올수록 자네는 자연에 더 많은 호감을 갖게 될 걸세.
 자네가 떠난 뒤 「물레방아」를 작업했네. 기억할지 모르겠네만, 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자네에게 조언을 부탁한 바로 그 주제일세.
 모델이 된 물레방아는 우리가 함께 보러 갔던 두 개의 다른 물레방아와 거의 비슷하다네. 다른 점이라면 빨간 지붕 두 개를 인데다 포플러나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정도랄까. 가을엔 더 멋있을 걸세.
 동생 테오가 성신강림 대축일에 이곳에 올 걸세. 잠시 파리를 벗어나볼 요량으로 축제 기간에만 머무를 예정이라더군. 자네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 그도 무척 기뻐할 걸세.
 안녕히. 곧 장문의 편지를 보내겠네. 신의를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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