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6~37/39~4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오직 독서만이 살아 나갈 길이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나라나 월()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서 문제를 쓸데없는 물건 보듯 하는구나. 쏜살같은 세월에 몇 년이 지나면 나이 들어 신체가 장대해지고 수염도 텁수룩해질 텐데 갑자기 얼굴을 대면하다 해도 밉상스러워지기만 하지 아버지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천하에 불효자였던 조()나라의 조괄(趙括)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것이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독서에 힘쓰기를 바람.

폐족의 처지에서 자식들에게 살아 나갈 방도를 가르치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편지글

* 1, 2문단은 2007 개정 천재교육 독서와 문법36p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59~6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긍휼히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더구나.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느니 한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을 지낼 때에는 조그마한 근심이나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며 안부를 전해 오고, 안아서 부지해 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 주고 양식까지 대 주는 사람도 있어서 너희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은혜를 베풀어 줄 사람이나 바라면서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은정(恩情)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敗殘)하기는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힘이 없을 뿐이다. 남을 돌볼 여력이 없으나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라는 뜻 아니겠느냐? <중략>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 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원망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 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

남의 도움을 바라는 두 아들을 훈계하고 오히려 남을 도와주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지에서 일가친척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한탄하는 아들들의 편지를 받음.

편지글

* 2009 개정_중등 비상() 1단원 창작의 기쁨 선택 학습으로 수록된 제재입니다.

* 맥락 분석의 내용은 올백 교재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17~118,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

 

너희들의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둘째의 글씨체가 조금 좋아졌고 문리도 향상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덕인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덕인지 모르겠구나.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 그리고 초서나 저서(著書)하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라. 폐족이 되어 글도 못 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 집안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큰애가 4월 열흘께 말을 사서 타고 꼭 온다 하였는데, 벌써 이별할 괴로움이 앞서는구나(18022월 초이레지은이).

 

독서의 참뜻

 

종 석()이가 2월 초이렛날 되돌아갔으니 헤아려 보건대 오늘쯤에나 집에서 편지를 받아 보겠구나. 이달을 맞아 더욱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구나. 내가 너희들의 의중을 짐작건대 공부를 그만두려는 것 같은데 정말로 무식한 백성이나 천한 사람이 되려느냐? 청족으로 있을 때는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해도 혼인도 할 수 있고 군역(軍役)도 면할 수 있지만,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 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글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지 않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있겠느냐?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才)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꺾이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끊기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지난해 10월 초하룻날 입은 옷을 아직까지 그대로 입고 있어 몹시 군적스럽구나(1802217지은이).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폐족의 처지라도 공부의 뜻을 꺾지 말고 학문에 정진해라.

폐족이 되어 글공부를 포기하려는 자식을 타이르고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함.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식들이 글공부를 포기하고자 하는 의중을 읽음.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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