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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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나는 내 연배의 소설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그 작품의 인지도나 평론가들의 평가를 완전히 배제하고, 동년배라는 이유만으로 꼭 하나씩 사 읽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읽게된 소설로는 김현영의 <냉장고>와 이지형의 <죽거나 망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가 있지만,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었다.

히라노 게이치로도 나와 동년배이다. 이 작품은 두 번째 작품이고, 첫 번째 작품으로 데뷔하여 일본 문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모양이다. 이 소설은 장르로 굳이 구분하자면, 환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딱이 환상 소설에만 국한시킬 수도 없는 것이, 순수문학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환상 소설로서의 면모라 하면 이런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분량도 많지 않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빠르게 쏠쏠 잘 읽힌다. 탄탄한 줄거리의 맥락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수한 문체가 빛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자, 나래이터는 절대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순간적인 일체감을 꿈꾸는 묘사가 시시때때로 나타난다.

본문 중에 이런 부분이다.

'마사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정열'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의 그의 숙명적인 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병은 '참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위해서는, 천천히 나날을 쌓아가며 그 끝에 무언가 얻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순간적 초월 지속적이지 않은 단 하나의 순수한 앙양, 일격에 생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뒤 한번 안돌아볼 치열한 충동의 체험을 갈구했다. 피는 끓는 물처럼 소용돌이치지 않으면 금새 괴어 색이 변하고 응고하고 만다. 육신은, 고통스럽도록 거세게 움직이지 않으면 곧 뜨뜻미지근한 권태의 나락에 가라앉는다.'

정말 감동적인 부분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늘 성실하게 한 길을 닦다보면, 언제가는 내가 뭔가가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꼭 그렇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 단번에, 한번에 크게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그게 언제인지 그런 날이 있을른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말이다.

각설하고, 그의 소설가로서 문체는 정말 흡인력이 있다. 놀랍도록.... 스치듯 그냥 스치듯 드는 생각..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 이 사람의 소설을 읽고부터 부쩍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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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4-2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왜...과거 그렇게 히라노 게이치로에 열광했었던지....요즘들어서는 그때 그 마음을 잘 이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정말 그때그때 달라요다~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 - 자기 기만과 자기 배반을 깨닫게 하는 리더십
물푸레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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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계 유지를 위해서나, 여러모로(자아 실현?)나 직장 생활을 계속 끝까지 유지하여야 하는 사람이다. 몸의 어느 부분이 말을 듣지 않아서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기 직전까지는 직장 생활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게 되겠지.

몇 달 전에 적으나마 연봉이나 기타 여러 가지 조건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일터를 옮긴 상태이다. 그렇게 옮긴지가 한 달이 되어갈 즈음에 내가 소속된 팀의 이상한 분위기를 포착하고 말았다. 우리 팀은 나 말고..다섯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팀장이고 나머지는 평사원이다. 그리고 팀장 비롯하여 나와 팀원들 모두 여사원들.

내가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은 바로 다음과 같은 점이다.  팀장 한 사람 대, 나머지 사원들은 하나가 되어 대결 구도라는 것. 나머지 팀원들은 팀장 없을 때 그를 비난하면서, 서로 의지를 돈독하게 키우는 거 같아 보였다. 그리고 나는 중간에 애매하게 양쪽 모두를 오가고 있었다. 편가르기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점점 이런 관계가 넌덜머리가 났다.

그래서 애써 나머지 네 명의 팀원들과 가까워질려고 나름대로 노력도 해봤는데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가 주는 긴장감은 정말 업무 외적인 스트레스였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모두와 버겁게 지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던 중 <상자 안에 있는 사람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을 읽고, 이 모든 버거움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강력히 추천할 수 있는 좋은 실용서이다. 일단 이 책은 유사한 사례가 많이 나와 이해가 잘 된다. 비단 직장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부부관계에서 상자 밖에 있는지와 상자 안에 있는지 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소모적인 관계에 빠져 있을 때나 어려운 난관에 빠져 있을 때,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나름대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런 노력에 대해서조차 냉정한 한마디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기 기만에 빠진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해결책은 오히려 역효과만을 부른다는 것, 상자 밖으로 나오는 것에는 단계가 있다고 가르친다. 이 단계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스스로가 자기 기만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즉, 상자에 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 자각이 맨 처음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서로가 각자의 몫을 주장하다가 결국엔 목소리 큰 사람 쪽에 모든 해결의 실마리가 손을 들어 주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 때 문제가 해결된 듯 보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결코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한발 물러나 타인의 입장에서도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놀랍도록 순조롭게 일의 실마리가 잡혀가는 것이고, 다음에 똑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 때는 분쟁을 피하고 사건을 현명히 해결하게 될 것이다.

특히, 요즘 우리들은, 아니 나는 일단 나 자신의 한몫을 챙기는 데 순서를 두고 다음 것은 부차적으로 생각해보는 이기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연대 의식이 없는, 상자 안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어렵게 된다. 연대감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것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이 꼭 질머져야 하는 멍에가 있다. 그 멍에는 바로 평생을 경쟁 의식과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며 살게되는 것일거다.

남에게 뒤쳐지 않고 싶다는 자기에 대한 끊임없는 주문, 그리고 남보다 더 모든 조건이 나쁜 것 같다고 느껴지는 빈곤 의식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상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은 언제까지나 우울하고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자 안은 갑갑하다. 어서 상자 밖으로 나와 넓은 시야로 타인을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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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 - 침팬지와 함께 한 나의 인생
제인 구달 지음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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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래 동물을 무서워한다. 날카로운 이빨로 물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있어서 일까.. 한달 전 동생이 오래도록 집을 비우게 될 사정이 생긴 자기 친구 집의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왔다. 등어리는 까만털을 갖고 있고... 얼굴과 다리는 황금색 털을 갖고 있는 요크셔테리어..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만하루만에, 이 강아지의 등어리를 쓰다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의 유심히 내려다보는 눈길을 느끼면 얼른 배를 하늘로 향하게 발다랑 드러누워서, 자기 배를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이 녀석.

이 강아지 때문에 애완견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인터넷 싸이트도 뒤져보게 되고, 개샴푸를 사러 길건너 멀리까지 나가 보질 않나, 나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내 곁을 스치는 강아지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동물들까지 유심히 보게 되었다. '저 강아지는 나이가 몇 살일까?'에서부터 뭘 좋아하고, 싫어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성격을 굳이 구분하여 딱 잘라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떤 연유로 침팬지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릴 적에 어떤 소망을 간절히 갖고 있었고,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해 왔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쉽고 간결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제인 구달이라는 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결혼, 출산, 이혼, 재혼에 대한 인생 역정이 정말 담담한 필치의 술술 읽히는 문체로 그려져 있다.

어릴 적에 그녀가 이웃집의 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관찰하고 돌보았던 것, 그리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두리틀 박사의 이야기책을 옆에 끼고 살았던 것 등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 침팬지를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며 동물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갖는 데에 발로를 마련한 것 같다.

제인 구달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공포나 불안, 통증, 그리고 행복과 만족을 느낄 줄 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불안에 떨고 통증을 느끼며 죽어가게 되는 걸 원하는가?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제인 구달은 동물과 인간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다. 그리고 제인 구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루츠와 슈츠라는 단체를 만들어 환경 운동의 실천을 몸소 보여 주기에 이른다.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방식은 기존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에 방식대로 라면, 동물들을 일단 실험실의 철창에 가두고, 단번에 결과를 보기 위해, 급기야 동물에게 약물 투여 혹은 절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제인 구달은 야생의 상태로 들어가 동물들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인내심과 사랑을 갖고 그저 관찰하고 동물들에게 도움을 준다. 이런 방식은 연구 업적에 있어서 단번에 어떤 결과물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생태계의 흐름을 파괴하지도 않고, 동물들을 불안에 떨게 하거나 가혹하게 죽이지 않으며,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부탁의 말을 남긴다. 환경의 오염을 막고,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거창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고, 작은 것 하나부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동물들과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백과 사전에서.. 6주 된 인간의 태포에 갇힌 태아와 4주 된 태포 안의 여우원숭이 그리고 3주 조금 지난 태포 안의 닭의 모습이 아주 영락없이 구분을 못할 만큼이나 흡사하단 걸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발생 단계에선 비슷하게 생겼던 것들이 별개의 차원에서 자기의 생을 꾸려간다. 그런 인간은 단지 자신이 발생 단계에서 사람의 배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구상의 생물체들에게 너무나 오만하게 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무자비하게 대량으로 산림을 채벌하여 야생 동물들이 오갈 곳 없이 만들어버리거나, 생체 실험으로 동물을 대용하고, 인간들의 호사스런 취미에 부흥하도록, 한낱 사냥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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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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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살 보조업자'이다. 그는 고객이 될 만한 의뢰인을 검색한다. 도서관에서, 미술 전시회에서, 극장에서, 길거리에서 그는 의뢰인에게 접근하여 계약을 맺는다. 의뢰인이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의뢰인에게 맞는 자살 방법을 가르쳐주고 그것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친절하게, 따뜻하게.. 그래서 의뢰인은 자신이 원한 대로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는 그것을 한 권의 소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주인공이 자살 보조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나'는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을 뻔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 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10쪽--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맹점이자,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맹점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말로 너저분한 인생을 압축의 미학(죽음)으로 승화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와 같은 주인공들에게서 죽음의 미학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등장 인물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인생의 비의 품은 듯 비련 어린 면모를 보여 주고 있지 못한데 말이다. 너무 억지스럽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 소설의 이러한 설정이 매력이 되는 이유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살 보조업'이라는 설정 자체가 세상 속에서 상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고 믿는 통념상 '살인'의 의미,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는 '자살'의 의미의 그 경계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즉 이 작가의 이런 방식은 기존 작가들의 죽음에 대한 접근과는 달리 새로운 방식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려 했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던 맨 처음 얘기로 되돌아가 본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은 냉정을 찾게 되었다. 아무런 교훈도 훈계조의 따끔한 충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이 소설 속에서 '냉정함'이라는 요소를 꼬집어 내어 내 것으로 취하다니.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무기력증, 집착증은 '멈춰져 있는 기억' 속에서의 허우적거림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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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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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간중간 소위 88년도 77년도에 유행했던 게그들도 이합집산 하였고... 그래서 시종일관 사람을 키득거리게 만드는 재주를 발산해 내는 책이다. 거기에 나오던 우스겟 소리 중에서 아직도 뇌리에 떠나지 않는 유머가 있는데...

당시 친구들 중에 유행하던 게,, 그런 거였단다. 팝송을 한국말로 유사하게 부르는 거였는데.. 올리비아 뉴튼존의 physical의 가사 중 일부..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let me hear your body talk 냄비 위에 밥이 타.. 밥이타.. 냄비 위에 밥이 타... 와 같은 게그를 언급한 것...

어느날 똑같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나란히 체벌을 받은 “하찮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평생을 `4인방'으로 얽히게 된 형준 승주 조국 두환이 주인공들이다. 소설 제목은 학급의 주류로 부각되지 못하고 외곽에서 겉돌기만 하던 고등학교 시절 이후, 성인이 된 뒤까지도 미미한 사회적 위상에 자족해야 하는 이들의 비주류적 처지를 가리킨다. 어쩌면 그들의 그런 처지야말로 `58년 개띠'라는 말의 함의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전반부는 화자인 형준의 초등학교 동창인 예쁜 여고생 소희를 둘러싼 네 친구의 각축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처음에 소희는 넷 가운데 가장 잘 생긴 승주의 파트너가 되지만, 결국은 아마추어 깡패나 다름없는 두환과 야반도주를 하게 된다. 그 뒤 소설은 소희가 교통사고로 횡사하는 87년까지 나머지 세 명의 이야기만으로 이어진다.

은희경의 마이너리그는 한마디로 끝까지 자신들이 메이저라 믿고 싶어하는 마이너 군단에 속한 사람들의 성장 소설이다. 형준, 승주, 조국, 두환의 삶이래 봤자 지방 출신에다가 보잘것없는 학력, 반복되는 실직, 실패한 결혼, 정치적 무감각 등 마이너리티로서의 모든 요소들을 구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단 책을 덮고 나면 - 읽는 내내는 가벼움으로 유유자적 재미있게 읽어 냈으나 - 뭔가 허전한, 미진한 느낌이 밀려 들어온다.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주변의 남자들로부터 여러 에피소드를 듣고 그것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묶어 놓은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네가지 유형마저도 경박한 무엇처럼 밖에는 여겨지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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